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완벽한 하루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그런 날이 있는가 보다. 지금 이 순간, 내 삶이 완벽하게 느껴져서 어디에든 이 벅찬 감정을 기록해두고 싶어지는 그런 하루가.

작년 언젠가에 남긴 것만큼 하루의 세세한 디테일을 적어두기에는 눈꺼풀이 무겁지만, 오늘도 스스로가 참 많이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그런 하루였다.

단지 그 사람의 친구라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지는, 그런 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나. 그런 좋은 친구들을 알아보고 곁에 두는 안목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꽤나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나의 의지에 관계 없이 2주간 갇혀 있게 되었지만, 아기는 건강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곁에 있고,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가고, 그 가운데 보석 같은 순간들이 숨어 있다. 이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다만 무탈하기를. 건강하기를. 평온하기를. 사랑하기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계의 모두가.

완벽한 하루

대단히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왠지 기록하고 싶은 하루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하루가 순순하게 흘러갔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잘 먹은 것처럼 마음에 포만감이 든다. 애쓰지 않아도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4시에 일어나 한 번 배를 채운 아기는 여섯시 반이 채 되기 전에 눈을 떴다. 여러 차례 뒤척이더니 눈을 반짝 뜨고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이내 나를 찾아내고는 방긋이 웃는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나도 같이 웃고 만다. 밤새 두둑해진 기저귀를 갈아주고는 한참 동안 아기 옆에 나란히 누워 그녀를 ‘감상’한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넘쳐흐르는 생명력에 경의를 표한다. 조그마한 발가락과 손가락, 보드라운 볼과 솜털 같은 머리카락에 입을 맞춘다. 예쁜 것을 보면 깨물어주고 싶은 것은 왜일까? 이리 저리 꼼지락거리는 움직임 하나 하나가 너무 예뻐서 아프지 않게 입술을 말아 넣고 앙 물어도 본다. 이렇게 예쁜 아기를 내가 낳았다니.

한참을 그렇게 뒹굴거리며 놀다가, 아기 소리를 듣고 일어난 엄마와 함께 삼대가 같이 아침 산책에 나섰다. 비가 온 다음날이라 바람이 차지만 공기는 상쾌했다. 한동안 유모차를 잘 탄다 싶었는데 달콤한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한 블록쯤 걸었을 때부터 울먹이기 시작하더니 눈물까지 흘리며 안아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엄마와 번갈아 한 명은 아기를 안고, 한 명은 짐이 된 유모차를 끌며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자기가 싫다고 내리겠다고 하고서는 안아주면 눈으로 열심히 유모차를 쫓는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우리는 또 하하 웃는다.

새벽같이 일어난 덕분에 한참 걷다 왔는데도 집에 돌아오니 시계 바늘이 아직 8시에 닿지 않았다. 일찍 일어났으니 당연한 일인데 꼭 시간을 선물받은 것 같아 뿌듯하다. 바깥 공기를 쐬었더니 피곤한지 아기는 졸리다고 칭얼거리며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는다. 아직 이유식을 시작하지 않은 아기의 유일한 식량은 모유다. 이제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 수유 횟수도 차차 줄어들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입을 오물거리며 열심히 젖을 찾아 무는 모습이 괜시리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누리는 이 안온한 행복이 오로지 지금에 국한된 것이라 생각하면 표표히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꽁꽁 얼려서라도 시간을 가두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으니 지난 날도, 다가올 날도 너무 돌아보거나 앞서가지 않고 지금을 제대로 만끽하려 애쓰는 중이다. 물론 늘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기를 자기 조카처럼 예뻐해주는 동생의 남자친구가 놀러와 한참 예뻐해주고 간 뒤, 오래 묵혀둔 숙제를 해치우기 위해 아기띠를 매고 오늘의 두 번째 외출에 나섰다. 목적지는 은행. 바람은 아침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서늘한데 서로 맞닿은 가슴팍에서는 땀이 배어나온다. 그래도 이런 날씨라 다행이라고 연신 되뇌이며 천천히 걷는다. 긴 거리는 아니지만 아기와는 처음으로 걷는 길이라 나는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소개하기 바쁘고, 아기도 처음 보는 풍경을 쫓느라 시선이 바쁘다. 은행에 도착해서도 제법 얌전히 주위를 구경하던 아기는 졸음이 오는지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다시 아기띠로 안아 살살 얼러주니 눈을 스르르 감는다. 고개를 잔뜩 꺾고 새우잠을 자는 아기가 안쓰러워 열심히 걸어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눈을 뜨고 배고픔을 호소하기에 수유를 하고 나니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이내 완전히 잠든 아기를 조심스럽게 눕히고는 나도 옆에 누워 지난 주에 받은 따끈한 마음산책의 신간, <음식의 위로>를 읽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한 시간 쯤 지나 뒤척이는 소리에 눈을 뜨니, 잘 자고 일어나 말간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나를 알아보고는 눈이 가늘게 휘어지도록 배시시 웃는다. 그 미소에 기운을 얻어 이제는 제법 묵직해진 7.5 키로그램의 무게를 거뜬히 안아든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두 번째 오후를 채워준 것은 노래다. 음악을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것은 별로 즐기지 않았는데,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절로 노래가 나온다. 내가 기억하는 동요가 이렇게 많았다니, 놀라기도 하고 내가 어린 시절에는 없었던 새로운 동요를 알게 되기도 한다. 괜히 몸이 무거운 날에는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한결 가뿐해진다. 아기를 키우면서 알게 된 수많은 기쁨 중의 하나이다.

