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의 독서 (1/2)

2018. 1. 16.

화요일

 

날짜를 적을 때 여전히 2017이라 적었다가, 뒤늦게 끝자리를 8로 고치곤 하는 1월. 어제까지 마감이었던 번역 작업을 하느라, 많은 일들을 뒤로 미뤄두었다. 독서도 그 중 하나였다. 해야할 일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데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모든 것은 1월 15일 이후에 다시 생각하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안 읽은 것은 – 더욱이 아무 책도 사지 않은 것은 – 결코 아니었다. 전자책이 제몫을 톡톡히 했는데, 덕분에 출퇴근 길에 조금씩 짬을 내어 뭐라도 읽을 수 있었다. 짬이 날 때면 전자책 서점에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몇 권은 나중을 기약하며 사두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주 금요일에는 퇴근 길에 잠시 시간이 남아,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딱 한 권만 사려고 했던 것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섯 권으로 불어나 있었다. 그래도 전부터 관심있게 보아둔 책들, 그리고 왠지 전자책으로 보기는 아쉬운 책들이라, 후회는 없다.

새해의 기운이 남아있는 틈을 타, 이것저것 의욕적으로 시도해보고 있다. 번역도 그 중 한 가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생각만 해서야 죽을 때까지 생각만 하다 끝날 것 같아서, 되든 안되든 한 번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시간을 들이면 시간을 들인 만큼, 눈으로 표시되는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일이라 결코 쉽지는 않지만 그만큼 보람이 있다. 그와 더불어 한국어 문장들 만큼이나, 일본어와 영어로 쓰인 문장들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올해는 작년에 지키지 못한 ‘원서 읽기’를 꼭 실천해보리라.

 

다 읽은 책

  • 데이비드 앨런, 김경석, 김선준 옮김, <쏟아지는 일 완벽하게 해내는 법> (전자책)
    • 생산성 향상 기법 중의 하나인 GTD(Getting Things Done) 방법론에 대해서는 예전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때 기사만 몇 개 찾아보고 제대로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리디북스에서 반값 대여 이벤트를 하는 것을 보고, 잘 됐다 싶어 사두었다가 작년 말 – 올해 초까지 해서 출퇴근 길에 다 읽었다. 읽고 난 뒤의 감상은, 이 정도면 고전이라 불릴만 하다는 거였다. 왜 생산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GTD 이론이 빠지지 않는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얼른, 여기 제시된 방법들을 직접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하루 반나절이 꼬박 걸리는 일이라 일단 번역을 끝낸 뒤로 미뤄두었지만 (이번 주 일요일에 해보려고 계획을 해두었다)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간단한 팁들 – 2분 법칙, 일정표와 목록의 역할 구분, 회의를 끝내기 전에 반드시 다음 행동 목록이 나와야 한다는 것 – 을 시도해보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예전보다 훨씬 머릿속이 맑아진 느낌이 든다.
    • 끝마치지 않고 놓아둔 일은 실제 그 일이 놓인 상황과 당신의 머릿속, 두 곳에서 미완성이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미완의 과제들은 당신의 의식을 갉아먹어 주의력과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읽고 있는 책

  • 브래드 스톤, 야나 마키에이라 옮김,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전자책)
    • 예전에 친구가 무척 재밌게 읽었다고 이야기해주어서 마음 속에 담아만 두었다가 역시 전자책으로 손에 넣었다. 아침 출근길에는 감성이 촉촉해지는 문학 작품보다는 의욕을 샘솟게 하는 자기계발서나 경제경영 서적 위주로 읽는 편인데, 앞서 적은 데이비드 앨런의 책을 다 읽은 뒤로 무얼 읽을까 책장을 뒤지다 눈에 들어와서 읽기 시작했다. 아마존이야 원래 알고도 있었고, 몇 번 사용해본 적도 있지만, CEO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는 친구가 이야기해주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얼추 들어서 특유의 카리스마로 직원들을 휘어잡고, 투자자를 홀리며, 무대포로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아마존의 엄청난 성장을 이끈 인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니 내가 갖고 있던 사전 지식 중에서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단지 ‘이야기’로서도 재미있지만, 베조스의 경영 방침에서 실제 내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도 적용할 수 있는 팁들을 많이 얻었다. 그날 아침에 읽은 내용 중 인상깊었던 구절을 출근해서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하는데 100%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어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훌륭한 책이다. 이제 절반쯤 읽었는데, 마저 읽은 뒤에 다시 한 번 정리해야겠다.

