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번째: 11월

2018. 11. 1.

목요일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기 전 마지막 일주일을 빈틈없이 알차게 보내고 있다.

힘든 순간에 함께라서 더 빛났던 사랑하는 사람들. 단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환히 밝혀주는 이들이 내 주변을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얼마나 충만하게 만드는지. 이렇게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고요한 거실에 앉아 있을 때면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들을 곁에 둘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넘치게 받았다고.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코끝이 찡해진다. 새벽녘의 센티멘탈.

어제는 반나절을 빈둥거리다 뭐라도 할 생각으로 느지막이 집을 나와, 종로의 한 스타벅스에서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바테이블에 앉아서 달콤한 코코아를 홀짝거리며 나른한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어김없이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찜해둔 신간들과 그 외 몇 권을 사서 돌아왔다. 김금희의 새로운 소설과 내가 좋아하던 잡지의 요리 칼럼을 모아 펴낸 책, 뜬금없이 집어든 청소 노하우를 집약해둔 실용서,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소중한 친구에게 선물할 책 한 권과 언젠가 읽어야지, 하고 묵혀두었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골랐다.

집에 와서 사온 책들을 한 번씩 쓱 훑어보고, 빅터 프랭클의 책을 집어 들고 침대로 갔다. 조금만 읽다 자려고 했는데, 읽다보니 멈출 수 없어서 1부를 다 읽고서야 겨우 책을 덮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악한 방법으로 인간성을 억압당하는 상황에서도 한 가지 남은 자유는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될 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는 말. 전래 없는 풍요로움을 누리면서도 스스로 선택한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가장 악한 모습을 겪어낸 저자의 담담한 어조는 커다란 울림을 남긴다.

오늘 다 읽을 요량으로 책을 들고 나갔지만, 오늘까지 해야할 일이 있어 결국 책은 한 번도 펴보지 못했다. 그 대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좋은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에 잠시 들렀다가 충동적으로 영화를 보러 나섰다. 출근하게 되면 주말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늦은 시간에 훌쩍 영화를 보기 위해 집에 나서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테니까. J. D. 샐린저의 생애를 다룬 <호밀밭의 반항아>를 보았고, 그의 비범한 생애에 홀딱 빠져 두 시간을 보냈다. 어찌 보면 기벽 있는 천재의 전형적인 내러티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 영화가 이토록 매력적이었던 것은, 샐린저라는 인물이 가진 독특함과 그를 연기한 배우의 훌륭함이 잘 어우러진 결과일 것이다. 좋은 작가이면서 좋은 아버지이자 남편, 또 친구일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종교 수행을 하는 것처럼 칩거하며 쓰고 또 쓰는 삶을 선택한 사람, 오로지 쓰기를 위한 쓰기를 위해 기꺼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은 사람을 어찌 나같은 범인이 평가할 수 있을까. 나는 그처럼 비범한 선택을 하기에는 이미 평범한 삶이 주는 안온한 행복에 길들여져 버렸지만,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를 통해 그런 삶을 잠시 관망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상쇄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아주 오래 전에 읽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이번에는 샐린저가 쓴 원문 그대로 읽고 싶어졌다. 사실 예전에 읽을 때는 나쁘진 않지만 이게 왜 그리 특별하다는 건지 잘 이해를 못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사실은 그 이후 내가 읽은 수많은 소설에서 만난 목적 없이 방황하는 주인공들이 얼마간은 샐린저가 만들어낸 홀든 콜필드에 빚을 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올해 본 영화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기에 이 감동을 잊기 전에 몇 자라도 적어두고 싶어 시작한 글이 생각보다 너무 길어지게 되었다.

이제 2018년도 딱 두 달 남았다. 새삼스레 결심을 다질 것도 없이, 올해의 남은 두 달도 지난 열 달처럼 좋은 사람들, 그리고 좋은 책과 함께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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