한참 그렇게 놀다 보니 부모님이 퇴근하고 오셨다. 아기도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제법 반기는 눈치이다. 남편이 다시 서울로 발령이 났으니 친정살이도 슬슬 끝나간다. 오래 비워둔 신혼집에서 다시 시작할 우리의 생활이 기대되기도 하고, 그동안 받았던 도움 없이 잘 해나갈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하다. 그래봤자 차로 20분 거리이니 여차 하면 언제든 올 수 있다. 엄마가 해주신 밥을 먹고 만든 모유로 아기를 지금까지 키웠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아기는 쑥쑥 자랐다. 이 작은 생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지를 생각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주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아기에게 받고 있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저녁밥을 맛있게 먹고, 아기 목욕을 시키고, 엄마가 아기를 봐주시는 동안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서는 졸음과 배고픔을 호소하는 아기를 얼른 받아 안았다. 목욕을 하니 다시 생기를 찾길래 얼른 씻으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방으로 들어와 옷을 걷어 올리니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 문다. 그 모습이 기특하고 예뻐서 나는 또 한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두 번의 외출로 피곤했는지 입은 오물오물 움직이면서도 눈은 감긴지 오래다. 만족스럽게 잠든 아기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오늘도 참 좋은 하루였다.

이런 하루가 드문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왠지 적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기를 눕힌 뒤 노트북을 열었다. 첫 단락을 다 써갈 때쯤 깨서 우는 아기를 다시 안아서 재우고 돌아왔다. 이 평범한 하루가 못견디게 그리워지리라는 예감이 이 두서 없는 일기를 쓰게 만들었다. 매일을 소중히 여기고 있지만 – 혹은 그렇기 때문에 – 시간이 가는 것이 너무나 아깝다. 아기의 내일이 기대가 되면서도, 지금을 떠나보내기가 쉽지 않다. 고단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고단함을 잊고도 남을 만큼 사랑스러움이 크니까. 그저 먹이고 씻기고 안아준게 다인데 그것만으로도 비온 뒤의 죽순처럼 쑥쑥 자라주는 것이 신기하고 고맙다. 부끄러워 일 년에 한 번이나 할까말까 하던 사랑한다는 말을 홍수처럼 쏟아붓게 되는 매일. 이 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사랑하는 내 딸은 우리의 이 시간들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그녀의 몫까지 내가 기억하고 또 기록해둬야지.

내일 또 펼쳐질 우리의 완벽한 하루가 기다려진다.

엄마가 되었습니다.

이 공간을 비워둔지 1년이 훌쩍 지났다. 마지막으로 작성한 글이 2019년 1월 1일이니, 꼬박 1년하고도 5개월을 공백 상태로 둔 것이다. 그 1년 5개월 사이에 나는,

  • 멋진 팀의 일원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공간과 서비스를 오픈했고,
  • 공간에 어울리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기획해서 운영했고,
  • 그 과정에서 수많은 멋진 사람들을 만났으며,
  • 무엇보다 중요하게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이 딱, 엄마가 된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태어난 날을 1일로 친다면 말이다. 사실은 그 이전부터, 그러니까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날부터 이미 엄마가 되어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치면 오늘은 엄마가 된지 352일째 되는 날이니, 벌써 1년 가까이를 엄마로 살아온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엄마’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우리 엄마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스스로를 ‘엄마’라고 지칭하면서도, 아직도 내가 누군가의 엄마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백일에 백일이 더 지나면 익숙해질까.

제 버릇은 못 고친다고, 보듬이를 낳기 전부터 수십 권의 육아서를 사서 읽으며 나름대로 엄마가 되기 위한 예습을 했다. 되도록 다양한 관점을 미리 접하면서 나의 육아관을 정립하고 아이를 맞이하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이 모든 노력들이 실전 앞에서는 무용할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읽고, 또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책 속을 헤매이던 날들을 딱히 후회하지는 않는다. 돌아가도 그보다 나은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개중에는 분명히 도움이 되는 책들도 있었다. 언젠가 그 책들에 대한 이야기도 좀 더 자세히 적어보고 싶다.

