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독서 (1)

2018. 6. 11.

월요일

 

6월이 되었다. 6월이 된 지 벌써 열흘도 넘었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새삼스럽지만. 그사이 일 년의 반이 지나가버렸다는 게 놀랍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6월 들어 생활을 다잡으려는 새로운 시도를 몇 가지 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명상이다. 티모시 페리스가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명상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고 밝힌 것과,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명상 여행을 떠난 것의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예전 같으면 ‘흠, 그렇구먼’ 하고 넘겼을 이야기에 마음이 동한 것은 아마도 내 안의 무언가가 명상 같은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은 아닐까.

원래도 그런 성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나는 더욱이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을 신봉하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지 못한 상황에 처하다 보니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을 하다가, 어느샌가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마음밖에 없다’고 믿게 되었달까. 여하튼 5월 들어 시작한 아침 일기를 쓰는 습관과 더불어 6월부터 끊길 듯 끊기지 않고 근근히 이어 오고 있는 명상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제법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6월에도 이런저런 책들을 사고, 또 읽고 있다. 여전히 서점에 가면 정신 못차리고 양팔 가득 책을 안고 돌아오는 나지만, 거실에 가만히 앉아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고 있으면 ‘아, 저 책은 언제 읽지’ 하는 생각에 잠시 아찔해진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읽고 싶은 책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기쁘다. 삶에 대한 의욕이 떨어졌을 때 서점에 가면, 여전히 읽고 싶은 책을 한 권 발견할 정도의 의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실제로 그 책을 읽었을 때 그 안에 내 상황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스스로를 달랠 방법을 하나 알고 있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다. 나는 이 또한 독서의 무시 못할 효용이라 생각한다. 물론 내가 아직 어떤 책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좌절이나 슬픔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러고보니 올해는 별로 소설을 읽지 않았다. 최근 사는 책들도 대개는 에세이나 경제경영서, 인문학 교양서가 대다수이다. 작년에 비해 시집이 차지하는 비중도 줄었다. 가장 최근에 서점에 갔을 때에는 경제경영서가 유독 눈에 들어와 여러 권 샀다.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배제하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몇 권 씩 읽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스스로 찾아 읽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여전히 나의 취향에는 소설, 에세이류가 훨씬 잘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있는 단계이다. 가능하면 어느 것에도 문을 닫아두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싶다. 아이들을 만나면서도 드는 생각.

그건 그렇고, 내일 출근길에는 또 어떤 책을 읽을까나.

 

다 읽은 책

  1. 야마구치 요헤이, <현명한 초보 투자자>
    • 슬쩍 슬쩍 현실적인 재테크와 관련된 책들도 읽고 있다. 사실 그동안 다른 책도 몇 권 읽었는데, 몇 명 보지도 않을 개인적인 블로그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부끄러워 적지 못했다. 그러나 이 또한 나의 (독서) 생활의 중요한 일부이기에 함께 기록해나가려 한다. 물론 이론만 공부할 것이 아니라 실행이 병행되어야겠지만 말이다.
  2. 장강명, <당선 계급 합격>
    • <그믐> 이후로 오랜만에 읽은 장강명의 책. 소설은 아니고 르포르타주 형태인데, 리터에 유사한 주제로 연재를 해올 때부터 관심있게 지켜보던 터라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급하게 다 읽은 것은 방금 전에 있었던 북바이북 광화문에서 열리는 작가와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두꺼운 분량에 비해서는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가 금방 읽었다.
    • 나는 문학 공모전에 진지하게 응모할 생각도 해보지 못했고 서점에서 ㅇㅇ상 수상작이라 하는 것에도 크게 휘둘리지 않는 편이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자타공인 문학공모전의 최대 수혜자라고 불리는 장강명이 직접 이런 문제를 들고 나와, 그것도 소설도 아닌 르포의 형태로 써냈다는 점에는 꽤 충격을 받았다. 충실한 자료 조사를 토대로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엮어내어, 그것을 재미있게 읽을 만한 글로 엮어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혹자는 “그래, 그게 문제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라는 식의 딴지를 걸 수도 있겠지만, 그럴 듯한 대안이 없으면 문제도 제기하지 말라는 것도 우습다. 그리고 작가 스스로가 그런 부분을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지 않고, 이 책이 가진 한계점까지도 부러 짚어가며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 공모전의 문제가 비단 문학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시험을 통해 인재를 채용하는 ‘공채’ 시스템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책의 함의와 독자층을 훨씬 더 넓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나 역시 이런 시스템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대학 졸업 이후에는 공채 시스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전 단계의 ‘대학 입시’라는 시스템에는 철저히 순응했고 그 결과 원하던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딘가 모순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주어진 특권들을 가질 자격이 나에게 있는지 여러 번 자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대개는 ‘세간의 인정’이라는 형태로 주어지는 열매의 달콤함에 취해 있었다. 모든 시스템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아마 완벽한 시스템이란 없을 것이다. 다만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면서 점점 더 완벽하게 만들어갈 순 있다. 그를 위해서는 시스템을 수호하려는 사람과 파괴하려는 사람이 그 사이 어딘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모든 사람의 숙제다. 작가의 역할은 생각할 계기를 던져주는 것이고, 이 책에서 장강명은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냈다.

