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째, 둘째 주에 읽은 책

 

매주 쓰리라 결심했으나 어느새 격주간이 되어 간다. 어찌되었든 계속 쓴다는 게 중요한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올 해 이루려 했던 목표들과 읽으려던 책들, 지속하고 싶던 것들과 끊어내고 싶던 것들, 새로 시작하고 싶던 일과 마무리짓고 싶던 일… 그런 생각을 하면 이내 아득해진다. 계획했던 것보다야 띄엄띄엄이긴 했지만 그나마 이 기록을 꾸준히 이어와서 다행이다. 읽는 사람의 수보다, 쓰는 사람의 수가 훨씬 적다. 단순한 독자 이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끊임없이 써야 한다고 생각(만)한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그리고 내년에는 지금까지보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기를 다시 한 번 결심해 본다.

가즈오 이시구로를 계속해서 읽고 있다. 지난 두 주 간 세 권을 더 읽었다. 이제 남은 것은 세 권. 분명 ‘아, 너무 좋다.’ 는 아닌데 이상스레 마음이 간다. 자꾸 떠오르는 소설 속 장면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을 다섯 권이나 번역한 김남주가 어느 인터뷰를 인용해서 설명했듯, ‘불편한 과거와 대면하는 개인들의 이야기’ 라는 점이 나를 매혹시킨 것 같다. 방심한 틈을 치고 떠오르는 불편한 기억들. 그 기억들을 어떻게 안고 살아가야 할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저 방치하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그러나 그것이 거짓임을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폭삭 주저 앉아 버릴 것 같아서. 언젠가 나도 이시구로풍의 자전적 이야기 한 편을 갖게될 날이 오리라. 그렇게 믿으면서.

 

다 읽은 책

  1. 가즈오 이시구로, 송은경 옮김, <남아 있는 나날>
  2. 가즈오 이시구로, 김남주 옮김, <창백한 언덕 풍경>
  3. 마쓰이 타다미쓰, 민경욱 옮김,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
  4. 이언 맥큐언, 민승남 옮김, <넛셸>
  5. 가즈오 이시구로, 김남주 옮김, <우리가 고아였을 때>

 

읽고 있는 책

  1. 대니얼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2. 강상중,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산 책

  1. 가즈오 이시구로, <창백한 언덕 풍경>
  2. 김숨, <당신의 신>
  3. 이언 매큐언, <넛셸>
  4. 폴 비티, <배반>
  5.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6.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7. Kazuo Ishiguro, An Artist of the Floating World
  8. 강상중,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9. 전병근, <지식의 표정>

*1: 영풍문고 강남점, 2-5: 교보문고 광화문점, 6-9: 교보문고 합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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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셋째, 넷째 주에 읽은 책

10월의 마지막 날.

조금은 울적한 기분으로 서점에 들렀다 집에 왔다. 내 울적함의 팔 할은 교보문고 때문인데, 배알도 없이 또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샀다. 교보문고 때문에 울적할 일이 무어냐 묻는다면 구구절절 설명을 할 수는 있겠지만 설득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가즈오 이시구로의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를 다 읽고 나서, 그의 또 다른 책을 읽고 싶어져서 퇴근 길에 사야겠다고 이미 마음을 정한 참이었다. 주말에 친구가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책을 추천해주었으나 컨디션이 안 좋아서 못 읽은 터라 그 책도 같이 사면 되겠다 싶었다.

