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째, 둘째 주에 읽은 책

 

매주 쓰리라 결심했으나 어느새 격주간이 되어 간다. 어찌되었든 계속 쓴다는 게 중요한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올 해 이루려 했던 목표들과 읽으려던 책들, 지속하고 싶던 것들과 끊어내고 싶던 것들, 새로 시작하고 싶던 일과 마무리짓고 싶던 일… 그런 생각을 하면 이내 아득해진다. 계획했던 것보다야 띄엄띄엄이긴 했지만 그나마 이 기록을 꾸준히 이어와서 다행이다. 읽는 사람의 수보다, 쓰는 사람의 수가 훨씬 적다. 단순한 독자 이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끊임없이 써야 한다고 생각(만)한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그리고 내년에는 지금까지보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기를 다시 한 번 결심해 본다.

가즈오 이시구로를 계속해서 읽고 있다. 지난 두 주 간 세 권을 더 읽었다. 이제 남은 것은 세 권. 분명 ‘아, 너무 좋다.’ 는 아닌데 이상스레 마음이 간다. 자꾸 떠오르는 소설 속 장면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을 다섯 권이나 번역한 김남주가 어느 인터뷰를 인용해서 설명했듯, ‘불편한 과거와 대면하는 개인들의 이야기’ 라는 점이 나를 매혹시킨 것 같다. 방심한 틈을 치고 떠오르는 불편한 기억들. 그 기억들을 어떻게 안고 살아가야 할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저 방치하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그러나 그것이 거짓임을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폭삭 주저 앉아 버릴 것 같아서. 언젠가 나도 이시구로풍의 자전적 이야기 한 편을 갖게될 날이 오리라. 그렇게 믿으면서.

 

다 읽은 책

  1. 가즈오 이시구로, 송은경 옮김, <남아 있는 나날>
  2. 가즈오 이시구로, 김남주 옮김, <창백한 언덕 풍경>
  3. 마쓰이 타다미쓰, 민경욱 옮김,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
  4. 이언 맥큐언, 민승남 옮김, <넛셸>
  5. 가즈오 이시구로, 김남주 옮김, <우리가 고아였을 때>

 

읽고 있는 책

  1. 대니얼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2. 강상중,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산 책

  1. 가즈오 이시구로, <창백한 언덕 풍경>
  2. 김숨, <당신의 신>
  3. 이언 매큐언, <넛셸>
  4. 폴 비티, <배반>
  5.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6.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7. Kazuo Ishiguro, An Artist of the Floating World
  8. 강상중,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9. 전병근, <지식의 표정>

*1: 영풍문고 강남점, 2-5: 교보문고 광화문점, 6-9: 교보문고 합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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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셋째, 넷째 주에 읽은 책

10월의 마지막 날.

조금은 울적한 기분으로 서점에 들렀다 집에 왔다. 내 울적함의 팔 할은 교보문고 때문인데, 배알도 없이 또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샀다. 교보문고 때문에 울적할 일이 무어냐 묻는다면 구구절절 설명을 할 수는 있겠지만 설득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가즈오 이시구로의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를 다 읽고 나서, 그의 또 다른 책을 읽고 싶어져서 퇴근 길에 사야겠다고 이미 마음을 정한 참이었다. 주말에 친구가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책을 추천해주었으나 컨디션이 안 좋아서 못 읽은 터라 그 책도 같이 사면 되겠다 싶었다.

일을 잘 마치고 나서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예습 겸 모바일 교보문고에 접속했는데, 전에 못 보던 새로운 페이지가 나타났다. 내가 교보문고에서 산 책들을 바탕으로 나의 독서 성향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책을 추천해주는 서비스였는데, 물론 아직 베타 버전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하나도” 안 맞았다. 그냥 안 맞기만 하면 다행인데, 거기서 분석해놓은 나의 독서 성향이라는 것이 내 자신이 생각하는 나의 독서관(?)과는 거의 정 반대라 해도 좋을 만큼 안 맞는 터라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이게 책이 아니라 영화나 옷 같은 거였다면 ‘뭐야, 잘 안 맞네’ 하고 그냥 넘어갔을 터인데, 이게 이렇게 내 신경을 긁은 이유는 바로 책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많이 읽는 사람(사실은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이지만)이라 생각해온 나에게 어떤 책을 좋아한다 혹은 어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의 정체성과도 상당히 결부되어 있는 문제인지라, 어떤 사람이 나의 독서에 대해 가타부타 이야기하는 것을 일단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책을 교보문고에서만 사는 것도 아니니, 내가 산 책, 읽은 책, 읽고 싶어하는 책을 교보문고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딱 한 권 샀을 뿐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로 떡하니 ‘앨리스 먼로’를 뽑아 놓다니. 이건 너무 심했다. 교보문고에서만 시옷의 세계를 서너 권은 샀는데 왜 김소연이 아닌 앨리스 먼로인가? 박연준도 있고, 편혜영도 있고, 최진영도 있는데 왜 하필? 이번 달에만 두 권을 끝냈고 세 권째 읽어가려 하는 가즈오 이시구로를 골랐다면 아직 ‘제일 좋아하는’ 까지는 아니지만 그럴 수는 있겠다 싶을 텐데.

