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번째: 결혼전야

2017. 9. 8.

금요일

언제 올까 싶던 결혼식 날이 드디어 내일로 다가왔다. 생각보다는 담담하다. 메리지 블루도 딱히 없었고, 막판에는 뭘 해야 할지, 뭘 안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긴 했지만.

결혼을 약속하고, 날짜를 정하고, 집을 알아보고, 식을 준비하는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 라는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 아닐까.

나의 고질병인 완벽주의를 좀 내려놓고, 내일은 좀 빈 구석이 있고 허술해보이더라도 우리 두 사람에게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하루를 만들고 싶다.

너무 애쓰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다른 건 좀 틀려도 괜찮아. 이 사람과 결혼하기로 한 결정만큼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내일 이 시간이면 싱가폴 행 비행기 안에 있겠구나. 아직 실감이 하나도 안 난다.

우리가 결혼을 한다니.

우여곡절 많았던 시간들을 지나, 부부가 된다.

무엇보다 서로에게 가장 편안한 사람이길. 그거면 충분하니까.

Advertisements

23번째: 스산한 마음

2017. 9. 5.

월요일

 

D-Day가 다가오자, 점점 더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무엇보다 마음을 편히 먹으라고들 이야기하지만,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들을 남겨두고 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머릿속으로는 수백가지가 왔다갔다 하는 중이다.

‘일생에 한 번뿐’ 이라는 말은 얼마나 좋은 핑계거리인지.

22번째: 8월의 끝, 9월의 시작

2017. 9. 1.

금요일

 

8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물건을 들였고, 많은 선택을 했고,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또 많은 변화를 앞두고 있다.

한꺼번에 밀려들어오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수많은 감정들이 깜빡거리다 이내 사라진다. 조금 슬픈 것 같기도 하고, 즐거운 것 같기도 하고, 우울한 것 같기도 하고, 행복한 것 같기도 하고, 서운한 것 같기도 하고, 시원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여러가지가 뒤섞여 이내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만다. 그냥 흘려보낸다. 고이게 두는 것보다는 흘려보내는 것이 낫다. 그것이 감정이든, 사람이든.

이것은  끝도 아니고, 잠시 거쳐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새기고 있다.

앞으로 달라질 일상에 대해 지레 겁먹지도, 너무 기대하지도 말고, 담담하게 가자고.

여전히 멍한 상태로 끄적여 본다. 어쨌든 오늘은 9월의 첫 날이니까.

21번째: 불안

2017. 8. 15.

화요일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집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직은 낯설지만, 이제 내 집이 될 이곳.

여기서 나는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

생활이라는 말이 참 새삼스럽고.

집에서 다시 집으로 가기 전, 잠시 남기는 짧은 글.

 

연휴 끝머리는 늘 무언가 마무리되지 않은 기분에 불안하다.

그러나 밤은 지나가고, 아침은 오고, 또 출근을 하고, 무언가를 하다 보면 뭐라도 되어 있겠지.

그런 안일한 마음에 기대어 본다.

걱정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알만큼은 자랐으니까.

 

20일째: 스물

2017. 8. 4.

금요일

 

오늘은 대학 동기들을 초대하는 청첩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원래 사람이 많은 자리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스무 살 풋풋하던 우리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모이는 자리라 즐거운 마음으로 나갔다.

10년 전과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변치 않는 것들이 있어 정겨웠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겐 교집합이 별로 없다. 스물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남은 것은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한 켠의 다정한 마음. 이 사람과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영영 잃어버렸을 내 스무 살의 세계.

영영 놓아버리지 않아 다행이다.

 

19일째:

2017. 8. 3.

목요일

 

투명하지 않으면 불안해

내가 모르는 꿍꿍이가 있을 것 같은

영 뒷맛이 씁쓸한 느낌.

 

멋있는 사람을 만났다.

읽고 싶은 책이 또 한아름 생겼다.

 

18일째: 얼굴

2017. 8. 2.

수요일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상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어떤 사람과 둘이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상대의 얼굴에 집중하는 일은 나로서는 무척 드문 일이라 신기한 기분이었다. 이야기보다도 얼굴에 빠져들었다. 들여다볼수록 내가 참 좋아하는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잘생겼다거나, 예쁘다거나 – 그래서 설렌다거나 – 하는 것과는 무척 다른 이야기이다. 웃지 않을 때에는 심각하고 진중하다 못해 다소 무서워 보이지만, 웃을 때는 제대로 앞니를 전부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그럴 때 드러나는 덧니는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웃음이란 이런 거구나, 싶은.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된 웃음. 그래서일까, 나도 따라서 헤실헤실 웃음이 났다. 행복한 한편으로 조금은 슬펐다.

정작 가까이에서 늘 보는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은 거의 없는 듯하다. 함께 지낸 시간이 오래다 보니, 새삼스레 얼굴을 들여다본다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배배 꼬인다. 왠지 눈을 피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이지만, 단 한 번도 한몸 같다 느낀 점은 없다. 언제나 나는 우리 사이의 거리감을 감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거리감이 불안해서 억지로 좁히려고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거리감조차 우리의 일부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되도록이면 그 정도의 거리감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물리적으로 한 공간을 공유하게 되고도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누군가의 얼굴, 그것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얼굴을 들여다보는 새삼스런 경험을 통해 다시금 확신한 것은, 그 사람의 얼굴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까지 단번에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 이 넓은 세상에서는 물론 그런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의 세계 안에서는 그 방향이 언제나 반대였다. 누군가가 좋아지면 자연스레 그의 모든 것을 좋아하게 된다. 어여쁘게 여기게 된다. 내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대해 잠시 생각했고, 나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게 된 순간을 기억해내기 위해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정확히 짚어낼 순 없을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서로에게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 사람과 평생을 함께할 약속을 한다는 것의 무게감을 새삼 실감한다. 돌고 돌아 우리는 다시 서로의 곁을 지키게 되었고, 이제 나는 여기가 내가 있을 자리라는 확신이 든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동 드릴을 샀다. 기념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