일을 잘 마치고 나서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예습 겸 모바일 교보문고에 접속했는데, 전에 못 보던 새로운 페이지가 나타났다. 내가 교보문고에서 산 책들을 바탕으로 나의 독서 성향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책을 추천해주는 서비스였는데, 물론 아직 베타 버전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하나도” 안 맞았다. 그냥 안 맞기만 하면 다행인데, 거기서 분석해놓은 나의 독서 성향이라는 것이 내 자신이 생각하는 나의 독서관(?)과는 거의 정 반대라 해도 좋을 만큼 안 맞는 터라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이게 책이 아니라 영화나 옷 같은 거였다면 ‘뭐야, 잘 안 맞네’ 하고 그냥 넘어갔을 터인데, 이게 이렇게 내 신경을 긁은 이유는 바로 책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많이 읽는 사람(사실은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이지만)이라 생각해온 나에게 어떤 책을 좋아한다 혹은 어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의 정체성과도 상당히 결부되어 있는 문제인지라, 어떤 사람이 나의 독서에 대해 가타부타 이야기하는 것을 일단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책을 교보문고에서만 사는 것도 아니니, 내가 산 책, 읽은 책, 읽고 싶어하는 책을 교보문고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딱 한 권 샀을 뿐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로 떡하니 ‘앨리스 먼로’를 뽑아 놓다니. 이건 너무 심했다. 교보문고에서만 시옷의 세계를 서너 권은 샀는데 왜 김소연이 아닌 앨리스 먼로인가? 박연준도 있고, 편혜영도 있고, 최진영도 있는데 왜 하필? 이번 달에만 두 권을 끝냈고 세 권째 읽어가려 하는 가즈오 이시구로를 골랐다면 아직 ‘제일 좋아하는’ 까지는 아니지만 그럴 수는 있겠다 싶을 텐데.

물론 쌓아놓은 포인트가 아까워서라도 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교보문고를 보이콧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감정을 느낀 책 애호가가 비단 나 하나뿐은 아닐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좋지만, 할 거면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충고한다.

 

다 읽은 책

  1.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 이 책은 사실 지난 번에 포스팅을 하고 나서 그날 밤에 자기 전에 다 읽었다. 두어 시간만에 후루룩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읽히고 경쾌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저자의 책 사랑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올해 읽은 에세이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는 꼽힐 듯.
  2. 가즈오 이시구로,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 <나를 보내지 마>를 인상 깊게 읽고 나서, 두 번째로 고른 책이다. 왜인지 이 책이 끌렸다. 아무것도 모를 때도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지만, 번역가 김남주가 어디선가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한 구절을 읽고 나서 더 읽고 싶어졌다. 역시나 휘몰아치는 서사는 없다. 잔잔하고 고요하지만 행간에 숨겨 놓은 미세한 균열들이 어느새 마음을 잠식한다. 담담한 고백체 때문일까. 화자의 변명이 구차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어쩌면 화자가 말하는 신념이라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덮어놓고 비난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확고함이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위대함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가즈오 이시구로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초기작 세 편이 모두 ‘한 개인이 불편한 과거와 마주하는 법’을 다루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또한 마음을 끈다. 불편한 과거 하나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다만 거기에 대응하는 자세가 다를 뿐. 나 역시 때때로 불쑥 고개를 쳐드는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에 잠 못 이루는 사람으로써, 이 주제를 다룬 그의 다른 두 작품 또한 궁금해졌다.

 

읽고 있는 책

  1. 다니엘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폴트 인펠트, <물리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 과학책을 안 읽어버릇 했더니 맘 먹고 자리에 앉았음에도 거의 진도를 못 나갔다. 다시 한 번 맘잡고 도전해야겠다.

 

산 책

  1. 정홍수, <마음을 건다>
  2. 최진영, <구의 증명>
  3. 가즈오 이시구로,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폴트 인펠트, <물리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5. 마쓰이 타다미쓰,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
  6. 애슐리 반스,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7.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8. 김금희 외, <이해 없이 당분간>

*1~4 반디앤루니스 신세계 강남점(10/17), 5~8 광화문 교보문고(10/31)

10월 첫째, 둘째주에 읽은 책

긴 연휴를 보내고 다시 업무에 적응하고 나니, 10월도 절반이 지나 있다. 흐르는 시간에도 가속도가 붙는 것일까.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책을 읽는 습관을 붙이고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밀도 있게 독서를 했고, 또 책을 여러 권 샀다. 그리고 손으로 약간 글을 썼다. 일부러 노트북은 들고 나가지 않았다.