물론 쌓아놓은 포인트가 아까워서라도 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교보문고를 보이콧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감정을 느낀 책 애호가가 비단 나 하나뿐은 아닐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좋지만, 할 거면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충고한다.

 

다 읽은 책

  1.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 이 책은 사실 지난 번에 포스팅을 하고 나서 그날 밤에 자기 전에 다 읽었다. 두어 시간만에 후루룩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읽히고 경쾌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저자의 책 사랑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올해 읽은 에세이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는 꼽힐 듯.
  2. 가즈오 이시구로,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 <나를 보내지 마>를 인상 깊게 읽고 나서, 두 번째로 고른 책이다. 왜인지 이 책이 끌렸다. 아무것도 모를 때도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지만, 번역가 김남주가 어디선가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한 구절을 읽고 나서 더 읽고 싶어졌다. 역시나 휘몰아치는 서사는 없다. 잔잔하고 고요하지만 행간에 숨겨 놓은 미세한 균열들이 어느새 마음을 잠식한다. 담담한 고백체 때문일까. 화자의 변명이 구차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어쩌면 화자가 말하는 신념이라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덮어놓고 비난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확고함이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위대함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가즈오 이시구로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초기작 세 편이 모두 ‘한 개인이 불편한 과거와 마주하는 법’을 다루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또한 마음을 끈다. 불편한 과거 하나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다만 거기에 대응하는 자세가 다를 뿐. 나 역시 때때로 불쑥 고개를 쳐드는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에 잠 못 이루는 사람으로써, 이 주제를 다룬 그의 다른 두 작품 또한 궁금해졌다.

 

읽고 있는 책

  1. 다니엘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폴트 인펠트, <물리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 과학책을 안 읽어버릇 했더니 맘 먹고 자리에 앉았음에도 거의 진도를 못 나갔다. 다시 한 번 맘잡고 도전해야겠다.

 

산 책

  1. 정홍수, <마음을 건다>
  2. 최진영, <구의 증명>
  3. 가즈오 이시구로,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폴트 인펠트, <물리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5. 마쓰이 타다미쓰,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
  6. 애슐리 반스,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7.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8. 김금희 외, <이해 없이 당분간>

*1~4 반디앤루니스 신세계 강남점(10/17), 5~8 광화문 교보문고(10/31)

26번째: 안도

2017. 10. 17.

화요일

양손 가득 새로 산 책과 내일 아침 거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야식으로 나눠 먹으려 산 만두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폴폴 풍기고,

어느 책부터 골라 읽을까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 문득

아,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내일 출근하면 또 할 일이 잔뜩 기다리고 있겠지만,

여전히 일은 욕심처럼 되지 않고 풀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내게 주어진 몫이라는 확신.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바로 여기가 내 자리라는 단단한 믿음.

그러니 행복하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10월 첫째, 둘째주에 읽은 책

긴 연휴를 보내고 다시 업무에 적응하고 나니, 10월도 절반이 지나 있다. 흐르는 시간에도 가속도가 붙는 것일까.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책을 읽는 습관을 붙이고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밀도 있게 독서를 했고, 또 책을 여러 권 샀다. 그리고 손으로 약간 글을 썼다. 일부러 노트북은 들고 나가지 않았다.

때때로 나는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무엇을 읽는가보다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읽기를 위한 읽기. 적어놓고 보니 그리 나빠보이진 않는다. 딱히 무언가를 위해서 읽는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어렸을 때부터 늘 읽다 보니, 어느새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뭔가 중요한 일을 빼먹고 있는 듯한 기분에 불안해진다. 어쩌면 이 기록도 마찬가지이다. 딱히 무엇을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내적 동기때문에 적는 것이다. 물론 그 양이나 깊이는 처음 계획했던 것에 비하면 소소하기 이를데 없지만. 단지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기억하기 위한 장치일지도 모르겠다. 올해를 통과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고, 내면은 소란스럽다. 불안정한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나는 읽기에서 찾으려 했던 걸까. 좋고 나쁨을 떠나서 적어도 나답긴 하다. 대단히 나다운 방법이다.