 

산 책

  1. 장강명, <당선 합격 계급>
  2. 메리 노리스, <뉴욕은 교열 중>
  3. 이소영, <식물 산책>
  4. 정상태,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
  5. 강창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6. 세스 스티븐스, <모두 거짓말을 한다>
  7. 해리 덴트, <2019 부의 대절벽>
  8. 레이 달리오, <원칙>
  9. 로잔 토마스, <태도의 품격>

*1~5: 광화문 교보문고(6/2), 6~9: 여의도 영풍문고(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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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독서 (2)

2018. 5. 16.

수요일

 

이번 주에 참 여러 가지 책들을 많이도 읽었다. 한 권을 꾸준히 읽지 않고, 여러 권을 돌려가며 문어발식으로 읽었다. 그래도 좋았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던 책도, 기대만큼 괜찮았던 책도, 기대보다 재미있던 책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다 소중한 독서였다.

아직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 책들을 책장에 가득 꽂아놓고서 또 새로운 책을 사들이는 마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이미 있는 것부터 다 읽고, 라고 스스로를 타이르기도 여러 번. 그러나 그 결심은 번번이 무너지고 만다. 어차피 무너질 결심임을 알기에 이제는 구태여 변명을 늘어놓지도 않는다. 책에 깔려 죽는다면 나로서는 바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죽음일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요즘 부쩍 글쓰기에 대한 책들에 관심이 간다. 원래도 관심은 있었지만, 요즘들어 더더욱 글쓰기 방법론에 대한 책들을 많이 사들이고, 또 읽고 있다. 글쓰기를 잘 하고 싶은 마음에서 읽는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개가 뛰어난 작가들인 글쓰기책 저자들의 창작론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글쓰기 방법이 있고, 개중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은 틀리다고 단언할 수 없음을 배운다. 그러면서 어찌됐든 일단 써보자는 마음을 먹게 된다. 물론 그 마음은 쉽게 일어나는 만큼 쉽게 사라지지만 말이다.

*5월 16일에 써둔 글을 묵혀두었다 이제야 펼친다. 그사이 6월이 되어버렸다. 여러 가지 책들을 조금씩 야금야금 읽었다. 5월 9일에는 참가를 고려중인 지원 사업의 설명회가 있어 선릉 쪽에 갔다 처음으로 최인아 책방에 갔다. 큰 기대 없이 들렀으나 그간의 서점 나들이에서 보지 못했던 책들도 많아 한참을 구경했다. 한두 권만 사려 했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는 이미 대여섯 권이 들려 있었다. 추리고 추려 네 권만 골라 사왔다. 글쓰기 책이 두 권, 출판 책이 한 권, 경영서적이 한 권. 마지막까지 사려고 들고 있다 내려놓은 책은 일본의 노학자가 쓴 일본인론으로 내용이 흥미로워보여 순간 혹했으나 최근의 관심사에서는 거리가 먼 책이라 사고도 오래 묵혀둘 것 같아 이번에는 사지 않기로 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다시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평소 같으면 일하고 있을 시간에 책이 있는 쾌적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

여행을 갈 때에는 종이책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빅 매직, 단 한 권만을 원서로 들고갔지만 한 번도 펼치지 않고 전자책만 읽었다. 선택지가 많아 무엇을 읽을지 고민이었으나 왜인지 마음이 가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다.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외에 SF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것은 거의 처음인 것 같다. SF 소설에 상상력이 번뜩인다는 찬사는 너무도 진부한 조합이긴 하지만, 번뜩이는 상상력이 ‘좋은’ SF 소설의 충분조건은 아닐지언정 필요조건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물론이요, 다음이 궁금해지는 이야기로도 모자람이 없다. 하나 혹은 소수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전개되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야기의 중심축이자 주인공은 몇 백 년에 걸쳐 이어지는 하나의 프로젝트이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또 다른 책들에 한참 정신이 팔려 잠시 잊혀져 있지만 전권을 다 읽고 싶은 책이다.