때때로 나는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무엇을 읽는가보다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읽기를 위한 읽기. 적어놓고 보니 그리 나빠보이진 않는다. 딱히 무언가를 위해서 읽는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어렸을 때부터 늘 읽다 보니, 어느새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뭔가 중요한 일을 빼먹고 있는 듯한 기분에 불안해진다. 어쩌면 이 기록도 마찬가지이다. 딱히 무엇을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내적 동기때문에 적는 것이다. 물론 그 양이나 깊이는 처음 계획했던 것에 비하면 소소하기 이를데 없지만. 단지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기억하기 위한 장치일지도 모르겠다. 올해를 통과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고, 내면은 소란스럽다. 불안정한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나는 읽기에서 찾으려 했던 걸까. 좋고 나쁨을 떠나서 적어도 나답긴 하다. 대단히 나다운 방법이다.

 

읽고 있는 책

  1. 앨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
    • 여름 즈음인가, 강남 교보에서 이끌리듯 구입한 이래 잊고 있다가 이번 방콕 여행 길에 챙겨 갔다. 나지막이 읖조리듯 단조로운 문체.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예사롭지 않은 내용들이 일상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별일 아니라는듯. 그렇게 덤덤히 써내려간 이야기들은 공고한 세계를 구축해내, 읽는 이를 잠시 그 안에 가둔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나면 그 안에 갇혀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감각이다. 그래서 이 단편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어내리기는 쉽지 않다. 한 편에서 다른 편으로 넘어가기 전에, 노련한 문장들로 세워진 촘촘한 벽 사이의 틈으로 빠져나와 다시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한 이유로 여행 기간 내내 손에서 놓지 않았건만 아직도 다섯 편이 남았다. 한 편의 무게를 알게된 이상 쉬이 다시 책장을 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2. 대니얼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3. 장수진, <사랑은 우르르 꿀꿀>
    • 오늘 구입해서 절반 이상 읽었다. 처음 보는 시인의 첫 시집이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 펼쳐 들었다. 마음을 끄는 문장이 있어 열심히 읽었으나 뒤로 갈수록 산만해져서 끝내지 못하고 책장을 덮었다. 과식했나보다.
  4.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 몇 년 전에 우연히 알게된 이래로 늘 읽어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다른 책에 밀려 장바구니 안에만 몇 년을 머무르다, 오늘 북티크에서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구입해서 단숨에 읽었다. 책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책 애호가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많이 읽은 사람답게(?) 달필이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으면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그녀의 통찰보다는 ‘와, 이 사람 정말 책 많이 읽었네’라는 생각을 먼저 했는데 묘하게 글에서 느껴지는 인상이 비슷하다. 진솔하고 젠체하지 않으나 박학함이 절로 묻어나되 현학적이지는 않달까. 아무튼 늘 글쓰기의 벽에 부딪히는 사람으로서는 부러운 일이다. 앞으로도 자주 꺼내보는 책이 될 것 같은 예감.

 

다 읽은 책

  •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 김남주의 <사라지는 번역자들>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에 대한 그녀의 깊은 애정을 목격하고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사놓고는 오래도록 묵혀두다가,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절반쯤 읽고 난 뒤 그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나름 문학 애호가라고는 하나 원래 알고 있던 작가가 노벨상을 타는 빈도보다는 노벨상을 계기로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는 빈도가 훨씬 높은 나로서는 제법 신선한 경험이었다.
    • 다음 장이 궁금해서 밤을 꼬박 세울 만큼 흥미진진한 서사를 지닌 소설은 아니지만, 무척이나 섬세하게 조직되어 있어 더디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 없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한 번도 밑줄을 긋지 않았는데, 이는 문장에 힘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각각의 문장들이 따로 떼어낼 수 없는 전체를 이루고 있어 그 중 하나를 골라내는 것이 무용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라 설명하는 것이 낫겠다.
    •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잠식하고 있는 감정은 분명 슬픔인데, 신파처럼 강하게 밀려오는 종류의 슬픔은 아니다. 막 눈물을 닦아낸 티슈 정도의 습기를 머금고 있으나 축축하지는 않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 끝내 좌절될 것을 알면서도 품고 있던 희망, 인간성에 대한 의문…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들을 작가는 경탄할 만한 성실함과 무던함으로 다루어낸다.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이 느낌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단어를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더 읽어보고 싶은 작가다.