 

산 책

  1. 김솔, <보편적 정신>
  2. 장석주, 박연준,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3. 강영숙 외, <어른의 맛(2017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4. 가즈오 이시구로, <파묻힌 거인>
  5. 박상익, <번역청을 설립하라>

*1-5 모두 광화문 교보문고 (1/12)

Advertisements

29번째: 번역하는 마음

2018. 1. 8.

월요일

 

해가 바뀌었지만 번호는 이어서 달았다. 해가 바뀐다고 끊기는 것은 오히려 드물다. 많은 것들은 연속선상에 있다. 계속 이어져 나간다.

그리고 나도 작년 말에 시작한 번역을 이어서 하고 있다.

한국어를 일본어로 바꾸는 일.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딘가에서 영어로 된 문장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일에 대해, ‘가로로 누워 있는 문장을 세로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 퍽 상쾌하다’와 비슷한 내용을 쓴 적이 있다. 아직 눕혀 놓은 문장들을 일으켜 세우지는 못했지만,  일단 엎드려는 놓았다. 세워 놓으면 느낌이 또 다를 것이다.

예전에도 소일거리삼아 이런저런 번역을 했었다. 하고 싶어서 한 것보다, 해야 되니까 한 것이 더 많았다.

이번에는 온전히 하고 싶어서 한다. 어디에도 가닿지 못하더라도, 그저 끝까지 가기 위해 간다. 느릿느릿. 더듬더듬. 빛 한 줄기조차 새어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동굴 속을, 손바닥으로 벽을 더듬어가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으로 번역을 하고 있다.

읽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문장들이 고개를 쳐든다.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번역을 하다 보면, 쓸데없는 문장이 하나도 없음에 놀라게 된다. 다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다. 그런 문장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어우러져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 속에서 나는 참을 수 없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참지 못하고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번역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녀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번역하기에는 내가 가진 단어들이 너무 적지만, 최선을 다해 내가 느낀 그 감정을, 일본어로 이 소설을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도 전달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2017년의 마지막 날

2017. 12. 31.

일요일

 

2017년의 마지막 날. 새해가 밝기까지 불과 두시간 반 남았다. 작년 이맘 때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분명히 기억이 나지는 않으나 아마도 집 – 이제는 친정집이 된 – 의 내 방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올해도 역시 집에 있다. 그러나 작년의 그 집과는 다른 집의 안방 침대 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다. 옆에서는 남편이 쿨쿨 자고 있다. 그는 계절감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성격으로, 연말이라고 해서 특별히 뭔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런 그가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그리고 그건 그거대로 의연해서 좋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올해의 마지막 날, 아침에는 느지막이 일어나 한참을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2시가 다 되어 겨우 나갈 채비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둘이서 집을 나섰다. 밖에 나가서 밥도 먹고, 드라이브도 좀 하자고. 목적지는 하남. 그 유명하다는 스타필드를 가볼 요량으로, 근처의 돼지고기 맛집을 검색해서 찾아 갔다. 오랜만의 외식은 만족스러웠으나, 조용한 가게 안에서 두 건의 가족 불화의 현장을 목격하는 바람에 기분이 썩 편치는 않았다. 그길로 나와서 스타필드로 향했다. 이번에는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스타필드에 도착하니 주차장에 들어가기까지 차들이 한참 밀려 있었다. 요 며칠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남편이 좀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여, 구태여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을 헤집고 다닐 이유는 없을 것 같아 미련없이 핸들을 돌렸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난생 처음으로 보복운전이라는 걸 당해봤다. 역시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으나 그리 불쾌할 것도 없었다. 그저 얼떨떨할 뿐이었다. 그러나 살짝 얼이 빠져서, 무척 긴장한 상태로 운전을 했다.

집 근처의 대형 마트에 잠시 내려 떡국 재료를 샀다. 연말에도 분위기를 제대로 내지 못했기에, 새해 떡국만큼은 제대로 만들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하면 뭔가 특별한 걸 해야할 것 같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 없는 일상을 보낸다. 쇼핑몰에 가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외식을 하는 것처럼. 나 역시 그렇게 보냈다.

집에 와서는 냉장고 한 켠을 차지하고 있던 – 그러나 영영 먹을 일은 없을 것만 같은 – 해묵은 식재료들을 처분하고 빨래를 돌렸다. 식탁에 앉아 잠시 번역을 했다.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금새 집중력이 똑 떨어져서, 아까 마트에서 사온 과자를 집어 먹으며 핸드폰을 하고 놀았다. 그리고는 한 편 남은 <녹턴>을 올해가 가기 전에 다 읽으려고 집어들었다. 그리고 다 읽었다.