육아에 있어 이런 저런 조언과 이론들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당연하게도, 모든 아이들은 다 저마다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큰 틀에서 비슷한 방향으로 발달의 단계들을 거쳐가고 있겠지만, 그 큰 흐름 아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미세한 차이들이 있다. A에게는 찰떡같이 잘 맞았던 방법이, 내 아이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내 아이에게는 잘 통하는 방법이 B에게는 극약처방일 수도 있는 것이 육아인 것 같다. 겨우 백일 해보았을 뿐이지만. 그래서 나는 – 사실 다른 모든 분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육아에 있어서는, ‘내 말이 100% 옳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좀처럼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확신은 좀 떨어질지라도 ‘제 경우에는 이랬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꼭 정답인 것은 아닙니다’ 라고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더 마음이 간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30여년을 착실한 모범생으로 살아온 내가 정답에 대한 강박을 떨치기는 쉽지 않아서, 오늘은 이렇게 해야지 마음을 굳게 먹었다가도 인터넷 서핑 중에 발견한 글 한 문단, 문장 하나에도 갈대같이 마음이 흔들리곤 한다. 예를 들면, ‘지금쯤이면 수유텀이 3-4시간으로 벌어져야 한다는데 우리 애는 왜 이렇게 자주 먹을까?’ 하며 전전긍긍하거나, ‘지금쯤이면 슬슬 밤수를 끊어야 한다는데, 울려서라도 주지 말고 그냥 재워야 하나?’ 하는 것들.

이런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중요하다면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나의 입장은, ‘시도는 하되 잘 안 된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자’이다. 시도도 하지 않고 그냥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아이는 이미 스스로 할 준비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조차 주지 않고 기존에 해오던 방식대로 굳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은 뒤로는 시시때때로 주어지는 수많은 정보의 홍수에서도 제법 의연함을 지키고 있다. 아마 이 결심이 흔들리는 날이 근시일 내에 또 찾아올 것이다. 그런 흔들림 역시 육아의 일부다. 아니,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른다.

아이와 한몸처럼 지낸지 100일쯤 되자, 슬슬 ‘이 다음’을 생각하게 된다. 새롭게 얻은 ‘엄마’라는 타이틀과 그에 따라오는 의무와 책임이 아직까지는 버겁기보다는 기쁘게만 느껴져서, 엄마로서의 나와 사회인으로서의 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더더욱 고민하게 된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만큼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면서 병행할 수 있는 일을 만들고 싶다. 아직은 어렴풋한 아이디어들만 이따금 떠올릴 뿐이지만, 머릿속으로만 생각해서는 도무지 진척이 될 것 같지 않아 이렇게 오래 비워둔 블로그에 다시 시동을 걸어본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니까.

2018년 11월과 12월에 사고 읽은 책

2019. 1. 1.

화요일

 

‘올해가 가기 전에는 꼭 한 번 정리를 해야지’, 마음 먹었던 것이 어느새 작년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일을 하면서도 책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이런 저런 책들을 사들였다. 그 정신 없는 와중에도 꽤 여러 권을 읽고 몇 가지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는데 온전하지는 않다. 사실 언제 무슨 책을 샀는지 기록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때때로 회의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록해두면 기억할 수 있으니까. 새해에도 이런 포맷으로 여기에 기록을 이어갈지는 모르겠으나, 밀릴 지언정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기록한 그달의 독서에 대한 기록을 이제와서 그만두고 싶지는 않아서 순전한 오기로 기록을 한다. 이미 그 사이 읽은 책들은 망각의 강을 건너가버렸다. 물론 기억을 되짚으면 그중 몇 개는 복원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 기록은 2018년의 마지막 두 달 동안 어떤 책들을 사들였는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다. 그걸 적어나가다보면, 뭔가 떠오르는 게 있을 지도 모르니까.

