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째: 마음이 부른 날

2017. 7. 26.

수요일

 

언제고 기꺼이 나의 가장 좋은 모습을 보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친구로 두고 있다는 행복.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제법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진다. 이런게 우정이 주는 기쁨일까.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오해하지 않고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

오늘은 너무나 큰 선물을 받았고 그래서 마치 내가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처럼 느껴진다.

마음이 부른 날이다. 달게 잘 수 있겠다.

 

+) 오늘 진짜 무슨 날인가? 막내가 여자 친구한테 주려고 선물을 샀는데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아 다시 사야 할 것 같다면서 나한테 선물로 주었다. 원래 날 주려고 한 선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막내 동생에게 받아보는 선물. 여자친구 선물은 다시 사준다기에 용돈을 주려고 했더니 그럼 선물하는 의미가 퇴색된다며 손사레를 쳤다. 귀여운 내 동생.

10일째: 노곤노곤

2017. 7. 25.
화요일

어제에 이어 오늘도 노트북을 회사에 두고 왔다.

늦게까지 준비한 회의는 무사히 잘 마무리되었다. 앞으로는 내가, 또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유난히도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은 요즘이다. 작은 결정 하나에도 내가 들어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특히 돈 쓰는 일과 관련된 결정 앞에서는 갈피를 못잡는 나. 그래도 많은 것들이 정리되어 가는 중이다.

출근길에는 시집을 읽었다. 서정학의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뭘까 이 낯설고도 익숙한 느낌은. 우스꽝스러운데 애잔하다. 얇은 시집이라 거의 다 읽고 몇 편을 남겨두고 있다.

내일은 아침에 또 신혼집으로 출근이다. 집 단장도 중반을 넘어간다.

9일째: 극에 달하다

2017. 7. 24.
월요일

처음으로 모바일로 글을 쓴다.
내일 회의 준비를 위해 야근을 하고 열두시 즈음해서 집에 도착. 엄마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씻고 방에 들어오니 절로 눈이 감겨온다.

아무 것도 안 쓰는 것보다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쓰는게 의미있다 생각하니까.

너무 졸리다. 오타가 자꾸 난다

8일째: 반가운 얼굴들

2017. 7. 23.

일요일

 

신나는 일요일을 보냈다.

아침부터 신혼집으로. 주말이라 혼자 조용히 다녀오려 했는데, 아빠가 기꺼이 데려다주겠다 하셔서 온 가족이 함께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폭우 속에서 차 안에 있으니 유난히 아늑한 기분.

작은 집에 수납이 고민이라 가구를 어떻게 들여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고마운 분이 추천해주셔서 알게 된 가라지가게의 빼빼장. 영광스럽게도 장 소장님이 직접 오셔서 측정도 해주시고, 제안도 해주셨다. 역시 공간을 다루는 직업이라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공간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셔서 색다른 연출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상담을 받고 나니 어제 만족스럽게 고른 조명들이 불만스러워져서 아무래도 조명 가게를 다시 한 번 가야할듯 하다. 하루 휴가를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매주 봐도 할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친구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실컷 나누었다. 오늘 나눈 대화의 키워드는 평범함. 평범한 게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이유 모를 거부감을 갖고 살아온 서른 해.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하기 싫은 것을 다른 사람들이 다 한다는 이유로 휩쓸리지 말라는 친구의 조언. 그거야 말로 평범해지는 길이라고. 꽤 자주 나는 평범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보다 더 종종 평범하지 않고 싶다 생각한다.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나의 생각. 나의 사고는 견고하지 않다. 전에는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그것을 유연성이라 불러본다. 나 자신을 바꿀 수 없다면, 최소한 나 자신을 보는 법은 바꿀 수 있으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간다.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다 읽었다. 이 소설, 묘하다. ‘아, 좋다!’라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뒷맛이 길다. 그렇다고 씁쓸하거나 텁텁하지는 않고, 진한 초콜릿 케익을 먹고 난 뒤 입안에 오래 단맛이 머물러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절대 단 소설은 아니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 바로 든 감정은 뭐랄까, 연약한 어린 동물을 보았을 때 반사적으로 솟구쳐오르는 보호본능. 습관처럼 이 세상에 의미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만 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계속해보겠습니다”고 하는 꿋꿋함. 그 부조화가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다. 그 작고 둥그스름한 어깨를 보듬어주고 싶다. 이야기의 흐름은 흐릿하나 인물들이 도드라진다. 소라 – 나나 – 나기. 끝말잇기를 하듯 이어지는 이름들처럼 이 세 사람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서로를 지탱하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살아간다. 그래, 이런 삶의 태도도 있지. 아무렴 그렇고 말고.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애틋하게 오래 남을 것 같은 사람들. 황정은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저녁 때는 또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났다. 결혼 준비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 사람을 초대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핑계로 오랜만에 얼굴 한 번 볼 수 있으니 참 좋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변함없고. 그러나 조금은 달라졌고. 그래도 옛날 모습이 있어 어색하지 않고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거리조절을 못해 타인과의 교류에 많은 에너지가 드는 나에게, 이런 허물 없이 터놓을 수 있는 사이는 얼마나 소중한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주도 좋은 한 주였다.

