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독서 (1/2)

 

2018. 4. 23.

월요일

 

4월도 어느덧 단 한 주를 남겨놓고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나서 회상하면 한 달에 대한 감상이 늘 비슷하다.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으나, 무사히 지나갔다.” 정도일까. 돌이켜보면 월말이 되어 무사히 지나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달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쯤이면 어차피 월말이 되면 알아서 정리가 될 터이니 쓸데없는 걱정은 말고 일을 저지르자고 생각해도 좋겠다.

4월부터 듣기 시작한 패스트캠퍼스의 강의는 오늘 저녁으로 끝이 난다. 이렇게 비싼 돈을 내고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몇 번 스스로에게도 물어보았지만 후회는 없다. 아마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하고 싶은 일들에 묻혀 마케팅이나 브랜딩에 대해 따로 시간을 투자해서 배우지 않았을 것이다. 워낙에 기초적인 내용이라 바로 실전에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실제 일할 때 마주치는 문제들에 하나하나 대입해봐야지.

4월부터 합류한 새로운 팀원은 제몫을 넘치게 잘 하고 있다. 보고만 있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 프로젝트에 부족한 것들이 많지만 인복만큼은 부족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와 성향이 놀랄 정도로 비슷하고, 이야기도 잘 통한다. 그러나 약 삼 주를 지켜보면서 내가 파악한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좋은 질문을 던질 줄 안다’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더 중요한 일들이 있어서, 등등의 핑계로 한 켠에 미뤄두었던 일들을 매의 눈으로 파악하고 거기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서 가슴이 뜨끔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도 어느새 적당히 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이 좋은 사람들과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다고 의욕을 불태우는 중이다.

그리고 부산 여행이 있었다. 만삭의 친구를 보러 간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사실은 아난티 코브에 있는 서점, ‘이터널 저니’에 가고 싶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쉬운 점을 찾으려고 맘을 먹으면 수두룩하게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책장 가득 꽂혀 있는 책들과 너른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에 무슨 불평을 더할 수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그곳에서 책만 읽고 싶었다. 숙박비는 결코 저렴하지 않았으나 아깝지 않은 소비였다.

독서면에서는 한 권을 꾸준히 읽은 한 달이었다. 지난 달 말에 구입한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Eat, Pray, Love를 느린 속도로 끝까지 읽었다. 원서로 된 책 한 권을 다 읽은 것이 얼마만인지. 번역서로 읽었더라면 훨씬 더 빨리 읽었겠지만, 오히려 천천히 읽어갈 수 있어 좋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느낌으로 한 단어 한 단어를 읽어나갔다. 그러는 동안은 마치 리즈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로마의 오래된 도서관 중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분수를 바라보고 앉아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인도의 깊은 숲 속에 위치한 힌두 사원에서 마룻바닥을 닦고 명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발리의 자기 나이가 몇 살인지도 기억을 못할 정도로 나이가 많은 주술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당장 떠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에 한없이 감사를 느끼기도 하면서, 그렇게 읽어나갔다. 언젠가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흥미롭지 않아도 좋으니 스스로에게 한없이 투명해질 수 있는. 구태여 숨기려하지 않고,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대로,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대로, 있는 내 모습 그대로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글을. 작년에 가즈오 이시구로를 읽은 것처럼 올해는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책들을 ‘원서로’ 읽어나가려 한다. 물론 이 계획은 그 사이 만나게 될 수많은 흥미로운 책들에게 방해받게 되겠지만. 그조차 즐거움이니.

 

다 읽은 책

  1. Elizabeth Gilbert, Eat, Pray, Love 

 

읽고 있는 책

  1. 한스 라트,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2. 티모시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산 책

  1. 우승우, 차상우, <창업가의 브랜딩>
  2. 지바 마사야, <공부의 철학>
  3. 김진애, <집놀이>
  4. 이토 도요 외, <이토 도요의 어린이 건축학교>
  5. 콜린 스튜어트, <열세 번의 시공간 여행>
  6.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7. 에밀리 디킨슨,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8. 켄트 하루프, <축복>
  9. 리처드 플래너건, <굴드의 물고기 책>
  10. 요코야마 류지, <트리플 미디어 전략>

*1-2: 강남 교보문고(4/9), 3-4: 인터넷 교보문고(4/12), 5-9: 이터널 저니(4/16), 10: 쿠팡(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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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번째: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2018. 4. 19.

목요일

목요일이지만 이틀을 더 출근해야 주말이다. 아직은 낯선 화-토의 스케줄.