 

산 책

  1. 김소연, <시옷의 세계>
    • 내가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이 책. 벌써 몇 권째 사는 건지 모르겠다. 줄곧 새로 사서 선물하다가 누군가에게 빌려주었는데 왠지 돌려 받지 못할 것 같은 예감. 남편에게도 예전에 선물한 적이 있어 그 책을 갖고 오면 되겠다 싶었는데 어디 두었는지 못 찾겠다고 해서 새로 샀다. 나는 이 책의 문장들을 속속들이 흠모한다. 만약 누군가의 문장을 훔칠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시옷의 세계> 속 김소연의 문장을 훔칠 것이다.
  2.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3. 로런스 블록 편, <빛 혹은 그림자>
    • 호퍼의 그림을 소재로 엮은 소설집이라니, 읽어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사버렸다.
  4. 장수진, <사랑은 우르릉 꿀꿀>

*1~4 모두 북티크 서교점.

 

8-9월 동안 읽은 책

 

정말 오랜만에 책에 대한 글을 쓴다. 신기할 정도로 책을 안 읽었다. 거의 사지도 않았다. 올해 들어 정말 드문 일이었다. 결혼이 큰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쉽게 손을 놓게될 줄이야. 8월에는 거의 책을 읽지는 않고 들고만 다녔고, 9월에는 그래도 책을 조금 읽었다. 공항에서 조금. 비행기에서 조금. 리조트에서 조금. 그렇게 해서 다 읽은 책이 두 권. 그리고 약간의 책을 샀다. 내일부터 떠날 여행에서도 또 책을 많이 읽고 싶다. 아주 많이 들고 가지는 못 하겠지만.

10년동안 알아온 사람이지만, 생활을 함께 하는 것은 처음이라 몰랐던 면을 많이 알게되고 있다. 다행히 대개는 긍정적인 발견이다. 기대는 거의 하지 않고, 걱정을 많이 해서인지 ‘어? 생각보다 괜찮네?’ 라는 느낌이랄까. 큰 기대 없이, 다가오는 일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좋은 것들을 놓치지 않고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제법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긴 휴가를 떠나고 돌아오니 회사는 난장판. 과연 이 프로젝트가 잘 굴러갈 것인가. 아니, 그 이전에 회사의 존속이 위태로운 것은 아닐까. 싶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 너무 빠른 체념일지는 모르겠으나, 큰 틀의 결정에 있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매일을 보내는 중이다.

올해도 이제 딱 1/4 남았다. 남은 세 달 동안은 지난 두 달간 못 읽은 만큼 더 많이 읽어야지. 올해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일들을 최선을 다해 추구하며 살고 싶다.

 

다 읽은 책

  1.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오랫동안 숙제처럼 품고 있던 이 책을 신혼여행에서 다 읽었다. 기대이상이었다거나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과는 아예 다른 차원에서 기대와는 달랐다. 그리고 비로소 ‘조르바처럼 산다는 것’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비슷한듯 하면서도 아주 달랐고, 지금의 나로서는 전적으로 긍정하기는 어려운 것이었으나, 그토록 거침없는 삶과의 직면에 대해서는 역시 존경심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으면 또 다른 인상을 받지 않을까. 지금의 나로서는 깊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책이었다.
  2.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에서 짤막히 소개된 것을 읽은 뒤로부터 계속해서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자주 가는 북카페에서 팔고 있는 것을 발견해서 덥썩 집어 왔다. 산 날 조금 읽다 한참 멈춘 뒤, 역시 신혼여행에서 마저 읽었다. (사실은 조금 남아서 돌아온 뒤에까지 읽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소설이지만 군데군데 몰입을 방해하는 복잡하고 정돈되지 않은 문장들이 있었다. 그것이 작가 본인의 문체인지, 번역가의 문체인지는 내가 덴마크어를 배우지 않는 이상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스밀라는 나와는 너무 다른 종류의 사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올곧게 추구해 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 수반되는 인간적인 감정 – 공포, 슬픔, 좌절감 – 을 구태여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것들의 존재를 모두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약한 모습을 감추려 하고, 어려운 길은 피하려 드는 나와는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그래서 읽는 내내 그녀의 무운을 빌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고보니 이번 달에 다 읽은 두 권의 책 모두, 인물이 도드라지는 서사가 특징적인 소설이었다.