 

다 읽은 책

  1.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2. 츠지무라 미즈키, <아침이 온다>

 

읽고 있는 책

  1. 매튜 B. 크로포드, <손으로 생각하기>
  2. 윌리엄 진서, <공부가 되는 글쓰기>
  3. 아이작 아시모프, <파운데이션> 시리즈 (1, 2권 완독, 3권 읽는 중)

 

산 책 

  1. 팻 플린, <과연, 뜰까?>
  2. 윌리엄 진서, <공부가 되는 글쓰기>
  3. 은유, <출판하는 마음>
  4.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1~4: 최인아 책방(5/9)

츠지무라 미즈키, 아침이 온다, 2017

2018. 5. 13.

일요일

 

오늘 아침에 만난 친구가 추천해준 책을 집에 오는 길에 사서 두 시간 만에 다 읽었다. 일본 소설을 읽은 건 참 오랜만이다. 한때는 일본 소설에 푹 빠져, 일본 소설만 읽었던 시기도 있었다. 벌써 십 년도 더 된 일이다. 그뒤로도 간간이 읽었으나 어느새부터 읽지 않게 되었다. 대단한 결심을 한 것도 아니고 다만 흥미가 떨어졌을 뿐이었다. 그러다 오늘 친구의 추천을 받고 왠지 마음이 동해서, 서점을 두 군데나 들러 결국 사왔다.

소설이 지닌 여러 가치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간접 경험’이다. 생전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던 일을 별안간 내 일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렇게 버젓이 존재하는 세계를 어쩌면 그리도 까맣게 모르고 살았을까.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만큼 내가 볼 수 있는 세계가 넓어진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나의 세계를 넓히는 일이다. 내가 모르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의 삶을 잠시 대신 살아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소설을 많이 읽으면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본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해의 범위와 공감의 깊이는 넓어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다.

츠지무라 미즈키의 <아침이 온다>는 그런 소설이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그러나 코앞에 존재하던 세계를 드러내 보여주는 소설. 이전까지는 나와 무관하다 생각하던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게 해주는 소설. 그로 인해 조금쯤은 더 나은 인간에 가까워지게 만들어주는 소설 말이다.

친구를 잘 둔 덕분에 평생 몰랐을 책 한 권을 더 읽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토코와 히카리, 고노미에게 축복이 있기를.

 

5월의 독서(1)

2018. 5. 8.

화요일

 

어느새 5월이다. 이럴 수가!

시간은 늘 쏜살같이 흐른다. 그 흐름 안에서 흐느적거리고 있는 나. 전반적으로 삶에 대한 권태기인가. 이 날씨 좋은 5월에 권태기라니,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자꾸만 해야할 일들을 다 해내지 못하는 악몽을 꾼다. 산더미 같은 일들이 물리적인 무게를 가지고 나를 짓누르는 꿈을. 어떤 때는 쫓긴다. 그러다 눈을 뜨면 현실은 더 지옥이다. 꿈에서 나를 쫒던 일들 중 어느 것 하나 끝나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고, 결국은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인데. 일들이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기보다는,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다. 아마 앞으로도 해야할 일들은 꾸준히 있을 것이다. 이 일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요즘 부쩍 생산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기왕 할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아끼면서 즐겁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러나 이런 저런 책들을 뒤적여보아도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항상 긴장 상태에 있는 생활. 그나마 발레를 할 때에는 신경을 딴 데로 돌려놓을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읽는다. 어디에도 가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빼곡한 글자들 속 어딘가에 길이 있으리라 믿으며. 숨 고르기.

 

다 읽은 책

  1.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
  2. 장인성, <마케터의 일>
  3. 티모시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읽고 있는 책

  1. 리처드 플래너건, <굴드의 물고기책>
  2.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산 책

  1. 릴리쿰, <손의 모험>
  2. 문태준,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3. 장인성, <마케터의 일>
  4.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
  5. 유희경,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6. 강성은, <단지 조금 이상한>
  7. 우치다 다쓰루,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8. 가와사키 쇼헤이, <리뷰 쓰는 법>
  9. 매튜 B. 크로포드, <손으로, 생각하기>
  10. 인텔리전트 체인지, <하루 5분 아침 일기>

*1~3: 광화문 교보문고(4/26), 4~8: 광화문 교보문고(5/3), 9: 강남 신세계 반디앤루니스(5/5), 10: 여의도 영풍문고(5/7)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 2018

2018. 5. 3.

