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2018

2018. 8. 17.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밤

박연준의 산문집,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를 다 읽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글, 무엇보다 그 안에 담긴 그녀의 삶에서 받은 영감들을 엮어 적어내려간 책이다.

박연준의 처절하리만치 아름다운 문장을 이미 잘 알고 있기에,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에 담아 두었다. 좀처럼 서점에서는 눈에 띄지 않아 인터넷으로 주문해 받아서 야금야금 읽었다.

일주일에 이틀로 줄어든 남편과 보내는 시간 가운데에서 조금씩.

그녀의 문장은 여전히 아름답고,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여전히 곧다. 이미 객관적인 판단을 불가능하게 하는, 나의 무조건적인 편애를 받고 있는 문장가.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 한 구석이 애틋해진다. 눈물을 흘리진 않아도 조금은 울고 있는 기분. 그러나 그녀의 글에는 슬픔의 힘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위로가 된다.

스스로가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밤에, 그녀의 글이 곁에 있어 다행이다.

Advertisements

7월의 독서

2018. 7. 30.

월요일

7월의 마지막 날을 향하는 밤에 겨우 마음을 잡고 기록을 남긴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서른 한 살의 7월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아이를 잃었다. 아직 얼굴을 맞댄 적도 없는데 잃어버렸다. 너무 빨리 깊이 사랑해버려서일까.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맞이한 아이를 역시나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떠나보냈다. 세상을 잃은 사람처럼 울었다. 아직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아이를, 얼굴이 채 만들어지기도 전에 떠나보냈는데도 이렇게나 슬픈데 고이 키운 자식을 잃은 사람의 슬픔은 차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전까지 알던 나의 세계가 뒤집혔다. 지금까지의 나와 완전히 달라졌는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더없이 소중한 것을 잃고 나니 역설적으로 내가 얼마나 많이 가진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 따뜻한 위로와 다정한 걱정들. 넘치는 사랑 안에서 나는 한없이 여린 아이가 되어 엉엉 울었다. 조금씩 무너진 마음이 여물어가는 것을 느꼈다. 슬퍼만 하기에는 고마워할 일이 너무 많아서 또 눈물을 쏟았다.

이 일에 비하면 다른 일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혼 후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남편과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남편이 먼 곳으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는 주말 부부를 우리가 하게 되었다. 아이를 잃은 나에게서 남편까지 빼앗아가는 운명이 가혹하게 느껴졌으나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일시적인 혼자의 삶을 즐기기로 마음 먹었다.

지난 금요일에는 차를 끌고 출근하는 길에 사고를 냈다. 반쯤 얼이 빠져 있는 상태였으니 무리도 아니다. 전날에도, 전전날에도, 곧잘 운전을 했기에 약간 방심한 틈을 타 사고가 나버렸다. 전적으로 내 잘못이기에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다. 막막한 상태에서 친절한 분이 도와주셔서 무리 없이 수습할 수 있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이런 가운데 한동안 책은 멀리하고 온종일 아무 생각 없이 넷플릭스만 보며 지냈다. 잠시라도 화면에서 눈을 떼면 무서운 생각이 머릿 속에 또아리를 틀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해야할 일을 외면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래서는 서서히 가라앉을 것만 같아, 마음을 추스르고 지난 주부터 다시 출근하고 있다. 어제는 다시 발령지로 떠나는 남편을 배웅하고 집에 가는 길에 오랜만에 서점에 들렀다. 처음에는 시들했으나 하염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책들이 있었다. 소중하게 골라 들고 집으로 와서 한장씩 넘기며 읽었다. 이제야 다시 궤도에 접어든 느낌이다.

