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번째: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2018. 6. 2.

토요일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하는 날이어도 토요일은 왠지 마음이 가볍다. 평소보다 한시간 쯤 더 자고 일어나 느긋하게 아침 시간을 보낸 뒤, 평일에는 잘 입지 않는 살랑이는 스커트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날씨는 완연한 여름.

요즘 토요일에는 아이들이 적다. 아이들이 적게 온다고 쌓여 있는 할 일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것은 아닌데, 토요일 기분으로 생산성 있게 일하기는 쉽지 않다. 일에 손이 잡히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책망하지는 않았다. 여유를 틈타 동료들과 한가로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동료들은 내가 이 일을 사랑하는 많은 이유들 중에서도 단연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현듯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코끝이 찡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얼마나 소중하고 또 소중한 일인지. 이 사람들과 오래오래 함께 일하기 위해서라도 이 일을 잘 해내고 싶다. 물론 아이들을 위해서도. 마음을 살살 간지럽히는, 사랑스러운 아이들. 점점 더 거리를 두기가 어려워진다. 구태여 거리를 둘 필요는 없지만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에, 아이들과 더 많이, 깊이 교감하는 일과 공간을 유지하고 지속하는데 꼭 필요한 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는 항상 고민이다.

퇴근 길에는 오랜만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렀다. 사려고 이미 마음 먹은 책도 있고, 무슨 책이 나왔나 슬슬 둘러보고 싶기도 했다. 역시나 욕심 나는 책들이 가득해서 한참 이책 저책 들추어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와중에 에세이 코너에서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오늘 일기의 제목,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이다. 암 투병중인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하게 된 한 중년의 인문학자가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들. 내용과 문체는 담백하기 그지 없고, 중간 중간 실소를 자아내는 아재 개그도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짙게 깔린 슬픔의 그림자를 모른체할 수 없다. 특별한 문장도 아닌데 읽다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서점에서도 앞부분을 읽다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름다운 글을 쓰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과 더 오래 함께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저자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사는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일이기에 그에 저항하는 대신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과정을 글로 남겼다. 그가 글로 남겨준 덕분에 나도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한장 두장 넘기는 동안 슬프면서도 행복했다. 서로 섞이기 힘든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함께 겪게 만드는 것은 좋은 글이 가진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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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번째: 여행에서 돌아오다

2018. 5. 30.

수요일

 

열흘 간의 미 서부 여행을 마치고, 어제 새벽 한국에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후다닥 짐을 풀고, 빨래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컵라면과 김치로 그리운 매운 맛을 느끼고는 실컷 잤다. 스무 시간은 족히 잔 것 같다. 달디단 잠이었다.

어릴 때는 여행을 떠나면 뭔가 대단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단지 타국 땅을 밟고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가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구 반대편에 산다고 해서 우리와는 아주 다른 삶을 살아가는게 아니라, 저마다의 일상을 영위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여행은,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었다.

어느새 결혼을 하고 세 번째 여행이다. 남편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혼자 떠나는 여행과는 무척이나 다르다. 친구와 떠나는 여행과도 다르다. 지구상 어디에 있어도 이 사람과 함께 하는 동안은, 우리가 있는 여기가 우리의 집이자 생활의 터전 같은 느낌이랄까. 태평양을 건너왔어도 남편은 한결같다. 잘 먹고, 잘 잔다. 자기 물건을 살 때에는 가성비를 엄청나게 따지면서, 내가 무언가를 산다 할 때에는 또 의심스러울만치 너그럽다. 인터넷이 터지는 곳에서는 유튜브를 찾아보고, 야구 경기의 결과를 확인하고, 늘 가는 네이버 카페의 유머방을 들락거리며 피식피식 웃는다. 그런 한결같음에 내가 지금 서울에 있는 건지, 라스베가스에 있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었지만, 여행이라고 해서 마냥 붕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딛고 있는 듯한 안정감이 들어 좋았다.

무엇보다 편안했다. 스스로를 가장하거나 꾸밀 필요가 조금도 없는, 나의 방어막을 완전히 해제하게 만드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서울에서는 한 집에 살면서도 일주일에 밥 한 끼 같이 먹기 힘든 우리지만 여행에서는 24시간 내내 붙어 있었는데도 불편함이 없었다. 특별히 더 로맨틱하거나, 특별히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더없이 우리다운 시간을 보냈다. 언제 이렇게나 자연스러워진 것일까. 함께 보낸 10년의 세월의 힘이란 이런 걸까.

한때는 이 사람이 나를 평범하게 만든다는 생각도 했었다. 이 사람만 아니라면,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접하고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그런 마음이 들어 실제로 이 사람을 떠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의 곁을 떠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내가 아는 세계 안에 머물렀다. 그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정말 나가고 싶었다면,  그와 관계 없이 나의 의지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탓을 하는 것은 가장 손쉬운 자기 합리화니까. 이제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조금 더 현명해진 나는,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다른 누구의 책임이나 덕분도 아닌 온전히 나의 선택 때문임을 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퍽이나 만족스럽다.

어제 돌아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벌써 지난 열흘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고, 출근을 앞두고 있다. 남편과 함께 미국에 다녀왔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럴 거면 굳이 왜 돈과 시간을 들여 그 멀리까지 다녀왔을까 하는 의심을 맘 한켠에 품고.

그래도 우리는 아마 다시 떠날 것이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여기가 내가 있을 자리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 삶은 변함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34번째: 질투와 영감

2018. 5. 3.

목요일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나는 질투와 영감이라 말하련다.

