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ne Brown, The Power of Vulnerability (2011)

2018. 6. 22.

금요일

 

한 달 넘게 매일 써오고 있는 <하루 5분 아침 일기> 책에는, 한 주에 한 번씩 랜덤하게 주어지는 주간 과제가 있다. 오늘 마주친 과제는 브레네 브라운의 ‘취약성의 힘(The Power of Vulnerability)’이라는 강연을 유튜브에서 찾아서 보라는 거였고, 본격적인 출근 준비를 시작하기 전 시간을 내어 보았다. 오래 전에도 봤을 때는 건성으로 보아서인지 그렇게 인상이 뚜렷하지 않았는데, 오늘 다시 보니 눈물이 날 만큼 좋았다. 이런 일을 하고 있어서인가, 아이들과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매일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나는 어떤 어른이어야 할까, 아이들에게 먼저 태어난 사람으로서 무엇을 알려주어야 할까를 늘 고민하는데, 오늘 이 비디오에서 그 하나의 답을 찾았다.

 

Brene Brown, The Power of Vulnerabiltiy (2018)

Let me tell you what we think about children. They’re hardwired for struggle when they get here. And when you hold those perfect little babies in your hand, our job is not to say, “Look at her, she’s perfect. My job is just to keep her perfect — make sure she makes the tennis team by fifth grade and Yale by seventh.” That’s not our job. Our job is to look and say, “You know what? You’re imperfect, and you’re wired for struggle, but you are worthy of love and belonging.” That’s our job. Show me a generation of kids raised like that, and we’ll end the problems, I think, that we see today. We pretend that what we do doesn’t have an effect on people. We do that in our personal lives. We do that corporate — whether it’s a bailout, an oil spill, a recall. We pretend like what we’re doing doesn’t have a huge impact on other people. I would say to companies, this is not our first rodeo, people. We just need you to be authentic and real and say, “We’re sorry. We’ll fix it.”

This is my job. To let children know that they are worthy of love and belonging as they are. To let them know that they don’t need to be perfect or try to be someone else in order to be lo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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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독서 (1)

2018. 6. 11.

월요일

 

6월이 되었다. 6월이 된 지 벌써 열흘도 넘었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새삼스럽지만. 그사이 일 년의 반이 지나가버렸다는 게 놀랍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6월 들어 생활을 다잡으려는 새로운 시도를 몇 가지 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명상이다. 티모시 페리스가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명상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고 밝힌 것과,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명상 여행을 떠난 것의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예전 같으면 ‘흠, 그렇구먼’ 하고 넘겼을 이야기에 마음이 동한 것은 아마도 내 안의 무언가가 명상 같은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은 아닐까.

원래도 그런 성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나는 더욱이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을 신봉하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지 못한 상황에 처하다 보니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을 하다가, 어느샌가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마음밖에 없다’고 믿게 되었달까. 여하튼 5월 들어 시작한 아침 일기를 쓰는 습관과 더불어 6월부터 끊길 듯 끊기지 않고 근근히 이어 오고 있는 명상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제법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6월에도 이런저런 책들을 사고, 또 읽고 있다. 여전히 서점에 가면 정신 못차리고 양팔 가득 책을 안고 돌아오는 나지만, 거실에 가만히 앉아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고 있으면 ‘아, 저 책은 언제 읽지’ 하는 생각에 잠시 아찔해진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읽고 싶은 책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기쁘다. 삶에 대한 의욕이 떨어졌을 때 서점에 가면, 여전히 읽고 싶은 책을 한 권 발견할 정도의 의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실제로 그 책을 읽었을 때 그 안에 내 상황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스스로를 달랠 방법을 하나 알고 있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다. 나는 이 또한 독서의 무시 못할 효용이라 생각한다. 물론 내가 아직 어떤 책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좌절이나 슬픔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러고보니 올해는 별로 소설을 읽지 않았다. 최근 사는 책들도 대개는 에세이나 경제경영서, 인문학 교양서가 대다수이다. 작년에 비해 시집이 차지하는 비중도 줄었다. 가장 최근에 서점에 갔을 때에는 경제경영서가 유독 눈에 들어와 여러 권 샀다.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배제하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몇 권 씩 읽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스스로 찾아 읽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여전히 나의 취향에는 소설, 에세이류가 훨씬 잘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있는 단계이다. 가능하면 어느 것에도 문을 닫아두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싶다. 아이들을 만나면서도 드는 생각.

