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과 12월에 사고 읽은 책

2019. 1. 1.

화요일

 

‘올해가 가기 전에는 꼭 한 번 정리를 해야지’, 마음 먹었던 것이 어느새 작년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일을 하면서도 책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이런 저런 책들을 사들였다. 그 정신 없는 와중에도 꽤 여러 권을 읽고 몇 가지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는데 온전하지는 않다. 사실 언제 무슨 책을 샀는지 기록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때때로 회의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록해두면 기억할 수 있으니까. 새해에도 이런 포맷으로 여기에 기록을 이어갈지는 모르겠으나, 밀릴 지언정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기록한 그달의 독서에 대한 기록을 이제와서 그만두고 싶지는 않아서 순전한 오기로 기록을 한다. 이미 그 사이 읽은 책들은 망각의 강을 건너가버렸다. 물론 기억을 되짚으면 그중 몇 개는 복원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 기록은 2018년의 마지막 두 달 동안 어떤 책들을 사들였는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다. 그걸 적어나가다보면, 뭔가 떠오르는 게 있을 지도 모르니까.

 

다 읽은 책 (기억나는 대로)

  1. 로저먼드 영, <소의 비밀스러운 삶>
  2. 정지혜,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3. 앤 카슨, <남편의 아름다움>
  4.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5. 야누슈 코르착,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6. 헬렌 한프, <채링크로스 84번지>
  7. 도널드 E. 밀러, <무기가 되는 스토리>
  8. 헤르만 지몬, <프라이싱>
  9. 대실 해밋, <몰타의 매>
  10. 기타무라 가오루,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
  11. 윤정용, <제가 좀 숫자에 약해서>
  12. 마이클 본드, <사랑스러운 패딩턴>

 

산 책

  1. 김금희,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2.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3. 요나, <재료의 산책>
  4. 일본하우스클리닝협회, <청소해부도감>
  5. 앤 카슨, <남편의 아름다움>
  6. Anne Carson, The Beauty of the Husband
  7. Anne Carson, Autobiography of Red 
  8. 마이클 본드, <사랑스러운 패딩턴>
  9. 에릭 오르세나, <두 해 여름>
  10. 정은숙, <편집자 분투기>
  11. 정지혜,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12. 박신영, <한 장 보고서의 정석>
  13. 페르난두 페소아, <배반의 서>
  14. 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정원>
  15. 코르네이 추콥스키,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16. 이로, <어떤 돈까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
  17. 이현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서점>
  18. 로저먼드 영, <소의 비밀스러운 삶>
  19. 이은지, <코숭이 무술>
  20. 서수영, <하필 그날이 오늘>
  21. 박지연, <초코 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22. 김지안, <감귤 기차>
  23. 요시타케 신스케, <오줌이 찔끔>
  24. 다니엘 페나크, <소설처럼>
  25. 오은, <왼손은 마음이 아파>
  26. 임승유, <그 밖의 어떤 것>
  27. 제임스 설터, <소설을 쓰고 싶다면>
  28. 라이더 캐롤, <불렛 저널>
  29. 오은, <나는 이름이 있었다>
  30. 헤르타 뮐러, <숨그네>
  31. 야누슈 코르착,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11월
  32. 지승호,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
  33. 제현주, <일하는 마음>
  34. 김민섭, <훈의 시대>
  35. Axt 2018년 11/12월 호
  36. 이문영, <웅크린 말들>
  37. 최민영, <아무튼 발레>
  38.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39.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40. 마이클 본드, <패딩턴은 못 말려>
  41. 마이클 본드, <패딩턴의 여행> //12월

 

  • 1-4: 광화문 교보문고(10/30)
  • 5: 스틸북스(11/2)
  • 6-7: Book Depository(11/8)
  • 8: 쿠팡(11/10)
  • 9-11: 스틸북스(11/14)
  • 12:북파크(11/14)
  • 13-14: 스틸북스(11/16)
  • 15: 쿠팡(11/16)
  • 16-18: 스틸북스(11/20)
  • 19-23: 영풍문고 종각점(11/24)
  • 24-29: 광화문 교보문고(11/24)
  • 30-31: 쿠팡 도서(11/26)
  • 32-34: 광화문 교보문고(12/4)
  • 35: 스틸북스(12/5)
  • 36-37: 스틸북스(12/12)
  • 38-39: 영풍문고 여의도점(12/25)
  • 40-41: 쿠팡 도서(12/25)

 

2018년에도 참 많은 책들을 사들였다. 대부분은 끝까지 읽지 못했다. 절반쯤 읽다 잊혀진 책도, 몇 페이지만 들춰보고 만 책들도 많다. 늘 내년에는 꼭 읽을 책만 사자고 다짐하지만 어차피 지키지 못할 결심이라는 걸 안다. 그럴 바에야 더 열심히 읽는 것이 낫다. 굴곡 많은 한 해를 지나면서도 좋은 책이 있어, 서점이 있어,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내년에도 많이 읽고, 더 많이 써야겠다.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2018

2018. 12. 3.