읽은

  1. 강창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2. 요시타케 신스케, <있으려나 서점>
  3. 이현미, <엄마의 언어로 세상을 본다면>

읽고 있는

  1. 브레네 브라운,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2. 찰스 두히그, <습관의 힘>

  1. 김개미, <어이 없는 놈>
  2. 최희정, <한 그릇 집밥 다이어트 레시피>
  3. 스가쓰케 마사노부, <물욕 없는 세계>
  4. 요시타케 신스케, <있으려나 서점>
  5. 이현미, <엄마의 언어로 세계를 본다면>
  6. 모니카 드레이크 외, <작가님, 어디 살아요?>

*1: 쿠팡 도서(7/20), 2-6: 광화문 교보문고(7/29)

6월의 독서(2)

2018. 7. 4.

수요일

 

6월이 다 지나 어느새 7월. 6월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채 되지 않았는데, 내 마음과는 상관 없이 7월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생겼다.

아직까지는 와닿지 않는 사실. 언젠가는, 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태어나 처음으로 사 본 임신 테스터기의 선명한 두 줄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충격적이었지만 기뻤다. 어쩐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감당할 수 없이 소중한 것이 덜컥 생겨버려 남편도 나도 어쩔줄을 몰랐다. 춤을 추고 싶기도 하고 주저 앉아 엉엉 울고 싶기도 했다. 기쁘면서도 두려웠고, 겁이 나면서도 신났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사건이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6월에도 분명 여러 책을 사고 또 읽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희미하다.  앞으로도 나는 이 기록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동안에도 퍽 성실하진 않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이어가고 싶다. 아무리 불완전할지라도.

오늘은 출근 길에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회사로 향하던 발걸음을 그대로 병원으로 돌렸다. 아이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상태로 울면서 지하철을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이는 무사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나는 이렇게 가슴 철렁한 순간을 몇 번이나 맞이하게 되겠지. 아직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이렇게 깊이 사랑하고 또 염려할 수 있다니. 과연 임신은 놀라운 일이다.

아무튼 아이 덕에 하루 휴가를 얻고, 요즘 나에게는 하나님과도 같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루 종일 꼼짝 없이 침대에서 누워 보냈다. 책을 읽을 기운도 없어 눈만 꿈뻑거리다 자다 깨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이래서는 좀이 쑤셔 안 되겠다 싶어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왔다. 너무 격렬한 감정을 일으키는 책도, 치열하게 머리를 굴려야 하는 책도 읽고 싶지 않았다. 한참 동안 책장을 들여다보다 지난 봄 이터널 저니에서 사온 켄트 하루프의 <축복>을 꺼내들고 두어 시간에 걸쳐 끝까지 다 읽었다.

켄트 하루프의 소설은 <밤에 우리 영혼은>에 이어 두 번째다. 역시나 담담하고, 잔잔하고, 이렇다 할 기승전결 없이 삶의 한 토막을 뚝 잘라서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그 안에서 작가는 어떤 평가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진열한다. 모든 삶에는 빛도 그림자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것을, 행복이란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그런 순간들 사이에 조용히 나타났다 사라지며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성실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책을 덮은 뒤에도 그렇게 계속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다. 콜로라도의 조용한 시골 마을 홀트에서. 저마다의 고뇌와 행복을 누리며.

 

다 읽은 책

  1. 켄트 하루프, <축복>

 

조금 읽은 책

  1. 해리 덴트, <2019 부의 대 절벽>
  2.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3.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4. 스즈키 순류, <선심초심>

 

산 책

  1. 김금희, <경애의 마음>
  2.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3. 이기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4. 스즈키 순류, <선심초심>
  5.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6. 사카이 준코, <책이 너무 많아>
  7. 실비아 플라스, <실비아 플라스 동화집>
  8. 헬렌 맥도날드, <메이블 이야기>
  9. 최동민, <작가를 짓다>
  10.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1-2: 인터넷 교보문고(6/14), 3-4: 교보문고 합정(6/20), 5-7: 서울국제 도서전 마음산책 부스(6/24), 8-9: 서울국제도서전 민음사 부스(6/24), 10: 인터넷 교보문고(6/27)

37번째: 완벽한 날들

2018. 6. 29.

금요일

지난 주말 서울국제도서전의 마음산책 부스에서 사온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을 출퇴근 길에 조금씩 읽었다.