그건 그렇고, 내일 출근길에는 또 어떤 책을 읽을까나.

 

다 읽은 책

  1. 야마구치 요헤이, <현명한 초보 투자자>
    • 슬쩍 슬쩍 현실적인 재테크와 관련된 책들도 읽고 있다. 사실 그동안 다른 책도 몇 권 읽었는데, 몇 명 보지도 않을 개인적인 블로그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부끄러워 적지 못했다. 그러나 이 또한 나의 (독서) 생활의 중요한 일부이기에 함께 기록해나가려 한다. 물론 이론만 공부할 것이 아니라 실행이 병행되어야겠지만 말이다.
  2. 장강명, <당선 계급 합격>
    • <그믐> 이후로 오랜만에 읽은 장강명의 책. 소설은 아니고 르포르타주 형태인데, 리터에 유사한 주제로 연재를 해올 때부터 관심있게 지켜보던 터라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급하게 다 읽은 것은 방금 전에 있었던 북바이북 광화문에서 열리는 작가와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두꺼운 분량에 비해서는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가 금방 읽었다.
    • 나는 문학 공모전에 진지하게 응모할 생각도 해보지 못했고 서점에서 ㅇㅇ상 수상작이라 하는 것에도 크게 휘둘리지 않는 편이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자타공인 문학공모전의 최대 수혜자라고 불리는 장강명이 직접 이런 문제를 들고 나와, 그것도 소설도 아닌 르포의 형태로 써냈다는 점에는 꽤 충격을 받았다. 충실한 자료 조사를 토대로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엮어내어, 그것을 재미있게 읽을 만한 글로 엮어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혹자는 “그래, 그게 문제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라는 식의 딴지를 걸 수도 있겠지만, 그럴 듯한 대안이 없으면 문제도 제기하지 말라는 것도 우습다. 그리고 작가 스스로가 그런 부분을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지 않고, 이 책이 가진 한계점까지도 부러 짚어가며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 공모전의 문제가 비단 문학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시험을 통해 인재를 채용하는 ‘공채’ 시스템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책의 함의와 독자층을 훨씬 더 넓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나 역시 이런 시스템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대학 졸업 이후에는 공채 시스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전 단계의 ‘대학 입시’라는 시스템에는 철저히 순응했고 그 결과 원하던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딘가 모순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주어진 특권들을 가질 자격이 나에게 있는지 여러 번 자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대개는 ‘세간의 인정’이라는 형태로 주어지는 열매의 달콤함에 취해 있었다. 모든 시스템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아마 완벽한 시스템이란 없을 것이다. 다만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면서 점점 더 완벽하게 만들어갈 순 있다. 그를 위해서는 시스템을 수호하려는 사람과 파괴하려는 사람이 그 사이 어딘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모든 사람의 숙제다. 작가의 역할은 생각할 계기를 던져주는 것이고, 이 책에서 장강명은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냈다.

 

산 책

  1. 장강명, <당선 합격 계급>
  2. 메리 노리스, <뉴욕은 교열 중>
  3. 이소영, <식물 산책>
  4. 정상태,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
  5. 강창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6. 세스 스티븐스, <모두 거짓말을 한다>
  7. 해리 덴트, <2019 부의 대절벽>
  8. 레이 달리오, <원칙>
  9. 로잔 토마스, <태도의 품격>

*1~5: 광화문 교보문고(6/2), 6~9: 여의도 영풍문고(6/9)

36번째: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2018. 6. 2.

토요일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하는 날이어도 토요일은 왠지 마음이 가볍다. 평소보다 한시간 쯤 더 자고 일어나 느긋하게 아침 시간을 보낸 뒤, 평일에는 잘 입지 않는 살랑이는 스커트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날씨는 완연한 여름.