 

다 읽은 책 (기억나는 대로)

  1. 로저먼드 영, <소의 비밀스러운 삶>
  2. 정지혜,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3. 앤 카슨, <남편의 아름다움>
  4.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5. 야누슈 코르착,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6. 헬렌 한프, <채링크로스 84번지>
  7. 도널드 E. 밀러, <무기가 되는 스토리>
  8. 헤르만 지몬, <프라이싱>
  9. 대실 해밋, <몰타의 매>
  10. 기타무라 가오루,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
  11. 윤정용, <제가 좀 숫자에 약해서>
  12. 마이클 본드, <사랑스러운 패딩턴>

 

산 책

  1. 김금희,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2.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3. 요나, <재료의 산책>
  4. 일본하우스클리닝협회, <청소해부도감>
  5. 앤 카슨, <남편의 아름다움>
  6. Anne Carson, The Beauty of the Husband
  7. Anne Carson, Autobiography of Red 
  8. 마이클 본드, <사랑스러운 패딩턴>
  9. 에릭 오르세나, <두 해 여름>
  10. 정은숙, <편집자 분투기>
  11. 정지혜,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12. 박신영, <한 장 보고서의 정석>
  13. 페르난두 페소아, <배반의 서>
  14. 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정원>
  15. 코르네이 추콥스키,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16. 이로, <어떤 돈까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
  17. 이현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서점>
  18. 로저먼드 영, <소의 비밀스러운 삶>
  19. 이은지, <코숭이 무술>
  20. 서수영, <하필 그날이 오늘>
  21. 박지연, <초코 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22. 김지안, <감귤 기차>
  23. 요시타케 신스케, <오줌이 찔끔>
  24. 다니엘 페나크, <소설처럼>
  25. 오은, <왼손은 마음이 아파>
  26. 임승유, <그 밖의 어떤 것>
  27. 제임스 설터, <소설을 쓰고 싶다면>
  28. 라이더 캐롤, <불렛 저널>
  29. 오은, <나는 이름이 있었다>
  30. 헤르타 뮐러, <숨그네>
  31. 야누슈 코르착,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11월
  32. 지승호,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
  33. 제현주, <일하는 마음>
  34. 김민섭, <훈의 시대>
  35. Axt 2018년 11/12월 호
  36. 이문영, <웅크린 말들>
  37. 최민영, <아무튼 발레>
  38.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39.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40. 마이클 본드, <패딩턴은 못 말려>
  41. 마이클 본드, <패딩턴의 여행> //12월

 

  • 1-4: 광화문 교보문고(10/30)
  • 5: 스틸북스(11/2)
  • 6-7: Book Depository(11/8)
  • 8: 쿠팡(11/10)
  • 9-11: 스틸북스(11/14)
  • 12:북파크(11/14)
  • 13-14: 스틸북스(11/16)
  • 15: 쿠팡(11/16)
  • 16-18: 스틸북스(11/20)
  • 19-23: 영풍문고 종각점(11/24)
  • 24-29: 광화문 교보문고(11/24)
  • 30-31: 쿠팡 도서(11/26)
  • 32-34: 광화문 교보문고(12/4)
  • 35: 스틸북스(12/5)
  • 36-37: 스틸북스(12/12)
  • 38-39: 영풍문고 여의도점(12/25)
  • 40-41: 쿠팡 도서(12/25)

 

2018년에도 참 많은 책들을 사들였다. 대부분은 끝까지 읽지 못했다. 절반쯤 읽다 잊혀진 책도, 몇 페이지만 들춰보고 만 책들도 많다. 늘 내년에는 꼭 읽을 책만 사자고 다짐하지만 어차피 지키지 못할 결심이라는 걸 안다. 그럴 바에야 더 열심히 읽는 것이 낫다. 굴곡 많은 한 해를 지나면서도 좋은 책이 있어, 서점이 있어,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내년에도 많이 읽고, 더 많이 써야겠다.

40번째: 분주함의 소용돌이

2018. 12. 17.

월요일

 

새로운 공간의 런칭을 앞두고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한다는 사실에 마냥 들뜨고 감사하던 시기를 떠나보내고,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긴 채 흐늘흐늘 떠내려가고 있는 요즘. 몸과 마음에 쌓이는 피로를 무시한 채 몰아붙인 대가는 죄없는 남편이 치렀다. 일주일에 이틀, 그나마도 약속이 있으면 몇 시간도 볼까 말까 한 귀한 시간인데 마지막의 마지막에 토라져서는 성질을 낸 것이 영 마음에 걸려 오늘 하루 내내 마음의 체증에 시달렸다.

나의 서른 한 살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여전히 나는 모나고 울퉁불퉁한 것 투성이구나. 필요한 것을 모두 손 닿는 거리에 두고도 가지지 못한 것에 한눈을 파느라 손안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마는 어리석음도 여전하다. 타인에게 관대한 만큼 나와 내 가족들에게도 너그럽고 다정해지기를. 눈코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어김없이 스쳐지나가는 작고 빛나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기를. 올해를 떠나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짐해본다. 이토록 모자람 없는 이들이 곁을 지켜준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기꺼운 일인지를 마음에 새기며.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2018

2018. 12. 3.