예전에는 새해가 되면 마치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설레고 신이 났다. 몇 주 전부터 다이어리를 준비해서, 새해 계획들을 빼곡히 적어나갔다. 그러고 있는 동안에는 마치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단지 해가 바뀐다고 해서 갑자기 딴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정도로는 커버렸나 보다. 오히려 담담하다.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다. 올해는 유난히 더 그렇다. 돌아보는 마음이 스산하다.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하나 하나 닫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모든 선택을 긍정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럴 수만은 없다. 역시 한 것 보다는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 그러나 여전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감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지금 당장은 내가 한 선택이 나아보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5년 뒤, 10년 뒤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그러나 5년 뒤, 10년 뒤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나는 늘 지금을 살리는 선택을 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의 어떤 부분이 폭삭 늙어버린 기분이다.

다만 시간을 믿는다. 지나온 시간을. 그리고 앞으로 지나갈 시간을. 20대의 내가 한 모든 선택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것들이 오롯이 내 몫으로, 나의 책임으로 남았음을 받아들인다. 내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금씩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해갈 수는 있다고 믿는다. 대책없이 긍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덮어놓고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할 부분과 너그러워야 할 부분을 분별해내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전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방향을 정하고, 길러가고 싶다.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이룬 것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차곡차곡 쌓아온 한 해였다.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지만, 가장 소중한 것을 얻었다.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새로운 공간을 열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소중한 것들이 늘어났다.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내 곁에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12월 셋째, 넷째 주의 독서

2017. 12. 30.

토요일

 

여전히 읽고 있으나 왠지 모르게 시들해진 기분이다. 전자책으로 읽는 것의 한계인 것 같기도 하고, 한 곳에 마음을 오래 두지 못하는 요즈음의 심리상태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어느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책망어린 생각이 또 고개를 쳐든다. 지금 다른 일이 아닌, 이 일을 하고 있는게 맞는가? 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머리에 떠다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오늘 오랜만에 친구와 긴 대화를 나누었고, 그 대화 끝에 내가 갖고 있는 문제를 직시하게 되었다. 결국은 스스로에 대한 불만. 100%를 다하고 있지 않다는 죄책감. 이만하면 돼, 하고 만족할 수도 없으면서, 이만큼 이상을 더 하지 않으려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늘 겪어온 일이고, 새로울 것도 없는데, 여전히 스스로에게 실망을 느끼다니 얼마나 당해야 나 자신에 대한 기대감을 낮출 수 있을까.

역시나 올해 계획한 것들을 다 이루진 못했으나, 최소한 이 블로그에는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오늘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려 지난 글들을 쭉 읽으면서 기록해두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다. 언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기도 하고. 오, 제법 잘 썼네? 하며 스스로 으쓱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각각의 글을 쓸 때의 내 마음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조금은 울컥했다.

올해를 마무리하는 마음이 개운하지만은 않다. 불만스러운 것도 많고. 지겨울 정도로 발전이 없는 것 같은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2017년의 나는 쉬지 않고 읽어왔고, 그보다 훨씬 적은 양이기는 했지만 꾸준히 써왔다. 적어도 그런 의미에서는 2016년의 나보다 나아졌다. 내년에는 어떤 나이고 싶은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올해보다 더 많이 쓰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올해보다 더 깊이 읽는 사람이고 싶다. 그게 책이 아니라 사람이어도, 일이어도 좋으니, 수박 겉핥기 식이 아닌, 깊숙하게 들어가보고 싶다. 2017년을 통째로 바친 프로젝트에 대한 기록을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형태의 기록으로 엮어내고 싶다. 불평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해결책을 찾아내고 싶다.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영감에 흘러넘치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 더디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런 두서없는 생각들을 적어본다.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다 읽은 책

  1. 김숨, <당신의 신>
    • 아픈 이야기. 우연히 소개글을 보고, 참을 수 없이 읽고 싶어져서 그날로 사왔는데 막상 손에 넣고 나니 시들해져서, 한참을 방치하다 지난 주말에 단숨에 읽었다. 읽었으나 텅 비었다. 소설이 별로였다기 보다, 읽을 때의 나의 마음 상태의 문제인 것 같다. 이번주에 읽은 책들은 다 종이를 씹는 것처럼 딱딱하고 건조하게 느껴졌다. 준비가 안 된 독서였다.

