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번째: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2018. 4. 19.

목요일

목요일이지만 이틀을 더 출근해야 주말이다. 아직은 낯선 화-토의 스케줄.

괴로운 일보다는 즐거운 일들이 더 많은 한 달을 보내고 있지만, 넘치는 할 일들 사이에서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 태반은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팀원은 오자마자 넘치도록 제몫을 해내고 있는데 왜 나의 생산성은 이다지도 발전이 없는가. 괴롭다.

모든 것을 다 없애고 백지에서부터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지만 그것은 판타지일 뿐. 결국은 발밑에 놓인 일들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해야할 일들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것처럼 복잡한 밤. 좀처럼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는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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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번째: 요동치는 마음

2018. 4. 10.

화요일

마음이 번다해서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을 지나, 새벽같이 눈을 떴다. 중심과 균형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이것도 저것도 다 놓지 못하고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고 있다. 이제는 손에 힘을 조금 빼도 좋으련만. 느슨하게 쥐어도 스르르 빠져나가지 않을 것들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타일러본다.

여전히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Eat, Pray, Love를 더듬더듬 읽어나가고 있다. 모국어가 아니기에 읽는 속도는 더디지만, 오히려 음미하게 되는 맛이 있다.

오늘은 새벽과 아침의 경계에서, 40분간의 요가를 마치고 책장에 꽂아만 두었던 케리 이건의 <살아요>를 펼쳐 서문을 읽었다. 그동안 나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려왔다는 듯이, 눈앞에 나타났다.

혼자여도 충만한 삶을 살고 싶은데 둘이기에 부족한 것이 더 눈에 보인다. 결국 나는 뼛속까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책망할 일이던가.

“Guilt’s just your ego’s way of tricking you into thinking that you’re making moral progress. Don’t fall for it, my dear.”

Why is it so important? I’d rather change myself than wasting my time trying to change someone else. Just let go.

31번째: 새로움

2018. 4. 4.

수요일

 

3월 내내 심혈을 기울여 뽑은 새로운 동료가 어제 처음으로 출근했다. 늘 채용을 ‘당하는’ 입장에 있다가, 처음으로 채용을 ‘하는’ 입장에 놓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한 페이지 짜리 자기소개서에는 생각보다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지원한 곳들에서 왜 떨어졌는지, 또 붙었을 땐 왜 붙었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지금의 나에게 누군가의 당락을 결정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도 끊임없이 물었다. 얼마간은 순전히 운 때문에 여기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 많이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아직 더 손발을 맞춰나가야겠지만,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일단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성장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나 역시 안주하지 말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1년 넘게 이어오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일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동안의 괴로움은 대부분이 스스로의 한계에서 왔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에 시시때때로 감사하고 있다. 최소한, 함께 일하는 상대를 괴롭게 하는 동료가 되고 싶지는 않다. 기왕이면 서로를 성장시키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


 

그리고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요즘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Eat, Pray, Love를 원서로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다. 영어로 읽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술술 잘 읽힌다. 깊이 깊이, 자신의 내면을 바닥까지 내려가본 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쏟아낸 단어들. 그녀처럼 쓰고 싶다. 그녀가 쓴 모든 책들을 원서로 읽는 것을 올해 목표로 삼아볼란다. 작년에 가즈오 이시구로를 읽었던 것처럼. (물론 아직 ‘파묻힌 거인’이 남긴 했지만.)

30번째: 다시, 4월

2018. 4. 3.

화요일

 

2018년도 어느새 석 달이 지나고, 다시 찾아온 4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태어난 날이 있는 이 달은, 일 년 열두 달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달이다.