월요일

 

사적인 서점의 존재는 갓 시작할 무렵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는 않았다. 독특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퍽 멋있어 보였지만,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아서 책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쩐지 좀 쑥쓰럽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SNS와는 담을 쌓고 살다 보니 한동안 토요일마도 오픈데이가 있었다는 것도 알 턱이 없었다. 작은 서점의 친밀함을 동경하지만, 큰 서점의 익명성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나라는 사람의 한계 탓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동네 서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문을 열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나마 응원했는데, 사적인 서점 또한 영업을 마친다는 것을 풍문으로 듣고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런데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적인 서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오면서, 그것이 단순한 영업 종료가 아니라 ‘시즌 2’를 준비하기 위해 시즌 1의 막을 내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작 활발하게 영업을 할 때에는 별로 관심도 없다가 책이 나오니 호기심이 동해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만 한 채로 두어달이 그냥 흘러갔다. 그러다 지금 하는 일에도 사적인 서점이 했던 시도를 한 번 참고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서 며칠을 가방에만 넣고 다니다가, 바로 오늘, 야근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 쓴 책과 서점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무턱대고 반기는 나는, 이 책 역시 무척 즐겁게 읽었다. 2년 간의 우여곡절을 책 한 권에 담아내기 위해 압축적으로 쓰여진 글의 행간에서 그녀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과 애정을 쏟아 이 일을 해왔는지가 절절이 베어 나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 공간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중간 중간에 초록색 글씨로 들어가 있는 인용구들이 책의 흐름과 자연스레 찰떡 같이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녀가 평소에 어떤 책들을 어떻게 읽는지도 어렴풋하게 짐작이 갔다. 날림으로 훌훌 읽고는 기록도 제대로 남기지 않는 나와는 달리, 훗날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사람에게 말해줄 것을 상상하며 밑줄 그은 문장을 어딘가에 소중히 옮겨 적는 모습이 그려졌다.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는 요즘, 먼저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는 성공과 실패를 떠나 귀한 준거점이 된다.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들을 현실로 이어나가는 것은 오롯이 내 몫으로 남겠지만, 효용을 떠나 배울 점 많은 독서였다.

사적인 서점의 시즌 2가 시작되면 그땐 꼭 가봐야지. 공간이 될지, 다른 모습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로저먼드 영, 소의 비밀스러운 삶

2018. 11. 24.

토요일

 

이 책과의 인연은 제법 특별하다. 올해 여름 처음 출간되었을 무렵, 인터넷 서점의 신간 소개 코너에서 보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으나 잦은 서점 나들이에도 좀처럼 만나지 못해 한참을 잊고 있다가, 지난 10월 파주의 땅콩문고를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실물을 만났다. 서문을 살짝 읽어보니 역시나 마음에 들어서 사려고 집어 들었는데, 견본 책이 딱 한 권만 남은 상태라 아쉽게도 구입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물론 그 날도 다른 책들을 서너 권 더 사긴 했지만.) 그리고 나서 또 한참을 잊고 있었는데, 일 핑계로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땅콩문고 사장님이 올려놓은 추천 글을 보았다.

나란히 읽기 좋은 땅콩책

한 대상을 꾸준히 사랑하는 것? 할 수 있다. 그를 꾸준히 관찰하는 것? 음. 그럭저럭 할 수 있을 듯. 그것을 꾸준히 기록하는 것? 어렵다, 아무나 못 한다!
:
시랑하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대상이 있어도, 결국 ‘꾸준히’에서 무릎을 꺾고 마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책 두 권.
: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는 아이의 ‘말’을 사랑한 러시아의 아동문학가이자 교육자 코르네이 추콥스키가 ‘아이들의 언어 세계와 동화, 동시에 대해’ 쓴 책이다. 특히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교사, 어린이책을 쓰고 만드는 이들이 반드시 읽어봐야 할 필독서.
:
<소의 비밀스러운 삶>은 소를 비롯하여 양, 돼지, 닭 등 농장의 가축을 사랑한 영국의 ‘솔개 둥지 농장’ 운영자 로저먼드 영이 쓴 책이다. 스스로를 ‘소들의 대필작가’라고 부르는 저자가 제목 그대로 ‘소들의 비밀스러운 삶’을 기록한 관찰기로, 동물과 사람의 공생, 가축과 먹거리, 자연에서 우리가 미처 읽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책.
:
그리고 내가 이 두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데에는 ’홍한별’이라는 번역자의 노고가 있다. 책을 읽고 저자 이름도 기억이 날까 말까 하는 내 머릿속에 ‘홍한별’이라는 이름이 박힌 데에는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라는 책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 이 책에는 언어 세계를 익히고 만들어나가는 아이들의 입말이 가득 담겨 있는데, 번역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번역서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원서의 표현을 앞에 두고 번역자가 단어 하나하나를 고심했을 것을 생각하면 아득해질 정도다. 책과 언어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해내지 못했을 일이다. <소의 비밀스러운 삶>은 짧은 내용에 비해 등장인물(농장의 소와 양 등등)이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소 가계도’를 그려 가며 읽어야 할 정도인데, 그렇게 복잡한 글이 단순 명쾌하게 읽히는 데에는 역시 번역자의 공이 크다. 앞서 소개한 두 권의 책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와 <소의 비밀스러운 삶>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더불어 책과 언어를 사랑하는 이라면, <출판하는 마음>에 실린 ‘번역자 홍한별’ 인터뷰를 꼭 챙겨보시길.
:
#땅콩책 #두살에서다섯살까지 #코르네이추콥스키#소의비밀스러운삶 #로저먼드영 #홍한별 #양철북#출판하는마음 #제철소