요즘 토요일에는 아이들이 적다. 아이들이 적게 온다고 쌓여 있는 할 일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것은 아닌데, 토요일 기분으로 생산성 있게 일하기는 쉽지 않다. 일에 손이 잡히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책망하지는 않았다. 여유를 틈타 동료들과 한가로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동료들은 내가 이 일을 사랑하는 많은 이유들 중에서도 단연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현듯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코끝이 찡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얼마나 소중하고 또 소중한 일인지. 이 사람들과 오래오래 함께 일하기 위해서라도 이 일을 잘 해내고 싶다. 물론 아이들을 위해서도. 마음을 살살 간지럽히는, 사랑스러운 아이들. 점점 더 거리를 두기가 어려워진다. 구태여 거리를 둘 필요는 없지만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에, 아이들과 더 많이, 깊이 교감하는 일과 공간을 유지하고 지속하는데 꼭 필요한 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는 항상 고민이다.

퇴근 길에는 오랜만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렀다. 사려고 이미 마음 먹은 책도 있고, 무슨 책이 나왔나 슬슬 둘러보고 싶기도 했다. 역시나 욕심 나는 책들이 가득해서 한참 이책 저책 들추어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와중에 에세이 코너에서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오늘 일기의 제목,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이다. 암 투병중인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하게 된 한 중년의 인문학자가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들. 내용과 문체는 담백하기 그지 없고, 중간 중간 실소를 자아내는 아재 개그도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짙게 깔린 슬픔의 그림자를 모른체할 수 없다. 특별한 문장도 아닌데 읽다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서점에서도 앞부분을 읽다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름다운 글을 쓰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과 더 오래 함께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저자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사는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일이기에 그에 저항하는 대신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과정을 글로 남겼다. 그가 글로 남겨준 덕분에 나도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한장 두장 넘기는 동안 슬프면서도 행복했다. 서로 섞이기 힘든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함께 겪게 만드는 것은 좋은 글이 가진 힘이다.

 

5월의 독서 (2)

2018. 5. 16.

수요일

 

이번 주에 참 여러 가지 책들을 많이도 읽었다. 한 권을 꾸준히 읽지 않고, 여러 권을 돌려가며 문어발식으로 읽었다. 그래도 좋았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던 책도, 기대만큼 괜찮았던 책도, 기대보다 재미있던 책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다 소중한 독서였다.

아직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 책들을 책장에 가득 꽂아놓고서 또 새로운 책을 사들이는 마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이미 있는 것부터 다 읽고, 라고 스스로를 타이르기도 여러 번. 그러나 그 결심은 번번이 무너지고 만다. 어차피 무너질 결심임을 알기에 이제는 구태여 변명을 늘어놓지도 않는다. 책에 깔려 죽는다면 나로서는 바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죽음일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요즘 부쩍 글쓰기에 대한 책들에 관심이 간다. 원래도 관심은 있었지만, 요즘들어 더더욱 글쓰기 방법론에 대한 책들을 많이 사들이고, 또 읽고 있다. 글쓰기를 잘 하고 싶은 마음에서 읽는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개가 뛰어난 작가들인 글쓰기책 저자들의 창작론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글쓰기 방법이 있고, 개중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은 틀리다고 단언할 수 없음을 배운다. 그러면서 어찌됐든 일단 써보자는 마음을 먹게 된다. 물론 그 마음은 쉽게 일어나는 만큼 쉽게 사라지지만 말이다.

*5월 16일에 써둔 글을 묵혀두었다 이제야 펼친다. 그사이 6월이 되어버렸다. 여러 가지 책들을 조금씩 야금야금 읽었다. 5월 9일에는 참가를 고려중인 지원 사업의 설명회가 있어 선릉 쪽에 갔다 처음으로 최인아 책방에 갔다. 큰 기대 없이 들렀으나 그간의 서점 나들이에서 보지 못했던 책들도 많아 한참을 구경했다. 한두 권만 사려 했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는 이미 대여섯 권이 들려 있었다. 추리고 추려 네 권만 골라 사왔다. 글쓰기 책이 두 권, 출판 책이 한 권, 경영서적이 한 권. 마지막까지 사려고 들고 있다 내려놓은 책은 일본의 노학자가 쓴 일본인론으로 내용이 흥미로워보여 순간 혹했으나 최근의 관심사에서는 거리가 먼 책이라 사고도 오래 묵혀둘 것 같아 이번에는 사지 않기로 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다시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평소 같으면 일하고 있을 시간에 책이 있는 쾌적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

