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 26일까지 읽은 책

습관을 들이기는 어렵고, 없애기는 너무 쉽다. 상반기 내내 공들여 닦은 좋은 습관들이 유월 들어 와르르 무너졌다. 몸도 바빴지만 마음은 더 바빴다. 기록하지 않고 흘려보낸 날들이 많았다. 기록하지 않으니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놓아버리면 영영 지워질 것만 같아, 아쉬운 대로 간단하게 몇 자 적는다.

다 읽은 책

  1. 존 우드, 이명혜 옮김, <히말라야 도서관>
    •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기록을 어떤 책으로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참고하기 위해 읽은 책들 중 하나. 친구가 대학교 때 인상 깊게 읽었다며 추천해주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중간중간 눈시울을 붉혀가며 읽었다.
    • 기록으로서 참고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띈다. 저자 본인이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성공으로 이끌어온 입장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개인의 주관적인 관점이 강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이 점은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기도 한 것이, 자신이 직접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어 이야기로서의 몰입감이 상당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그리고 ‘이 일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저자의 강한 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설득당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박력이다.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문장 하나, 단어 하나가 아닌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이다.
  2. 신이치 이시즈카, <블루 자이언츠> 1-4권
    • 몇 년 만에 제대로 읽은 만화책. 역시 친구의 추천으로 읽었다. 우연히 재즈를 접하고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겨 세계 최고의 재즈 뮤지션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인데, 티없이 순수한 열정이 매력적이다. 이런 류의 열정은 지켜보는 이에게도 옮겨 붙는다. 간만에 가슴을 뜨겁게 데운 독서.
  3. 데이비드 매컬로, 이중서 옮김, <너는 특별하지 않아>
    • 자주 가는 북카페의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해서 처음 몇 장을 후루룩 읽었는데, 마음에 들어서 바로 인터넷으로 구입해 출퇴근 길에 틈틈이 읽었다. 30년 경력의 고등학교 교사가 그간의 교직 생활에서 얻은 깨달음을 생생한 문체로 엮은 일종의 조언집인데, 다소 꼰대스럽다고 느낄 수 있으나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라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바로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듯한 생생한 구어체가 매력적이다. (원어를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번역에도 상당히 공을 들인 것을 알 수 있다.)
    • “너는 특별하지 않아”라는 도발적인 제목은 그대로 이 책을 꿰뚫는 주제이다. 모두가 특별하다는 오늘날의 교육 방침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결과보다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교육이 나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교훈은 그 메시지라기보다는 오히려 ‘미국도 우리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었다. 우리는 늘 헬조선을 연발하며 여기만 벗어나면 천국이 펼쳐질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사실 좁아지는 대입 관문과 생사를 건 취업 경쟁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라는(혹은 더 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벗어날 수 없는 지옥에서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결국 세상을 바꾸려면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진부하기 그지 없는 이야기로 끝을 맺지만, 어쩌면 그것이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4. 무라카미 류, <남자는 쇼핑을 좋아해> *민음북클럽 에디션
    • 민음북클럽 가입 선물로 선택한 스페셜 에디션 중 한 권. 책이 얇고 가벼워서 여행 길에 챙겨가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 읽었다. 저자도 내용도 전혀 모르는 채로 제목만 보고 선택한 책인데, 아마 정보를 더 알았더라면 아마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제목은 유치하지만 의외로 반전이 있는 책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선택을 했는데 제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책이라 실망했다. 무라카미 류는 유명한 소설가지만 왠지 내 취향에 맞지 않을 것 같아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이 책으로 입문하는 바람에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정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적어도 당분간은 또 읽을 일은 없을 듯.
  5. 김연수, <소설가의 일>
    • 이번 달에 읽은 책 중 고민할 것도 없이 단연 최고. 김연수의 재발견. 수없이 밑줄을 긋고 책장을 접어가며 읽었다. 지하철에서 킥킥거리며 웃다가 옆사람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너무 많아서 따로 적어야 마땅하다. 이렇게 평생을 사랑할 책을 한 권 얻었으니, 유월은 좋은 달이었다.

 

산 책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사기는 또 많이 샀다. 그냥 많이 산 것도 아니고, ‘더럽게’ 많이 샀다. 실은 더 많이 샀는데 기억이 안 나는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기억이 나는 대로 적는다.