이렇게 맛깔나게 쓴 추천사를 읽고 나니 당장 읽고 싶어져서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그날 저녁을 먹고 야근 하러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들른 지근거리의 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구입해서 서문을 읽어치웠다. (여담이지만 땅사장님이 위 글에서 함께 추천해주신 <두 살부터 다섯 살까지>는 그 다음날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바로 받았다) 몇 페이지 안 되는 서문에서도 분명하게 전달된 농장 동물들을 대하는 저자의 진한 애정은, 평소 동물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는 나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매일을 농장에서 소, 양, 돼지, 닭과 같은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저자는, 가축을 단지 수익을 내기 위한 수단이 아닌 개별적인 개성을 가진 특별한 존재로 대하며 그들의 일상을 진지하게 관찰한다. 꾸밈 없이 투박한 문장으로 쓰여진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결 같은 애정으로 그들을 대해온 저자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그리고 한 편으로, 나는 누군가를 이마만한 애정과 관심으로 지켜본 적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땅콩문고 사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누군가를 꾸준히 사랑하는 것은 할 수 있어도(물론 그조차도 쉽지 않지만), 그 사랑하는 대상을 꾸준히 관찰하고 또 기록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니까.

로저먼드 영의 이야기는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생명이 있는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훨씬 더 보편적이고 넓은 범위에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교훈을 조만간 내가 새로운 공간에서 만나게 될 크고 작은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읽었다.

차영아 작가의 <오, 미지의 택배>나 최근에 읽은 이기호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처럼, 다 읽고 나면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착한” 책이다. 게다가 재미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 왠지 마음을 곱게 써야 할 것 같은 연말도 다가오니 말이다.

우리는 다른 종의 지능을 대개 사람 기준으로 판단하려 든다. 과연 인간의 기준이 다른 종에게 의미가 있을까? 동물에게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느낄 무한한 능력이 있고, 이런 감정은 동물 나름의 관점에서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젖소의 지능이 젖소로서 잘 사는 데에 충분하다면,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14쪽)

 

어린아이를 뒷바라지할 때 보살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처럼 송아지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다. 어린아이에게는 따뜻하고 안락하며 안정적인 환경이 중요하다. 좋은 옷과 신발, 먹을 것과 마실 것, 재미있는 놀잇거리, 또래 친구,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끌어 주고 사랑해 줄 어른이 필요하다. 방치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지내는 아이가 균형 잡힌 어른으로 자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농장 가축에게도 마찬가지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먹이의 질과 전체 환경이 앞으로 그 동물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를 결정한다. (31쪽)

 

+) 참고로 이 책과의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준 땅콩문고는 이번 달 말로 영업을 종료한다고 한다. 딱 한 번 가보았을 뿐이지만, 동네에서 사랑을 듬뿍 받는 서점이라는 게 느껴져서 늘 응원하고 있었는데 무척 안타깝다. 땅콩 사장님의 책 추천을 더 받지 못하는 것도 아쉽고. 꽤나 이름을 날리던 작은 서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 게으름에 자주 다니지 못하고 맨날 큰 서점에서나 책을 사는 내가 과연 안타까워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너무 사랑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책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분들이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는 토양이 한시 빨리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부터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지만 말고, 뭐라도 해야지.

39번째: 11월

2018. 11. 1.

목요일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기 전 마지막 일주일을 빈틈없이 알차게 보내고 있다.

힘든 순간에 함께라서 더 빛났던 사랑하는 사람들. 단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환히 밝혀주는 이들이 내 주변을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얼마나 충만하게 만드는지. 이렇게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고요한 거실에 앉아 있을 때면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들을 곁에 둘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넘치게 받았다고.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코끝이 찡해진다. 새벽녘의 센티멘탈.