 

산 책

  1. 오경아, <정원생활자>
  2. 대니얼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3. 박연준, <베누스 푸디카>
  4. 황정은, <백의 그림자>
  5. 최진영,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1: 8/2, 북바이북 상암, 2-5: 9/20, 인터파크 도서

7월 셋째, 넷째 주에 읽은 책

매일 한 줄이라도 써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기 쓰기는 그래도 꾸역꾸역 2주째 이어져오고 있다. 일기에 그날 읽은 책에 대한 내용이 조금씩 들어가다 보니, 주별로 무얼 읽었는지는 오히려 기억이 희미해진다. 겹치는 내용일 수 있으나 그래도 다시 정리하는 기분으로 몇 줄 적는다. 정말 몇 달만에 무려 2주 동안 책을 사지 않았다. 올해 들어서는 최장기록이 아닐까. 인터넷 서점은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지만 오프라인 서점에는 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대신 가구점을 뺀질나게 드나들었다.) 갖고 있던 책들을 끄집어 올려 읽었고, 결론적으로는 무척 좋았다는 이야기.

 

다 읽은 책

  1. 임솔아,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 시집은 제목이 절반이다. 아니 절반 이상이다. 제목으로 잡아끌지 않으면 수백권의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도드라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확신하건대 임솔아의 시집은 제목을 잘 지어서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괴괴하다’는 말에 눈뜨게 해주었다. 앞으로 누군가가 이 형용사를 쓴다면 나는 틀림없이 임솔아를 떠올릴 것이다. 그녀가 나에게 그 말을 주었으므로. 과연 그 제목대로, 그녀의 시어들은 괴괴하고 착하다. 혹은 괴괴하지만 착하다. 아니, 괴괴함에도 불구하고 착하다. 평범하디 평범한 사건들을 바라보는 천진한 시선은 읽는 이의 영혼을 그대로 꿰뚫어본다. 면전에 거울을 들이대고 속에 꽁꽁 감추어둔 나쁜 것들을 마주하게 만든다. 이렇게 억지로라도 마주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마냥 착한 사람이라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찌를 수도 있으니까. 이 대면은 시가 가진 제법 중요한 효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임솔아의 시집은 그 역할을 무던히 해냈다.
  2. 심보선, <오늘은 잘 모르겠어>
    • 심보선의 세 번째 시집을 다 읽은 것은 아마도 지지난 주 일요일. 사고 나서 삼일 만에 다 읽어버린 셈인데, 아껴 읽은 건지 급히 읽은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로써 그의 시집 세 권을 다 읽었으나 그 세 권을 관통하는 주제나 시작법에 대해서는 운운할 수 있는 수준은 못되고, 다만 이 세 번째 시집을 다 읽고 난 뒤에 – 읽으면서도 – 한 생각은 ‘세 번째 시집이라서 할 수 있는 실험들로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시집에서 했더라면 무리수로 비칠 수도 있었을 만한 새로운 시도들이 돋보인다. 미묘한 두 영역의 경계선 위에서 두 눈을 가리고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하며 나머지 감각들로 각자의 국경을 가늠해보려는 시도들. 내가 가장 애틋하게 여기는 시인에 대해 객관적일 수 있을리가 없다. 이런 저런 이유들은 다 차치하고, 심보선이여서 좋았다. 의심의 여지 없이 앞으로도 나는 계속 그의 시를 읽을 것이다. 몇 번이고.
  3.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 이 책에 대해서는 여덟 번째 일기에서 제법 자세히 적었다.
  4.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7/30) 다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울컥 하고 뜨거운 것이 밀고 올라왔다. 끝에 다다라서는 기어코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다. 책을 덮고 나서는 계속해서 “엄청난 걸 읽어버렸다”는 생각만 들었다. 뒷표지에 있는 ‘사랑’ 이라는 말이 너무 진부해서, 도대체 이 단어를 어떻게 풀어낼 셈이냐 하는 다소 삐딱한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었는데, 너무 많이 쓰여서 닳고 닳아버린 낱말을 천진하고 올곧은 시선으로 찬찬히 해석해내는 서사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성의 밑바닥이 가감없이 드러나는 멸망의 순간에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유일하게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또 하려면, 이정도의 진중함으로 접근해야 옳다. 최진영은 그 작업을 훌륭하게 해냈고, 그 덕분에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그런 강렬한 독서를 경험했다. 위대한 이야기는 한 사람의 삶을 뒤흔들어놓을 힘을 가진다.