작고 여린 것들, 눈에 띄지 않아도 씩씩하게 존재하는 것들을 향한 시인의 따스한 시선이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온기를 뿜어낸다.

체온에 가까운 따뜻한 문장들. 이런 문장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퇴근 길의 나는 완벽하게 행복하다.

고맙고도 기꺼운 일이다.

6월의 독서 (1)

2018. 6. 11.

월요일

 

6월이 되었다. 6월이 된 지 벌써 열흘도 넘었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새삼스럽지만. 그사이 일 년의 반이 지나가버렸다는 게 놀랍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6월 들어 생활을 다잡으려는 새로운 시도를 몇 가지 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명상이다. 티모시 페리스가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명상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고 밝힌 것과,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명상 여행을 떠난 것의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예전 같으면 ‘흠, 그렇구먼’ 하고 넘겼을 이야기에 마음이 동한 것은 아마도 내 안의 무언가가 명상 같은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은 아닐까.

원래도 그런 성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나는 더욱이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을 신봉하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지 못한 상황에 처하다 보니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을 하다가, 어느샌가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마음밖에 없다’고 믿게 되었달까. 여하튼 5월 들어 시작한 아침 일기를 쓰는 습관과 더불어 6월부터 끊길 듯 끊기지 않고 근근히 이어 오고 있는 명상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제법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6월에도 이런저런 책들을 사고, 또 읽고 있다. 여전히 서점에 가면 정신 못차리고 양팔 가득 책을 안고 돌아오는 나지만, 거실에 가만히 앉아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고 있으면 ‘아, 저 책은 언제 읽지’ 하는 생각에 잠시 아찔해진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읽고 싶은 책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기쁘다. 삶에 대한 의욕이 떨어졌을 때 서점에 가면, 여전히 읽고 싶은 책을 한 권 발견할 정도의 의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실제로 그 책을 읽었을 때 그 안에 내 상황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스스로를 달랠 방법을 하나 알고 있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다. 나는 이 또한 독서의 무시 못할 효용이라 생각한다. 물론 내가 아직 어떤 책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좌절이나 슬픔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러고보니 올해는 별로 소설을 읽지 않았다. 최근 사는 책들도 대개는 에세이나 경제경영서, 인문학 교양서가 대다수이다. 작년에 비해 시집이 차지하는 비중도 줄었다. 가장 최근에 서점에 갔을 때에는 경제경영서가 유독 눈에 들어와 여러 권 샀다.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배제하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몇 권 씩 읽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스스로 찾아 읽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여전히 나의 취향에는 소설, 에세이류가 훨씬 잘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있는 단계이다. 가능하면 어느 것에도 문을 닫아두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싶다. 아이들을 만나면서도 드는 생각.

그건 그렇고, 내일 출근길에는 또 어떤 책을 읽을까나.

 