월요일

 

사적인 서점의 존재는 갓 시작할 무렵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는 않았다. 독특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퍽 멋있어 보였지만,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아서 책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쩐지 좀 쑥쓰럽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SNS와는 담을 쌓고 살다 보니 한동안 토요일마도 오픈데이가 있었다는 것도 알 턱이 없었다. 작은 서점의 친밀함을 동경하지만, 큰 서점의 익명성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나라는 사람의 한계 탓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동네 서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문을 열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나마 응원했는데, 사적인 서점 또한 영업을 마친다는 것을 풍문으로 듣고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런데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적인 서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오면서, 그것이 단순한 영업 종료가 아니라 ‘시즌 2’를 준비하기 위해 시즌 1의 막을 내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작 활발하게 영업을 할 때에는 별로 관심도 없다가 책이 나오니 호기심이 동해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만 한 채로 두어달이 그냥 흘러갔다. 그러다 지금 하는 일에도 사적인 서점이 했던 시도를 한 번 참고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서 며칠을 가방에만 넣고 다니다가, 바로 오늘, 야근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 쓴 책과 서점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무턱대고 반기는 나는, 이 책 역시 무척 즐겁게 읽었다. 2년 간의 우여곡절을 책 한 권에 담아내기 위해 압축적으로 쓰여진 글의 행간에서 그녀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과 애정을 쏟아 이 일을 해왔는지가 절절이 베어 나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 공간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중간 중간에 초록색 글씨로 들어가 있는 인용구들이 책의 흐름과 자연스레 찰떡 같이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녀가 평소에 어떤 책들을 어떻게 읽는지도 어렴풋하게 짐작이 갔다. 날림으로 훌훌 읽고는 기록도 제대로 남기지 않는 나와는 달리, 훗날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사람에게 말해줄 것을 상상하며 밑줄 그은 문장을 어딘가에 소중히 옮겨 적는 모습이 그려졌다.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는 요즘, 먼저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는 성공과 실패를 떠나 귀한 준거점이 된다.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들을 현실로 이어나가는 것은 오롯이 내 몫으로 남겠지만, 효용을 떠나 배울 점 많은 독서였다.

사적인 서점의 시즌 2가 시작되면 그땐 꼭 가봐야지. 공간이 될지, 다른 모습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로저먼드 영, 소의 비밀스러운 삶

2018. 11. 24.

토요일

 

이 책과의 인연은 제법 특별하다. 올해 여름 처음 출간되었을 무렵, 인터넷 서점의 신간 소개 코너에서 보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으나 잦은 서점 나들이에도 좀처럼 만나지 못해 한참을 잊고 있다가, 지난 10월 파주의 땅콩문고를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실물을 만났다. 서문을 살짝 읽어보니 역시나 마음에 들어서 사려고 집어 들었는데, 견본 책이 딱 한 권만 남은 상태라 아쉽게도 구입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물론 그 날도 다른 책들을 서너 권 더 사긴 했지만.) 그리고 나서 또 한참을 잊고 있었는데, 일 핑계로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땅콩문고 사장님이 올려놓은 추천 글을 보았다.

나란히 읽기 좋은 땅콩책

한 대상을 꾸준히 사랑하는 것? 할 수 있다. 그를 꾸준히 관찰하는 것? 음. 그럭저럭 할 수 있을 듯. 그것을 꾸준히 기록하는 것? 어렵다, 아무나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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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랑하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대상이 있어도, 결국 ‘꾸준히’에서 무릎을 꺾고 마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책 두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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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는 아이의 ‘말’을 사랑한 러시아의 아동문학가이자 교육자 코르네이 추콥스키가 ‘아이들의 언어 세계와 동화, 동시에 대해’ 쓴 책이다. 특히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교사, 어린이책을 쓰고 만드는 이들이 반드시 읽어봐야 할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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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비밀스러운 삶>은 소를 비롯하여 양, 돼지, 닭 등 농장의 가축을 사랑한 영국의 ‘솔개 둥지 농장’ 운영자 로저먼드 영이 쓴 책이다. 스스로를 ‘소들의 대필작가’라고 부르는 저자가 제목 그대로 ‘소들의 비밀스러운 삶’을 기록한 관찰기로, 동물과 사람의 공생, 가축과 먹거리, 자연에서 우리가 미처 읽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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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이 두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데에는 ’홍한별’이라는 번역자의 노고가 있다. 책을 읽고 저자 이름도 기억이 날까 말까 하는 내 머릿속에 ‘홍한별’이라는 이름이 박힌 데에는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라는 책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 이 책에는 언어 세계를 익히고 만들어나가는 아이들의 입말이 가득 담겨 있는데, 번역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번역서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원서의 표현을 앞에 두고 번역자가 단어 하나하나를 고심했을 것을 생각하면 아득해질 정도다. 책과 언어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해내지 못했을 일이다. <소의 비밀스러운 삶>은 짧은 내용에 비해 등장인물(농장의 소와 양 등등)이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소 가계도’를 그려 가며 읽어야 할 정도인데, 그렇게 복잡한 글이 단순 명쾌하게 읽히는 데에는 역시 번역자의 공이 크다. 앞서 소개한 두 권의 책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와 <소의 비밀스러운 삶>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더불어 책과 언어를 사랑하는 이라면, <출판하는 마음>에 실린 ‘번역자 홍한별’ 인터뷰를 꼭 챙겨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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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책 #두살에서다섯살까지 #코르네이추콥스키#소의비밀스러운삶 #로저먼드영 #홍한별 #양철북#출판하는마음 #제철소