 

읽고 있는 책

  1. 보도 섀퍼, <돈>
  2. 서정학,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3.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외, <일의 언어>

6월 마지막주부터 7월 둘째주까지 읽은 책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고, 너무나 많은 죽음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했던 세계가 눈앞에서 펼쳐졌다. 되도록이면 보고 싶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면 영영 모르는 상태로 남아 있고 싶었다. 근래의 경험 – 아직 끝나지 않은 – 은 나에게 성장할 것을 강요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종이와 활자로 배우는 것에만 익숙한 내 앞에 억지로 드러난 세계는 위장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헛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비린내가 생생한 날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보기 좋게 가공된, 진공포장된 세계 안에서만 살아왔음을, 내가 아무리 많이 보고 듣고 읽었다 하더라도 내가 아는 것은 새끼손톱 끝의 반달무늬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디 적은 양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일은 지지부진하고, 생활은 궤도를 벗어났다. 스스로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은 몇 번을 마주해도 결코 쉬워지지 않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들은 순간순간 벌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번쩍 뜨고, 가슴을 활짝 열어야 하는 이유다.

잔뜩 의기소침해 있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오늘도 일찍 퇴근하는 길에 서점을 찾았다. 세 권을 고르고 돌아가려는 길에 우연히 벽에 붙은 광고로 심보선의 새 시집이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서점에 재고가 있어 얼른 한 권을 집어 들고, 내친 김에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 500호 기념 시집도 샀다. 그대로 돌아섰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이 뜻밖의 행운에 도무지 걷힐 것 같지 않던 마음이 순식간에 맑아졌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순간을 만날 때 행복이 가까이에 있음을 실감한다.

 

다 읽은 책

  1. 팀 하포드, 윤영삼 옮김 <메시>
    • 때로는 질서와 체계보다 무질서와 혼란에서 더 좋은 것들이 만들어진다. 익히 알려진 사례들을 잘 엮어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예로 사용했다. 특히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체계 없음과 무질서함에 스트레스 받고 있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된 책. 내가 처한 상황을 180도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깨달음을 공유하고 싶어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도 선물했다.
  2. 라이오넬 슈라이버, 송정은 옮김, <케빈에 대하여>
    • 간담이 서늘해지는 스릴러. 인간과, 악, 그리고 모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읽고 나면 마음은 착잡해지고 머리는 복잡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영화를 보지 않고 책만 읽었는데 흡인력이 대단하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와 <엄마됨을 후회함>이 동시에 떠올랐다. 이렇게 마음이 힘든 책을 두 번 읽기는 쉽지 않겠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임은 분명하다.
  3. 이영지, 조성림, <오래 쓰는 첫 살림>
    • 처음으로 내 살림을 꾸리게 되니 준비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알쏭달쏭해서, 평소 습관 대로 책부터 집어들었다. 여러 권을 들고 비교했는데 평소 나의 취향에 가깝고 살림 꾸리기 전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물론 책에 실린 조언을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내 몫이지만 나름의 기준을 세우는 데 나쁘지 않은 조력자였다.