  1. 데이비드 매컬로, <너는 특별하지 않아>
  2. 케리 이건, <살아요>
  3. 말콤 글래드웰, <다윗과 골리앗>
  4. 오은, <너랑 나랑 노랑>
  5. 어니스트 헤밍웨이, <깨끗하고 밝은 곳>
  6. 서정학,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7.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8. 츠즈키 쿄이치, <권외편집자>
  9.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10. 菅付雅信、『はじめての編集』(스가츠케 마사노부, <처음 만나는 편집>)
  11. REAR 39号、「アーカイヴは可能か?」(예술비평지 REAR 39호, <아카이브는 가능한가?>)
  12. 東浩紀、『ゲンロン0 : 観光客の哲学』(아즈마 히로키, <겐론0: 관광객의 철학>)
  13. よしもとばなな『下北沢について1』 (요시모토 바나나, <시모키타자와에 대하여 1>)
  14. Rethink Books、『今日の宿題』(Rethink Books, <오늘의 숙제>)
  15.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6. 팀 하포드, <메시>
  17.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외, <일의 언어>
  18.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19. <Axt> no.12, 2017 05/06

*1~4 인터넷 교보문고(6/9), 5~9 광화문 교보문고(6/9), 10~14下北沢 B&B(6/18), 15~19 광화문 교보문고(6/26)

5월 넷째, 다섯째 주에 읽은 책

오랜만에 글을 쓴다. 제법 밀도 있는 일상을 보냈다. 틈틈이 책을 읽었지만 오로지 독서에만 몰두한 기억은 드물다. 책은 거의 못 읽었지만 즐거운 기억은 많이 만들었다. 어느덧 3년째, 이제는 친구와 나의 연례행사가 된 서울 재즈페스티벌도 있었고, 새삼스럽지만 프로포즈도 받았다. 일은 지지부진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틈틈이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이 좌절감을 상쇄해준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서른의 봄은 무탈하게 흘러갔고, 이제는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다 읽은 책

  • 커트 보니것, 정영목 옮김, <제 5 도살장>
    • 잠깐 지인의 결혼식에 들렀다 페스티벌을 보러 가는 길에 친구가 조금 늦을 지도 모르는데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을 한 권도 갖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지하철에서 버스를 갈아타는 길목에 있는 잠실 교보문고에 들러 급하게 샀다. 급작스럽게 샀다고는 하지만, 전부터 늘 언젠가는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장소에 나타나 집어들게 된 것이라, ‘준비된 우연’ 정도로 이야기를 해도 좋겠다.
    • 호기심은 있었으나 그동안 내내 미뤄둔 이유는 이 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반전(反戰) 소설”이라는 꼬리표가 어쩐지 마음에 걸려서였다. 반전 문학의 필요성, 그리고 그것의 위대함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나 어쩔 수 없이 연상되는 참혹함, 그것에 내포하고 있는 도덕적인 무게에 짓눌려 손에 들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보니것이라는 작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또 다른 수식어인 “블랙 유머”또한 사실이었다. 불쾌하지 않을 정도의 자기 비하와 심각한 상황에서 불쑥 치고 들어오는 우스꽝스러운 논평은 피식 웃음을 자아냈다.
    • 그러나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SF와의 결합이었다. 주인공인 빌리 필그램의 시간여행은 영화 <컨택트(도착)>를 연상시켰다. 트라팔마도어 인들이 시간을 이해하는 방식은 <도착>의 헥사포드들과 무척 유사했다. 테드 창도 <제 5 도살장>을 읽은 것은 아닐까? 두 소설 모두에서 ‘시간’은 무척 중요한 키워드인데, 이것이 전쟁과 얽혀있는 것 또한 흥미로운 비교점이다. <제 5 도살장>에 드러난 이러한 시간관은 결국 이 소설의 핵심 메시지인 반전과도 우아하게 이어진다.
  • 기타다 히로미쓰, 문희언 옮김, <앞으로의 책방>
    • 5월 들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는 출판 카테고리의 책을 또 한 권 읽었다. 일본 출판계와 관련된 책들이 대부분이다. 아닌 것을 찾기가 훨씬 어려울 정도. 서로 비슷비슷하면서도 각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장단점도 제각각이다. 이 책은 정의하다/공상하다/기획하다/독립하다 라는 4개의 동사들로 장을 구성했는데, 그 중에서도 2장의 공상하다에 담긴 내용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 중 하나는 내가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아직 출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단계는 결코 아닌 것 같고, 책을 사랑하는 독자의 하나로서 애정을 갖고 알아가는 단계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런 류의 책들을 앞으로 더 다양하게 읽어나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무언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보이지 않을까.

 

읽고 있는 책

  1.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2. <제 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산 책

  1. 커트 보니것, <제 5 도살장>
  2. 박영숙, <메이커의 시대>
  3. 존 우드, <히말라야 도서관>
  4. 다니구치 지로, 유메마쿠라 바쿠, <신들의 봉우리> 1-5권
  5. 신이치 이시즈카, <블루 자이언트> 1-4권
  • 1: 잠실 교보문고, 2~5: 인터파크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