그리고 동시에, 아픔이 많은 달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에버노트를 뒤적이다, 예전에 스크랩해둔 은유의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라는 칼럼을 다시 읽었다. 세월호라는 이름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프기만 하다. 스스로의 무감함에 자책하게 만드는 이름. 여전히 마주할 용기가 없는 이름이자, 커다란 숙제. 세월호를 기록한 수많은 책들이 나와 있지만, 차마 직면할 자신이 없어 번번이 외면해왔다. 작년 이맘 때 이 칼럼을 읽고, 눈물을 두어 방울 짜내고도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기는 커녕 책장에 꽂아 놓을 용기도 내지 못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듯 살아도 괜찮은 걸까.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 나의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행복이 나의 몫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괴롭게만 살 필요도, 그럴 수도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내가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최선의 길임을 믿는다. 결국 모든 것에는 자신의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 해석이 반드시 한 가지일 필요는 없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수많은 해석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이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이 이 사회에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내가 세월호에 대해 느끼는 부채의식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외면하지 말 것. 당당하게 마주할 것.

스스로에게 내준 이번 달의 숙제다.

29번째: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책

2018. 2. 8.

목요일

전쟁같은 하루를 치르고, 보상으로 주어진 달콤한 오전 휴가.

평소보다 두 시간 더 자고 일어나 녹차를 내리고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골라 들었다.

장석주, 박연준이 함께 쓴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두 사람이 매일 다른 책을 읽으며 기록한 일기가 나란히 편집되어 있는 이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 나도, 빨리, 뭔가, 읽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상적인 문장들임에도 예사롭지 않은 것은 역시 두 사람이 오랫동안 글을 다뤄왔기 때문일까. 부럽다.

오래도록 이 여유를 즐기고 싶은데, 이제 무거운 몸을 일으켜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달콤한 아침이었다.

28번째: 분노

2017. 12. 20.

수요일

어제 있었던 일에 사로잡혀 있다. 이토록 강렬한 부정적 감정에 휩싸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스스로를 다독여보아도 시시때때로 울컥 하고 분노가 몰려왔다. 혼자였다면 소리라도 질렀을 것이다.

항상 상대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려고 노력해왔으나 이런 일을 겪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물론 나의 잘못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그에 돌아온 반응에는 치가 떨렸다.

그러나 그 사람 자체에게 화가 났다기보다, 애초에 이 불합리한 관계를 매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화가 났다. 아마 그 사람에게도 쉽지는 않을 것이리라. 그러나 모두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참고 또 참고, 속으로 삭이면서 넘어가는 일은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다.

누구에게라도 이 갑갑함을 퍼붓고 싶었으나, 이미 나 이외에 무고한 피해자가 생겨버려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을 포함해서.

그러나 언제까지 나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앞세워야 할까? 왜 자신의 괴로움을 이런 식으로 표출하여 타인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걸까? 그리고 왜 나는 이 와중에도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는 걸까? 나도 덮어놓고 탓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차라리 마음에 편할지도.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남은 것은 그것뿐. 요즘 돌아가는 상황만 봐서는 정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그러나 마땅한 대안 없이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다. 누구를 대변하고 싶지도 않고, 다만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정리하고 싶다. 많은 요소들이 이 시기가 끝나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어쩌면 이제 또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나야할 때가 온 건지도 모른다.

일단은 박차고 일어나야지. 머리만 굴려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니까.

27번째: 눈물이 찔끔

2017. 11. 21.

화요일

오늘 세 번이나 눈물을 찔끔 흘렸다.

펑펑 울지는 않았다. 그저 한두방울을 몰래 찍어냈다.

울컥 차오른 눈물이지만 슬픔보다는 감동에 가까운. 벅차오르는 순간들.

책을 읽다가, 강연을 듣다가, 또 친구가 정성스레 써준 생일 카드를 보다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건내준 카드의 맨 마지막 문장.

“서른 살의 정원이도 참 예뻤단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스물 넷부터 지금까지 쭉 내 곁을 지켜주며, 언제나 나의 가장 예쁜 모습만을 기억해준 친구.

네가 있어 내 삶이 더욱 아름다운 색깔을 띄게 되었다고, 우리는 서로에게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마음을 전하는 것에 거리낌 없는 그녀를 친구로 얻은 후 나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

삶의 좋은 것들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을 하나가 아니라 여럿 곁에 두고 있다는 기쁨이 오늘 나를 울렸다.

그렇게 나의 서른살도 저물어간다. 여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