 

읽고 있는 책

  1. 가즈오 이시구로, <녹턴>
    • 이 책을 다 읽으면, (민음사에서 나온) 가즈오 이시구로의 모든 책을 다 읽는 셈이다. 물론 <파묻힌 거인>이 한 편 남아있지만. 올해 하반기는 가즈오 이시구로와 함께 산 느낌이다. 그의 책을 느릿느릿 성실하게 읽었다. <나를 보내지 마>로 시작해서,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남아 있는 나날>, <창백한 언덕 풍경>, <우리가 고아였을 때>, <위로 받지 못한 사람들> 순서로. 이정도면 제법 많이 읽었는데도, 아직도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섣부르게만 느껴진다. 두 세달에 걸쳐 꼭꼭 씹어 읽은 그의 문장들이 소화되지 않은 상태로, 묵직하게 얹혀 있다. 그러다 일상의 어떤 순간, 갑자기 튀어 나온다. 이를 테면 멍하니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나를 보내지 마>의 토니와 캐시를 떠올리는 식으로. 잃어버린 레코드 판을 다시 사기 위해 중고 음반 가게를 뒤지는 장면이 갑자기 과거에 내가 겪은 일 마냥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이건 뭘까. 언젠가 그에 대해 한 편의 글을 쓸 날이 올까. 아직은 이른 것 같긴 하지만. <녹턴>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유일한 단편집인데, 그의 장편들과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주 다르다. 무어라 더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2.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 출퇴근 길에 전자책으로 조금씩 읽고 있다. 딱히 무얼 배우려는 생각 없이 그냥 읽는다. 저자 역시 딱히 뭔가를 가르치려는 생각 없이,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담담하게 회고하듯이 적고 있다. 그 담백함에 위로를 받으면서 더디게 읽어나가는 중이다. 어느 정도는 늘 그랬지만, 지금의 나에게 독서는 도피다. 그 목적에 얼마나 어울리는 책인지는 모르겠으나 제법 역할을 해주고는 있는 것 같다.

 

산 책

오랜만에 시집을 두 권 샀다. 돌이켜보면 올해 참 좋은 시집을 많이 읽었다. 내년에도 계속 읽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골랐다.

  1. 신철규,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2. 문보영, <책기둥>

*1~2: 광화문 교보문고

쓰기에 관하여

2017. 12. 25.

월요일

 

새해 계획을 세울 때 매년 빠지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쓰기’이다.

작년보다 더 많이 쓰는 올해가 되기를.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렇게 결심하곤 했다. 그러나 스스로가 만족할 만큼 쓴 해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쓰기는 늘 실재화되지 않은 가능성으로, 기약없는 약속으로만 존재했다.

무엇을 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것도 아니었다. 그게 소설이든, 시든, 평론이든 그 형식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한 구분보다, ‘쓴다’라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 여겼다. 쓰다보면, 쓰기 자체가 구원이 되어 나를 지금보다 더 나은 어떤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쓰기는 나를 이상세계로 데려가주는 입장권이었다. 그렇게 도달한 세계에서 나는 무엇보다도 쓰는 인간일 테였다. 정정하자. 그냥 쓰는 인간이 아니라, ‘잘’ 쓰는 인간 말이다.

하지만 그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에 나는 끝끝내 쓸 수가 없었다. 막상 써놓고 나니 실망하게 될 것이 두려워서였다. 알고 보니 나를 어디로든 데려다 줄 것만 같았던 그 쓰기가 사실은 스스로를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함정이었음을 알게 될까봐. 흡족하게 독서를 마친 뒤에는 책 날개를 펼쳐 그 책을 썼을 때 저자의 나이와 지금의 내 나이를 견주어 보며, 내게 몇 년의 유예기간이 남았는지를 셈해 보았다. 저자가 나보다 한참 어리다는 것을 알게되면 질투심에 갈라진 입술을 쥐어 뜯었다.

나의 ‘안-쓰기’가 값싼 자기 방어책임을 안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시도하지 않으면 미완의 가능성에 기댈 수 있으니까. ‘괜찮아, 아직 제대로 안 써봐서 그래. 일단 쓰기만 하면 훨씬 더 좋은 걸 쓸 수 있을 거야.’하고.

그러나 아무 것도 쓰지 않으면 결국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안전한 환상 속에 갇혀서, 어쩌다 끄적거린 글 쪼가리에서 맘에 드는 표현 두어 개를 골라내어 그걸로 되었다 자위하는 것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음을 안다.