게으른 나를 충동질하는 것은 질투와 시샘. 사랑에 빠진 사람 마냥 눈을 반짝이며 일이야기를 하는 보면, 야무지게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을 보면, 그리고 정확하게 자기 일(+그 일을 왜 하는지)을 설명하는 사람을 보면, 절로 질투가 난다. (물론 그 외에도 나의 질투를 유발하는 수천수만가지 상황이 있다.) 어쩜 저렇게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있지?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하고.

오늘은 깨작깨작 글을 고치다가, 나와 업무가 겹치지 않는 파트너사의 한 매니저가 미디엄에 올려놓은 글을 읽고 질투에 사로잡혔다. 글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에너지가, 열정이, 포부가 좋았다. 그리고 조금 부끄러웠다. 지금의 나는 그마만큼의 에너지와 열정과 포부를 가지고 이 일을 하고 있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는 행운.

그냥 하지 않고, 잘 하고 싶다. 기왕이면. 그리고 꾸준히 하고 싶다. 정확하게 하고 싶다.

마음이 능력을 앞서는 아침. 그래도 좋다.

33번째: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2018. 4. 19.

목요일

목요일이지만 이틀을 더 출근해야 주말이다. 아직은 낯선 화-토의 스케줄.

괴로운 일보다는 즐거운 일들이 더 많은 한 달을 보내고 있지만, 넘치는 할 일들 사이에서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 태반은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팀원은 오자마자 넘치도록 제몫을 해내고 있는데 왜 나의 생산성은 이다지도 발전이 없는가. 괴롭다.

모든 것을 다 없애고 백지에서부터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지만 그것은 판타지일 뿐. 결국은 발밑에 놓인 일들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해야할 일들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것처럼 복잡한 밤. 좀처럼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는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32번째: 요동치는 마음

2018. 4. 10.

화요일

마음이 번다해서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을 지나, 새벽같이 눈을 떴다. 중심과 균형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이것도 저것도 다 놓지 못하고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고 있다. 이제는 손에 힘을 조금 빼도 좋으련만. 느슨하게 쥐어도 스르르 빠져나가지 않을 것들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타일러본다.

여전히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Eat, Pray, Love를 더듬더듬 읽어나가고 있다. 모국어가 아니기에 읽는 속도는 더디지만, 오히려 음미하게 되는 맛이 있다.

오늘은 새벽과 아침의 경계에서, 40분간의 요가를 마치고 책장에 꽂아만 두었던 케리 이건의 <살아요>를 펼쳐 서문을 읽었다. 그동안 나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려왔다는 듯이, 눈앞에 나타났다.

혼자여도 충만한 삶을 살고 싶은데 둘이기에 부족한 것이 더 눈에 보인다. 결국 나는 뼛속까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책망할 일이던가.

“Guilt’s just your ego’s way of tricking you into thinking that you’re making moral progress. Don’t fall for it, my dear.”

Why is it so important? I’d rather change myself than wasting my time trying to change someone else. Just let go.

31번째: 새로움

2018. 4. 4.

수요일

 

3월 내내 심혈을 기울여 뽑은 새로운 동료가 어제 처음으로 출근했다. 늘 채용을 ‘당하는’ 입장에 있다가, 처음으로 채용을 ‘하는’ 입장에 놓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한 페이지 짜리 자기소개서에는 생각보다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지원한 곳들에서 왜 떨어졌는지, 또 붙었을 땐 왜 붙었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지금의 나에게 누군가의 당락을 결정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도 끊임없이 물었다. 얼마간은 순전히 운 때문에 여기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 많이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아직 더 손발을 맞춰나가야겠지만,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일단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성장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나 역시 안주하지 말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1년 넘게 이어오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일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동안의 괴로움은 대부분이 스스로의 한계에서 왔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에 시시때때로 감사하고 있다. 최소한, 함께 일하는 상대를 괴롭게 하는 동료가 되고 싶지는 않다. 기왕이면 서로를 성장시키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


 

그리고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요즘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Eat, Pray, Love를 원서로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다. 영어로 읽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술술 잘 읽힌다. 깊이 깊이, 자신의 내면을 바닥까지 내려가본 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쏟아낸 단어들. 그녀처럼 쓰고 싶다. 그녀가 쓴 모든 책들을 원서로 읽는 것을 올해 목표로 삼아볼란다. 작년에 가즈오 이시구로를 읽었던 것처럼. (물론 아직 ‘파묻힌 거인’이 남긴 했지만.)

30번째: 다시, 4월

2018. 4. 3.

화요일

 

2018년도 어느새 석 달이 지나고, 다시 찾아온 4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태어난 날이 있는 이 달은, 일 년 열두 달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달이다.

그리고 동시에, 아픔이 많은 달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에버노트를 뒤적이다, 예전에 스크랩해둔 은유의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라는 칼럼을 다시 읽었다. 세월호라는 이름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프기만 하다. 스스로의 무감함에 자책하게 만드는 이름. 여전히 마주할 용기가 없는 이름이자, 커다란 숙제. 세월호를 기록한 수많은 책들이 나와 있지만, 차마 직면할 자신이 없어 번번이 외면해왔다. 작년 이맘 때 이 칼럼을 읽고, 눈물을 두어 방울 짜내고도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기는 커녕 책장에 꽂아 놓을 용기도 내지 못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듯 살아도 괜찮은 걸까.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 나의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행복이 나의 몫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괴롭게만 살 필요도, 그럴 수도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내가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최선의 길임을 믿는다. 결국 모든 것에는 자신의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 해석이 반드시 한 가지일 필요는 없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수많은 해석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이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이 이 사회에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내가 세월호에 대해 느끼는 부채의식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외면하지 말 것. 당당하게 마주할 것.

스스로에게 내준 이번 달의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