다 읽은 책

  1. 야마구치 요헤이, <현명한 초보 투자자>
    • 슬쩍 슬쩍 현실적인 재테크와 관련된 책들도 읽고 있다. 사실 그동안 다른 책도 몇 권 읽었는데, 몇 명 보지도 않을 개인적인 블로그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부끄러워 적지 못했다. 그러나 이 또한 나의 (독서) 생활의 중요한 일부이기에 함께 기록해나가려 한다. 물론 이론만 공부할 것이 아니라 실행이 병행되어야겠지만 말이다.
  2. 장강명, <당선 계급 합격>
    • <그믐> 이후로 오랜만에 읽은 장강명의 책. 소설은 아니고 르포르타주 형태인데, 리터에 유사한 주제로 연재를 해올 때부터 관심있게 지켜보던 터라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급하게 다 읽은 것은 방금 전에 있었던 북바이북 광화문에서 열리는 작가와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두꺼운 분량에 비해서는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가 금방 읽었다.
    • 나는 문학 공모전에 진지하게 응모할 생각도 해보지 못했고 서점에서 ㅇㅇ상 수상작이라 하는 것에도 크게 휘둘리지 않는 편이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자타공인 문학공모전의 최대 수혜자라고 불리는 장강명이 직접 이런 문제를 들고 나와, 그것도 소설도 아닌 르포의 형태로 써냈다는 점에는 꽤 충격을 받았다. 충실한 자료 조사를 토대로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엮어내어, 그것을 재미있게 읽을 만한 글로 엮어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혹자는 “그래, 그게 문제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라는 식의 딴지를 걸 수도 있겠지만, 그럴 듯한 대안이 없으면 문제도 제기하지 말라는 것도 우습다. 그리고 작가 스스로가 그런 부분을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지 않고, 이 책이 가진 한계점까지도 부러 짚어가며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 공모전의 문제가 비단 문학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시험을 통해 인재를 채용하는 ‘공채’ 시스템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책의 함의와 독자층을 훨씬 더 넓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나 역시 이런 시스템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대학 졸업 이후에는 공채 시스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전 단계의 ‘대학 입시’라는 시스템에는 철저히 순응했고 그 결과 원하던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딘가 모순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주어진 특권들을 가질 자격이 나에게 있는지 여러 번 자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대개는 ‘세간의 인정’이라는 형태로 주어지는 열매의 달콤함에 취해 있었다. 모든 시스템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아마 완벽한 시스템이란 없을 것이다. 다만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면서 점점 더 완벽하게 만들어갈 순 있다. 그를 위해서는 시스템을 수호하려는 사람과 파괴하려는 사람이 그 사이 어딘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모든 사람의 숙제다. 작가의 역할은 생각할 계기를 던져주는 것이고, 이 책에서 장강명은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냈다.

 

산 책

  1. 장강명, <당선 합격 계급>
  2. 메리 노리스, <뉴욕은 교열 중>
  3. 이소영, <식물 산책>
  4. 정상태,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
  5. 강창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6. 세스 스티븐스, <모두 거짓말을 한다>
  7. 해리 덴트, <2019 부의 대절벽>
  8. 레이 달리오, <원칙>
  9. 로잔 토마스, <태도의 품격>

*1~5: 광화문 교보문고(6/2), 6~9: 여의도 영풍문고(6/9)

5월의 독서 (2)

2018. 5. 16.

수요일

 

이번 주에 참 여러 가지 책들을 많이도 읽었다. 한 권을 꾸준히 읽지 않고, 여러 권을 돌려가며 문어발식으로 읽었다. 그래도 좋았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던 책도, 기대만큼 괜찮았던 책도, 기대보다 재미있던 책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다 소중한 독서였다.

아직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 책들을 책장에 가득 꽂아놓고서 또 새로운 책을 사들이는 마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이미 있는 것부터 다 읽고, 라고 스스로를 타이르기도 여러 번. 그러나 그 결심은 번번이 무너지고 만다. 어차피 무너질 결심임을 알기에 이제는 구태여 변명을 늘어놓지도 않는다. 책에 깔려 죽는다면 나로서는 바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죽음일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요즘 부쩍 글쓰기에 대한 책들에 관심이 간다. 원래도 관심은 있었지만, 요즘들어 더더욱 글쓰기 방법론에 대한 책들을 많이 사들이고, 또 읽고 있다. 글쓰기를 잘 하고 싶은 마음에서 읽는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개가 뛰어난 작가들인 글쓰기책 저자들의 창작론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글쓰기 방법이 있고, 개중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은 틀리다고 단언할 수 없음을 배운다. 그러면서 어찌됐든 일단 써보자는 마음을 먹게 된다. 물론 그 마음은 쉽게 일어나는 만큼 쉽게 사라지지만 말이다.