여행을 갈 때에는 종이책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빅 매직, 단 한 권만을 원서로 들고갔지만 한 번도 펼치지 않고 전자책만 읽었다. 선택지가 많아 무엇을 읽을지 고민이었으나 왜인지 마음이 가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다.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외에 SF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것은 거의 처음인 것 같다. SF 소설에 상상력이 번뜩인다는 찬사는 너무도 진부한 조합이긴 하지만, 번뜩이는 상상력이 ‘좋은’ SF 소설의 충분조건은 아닐지언정 필요조건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물론이요, 다음이 궁금해지는 이야기로도 모자람이 없다. 하나 혹은 소수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전개되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야기의 중심축이자 주인공은 몇 백 년에 걸쳐 이어지는 하나의 프로젝트이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또 다른 책들에 한참 정신이 팔려 잠시 잊혀져 있지만 전권을 다 읽고 싶은 책이다.

 

다 읽은 책

  1.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2. 츠지무라 미즈키, <아침이 온다>

 

읽고 있는 책

  1. 매튜 B. 크로포드, <손으로 생각하기>
  2. 윌리엄 진서, <공부가 되는 글쓰기>
  3. 아이작 아시모프, <파운데이션> 시리즈 (1, 2권 완독, 3권 읽는 중)

 

산 책 

  1. 팻 플린, <과연, 뜰까?>
  2. 윌리엄 진서, <공부가 되는 글쓰기>
  3. 은유, <출판하는 마음>
  4.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1~4: 최인아 책방(5/9)

35번째: 여행에서 돌아오다

2018. 5. 30.

수요일

 

열흘 간의 미 서부 여행을 마치고, 어제 새벽 한국에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후다닥 짐을 풀고, 빨래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컵라면과 김치로 그리운 매운 맛을 느끼고는 실컷 잤다. 스무 시간은 족히 잔 것 같다. 달디단 잠이었다.

어릴 때는 여행을 떠나면 뭔가 대단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단지 타국 땅을 밟고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가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구 반대편에 산다고 해서 우리와는 아주 다른 삶을 살아가는게 아니라, 저마다의 일상을 영위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여행은,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었다.

어느새 결혼을 하고 세 번째 여행이다. 남편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혼자 떠나는 여행과는 무척이나 다르다. 친구와 떠나는 여행과도 다르다. 지구상 어디에 있어도 이 사람과 함께 하는 동안은, 우리가 있는 여기가 우리의 집이자 생활의 터전 같은 느낌이랄까. 태평양을 건너왔어도 남편은 한결같다. 잘 먹고, 잘 잔다. 자기 물건을 살 때에는 가성비를 엄청나게 따지면서, 내가 무언가를 산다 할 때에는 또 의심스러울만치 너그럽다. 인터넷이 터지는 곳에서는 유튜브를 찾아보고, 야구 경기의 결과를 확인하고, 늘 가는 네이버 카페의 유머방을 들락거리며 피식피식 웃는다. 그런 한결같음에 내가 지금 서울에 있는 건지, 라스베가스에 있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었지만, 여행이라고 해서 마냥 붕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딛고 있는 듯한 안정감이 들어 좋았다.

무엇보다 편안했다. 스스로를 가장하거나 꾸밀 필요가 조금도 없는, 나의 방어막을 완전히 해제하게 만드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서울에서는 한 집에 살면서도 일주일에 밥 한 끼 같이 먹기 힘든 우리지만 여행에서는 24시간 내내 붙어 있었는데도 불편함이 없었다. 특별히 더 로맨틱하거나, 특별히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더없이 우리다운 시간을 보냈다. 언제 이렇게나 자연스러워진 것일까. 함께 보낸 10년의 세월의 힘이란 이런 걸까.

한때는 이 사람이 나를 평범하게 만든다는 생각도 했었다. 이 사람만 아니라면,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접하고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그런 마음이 들어 실제로 이 사람을 떠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의 곁을 떠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내가 아는 세계 안에 머물렀다. 그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정말 나가고 싶었다면,  그와 관계 없이 나의 의지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탓을 하는 것은 가장 손쉬운 자기 합리화니까. 이제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조금 더 현명해진 나는,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다른 누구의 책임이나 덕분도 아닌 온전히 나의 선택 때문임을 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퍽이나 만족스럽다.