무엇을 어떤 형태로 쓰고 싶은지, 나는 여전히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 되었든 쓰지 않으면 그 무엇은 이 세상에 끝끝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당위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쓰고 싶기 때문에 쓴다. 그것으로 충분한 쓰기를 여전히 나는 갈구한다.

12월의 독서

2017. 12. 18.

월요일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을까. 마지막으로 기록을 남긴 게 11월 26일이라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라 그런지 12월은 유독 빠르게 흐르는 느낌이다. 하루하루는 길게 느껴지는데, 지나고 보면 순식간이라 그 속도차에 이따금 어리둥절해진다.

이렇게 기록과 기록 사이의 기간이 길 때마다 쓰게 되는 구절이지만,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올 한 해는 한 달도 순탄하게 지나간 적은 없는 듯하다.)

아예 예상을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예상을 했다고 해서 충격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게 분하고 억울했다.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다. 다만 하나 하나의 결정이, 가벼이 넘겼던 상황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질이 모이고 보니 누가 손쓸 새도 없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안타깝지만 이 일에 있어서 내 역할은 방관자 – 혹은 관찰자 – 에 가까웠으므로, 다시 돌아간다한들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여러 번 생각해보아도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충분한 자본이다. 올 한 해에 걸쳐 여러 번, 경제적 자유의 중요성을 마음 깊이 깨닫고 있다.

그동안 내 성향과는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외면해왔지만, 이제부터라도 질끈 감았던 눈을 조금씩 떠보려 한다. 이런 결심은 나의 독서에도 반영되어 이번 달에는 경제 경영 분야의 책들을 많이 사고, 또 읽었다. 더불어 금융과 재테크와 관련된 책들도 함께 읽고 있다. 책을 읽는다고 벼락부자가 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의 지식은 갖추어야겠다는 결심을 구체화한 것이다. 관심은 있었으나 그런 책을 사서 내 서가에 꽂아두고 싶지는 않다는 이상한 속물근성도 나의 편독에 크게 한 몫 했는데, 전자책을 읽으면서는 그런 부담이 훨씬 줄었다. 여전히 종이책을 보면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사도 전자책만큼은 안 읽게 될 것 같아 덜 사게 된다. (아닌게 아니라, 12월에는 종이책을 한 권도 사지 않았다.)

어제 오랫동안 거실에 앉아서 책꽂이를 바라보는데,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그 안 읽은 책들을 여전히 읽고 싶어한다는 생각에도 또 놀랐다. 읽고 싶은데 왜 읽지 않은 것일까. 지금까지 안 읽을 책이라면 안 사는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은 살면서 수십 번, 수백 번을 했을 텐데 여전히 못 고치는 걸 보니 고칠 생각이 없거나 불가능한게 아닐까 싶다. 아마 내년에도 이 버릇을 고치기 힘들 테니, 그냥 많이 사고 많이 읽으련다.

 

다 읽은 책

  1. 가즈오 이시구로,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 2>
    • 넘어가지 않는 책장을 오기로 버텨가며 꾸역꾸역 넘겼다. 스웨덴 한림원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가즈오 이시구로를 선정하면서 그의 소설을 “프란츠 카프카와 제인 오스틴을 섞은 듯하다”고 평했었는데, 이 소설에서는 특히 카프카적인 부조리의 세계가 전면에 드러난다. 두 권을 합쳐 거의 1,000페이지에 이르는 이 소설에는 뚜렷한 서사구조가 없고, 주인공은 주변 인물들의 당혹스러운 부탁에 휘말려 비슷한 장소를 돌고 돌지만 결코 어디에도 닿지 못한다. 이 소설의 서사는 선형적이지도 않고 하다못해 나선형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시작한 지점과 끝나는 지점이 하나의 원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형태를 띄고 있다. 어디에도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한 장을 넘기면 부디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디게 읽어나갔다. 주인공 라이더는 종종 자신에게 닥친 이 상황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폭발하는데, 나 역시 읽으면서 속으로 몇 번이나 폭발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읽은 것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완독하겠다는 오기에 더해 도대체 작가가 이 지난한 작품을 통해 무얼 이야기하고자 하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짐작한 대로, 다 읽었다고 해서 저절로 궁금증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다만 이 긴 여정을 ‘통과’해냈다는 쾌감이 남았을 뿐. 과연 내가 이 책을 다시 펼칠 날이 올까. 모를 일이다. 다만 그의 다른 소설이 그랬듯, 단번에 좋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만큼이나 단번에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려워서,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는 나도 모르게 다시 펼치고 있을지도. 그런 독서였다.
  2. 최은영, <쇼코의 미소>
    • 작년에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와 더불어 한국(단편)소설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이 책을 올해 초에 손에 넣어서, 이번 달 초에 꼬박 일주일 걸려서 다 읽었다. 출퇴근 길에 한 편, 두 편 읽었는데, 단 한 편도 눈물 없이 읽어내지 못했다. 매편마다 마음을 건드리는 인물이, 장면이, 대사가 있었고, 그 앞에서 나는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읽으면서, 읽고 난 뒤, 나는 그 많은 사람들의 이 책에 대한 묘사가 그토록 정확했음에 놀랐다. 이를 테면, 서영채 평론가의 ‘순하고 맑은 서사의 힘’이라는 수사 같은 것. 과연 그녀는 젠체하지 않고, 구태여 꼬지 않고, 사람의 가장 무르고 약한 부분을 숨기지 않고 직시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 한다. 그 감각이 그대로 전해져서 좋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설을 쓰는 작가와 한 시대를 살고 있으니, 나도 조금은 더 아름답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3.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 어느 불면의 밤에, 반쯤은 잠에 취해 단숨에 읽었다.
  4. 엠제이 드마코, <부의 추월차선> *전자책
  5. 김민식,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전자책
  6. 리브 콘스탄틴, <마지막 패리시 부인> *전자책
    • 오락용 독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읽고 있는 책 