7일째: 더위와의 사투

 

2017. 7. 22.

토요일

 

오랜만에 늦잠을 자도 되는 토요일이지만 눈이 금새 떠졌다. 일정이 많아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에어컨 바람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조금 걸었을 뿐인데 숨이 턱턱 막혀 왔다. 관리사무소와 이웃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동대문에 가서 문 손잡이를 보고 (결국 맘에 드는 것을 찾지 못해서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을지로로 와서 조명과 각종 스위치를 확정했다. 간단하게 늦은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미용실에 갔다가 잠시 다이소에 들러 각종 청소용품을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부터 나를 괴롭히던 편두통을 가라앉히려 두통약을 한 알 먹고는 그대로 숙면. 그리고는 부모님이 돌아오시는 소리에 눈을 떠서 지금까지 깨어 있다.

다행스럽게도 결혼준비가 마음을 힘들게 하지는 않지만 체력이 달린다. 그래도 다음 주에 리뷰 회의를 무사히 마치고, 집 정리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이제 크게 체력을 쓸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은 점심을 먹으면서 임솔아의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마저 읽었고, 이어서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조금 읽었다. 임솔아의 시집은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들로 집중할 수 없는 상태에서 끊어서 한 독서임에도 불구하고 잔상이 강하게 남았다. 황정은의 소설은 처음 읽는데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아직 첫 장을, 그것도 절반 밖에 못 읽은 상태라 가타부타 이야기하긴 어렵고 일단은 끝까지 읽어봐야지.

내일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을 만난다.

6일째: 좌우지간

2017년 7월 22일

금요일

 

오랜만에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택시를 타고 방금 집에 도착했다.

눈커풀이 자꾸만 내려오지만 그래도 몇줄은 적어야지 싶어서 주섬주섬 노트북을 열었다.

길고 긴 하루였다.

집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처음 볼 때는 암담하기만 했는데, 변해가는 모습에 설렌다. 인테리어와 관련된 각종 정보들을 알아보는게 전혀 괴롭지 않고 오히려 일하는 중에 지칠 때면 현관은 어떻게 할지, 또 베란다는 어떻게 할지 구상하며 쉰다.

프로젝트를 한 차례 갈무리하는 큰 회의가 다음주에 있어서 그 준비를 하느라 오늘 늦게까지 일했다. 정리를 하려고 지난 6개월을 찬찬히 돌아보니 실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문득 그리운 것이 울컥 하고 올라왔다. 그리고 아이들. 아이들은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1월에 걷지도 못하고 엄마 품에 폭 안겨 있던 아기는 이제 걷는 걸로도 모자라 뛰기 시작했고. 늘 보던 얼굴이라 변함없다 생각한 친구들도 겨울 사진을 보니 확실히 더 앳된 티가 난다.  막상 한 공간에 있을 때는 지긋지긋한데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다!) 한동안 안 보이면 절로 보고 싶고 궁금하다. 오늘은 사진을 보다가 자주 오던 친구가 요즘 통 안보인다는 이야기를 하며 동료와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이 아이들이 컸을 때 과연 이 공간을 기억할까?

일단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중요한 건 머릿속에 남는 것보다 가슴 깊숙이, 표피 사이사이에 스미는 거니까. 좌우지간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 그걸로 충분해.

5일째: 다사다난

2017. 7. 20.

목요일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바리바리 짐을 한아름 싸들고 일곱시까지 신혼집에 갔다가 여덟시에 회사로 출발, 도착해서는 한바탕 파리와의 전쟁을 치르고 오전에는 내내 코바늘 모임. 점심을 먹고는 회의 준비로 우왕좌왕하다 조금 일찍 나와서 다시 찜통 같은 아파트로. 다행히 페인트칠은 정성스럽게 해주셔서 낡고 지저분한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바로 일하러 가려 했는데 마침 일찍 끝났다고 연락이 와서 만나서 저녁을 먹고 한참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아홉시.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얼른 잘준비를 하고 얼굴에 팩 한장 붙이고 침대에 반쯤 누워 일기를 쓴다.

준비를 해보니 결혼이라는게 왜 인륜지대사인지 알겠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을 강제로 돌아보게 만든달까. 특히 나의 인간관계에 대해 구석구석 고민하게 된다. 연락을 하기도 미안하고 안하기도 미안한 사람들. 그렇게 생각하다 나의 소심함과 편협함. 부족한 거리감각. 느슨한 판단력. 좁디좁은 아량.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 지경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그럼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랐을까. 나는 나를 좀 덜 미워했을까. 아니면 더 미워했을까.

 

*집에 오는 길에 “다행히”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서, 가방에 있던 임솔아의 시집을 훌훌 넘기며 읽었다. 세상에 기쁜 시집은 없는 것 같아. 때로는 담백하고 때로는 처연한데 어쨌든 슬픈 시구들. 그리고 순진무구한. 선의에 대한 그녀의 언급이 기억에 실금을 새겼고. 그러나 시를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트리기에는 오늘 하루가 너무 현실적이었어서. 조금 더 말랑말랑한 기분일 때 읽으면 또 다를 것 같다는 예감만. 거의 다 읽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