 

읽고 있는 책

  1. 백영옥, <빨간 머리 앤이 하는 말>
  2. 하바 요시타카, 홍성민 옮김,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3. 서정학,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산 책

  1. 이규리,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선물용
  2. 우치누마 신타로, <책의 역습> *선물용
  3. 라이오넬 슈라이버, <케빈에 대하여>
  4. 하바 요시타카,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5. 앨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
  6. 팀 하포드, <메시> *선물용
  7. 이영지, 조성림, <오래 쓰는 첫 살림>
  8. 팀 하포드, <메시> *선물용
  9. 김소연, <시옷의 세계> *두 권, 선물용
  10. 제시카 트레이시, <프라이드>
  11. 토마스 핀천, <느리게 배우는 사람>
    • 김연수 <소설가의 일>에서 보고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책을 우연히 발견해서 고민 없이 집어들었다.
  12.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 번역가 김남주의 에세이, <사라지는 번역가들>에서 짤막하게 소개한 것을 보고 읽고 싶다 생각했으나 한동안 잊고 있다가 오늘 마주쳐서 구입했다. 올해 들어 조금씩 읽기 시작한 SF 소설의 다음 주자가 될 듯.
  13.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 전혀 모르는 작가지만, 뒷표지에 인쇄된 작가의 말에 쓰인 ‘사랑’이라는 진부한 단어가 오히려 궁금증을 자극했다. 게다가 믿고 읽는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니까. 이렇게 갑자기 끌려서 산 책들의 상당수가 지금 내 보물책 목록에 올라와 있다.
  14. 심보선, <오늘은 잘 모르겠어>
    •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경위는 위에 적어두었다. 내가 제일 처음으로 선물 받은 시집이자 처음으로 끝까지 읽은 시집이 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15초>이고,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선물한 시집이 심보선의 <눈앞에 없는 사람>이다. 이 시집의 문을 여는 시, <인중을 긁적거리며>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중 하나)이다. 그리고 오늘 그의 세 번째 시집을 손에 넣었다. 펼치기도 전에 가슴이 콩닥콩닥. 아껴 읽어야지.
  15. 오생근, 조연정 엮음,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
    • 나의 시집 컬렉션의 70%를 차지하는 게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이다. (그 다음은 문학동네, 그 다음은 민음사.) 500권 전권을 다 모을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나에게 시의 세계를 처음으로 알려준 시리즈라 한 번 사 보았다. 기념하기 위해서.
  • 1-2 반디앤루니스 인터넷(6/27)
  • 3-4 북티크 서교점 (7/1)
  • 5-7 교보문고 강남점 (7/2)
  • 8-10 인터파크 도서 (7/6)
  • 11-15 교보문고 광화문점 (7/14)
  • 이번에는 유난히 선물할 책을 많이 샀다. 같은 책을 여러 사람에게 선물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해준다는 것은 무척이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다. 이사갈 집은 공간이 좁아서 책을 대폭 줄여야 할 텐데, 이렇게 계속 들이기만 해서야 처분할 일이 걱정이다.

 

 

6월 1일 ~ 26일까지 읽은 책

습관을 들이기는 어렵고, 없애기는 너무 쉽다. 상반기 내내 공들여 닦은 좋은 습관들이 유월 들어 와르르 무너졌다. 몸도 바빴지만 마음은 더 바빴다. 기록하지 않고 흘려보낸 날들이 많았다. 기록하지 않으니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놓아버리면 영영 지워질 것만 같아, 아쉬운 대로 간단하게 몇 자 적는다.