어제는 반나절을 빈둥거리다 뭐라도 할 생각으로 느지막이 집을 나와, 종로의 한 스타벅스에서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바테이블에 앉아서 달콤한 코코아를 홀짝거리며 나른한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어김없이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찜해둔 신간들과 그 외 몇 권을 사서 돌아왔다. 김금희의 새로운 소설과 내가 좋아하던 잡지의 요리 칼럼을 모아 펴낸 책, 뜬금없이 집어든 청소 노하우를 집약해둔 실용서,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소중한 친구에게 선물할 책 한 권과 언젠가 읽어야지, 하고 묵혀두었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골랐다.

집에 와서 사온 책들을 한 번씩 쓱 훑어보고, 빅터 프랭클의 책을 집어 들고 침대로 갔다. 조금만 읽다 자려고 했는데, 읽다보니 멈출 수 없어서 1부를 다 읽고서야 겨우 책을 덮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악한 방법으로 인간성을 억압당하는 상황에서도 한 가지 남은 자유는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될 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는 말. 전래 없는 풍요로움을 누리면서도 스스로 선택한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가장 악한 모습을 겪어낸 저자의 담담한 어조는 커다란 울림을 남긴다.

오늘 다 읽을 요량으로 책을 들고 나갔지만, 오늘까지 해야할 일이 있어 결국 책은 한 번도 펴보지 못했다. 그 대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좋은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에 잠시 들렀다가 충동적으로 영화를 보러 나섰다. 출근하게 되면 주말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늦은 시간에 훌쩍 영화를 보기 위해 집에 나서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테니까. J. D. 샐린저의 생애를 다룬 <호밀밭의 반항아>를 보았고, 그의 비범한 생애에 홀딱 빠져 두 시간을 보냈다. 어찌 보면 기벽 있는 천재의 전형적인 내러티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 영화가 이토록 매력적이었던 것은, 샐린저라는 인물이 가진 독특함과 그를 연기한 배우의 훌륭함이 잘 어우러진 결과일 것이다. 좋은 작가이면서 좋은 아버지이자 남편, 또 친구일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종교 수행을 하는 것처럼 칩거하며 쓰고 또 쓰는 삶을 선택한 사람, 오로지 “쓰기를 위한 쓰기”에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은 사람을 어찌 나같은 범인이 평가할 수 있을까. 나는 그처럼 비범한 선택을 하기에는 이미 평범한 삶이 주는 안온한 행복에 길들여져 버렸지만,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를 통해 그런 삶을 잠시 관망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상쇄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아주 오래 전에 읽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이번에는 샐린저가 쓴 원문 그대로 읽고 싶어졌다. 사실 예전에 읽을 때는 나쁘진 않지만 이게 왜 그리 특별하다는 건지 잘 이해를 못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사실은 그 이후 내가 읽은 수많은 소설에서 만난 목적 없이 방황하는 주인공들이 얼마간은 샐린저가 만들어낸 홀든 콜필드에 빚을 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올해 본 영화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기에 이 감동을 잊기 전에 몇 자라도 적어두고 싶어 시작한 글이 생각보다 너무 길어지게 되었다.

이제 2018년도 딱 두 달 남았다. 새삼스레 결심을 다질 것도 없이, 올해의 남은 두 달도 지난 열 달처럼 좋은 사람들, 그리고 좋은 책과 함께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10월의 독서

2018. 10. 28.

일요일

 

내 생에 이렇게 본격적으로 알차게 놀아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꽉꽉 채워 보낸 10월도 어느새 끝을 향해 달려간다. 책도 많이 읽고(사고), 영화도 많이 보고, 전시도 보고, 공연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하여간 이곳저곳을 많이 쏘다녔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니 뭘 해도 좋았다. 몸도 마음도 함께 살찌우는 충만한 가을이었다. 돌아보니 정말 좋은 일들이 많았다. 몇 년 뒤에도 이 10월을 참 아름답게 기억하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놀아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순간에 좋은 기회가 있어 11월부터는 다시 새로운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전에 하던 일과 연속선상에 있으면서도 또 제반 조건들은 완전히 달라서 나로서도 큰 도전이 될 것 같다. 그래도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크다. 이전 프로젝트를 하면서 아쉬웠던 점들을 극복해나가며 일하고 싶다. 이전 직장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을 잘 가꾸어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이 많아서 이런 저런 것들을 많이 읽기도 읽고 사기도 샀는데, 문제는 그때그때 기록을 안 해두었더니 기억이 벌써 까마득하다는 것. 다행히 무엇을 샀는지는 그때그때 적어두었는데, 야금야금 읽은 책들은 어느새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들도 많다. 여전히 여러 가지를 조금씩 읽어가며, 언젠가 읽고 싶은 책들을 착실히 사모으고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정말 행복했던 한 달.