*5월 16일에 써둔 글을 묵혀두었다 이제야 펼친다. 그사이 6월이 되어버렸다. 여러 가지 책들을 조금씩 야금야금 읽었다. 5월 9일에는 참가를 고려중인 지원 사업의 설명회가 있어 선릉 쪽에 갔다 처음으로 최인아 책방에 갔다. 큰 기대 없이 들렀으나 그간의 서점 나들이에서 보지 못했던 책들도 많아 한참을 구경했다. 한두 권만 사려 했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는 이미 대여섯 권이 들려 있었다. 추리고 추려 네 권만 골라 사왔다. 글쓰기 책이 두 권, 출판 책이 한 권, 경영서적이 한 권. 마지막까지 사려고 들고 있다 내려놓은 책은 일본의 노학자가 쓴 일본인론으로 내용이 흥미로워보여 순간 혹했으나 최근의 관심사에서는 거리가 먼 책이라 사고도 오래 묵혀둘 것 같아 이번에는 사지 않기로 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다시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평소 같으면 일하고 있을 시간에 책이 있는 쾌적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

여행을 갈 때에는 종이책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빅 매직, 단 한 권만을 원서로 들고갔지만 한 번도 펼치지 않고 전자책만 읽었다. 선택지가 많아 무엇을 읽을지 고민이었으나 왜인지 마음이 가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다.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외에 SF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것은 거의 처음인 것 같다. SF 소설에 상상력이 번뜩인다는 찬사는 너무도 진부한 조합이긴 하지만, 번뜩이는 상상력이 ‘좋은’ SF 소설의 충분조건은 아닐지언정 필요조건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물론이요, 다음이 궁금해지는 이야기로도 모자람이 없다. 하나 혹은 소수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전개되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야기의 중심축이자 주인공은 몇 백 년에 걸쳐 이어지는 하나의 프로젝트이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또 다른 책들에 한참 정신이 팔려 잠시 잊혀져 있지만 전권을 다 읽고 싶은 책이다.

 

다 읽은 책

  1.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2. 츠지무라 미즈키, <아침이 온다>

 

읽고 있는 책

  1. 매튜 B. 크로포드, <손으로 생각하기>
  2. 윌리엄 진서, <공부가 되는 글쓰기>
  3. 아이작 아시모프, <파운데이션> 시리즈 (1, 2권 완독, 3권 읽는 중)

 

산 책 

  1. 팻 플린, <과연, 뜰까?>
  2. 윌리엄 진서, <공부가 되는 글쓰기>
  3. 은유, <출판하는 마음>
  4.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1~4: 최인아 책방(5/9)

츠지무라 미즈키, 아침이 온다, 2017

2018. 5. 13.

일요일

 

오늘 아침에 만난 친구가 추천해준 책을 집에 오는 길에 사서 두 시간 만에 다 읽었다. 일본 소설을 읽은 건 참 오랜만이다. 한때는 일본 소설에 푹 빠져, 일본 소설만 읽었던 시기도 있었다. 벌써 십 년도 더 된 일이다. 그뒤로도 간간이 읽었으나 어느새부터 읽지 않게 되었다. 대단한 결심을 한 것도 아니고 다만 흥미가 떨어졌을 뿐이었다. 그러다 오늘 친구의 추천을 받고 왠지 마음이 동해서, 서점을 두 군데나 들러 결국 사왔다.

소설이 지닌 여러 가치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간접 경험’이다. 생전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던 일을 별안간 내 일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렇게 버젓이 존재하는 세계를 어쩌면 그리도 까맣게 모르고 살았을까.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만큼 내가 볼 수 있는 세계가 넓어진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나의 세계를 넓히는 일이다. 내가 모르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의 삶을 잠시 대신 살아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소설을 많이 읽으면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본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해의 범위와 공감의 깊이는 넓어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다.

츠지무라 미즈키의 <아침이 온다>는 그런 소설이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그러나 코앞에 존재하던 세계를 드러내 보여주는 소설. 이전까지는 나와 무관하다 생각하던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게 해주는 소설. 그로 인해 조금쯤은 더 나은 인간에 가까워지게 만들어주는 소설 말이다.

친구를 잘 둔 덕분에 평생 몰랐을 책 한 권을 더 읽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토코와 히카리, 고노미에게 축복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