김소영, 어린이책 읽는 법, 2017

2017. 11. 21.

화요일

 

늘 어린이를 만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어린이책은 거의 읽지 않는다. ‘어린이책은 시시해’라는 고정 관념이 있었다기보다는, 어린이 책이 아니고서도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그쪽까지 관심이 닿지 않았다는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같이 일하는 분의 추천으로 이 멋진 책을 만나게 되었다. 서점에서도 내가 거의 가지 않는 서가에 꽂혀 있었기에, 이렇게 추천을 받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이 책을 영영 못 읽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한다. 그 정도로 멋진 책이었다.

 

많은 어른들이 습관처럼 어린이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어떤 책을 좋아할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의 독서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대개 ‘좋아하는 책을 읽음으로써 즐거움을 느끼는 것’보다 ‘책을 통해 지식과 사고력, 어휘력, 창의력, 상상력… 등등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책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나는 ‘자발적으로’ 지식을 얻고 싶어서 책을 읽을 때에도 왕왕 체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대학 때 우연히 어린이책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되어 오랜 기간 출판사에서 어린이책 만드는 사람으로 일하다가, 책읽기가 직업이 되다 보니 정작 재미는 시들해진 것 같아서 회사를 나와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 독서 교실을 열게 된 저자는 아이들에게 독서를 권하는 것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어린이를 언제나 읽는 사람, 즉 평생 독자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신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억지로 읽기 싫은 책을 읽게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집안 곳곳을 책으로 가득 채워주셨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분야와 내용을 가리지 않고 마음껏 읽게 해주셨다. 과학책, 역사책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일편단심 동화책이었지만 편독을 한다고 걱정을 내비친 적도 없었다. 다만 슬쩍 다른 종류의 책에도 눈을 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셨던 것은 기억이 난다. 억지로 독서논술교실에 보내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만약 내가 다니고 싶다고 했다면 선뜻 보내주셨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고 자라, 여전히 책을 읽는 어른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어렸을 때 부모님께 받은 가장 큰 선물로, “책 읽기와 배움의 즐거움을 가르쳐주신 것”을 꼽는다. 그래서 지금 내가 만나는 어린이들에게도, 이 선물을 나누어주고 싶다는 욕심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운명처럼 이 책을 만났다.

<어린이 책 읽는 법>의 핵심은, ‘어린이에게 책 읽는 법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가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아이들이 책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려면 어른들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에 가깝다. 저자는 아이들의 나이나 학년에 따라 책을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 후에 본격적인 책 이야기를 꺼낸다고 한다.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어른’이 자기를 ‘아이’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대하고 있다는 진심을 깨닫게 되면 아이들의 태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기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좋으니까 무조건 읽으라고 건네는 사람보다는, 자기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더 활짝 여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다면, 먼저 아이들부터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비록 저자가 책에서 직접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이 메시지가 가장 마음에 선명하게 남았다.

나는 어린이가 어떤 길로 가든지 책을 들고 가면 좋겠다. 책만 보면서 가다가는 넘어지기 십상이지만 너무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면 그것도 괜찮겠다. 책을 옆구리에 끼고 걷다가 쉬면서 읽어도 좋다. 때로는 손에 책이 있다는 걸 잊고 있다가 문득 떠올라서 펼쳐 보아도 좋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독자인 채로 자라는 것이다. 어린이가 책 읽기를 배우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든 평생 독자가 되기 위함이다. 그러니 어린이도, 어린이를 돕는 어른도 눈을 멀리 두되 마음은 단단히 먹자. 다행히도 우리를 도와줄 어린이책은 친절하고 재미있다.  (150-151쪽)

 

+)

이 글을 쓰는 오늘 오전에, 아리랑정보도서관에서 저자의 강연이 있어 다녀왔다. 강연 내용은 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목소리로 듣는 것에는 글로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 좋았고, 책으로 만났을 때만큼 따뜻하고 진심인 분이어서 좋았다. 다음에 우리 공간에서도 모실 수 있었으면.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