괴로운 일보다는 즐거운 일들이 더 많은 한 달을 보내고 있지만, 넘치는 할 일들 사이에서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 태반은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팀원은 오자마자 넘치도록 제몫을 해내고 있는데 왜 나의 생산성은 이다지도 발전이 없는가. 괴롭다.

모든 것을 다 없애고 백지에서부터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지만 그것은 판타지일 뿐. 결국은 발밑에 놓인 일들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해야할 일들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것처럼 복잡한 밤. 좀처럼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는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32번째: 요동치는 마음

2018. 4. 10.

화요일

마음이 번다해서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을 지나, 새벽같이 눈을 떴다. 중심과 균형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이것도 저것도 다 놓지 못하고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고 있다. 이제는 손에 힘을 조금 빼도 좋으련만. 느슨하게 쥐어도 스르르 빠져나가지 않을 것들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타일러본다.

여전히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Eat, Pray, Love를 더듬더듬 읽어나가고 있다. 모국어가 아니기에 읽는 속도는 더디지만, 오히려 음미하게 되는 맛이 있다.

오늘은 새벽과 아침의 경계에서, 40분간의 요가를 마치고 책장에 꽂아만 두었던 케리 이건의 <살아요>를 펼쳐 서문을 읽었다. 그동안 나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려왔다는 듯이, 눈앞에 나타났다.

혼자여도 충만한 삶을 살고 싶은데 둘이기에 부족한 것이 더 눈에 보인다. 결국 나는 뼛속까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책망할 일이던가.

“Guilt’s just your ego’s way of tricking you into thinking that you’re making moral progress. Don’t fall for it, my dear.”

Why is it so important? I’d rather change myself than wasting my time trying to change someone else. Just let go.

31번째: 새로움

2018. 4. 4.

수요일

 

3월 내내 심혈을 기울여 뽑은 새로운 동료가 어제 처음으로 출근했다. 늘 채용을 ‘당하는’ 입장에 있다가, 처음으로 채용을 ‘하는’ 입장에 놓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한 페이지 짜리 자기소개서에는 생각보다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지원한 곳들에서 왜 떨어졌는지, 또 붙었을 땐 왜 붙었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지금의 나에게 누군가의 당락을 결정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도 끊임없이 물었다. 얼마간은 순전히 운 때문에 여기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 많이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아직 더 손발을 맞춰나가야겠지만,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일단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성장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나 역시 안주하지 말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1년 넘게 이어오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일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동안의 괴로움은 대부분이 스스로의 한계에서 왔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에 시시때때로 감사하고 있다. 최소한, 함께 일하는 상대를 괴롭게 하는 동료가 되고 싶지는 않다. 기왕이면 서로를 성장시키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


 

그리고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요즘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Eat, Pray, Love를 원서로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다. 영어로 읽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술술 잘 읽힌다. 깊이 깊이, 자신의 내면을 바닥까지 내려가본 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쏟아낸 단어들. 그녀처럼 쓰고 싶다. 그녀가 쓴 모든 책들을 원서로 읽는 것을 올해 목표로 삼아볼란다. 작년에 가즈오 이시구로를 읽었던 것처럼. (물론 아직 ‘파묻힌 거인’이 남긴 했지만.)

30번째: 다시, 4월

2018. 4. 3.

화요일

 

2018년도 어느새 석 달이 지나고, 다시 찾아온 4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태어난 날이 있는 이 달은, 일 년 열두 달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달이다.

그리고 동시에, 아픔이 많은 달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에버노트를 뒤적이다, 예전에 스크랩해둔 은유의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라는 칼럼을 다시 읽었다. 세월호라는 이름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프기만 하다. 스스로의 무감함에 자책하게 만드는 이름. 여전히 마주할 용기가 없는 이름이자, 커다란 숙제. 세월호를 기록한 수많은 책들이 나와 있지만, 차마 직면할 자신이 없어 번번이 외면해왔다. 작년 이맘 때 이 칼럼을 읽고, 눈물을 두어 방울 짜내고도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기는 커녕 책장에 꽂아 놓을 용기도 내지 못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듯 살아도 괜찮은 걸까.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 나의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행복이 나의 몫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괴롭게만 살 필요도, 그럴 수도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내가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최선의 길임을 믿는다. 결국 모든 것에는 자신의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 해석이 반드시 한 가지일 필요는 없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수많은 해석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이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이 이 사회에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내가 세월호에 대해 느끼는 부채의식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외면하지 말 것. 당당하게 마주할 것.

스스로에게 내준 이번 달의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