 

편혜영의 새 장편 소설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 샀다. 그리고 바로 근처 카페로 가, 한 시간 즈음 만에 다 읽었다. 본래는 함께 산 다른 책들도 둘러볼 의향으로, 잠깐 읽고 덮으려 했으나 놓을 수가 없어 계속 읽었다.

편혜영의 소설을 읽으면, 소설 쓴다는 것은 사회를 개인의 삶에 투영하는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한 사람의 인생, 한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결코 개인적일 수만은 없음을. 평범하디 평범하고 너무나 인간적인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일깨워준다.

전작 <홀> 만큼의 임팩트는 없으나 역시 편혜영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홀>보다는 <선의 법칙>을 떠올리게 하나 그보다는 훨씬 절제된 느낌. 시종일관 냉정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끝에는 의외의 온기가 남는다.

오랜만에 밀도있게 읽은 소설.

 

4월의 독서 (1/2)

 

2018. 4. 23.

월요일

 

4월도 어느덧 단 한 주를 남겨놓고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나서 회상하면 한 달에 대한 감상이 늘 비슷하다.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으나, 무사히 지나갔다.” 정도일까. 돌이켜보면 월말이 되어 무사히 지나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달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쯤이면 어차피 월말이 되면 알아서 정리가 될 터이니 쓸데없는 걱정은 말고 일을 저지르자고 생각해도 좋겠다.

4월부터 듣기 시작한 패스트캠퍼스의 강의는 오늘 저녁으로 끝이 난다. 이렇게 비싼 돈을 내고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몇 번 스스로에게도 물어보았지만 후회는 없다. 아마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하고 싶은 일들에 묻혀 마케팅이나 브랜딩에 대해 따로 시간을 투자해서 배우지 않았을 것이다. 워낙에 기초적인 내용이라 바로 실전에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실제 일할 때 마주치는 문제들에 하나하나 대입해봐야지.

4월부터 합류한 새로운 팀원은 제몫을 넘치게 잘 하고 있다. 보고만 있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 프로젝트에 부족한 것들이 많지만 인복만큼은 부족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와 성향이 놀랄 정도로 비슷하고, 이야기도 잘 통한다. 그러나 약 삼 주를 지켜보면서 내가 파악한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좋은 질문을 던질 줄 안다’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더 중요한 일들이 있어서, 등등의 핑계로 한 켠에 미뤄두었던 일들을 매의 눈으로 파악하고 거기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서 가슴이 뜨끔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도 어느새 적당히 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이 좋은 사람들과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다고 의욕을 불태우는 중이다.

그리고 부산 여행이 있었다. 만삭의 친구를 보러 간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사실은 아난티 코브에 있는 서점, ‘이터널 저니’에 가고 싶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쉬운 점을 찾으려고 맘을 먹으면 수두룩하게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책장 가득 꽂혀 있는 책들과 너른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에 무슨 불평을 더할 수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그곳에서 책만 읽고 싶었다. 숙박비는 결코 저렴하지 않았으나 아깝지 않은 소비였다.

독서면에서는 한 권을 꾸준히 읽은 한 달이었다. 지난 달 말에 구입한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Eat, Pray, Love를 느린 속도로 끝까지 읽었다. 원서로 된 책 한 권을 다 읽은 것이 얼마만인지. 번역서로 읽었더라면 훨씬 더 빨리 읽었겠지만, 오히려 천천히 읽어갈 수 있어 좋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느낌으로 한 단어 한 단어를 읽어나갔다. 그러는 동안은 마치 리즈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로마의 오래된 도서관 중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분수를 바라보고 앉아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인도의 깊은 숲 속에 위치한 힌두 사원에서 마룻바닥을 닦고 명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발리의 자기 나이가 몇 살인지도 기억을 못할 정도로 나이가 많은 주술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당장 떠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에 한없이 감사를 느끼기도 하면서, 그렇게 읽어나갔다. 언젠가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흥미롭지 않아도 좋으니 스스로에게 한없이 투명해질 수 있는. 구태여 숨기려하지 않고,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대로,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대로, 있는 내 모습 그대로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글을. 작년에 가즈오 이시구로를 읽은 것처럼 올해는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책들을 ‘원서로’ 읽어나가려 한다. 물론 이 계획은 그 사이 만나게 될 수많은 흥미로운 책들에게 방해받게 되겠지만. 그조차 즐거움이니.