  1. 가즈오 이시구로, <녹턴>
  2. 김숨, <당신의 신>
  3. E. E. 커밍스, <이것은 시를 위한 강의가 아니다>
  4.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카오스 멍키> *전자책
  5.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전자책
  6. 찰스 윌런, <찰스 윌런의 경제학으로의 초대> *전자책
  7. 이수련,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 *전자책
  8. 데이비드 앨런, <쏟아지는 일 완벽하게 해내는 법(Getting Things Done)> *전자책

 

산 책

  1.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카오스 멍키> *전자책
  2.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전자책
  3. 김정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전자책
  4. 구보 유키야, <세상에서 가장 쉬운 회계학>*전자책
  5. 엠제이 드마코, <부의 추월차선> *전자책
  6. 데이비드 앨런, <쏟아지는 일 완벽하게 해내는 법(Getting Things Done)> *전자책
  7.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전자책
  8. 김민식,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전자책
  9. 찰스 윌런, <찰스 윌런의 경제학으로의 초대> *전자책
  10.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전자책
  11. 이수련,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전자책
  12. 리브 콘스탄틴, <마지막 패리시 부인>
  13.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14. 폴 오스터, <폴 오스터 컬렉션 세트> 총 18권
  15. Kelly Barnhill, The Girl Who Drank the Moon
  16. Meik Wiking, The Little Book of Lykke 

*1~14 전부 리디북스 전자책. (일부 대여), 15~16: 영등포 교보문고

28번째: 분노

2017. 12. 20.

수요일

어제 있었던 일에 사로잡혀 있다. 이토록 강렬한 부정적 감정에 휩싸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스스로를 다독여보아도 시시때때로 울컥 하고 분노가 몰려왔다. 혼자였다면 소리라도 질렀을 것이다.

항상 상대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려고 노력해왔으나 이런 일을 겪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물론 나의 잘못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그에 돌아온 반응에는 치가 떨렸다.

그러나 그 사람 자체에게 화가 났다기보다, 애초에 이 불합리한 관계를 매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화가 났다. 아마 그 사람에게도 쉽지는 않을 것이리라. 그러나 모두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참고 또 참고, 속으로 삭이면서 넘어가는 일은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다.

누구에게라도 이 갑갑함을 퍼붓고 싶었으나, 이미 나 이외에 무고한 피해자가 생겨버려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을 포함해서.

그러나 언제까지 나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앞세워야 할까? 왜 자신의 괴로움을 이런 식으로 표출하여 타인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걸까? 그리고 왜 나는 이 와중에도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는 걸까? 나도 덮어놓고 탓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차라리 마음에 편할지도.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남은 것은 그것뿐. 요즘 돌아가는 상황만 봐서는 정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그러나 마땅한 대안 없이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다. 누구를 대변하고 싶지도 않고, 다만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정리하고 싶다. 많은 요소들이 이 시기가 끝나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어쩌면 이제 또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나야할 때가 온 건지도 모른다.

일단은 박차고 일어나야지. 머리만 굴려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