어제 돌아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벌써 지난 열흘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고, 출근을 앞두고 있다. 남편과 함께 미국에 다녀왔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럴 거면 굳이 왜 돈과 시간을 들여 그 멀리까지 다녀왔을까 하는 의심을 맘 한켠에 품고.

그래도 우리는 아마 다시 떠날 것이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여기가 내가 있을 자리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 삶은 변함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츠지무라 미즈키, 아침이 온다, 2017

2018. 5. 13.

일요일

 

오늘 아침에 만난 친구가 추천해준 책을 집에 오는 길에 사서 두 시간 만에 다 읽었다. 일본 소설을 읽은 건 참 오랜만이다. 한때는 일본 소설에 푹 빠져, 일본 소설만 읽었던 시기도 있었다. 벌써 십 년도 더 된 일이다. 그뒤로도 간간이 읽었으나 어느새부터 읽지 않게 되었다. 대단한 결심을 한 것도 아니고 다만 흥미가 떨어졌을 뿐이었다. 그러다 오늘 친구의 추천을 받고 왠지 마음이 동해서, 서점을 두 군데나 들러 결국 사왔다.

소설이 지닌 여러 가치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간접 경험’이다. 생전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던 일을 별안간 내 일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렇게 버젓이 존재하는 세계를 어쩌면 그리도 까맣게 모르고 살았을까.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만큼 내가 볼 수 있는 세계가 넓어진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나의 세계를 넓히는 일이다. 내가 모르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의 삶을 잠시 대신 살아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소설을 많이 읽으면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본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해의 범위와 공감의 깊이는 넓어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다.

츠지무라 미즈키의 <아침이 온다>는 그런 소설이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그러나 코앞에 존재하던 세계를 드러내 보여주는 소설. 이전까지는 나와 무관하다 생각하던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게 해주는 소설. 그로 인해 조금쯤은 더 나은 인간에 가까워지게 만들어주는 소설 말이다.

친구를 잘 둔 덕분에 평생 몰랐을 책 한 권을 더 읽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토코와 히카리, 고노미에게 축복이 있기를.

 

5월의 독서(1)

2018. 5. 8.

화요일

 

어느새 5월이다. 이럴 수가!

시간은 늘 쏜살같이 흐른다. 그 흐름 안에서 흐느적거리고 있는 나. 전반적으로 삶에 대한 권태기인가. 이 날씨 좋은 5월에 권태기라니,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자꾸만 해야할 일들을 다 해내지 못하는 악몽을 꾼다. 산더미 같은 일들이 물리적인 무게를 가지고 나를 짓누르는 꿈을. 어떤 때는 쫓긴다. 그러다 눈을 뜨면 현실은 더 지옥이다. 꿈에서 나를 쫒던 일들 중 어느 것 하나 끝나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고, 결국은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인데. 일들이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기보다는,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다. 아마 앞으로도 해야할 일들은 꾸준히 있을 것이다. 이 일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요즘 부쩍 생산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기왕 할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아끼면서 즐겁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러나 이런 저런 책들을 뒤적여보아도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항상 긴장 상태에 있는 생활. 그나마 발레를 할 때에는 신경을 딴 데로 돌려놓을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읽는다. 어디에도 가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빼곡한 글자들 속 어딘가에 길이 있으리라 믿으며. 숨 고르기.

 

다 읽은 책

  1.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
  2. 장인성, <마케터의 일>
  3. 티모시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읽고 있는 책

  1. 리처드 플래너건, <굴드의 물고기책>
  2.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산 책

  1. 릴리쿰, <손의 모험>
  2. 문태준,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3. 장인성, <마케터의 일>
  4.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
  5. 유희경,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6. 강성은, <단지 조금 이상한>
  7. 우치다 다쓰루,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8. 가와사키 쇼헤이, <리뷰 쓰는 법>
  9. 매튜 B. 크로포드, <손으로, 생각하기>
  10. 인텔리전트 체인지, <하루 5분 아침 일기>

*1~3: 광화문 교보문고(4/26), 4~8: 광화문 교보문고(5/3), 9: 강남 신세계 반디앤루니스(5/5), 10: 여의도 영풍문고(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