 

다 읽은 책

  1. Elizabeth Gilbert, Eat, Pray, Love 

 

읽고 있는 책

  1. 한스 라트,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2. 티모시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산 책

  1. 우승우, 차상우, <창업가의 브랜딩>
  2. 지바 마사야, <공부의 철학>
  3. 김진애, <집놀이>
  4. 이토 도요 외, <이토 도요의 어린이 건축학교>
  5. 콜린 스튜어트, <열세 번의 시공간 여행>
  6.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7. 에밀리 디킨슨,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8. 켄트 하루프, <축복>
  9. 리처드 플래너건, <굴드의 물고기 책>
  10. 요코야마 류지, <트리플 미디어 전략>

*1-2: 강남 교보문고(4/9), 3-4: 인터넷 교보문고(4/12), 5-9: 이터널 저니(4/16), 10: 쿠팡(4/16)

 

3월의 독서 (2/2)

2018. 3. 27.

화요일

 

지지난 주부터 화-토 출근을 하는 나에게, 화요일은 월요일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숨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푹 쉬고 난 뒤 에너지가 가장 넘치는 날이라는 뜻이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주말 일정은 또 어찌나 빡빡하게 짜놓았는지, 쉬어도 쉬는게 아닌 주말을 보내고 녹초가 된 상태에서 쓰러져 잠들었는데 중간에 달갑지 않은 손님(=생리통)이 찾아와 새벽녘에 잠을 설치다 다섯 시가 다 되어 겨우 다시 잠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기운이 남아 있다. 아무리 기운이 남았다 한들 그대로 집에 들어가면 바로 침대와 하나가 될 것이 빤히 보이기에, 오늘은 아침부터 퇴근 길에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카페에서 머릿속 정리도 하고 밀린 일도 좀 하다 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오랜만에 종각에 내렸는데 서점에 가지 않는 것도 아쉬워서 잠깐, 정말 잠깐만 보다 나오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에는 책이 한 무더기 들려 있었고… 어느 것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결국 한보따리 사들고 나왔다. 그만금 통장 잔고는 줄었으나 마음만은 배부르다. 잔뜩 샀는데도 맘에 쏙 들어서 결제 직전까지 갔던 청바지보다 저렴한 가격이라, 어차피 나갈 돈인데 바지 대신 책을 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총 일곱 권을 샀는데 그 중 원래 사려고 했던 책이 세 권, 서점에 와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 네 권이고, 그 중 각각 두 권이 외서다. 지난 주말에 다 읽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빅 매직>이 너무 좋아서, 그녀의 베스트셀러 전작(<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과 <빅 매직>을 모두 원래 쓰인 그대로 읽어보고 싶어졌기 때문에 서점 산책을 외서 코너에서 시작한 탓이다. 그런 식으로 사두고 아직 다 읽지 않은 원서들이 선반에 수두룩하지만, 그래도 샀다. 누누이 말했듯이 나에게 책을 산다는 것은 그 책을 읽겠다는 최소한의 의지 표현이다. 책에 있어서만큼은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것을 애저녁에 포기했기 때문에, 이제는 언젠가는 반드시 읽을 거라고 스스로를 속이지도 않는다. 다만 길버트가 <빅 매직>에서 적고 있듯이 책꽂이에 얌전히 꽂혀 있다가 마술처럼 나에게 다시 발견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낭만 섞인 가능성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소비라 손가락질 당해도 할 말은 없다. 그게 사실이니까.

아직 열지 않은 책들이 주는 설렘을 대체할 수 있는 감각이 있을까. 아무리 마음에 드는 옷을 사도, 좋다고 소문이 자자한 화장품을 구입해도, 뜯기 전의 기대감은 첫 장을 열 때의 감각에는 한참을 못미친다. 그리고 그렇게 연 책에서 마음을 가득 채우는 문장을 발견했을 때의 만족감이란. 그래서 그렇게 마음이 울적하거나 복잡할 때는 어딘가에 잠자고 있을,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책들을 사냥하러 서점에 가는가보다.