 

읽고 있는 책

  1. 앨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
    • 여름 즈음인가, 강남 교보에서 이끌리듯 구입한 이래 잊고 있다가 이번 방콕 여행 길에 챙겨 갔다. 나지막이 읖조리듯 단조로운 문체.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예사롭지 않은 내용들이 일상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별일 아니라는듯. 그렇게 덤덤히 써내려간 이야기들은 공고한 세계를 구축해내, 읽는 이를 잠시 그 안에 가둔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나면 그 안에 갇혀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감각이다. 그래서 이 단편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어내리기는 쉽지 않다. 한 편에서 다른 편으로 넘어가기 전에, 노련한 문장들로 세워진 촘촘한 벽 사이의 틈으로 빠져나와 다시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한 이유로 여행 기간 내내 손에서 놓지 않았건만 아직도 다섯 편이 남았다. 한 편의 무게를 알게된 이상 쉬이 다시 책장을 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2. 대니얼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3. 장수진, <사랑은 우르르 꿀꿀>
    • 오늘 구입해서 절반 이상 읽었다. 처음 보는 시인의 첫 시집이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 펼쳐 들었다. 마음을 끄는 문장이 있어 열심히 읽었으나 뒤로 갈수록 산만해져서 끝내지 못하고 책장을 덮었다. 과식했나보다.
  4.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 몇 년 전에 우연히 알게된 이래로 늘 읽어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다른 책에 밀려 장바구니 안에만 몇 년을 머무르다, 오늘 북티크에서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구입해서 단숨에 읽었다. 책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책 애호가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많이 읽은 사람답게(?) 달필이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으면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그녀의 통찰보다는 ‘와, 이 사람 정말 책 많이 읽었네’라는 생각을 먼저 했는데 묘하게 글에서 느껴지는 인상이 비슷하다. 진솔하고 젠체하지 않으나 박학함이 절로 묻어나되 현학적이지는 않달까. 아무튼 늘 글쓰기의 벽에 부딪히는 사람으로서는 부러운 일이다. 앞으로도 자주 꺼내보는 책이 될 것 같은 예감.

 

다 읽은 책

  •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 김남주의 <사라지는 번역자들>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에 대한 그녀의 깊은 애정을 목격하고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사놓고는 오래도록 묵혀두다가,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절반쯤 읽고 난 뒤 그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나름 문학 애호가라고는 하나 원래 알고 있던 작가가 노벨상을 타는 빈도보다는 노벨상을 계기로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는 빈도가 훨씬 높은 나로서는 제법 신선한 경험이었다.
    • 다음 장이 궁금해서 밤을 꼬박 세울 만큼 흥미진진한 서사를 지닌 소설은 아니지만, 무척이나 섬세하게 조직되어 있어 더디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 없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한 번도 밑줄을 긋지 않았는데, 이는 문장에 힘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각각의 문장들이 따로 떼어낼 수 없는 전체를 이루고 있어 그 중 하나를 골라내는 것이 무용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라 설명하는 것이 낫겠다.
    •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잠식하고 있는 감정은 분명 슬픔인데, 신파처럼 강하게 밀려오는 종류의 슬픔은 아니다. 막 눈물을 닦아낸 티슈 정도의 습기를 머금고 있으나 축축하지는 않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 끝내 좌절될 것을 알면서도 품고 있던 희망, 인간성에 대한 의문…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들을 작가는 경탄할 만한 성실함과 무던함으로 다루어낸다.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이 느낌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단어를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더 읽어보고 싶은 작가다.

 

산 책

  1. 김소연, <시옷의 세계>
    • 내가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이 책. 벌써 몇 권째 사는 건지 모르겠다. 줄곧 새로 사서 선물하다가 누군가에게 빌려주었는데 왠지 돌려 받지 못할 것 같은 예감. 남편에게도 예전에 선물한 적이 있어 그 책을 갖고 오면 되겠다 싶었는데 어디 두었는지 못 찾겠다고 해서 새로 샀다. 나는 이 책의 문장들을 속속들이 흠모한다. 만약 누군가의 문장을 훔칠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시옷의 세계> 속 김소연의 문장을 훔칠 것이다.
  2.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3. 로런스 블록 편, <빛 혹은 그림자>
    • 호퍼의 그림을 소재로 엮은 소설집이라니, 읽어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사버렸다.
  4. 장수진, <사랑은 우르릉 꿀꿀>

*1~4 모두 북티크 서교점.

 

8-9월 동안 읽은 책

 

정말 오랜만에 책에 대한 글을 쓴다. 신기할 정도로 책을 안 읽었다. 거의 사지도 않았다. 올해 들어 정말 드문 일이었다. 결혼이 큰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쉽게 손을 놓게될 줄이야. 8월에는 거의 책을 읽지는 않고 들고만 다녔고, 9월에는 그래도 책을 조금 읽었다. 공항에서 조금. 비행기에서 조금. 리조트에서 조금. 그렇게 해서 다 읽은 책이 두 권. 그리고 약간의 책을 샀다. 내일부터 떠날 여행에서도 또 책을 많이 읽고 싶다. 아주 많이 들고 가지는 못 하겠지만.