 

다 읽은 책 

  1. 배리 슈워츠, <우리는 왜 일하는가>
    • 우리 사회는 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리고 일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자신의 일(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은 온전히 개인에게만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가 일을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일’을 바라보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관점이 돋보이는 책.
  2. 오스틴 라이트, <토니와 수잔>
    • 책 속의 책에서 그리는 끔찍한 이야기보다, 책 속의 책을 읽는 독서의 경험에 더 간담이 서늘해진다. 만만치 않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만드는 잘 짜여진 이야기. 오랜만에 책 속에 아주 푹 잠겨 읽었다.
  3. 히라노 게이치로, <마티네의 끝에서>
    • 전자책으로 더듬더듬 읽어나간 책.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나서 읽는 도중에 책을 내팽겨친 건 또 처음이다. ‘고구마 백 개 먹은 듯한 기분’을 아주 제대로 선사해 주었다. 그러나 결국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며칠 뒤 다시 손에 들었다. 서사보다는 묘사에 주목해서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 선율을 묘사하는 작가의 문장력이 압권이다. 더불어 그의 박식함에도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물론, 중간에 답답한 구석이야 있었지만 이야기로서도 결코 낙제점은 아니다. 다만 이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내가 아직 미성숙한 것일뿐.
  4. 이기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읽고 있는 책

  1.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2. 토니 셰이, <딜리버링 해피니스>
  3. 요시이 시노부, <잘 지내나요? 도쿄 책방>
  4. 다와다 요코, <여행하는 말들>
  5. 일라나 쿠르샨, <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
  6. 테리 이글턴, <인생의 의미>
  7.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8. 최형욱, <버닝맨, 혁신을 실험하다>
  9. 문희언, <앞으로의 1인 출판사>
  10. 타라 브랙, <받아들임>

 

산 책 

  1.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읽거나 말거나>
  2. 요시이 시노부, <잘 지내나요? 도쿄 책방>
  3. 오스틴 라이트, <토니와 수잔>
  4. 홍성란, <채식은 어렵지만, 채소 습관>
  5. 장강명, <팔과 다리의 가격>
  6. 최형욱, <버닝맨, 혁신을 실험하다>
  7.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신기한 식물일기>
  8. 장강명, <노라>
  9. 일라나 쿠르샨, <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
  10. 루스 크라우스/모리스 샌닥, <구멍은 파는 것>
  11. 앨런 존슨, <사회학 공부의 기초>
  12. 다와다 요코, <여행하는 말들>
  13. 말랄라 유사프자이/크리스티나 램, <나는 말랄라>
  14.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모네의 정원에서>
  15. 나카에 요시오/우에노 노리코, <그건 내 조끼야>
  16. 김소연, <i에게>
  17. 유진목, <식물원>
  18. 사이토 마리코, <단 하나의 눈송이>
  19. 레일라 슬리마니, <그녀, 아델>
  20. 조경란, <소설가의 사물>
  21. 브로드컬리 매거진,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
  22. 임소라, <도서관람>
  23. 문희언, <앞으로의 1인 출판사>
  24. 홍주의, <책 속의 유럽 아트북 페어>
  25. 체조 스튜디오, <사물함 2호>

*1-2: 땡스북스(9/27), 3-6: 교보문고 합정점(9/27), 7: 반디앤루니스 온라인(9/30), 8: 카카오메이커스(10/2), 9: 교보문고 광화문점(10/4), 10-12: 땅콩문고(10/5), 13-15: YES24 @f1963(10/9), 16-17: 손목서가(10/10), 18-20: 교보문고 광화문점(10/15), 21-25: 언리미티드 에디션(10/21)

 

이기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2018

2018. 10. 28.

일요일

다친 발목을 핑계로 하루 종일 누워서 뒹굴거리던 날, 사놓고 오래 묵혀두었던 이 책을 꺼내 단숨에 읽었다.

피식 웃기도 하다가,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절망에 가까운 탄식을 내뱉기도 하면서.

좋은 소설가는 뭇사람들이 늘상 겪으면서도 감지하지 못하는 세밀한 감정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찬찬히 관찰해서 그것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해 낸다. 그래서 그런 소설을 읽고 나면, 독자는 그 소설을 읽기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몰랐던 세계를 하나 더 알게 되었으므로. 혹은, 알아버렸으므로.

이기호의 글은 꾸밈이 없고 진솔하다. 무엇보다 글에서 느껴지는 작가 스스로의 부끄러움이 읽는 이로 하여금 연민과 연대를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나면 얼마간의 부끄러움과 함께,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는 사람이.

충만한 독서였다. 읽고 나니 이기호의 다른 소설들도 하나하나 읽어나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