돌이켜보면 물욕에 사로잡힌 3월을 보냈다. 실로 많은 것들을 사들였다. 소비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어리석다 생각하면서도 왜이리 갖고 싶은 것들이 많은지. 그러면서 책과는 다소 소원한 한 달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드물게 읽은 책들은 허전한 마음을 꽉 채워주었다.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보다는 책을 읽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눈앞의 손쉬운 오락거리를 거부하고, 굳이 번거로움을 선택하는 것이 항상 쉽지만은 않다. 결심은 몇 번이고 무너질 수 밖에 없기에 그럴 때마다 다잡아야 한다. 수없이 무너짐과 다잡음을 반복하면서 이제는 무너짐에 조금은 덜 좌절할 수 있게 되었다. 좌절할 시간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하는게 낫다. <빅 매직>에서 길버트가 이야기했듯이, “완벽주의는 두려움의 또 다른 이름”이니까.

 

다 읽은 책

  1. 엘리자베스 길버트, 박소현 옮김, <빅 매직>
    • 창조성에 대한 마술적인 해석이 더없는 해방감을 준다. 창조성이 찾아오기를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말고, 창작성이 찾아오든 말든 스스로의 창작을 꾸준히 해나갈 것. 성공과 실패는 어차피 사람 손에 달린 것이 아니니, 성공하지 않을 바에야 창작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만 두는 것이 낫다. 청조성은 성공과 실패 이전에,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즐거운 일이어야 하니까. 내 안에 숨어있는 창조성의 씨앗을 성실하게 키워나가고 싶다는 의욕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찰진 말투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번역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그녀의 원래 목소리가 궁금해져서 원서로도 구입했다.
    • 그러고보니, 민음 북클럽에서 가입 선물을 선택할 때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으면서 덜컥 선택한 이 책이 이토록 마음에 들었던 것도 어쩌면 “빅 매직”이 아니었을까!

 

요즘 듣는 팟캐스트

  1. Adam Grant’s “WorkLife”
    • 배움에 대한 의욕이 샘솟는 요즘, 그 기세를 몰아 iTunes U를 좀 찾아볼 요량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의 두 책(<기브 앤 테이크>, 그리고 셰릴 샌드버그와의 공저인 <옵션 B>)을 모두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그날 바로 첫 에피소드부터 들어보았다. 남다른 조직 문화를 가진 기업에, 조직심리학자(organizational psychologist)인 애덤 그랜트가 찾아가서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속속들이 파헤치고, 다른 조직에 적용할 수 있을 만한 요소들을 소개한다는 것이 주요 컨셉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CEO부터 말단 직원까지, 비판에 대해 활짝 열린 자세를 가진 금융 회사 BridgeWater Associates. 얼마나 열려있는가 하면, 회의가 끝난 뒤에 일개 팀원이 회사 사장에게  “이봐, 사장. 자네 오늘 회의 성적은 D- 였어. 준비 안 한게 다 티가 났다니까. 이런 모습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라고 쓴 메일을 보내고, 그 메일을 받은 CEO는 한술 더 떠서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전 직원)에게 그날 회의에서 자신의 퍼포먼스를 평가해달라는 메일을 보냈다고. 그만큼 피드백을 주고 받는 것에 자유롭다는 거겠지. 이 에피소드를 듣고 나서, 싫은 소리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어해서 정곡을 바로 찌르지 못하고 겉다리만 돌다 끝나기 일쑤인 나의 대화 습관을 전면적으로 되짚어보게 되었다.
    • 이 에피소드를 듣고 나서,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실수를 저질러서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피드백을 받았는데 역시 이 내용을 알고 있더라도 마냥 ‘쿨하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얼른 마음을 다잡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 내용도 좋고, 애덤 그랜트의 프로페셔널하면서도 능청맞은 말투가 마음에 들어서 일부러 다음 에피소드를 듣지 않고 이 첫 번째 에피소드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듣고 있다. 한 번 마음을 잡고 받아쓰기를 해보고도 싶은데, 과연? 일단은 여기 적어라도 둔다.

 

산 책

  1. Elizabeth Gilbert, Eat, Pray, Love 
  2. Elizabeth Gilbert, Big Magic
  3. Sara Midda, A Bowl of Olives 
  4. Katie Scott, Botanicum 
  5. 난다, <거의 정반대의 행복>
  6. 문소리 외, <부디 계속해주세요>
  7. 우치누마 신타로, 아야메 요시노부,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서울>
    • 작년 도쿄 여행 때 B&B에서 보고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내려놓은 이 책이 번역본으로 나왔다! 작년에 <책의 역습>을 읽은 이래로 일본에서 나온 출판 관련된 책들을 한창 읽고 사모으다가 한동안 뜸했는데 반가운 마음에 고민도 않고 집어들었다. 아껴아껴 읽어야지.

*1~7: 모두 광화문 교보문고(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