다 읽은 책

  1. 존 우드, 이명혜 옮김, <히말라야 도서관>
    •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기록을 어떤 책으로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참고하기 위해 읽은 책들 중 하나. 친구가 대학교 때 인상 깊게 읽었다며 추천해주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중간중간 눈시울을 붉혀가며 읽었다.
    • 기록으로서 참고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띈다. 저자 본인이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성공으로 이끌어온 입장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개인의 주관적인 관점이 강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이 점은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기도 한 것이, 자신이 직접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어 이야기로서의 몰입감이 상당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그리고 ‘이 일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저자의 강한 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설득당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박력이다.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문장 하나, 단어 하나가 아닌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이다.
  2. 신이치 이시즈카, <블루 자이언츠> 1-4권
    • 몇 년 만에 제대로 읽은 만화책. 역시 친구의 추천으로 읽었다. 우연히 재즈를 접하고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겨 세계 최고의 재즈 뮤지션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인데, 티없이 순수한 열정이 매력적이다. 이런 류의 열정은 지켜보는 이에게도 옮겨 붙는다. 간만에 가슴을 뜨겁게 데운 독서.
  3. 데이비드 매컬로, 이중서 옮김, <너는 특별하지 않아>
    • 자주 가는 북카페의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해서 처음 몇 장을 후루룩 읽었는데, 마음에 들어서 바로 인터넷으로 구입해 출퇴근 길에 틈틈이 읽었다. 30년 경력의 고등학교 교사가 그간의 교직 생활에서 얻은 깨달음을 생생한 문체로 엮은 일종의 조언집인데, 다소 꼰대스럽다고 느낄 수 있으나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라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바로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듯한 생생한 구어체가 매력적이다. (원어를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번역에도 상당히 공을 들인 것을 알 수 있다.)
    • “너는 특별하지 않아”라는 도발적인 제목은 그대로 이 책을 꿰뚫는 주제이다. 모두가 특별하다는 오늘날의 교육 방침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결과보다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교육이 나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교훈은 그 메시지라기보다는 오히려 ‘미국도 우리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었다. 우리는 늘 헬조선을 연발하며 여기만 벗어나면 천국이 펼쳐질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사실 좁아지는 대입 관문과 생사를 건 취업 경쟁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라는(혹은 더 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벗어날 수 없는 지옥에서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결국 세상을 바꾸려면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진부하기 그지 없는 이야기로 끝을 맺지만, 어쩌면 그것이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4. 무라카미 류, <남자는 쇼핑을 좋아해> *민음북클럽 에디션
    • 민음북클럽 가입 선물로 선택한 스페셜 에디션 중 한 권. 책이 얇고 가벼워서 여행 길에 챙겨가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 읽었다. 저자도 내용도 전혀 모르는 채로 제목만 보고 선택한 책인데, 아마 정보를 더 알았더라면 아마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제목은 유치하지만 의외로 반전이 있는 책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선택을 했는데 제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책이라 실망했다. 무라카미 류는 유명한 소설가지만 왠지 내 취향에 맞지 않을 것 같아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이 책으로 입문하는 바람에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정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적어도 당분간은 또 읽을 일은 없을 듯.
  5. 김연수, <소설가의 일>
    • 이번 달에 읽은 책 중 고민할 것도 없이 단연 최고. 김연수의 재발견. 수없이 밑줄을 긋고 책장을 접어가며 읽었다. 지하철에서 킥킥거리며 웃다가 옆사람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너무 많아서 따로 적어야 마땅하다. 이렇게 평생을 사랑할 책을 한 권 얻었으니, 유월은 좋은 달이었다.

 

산 책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사기는 또 많이 샀다. 그냥 많이 산 것도 아니고, ‘더럽게’ 많이 샀다. 실은 더 많이 샀는데 기억이 안 나는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기억이 나는 대로 적는다.

  1. 데이비드 매컬로, <너는 특별하지 않아>
  2. 케리 이건, <살아요>
  3. 말콤 글래드웰, <다윗과 골리앗>
  4. 오은, <너랑 나랑 노랑>
  5. 어니스트 헤밍웨이, <깨끗하고 밝은 곳>
  6. 서정학,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7.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8. 츠즈키 쿄이치, <권외편집자>
  9.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10. 菅付雅信、『はじめての編集』(스가츠케 마사노부, <처음 만나는 편집>)
  11. REAR 39号、「アーカイヴは可能か?」(예술비평지 REAR 39호, <아카이브는 가능한가?>)
  12. 東浩紀、『ゲンロン0 : 観光客の哲学』(아즈마 히로키, <겐론0: 관광객의 철학>)
  13. よしもとばなな『下北沢について1』 (요시모토 바나나, <시모키타자와에 대하여 1>)
  14. Rethink Books、『今日の宿題』(Rethink Books, <오늘의 숙제>)
  15.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6. 팀 하포드, <메시>
  17.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외, <일의 언어>
  18.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19. <Axt> no.12, 2017 05/06

*1~4 인터넷 교보문고(6/9), 5~9 광화문 교보문고(6/9), 10~14下北沢 B&B(6/18), 15~19 광화문 교보문고(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