10년동안 알아온 사람이지만, 생활을 함께 하는 것은 처음이라 몰랐던 면을 많이 알게되고 있다. 다행히 대개는 긍정적인 발견이다. 기대는 거의 하지 않고, 걱정을 많이 해서인지 ‘어? 생각보다 괜찮네?’ 라는 느낌이랄까. 큰 기대 없이, 다가오는 일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좋은 것들을 놓치지 않고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제법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긴 휴가를 떠나고 돌아오니 회사는 난장판. 과연 이 프로젝트가 잘 굴러갈 것인가. 아니, 그 이전에 회사의 존속이 위태로운 것은 아닐까. 싶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 너무 빠른 체념일지는 모르겠으나, 큰 틀의 결정에 있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매일을 보내는 중이다.

올해도 이제 딱 1/4 남았다. 남은 세 달 동안은 지난 두 달간 못 읽은 만큼 더 많이 읽어야지. 올해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일들을 최선을 다해 추구하며 살고 싶다.

 

다 읽은 책

  1.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오랫동안 숙제처럼 품고 있던 이 책을 신혼여행에서 다 읽었다. 기대이상이었다거나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과는 아예 다른 차원에서 기대와는 달랐다. 그리고 비로소 ‘조르바처럼 산다는 것’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비슷한듯 하면서도 아주 달랐고, 지금의 나로서는 전적으로 긍정하기는 어려운 것이었으나, 그토록 거침없는 삶과의 직면에 대해서는 역시 존경심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으면 또 다른 인상을 받지 않을까. 지금의 나로서는 깊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책이었다.
  2.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에서 짤막히 소개된 것을 읽은 뒤로부터 계속해서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자주 가는 북카페에서 팔고 있는 것을 발견해서 덥썩 집어 왔다. 산 날 조금 읽다 한참 멈춘 뒤, 역시 신혼여행에서 마저 읽었다. (사실은 조금 남아서 돌아온 뒤에까지 읽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소설이지만 군데군데 몰입을 방해하는 복잡하고 정돈되지 않은 문장들이 있었다. 그것이 작가 본인의 문체인지, 번역가의 문체인지는 내가 덴마크어를 배우지 않는 이상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스밀라는 나와는 너무 다른 종류의 사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올곧게 추구해 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 수반되는 인간적인 감정 – 공포, 슬픔, 좌절감 – 을 구태여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것들의 존재를 모두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약한 모습을 감추려 하고, 어려운 길은 피하려 드는 나와는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그래서 읽는 내내 그녀의 무운을 빌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고보니 이번 달에 다 읽은 두 권의 책 모두, 인물이 도드라지는 서사가 특징적인 소설이었다.

 

산 책

  1. 오경아, <정원생활자>
  2. 대니얼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3. 박연준, <베누스 푸디카>
  4. 황정은, <백의 그림자>
  5. 최진영,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1: 8/2, 북바이북 상암, 2-5: 9/20, 인터파크 도서

25번째

2017. 9. 29.

금요일

긴 명절 휴가를 앞두고 퇴근하는 길.

마음이 명랑하지만은 않은 것은 그만큼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끄적이는 일기.

많은 것들이 변한 만큼 많은 것들은 그대로이다.

원치 않는 변화도

반갑지 않은 변화도

피해갈 수 없다면

별 수 있나, 그냥 흔들려야지.

24번째: 결혼전야

2017. 9. 8.

금요일

언제 올까 싶던 결혼식 날이 드디어 내일로 다가왔다. 생각보다는 담담하다. 메리지 블루도 딱히 없었고, 막판에는 뭘 해야 할지, 뭘 안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긴 했지만.

결혼을 약속하고, 날짜를 정하고, 집을 알아보고, 식을 준비하는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 라는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 아닐까.

나의 고질병인 완벽주의를 좀 내려놓고, 내일은 좀 빈 구석이 있고 허술해보이더라도 우리 두 사람에게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하루를 만들고 싶다.

너무 애쓰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다른 건 좀 틀려도 괜찮아. 이 사람과 결혼하기로 한 결정만큼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내일 이 시간이면 싱가폴 행 비행기 안에 있겠구나. 아직 실감이 하나도 안 난다.

우리가 결혼을 한다니.

우여곡절 많았던 시간들을 지나, 부부가 된다.

무엇보다 서로에게 가장 편안한 사람이길. 그거면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