이렇게 맛깔나게 쓴 추천사를 읽고 나니 당장 읽고 싶어져서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그날 저녁을 먹고 야근 하러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들른 지근거리의 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구입해서 서문을 읽어치웠다. (여담이지만 땅사장님이 위 글에서 함께 추천해주신 <두 살부터 다섯 살까지>는 그 다음날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바로 받았다) 몇 페이지 안 되는 서문에서도 분명하게 전달된 농장 동물들을 대하는 저자의 진한 애정은, 평소 동물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는 나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매일을 농장에서 소, 양, 돼지, 닭과 같은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저자는, 가축을 단지 수익을 내기 위한 수단이 아닌 개별적인 개성을 가진 특별한 존재로 대하며 그들의 일상을 진지하게 관찰한다. 꾸밈 없이 투박한 문장으로 쓰여진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결 같은 애정으로 그들을 대해온 저자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그리고 한 편으로, 나는 누군가를 이마만한 애정과 관심으로 지켜본 적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땅콩문고 사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누군가를 꾸준히 사랑하는 것은 할 수 있어도(물론 그조차도 쉽지 않지만), 그 사랑하는 대상을 꾸준히 관찰하고 또 기록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니까.

로저먼드 영의 이야기는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생명이 있는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훨씬 더 보편적이고 넓은 범위에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교훈을 조만간 내가 새로운 공간에서 만나게 될 크고 작은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읽었다.

차영아 작가의 <오, 미지의 택배>나 최근에 읽은 이기호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처럼, 다 읽고 나면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착한” 책이다. 게다가 재미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 왠지 마음을 곱게 써야 할 것 같은 연말도 다가오니 말이다.

우리는 다른 종의 지능을 대개 사람 기준으로 판단하려 든다. 과연 인간의 기준이 다른 종에게 의미가 있을까? 동물에게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느낄 무한한 능력이 있고, 이런 감정은 동물 나름의 관점에서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젖소의 지능이 젖소로서 잘 사는 데에 충분하다면,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14쪽)

 

어린아이를 뒷바라지할 때 보살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처럼 송아지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다. 어린아이에게는 따뜻하고 안락하며 안정적인 환경이 중요하다. 좋은 옷과 신발, 먹을 것과 마실 것, 재미있는 놀잇거리, 또래 친구,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끌어 주고 사랑해 줄 어른이 필요하다. 방치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지내는 아이가 균형 잡힌 어른으로 자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농장 가축에게도 마찬가지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먹이의 질과 전체 환경이 앞으로 그 동물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를 결정한다. (31쪽)

 

+) 참고로 이 책과의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준 땅콩문고는 이번 달 말로 영업을 종료한다고 한다. 딱 한 번 가보았을 뿐이지만, 동네에서 사랑을 듬뿍 받는 서점이라는 게 느껴져서 늘 응원하고 있었는데 무척 안타깝다. 땅콩 사장님의 책 추천을 더 받지 못하는 것도 아쉽고. 꽤나 이름을 날리던 작은 서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 게으름에 자주 다니지 못하고 맨날 큰 서점에서나 책을 사는 내가 과연 안타까워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너무 사랑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책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분들이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는 토양이 한시 빨리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부터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지만 말고, 뭐라도 해야지.

10월의 독서

2018. 10. 28.

일요일

 

내 생에 이렇게 본격적으로 알차게 놀아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꽉꽉 채워 보낸 10월도 어느새 끝을 향해 달려간다. 책도 많이 읽고(사고), 영화도 많이 보고, 전시도 보고, 공연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하여간 이곳저곳을 많이 쏘다녔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니 뭘 해도 좋았다. 몸도 마음도 함께 살찌우는 충만한 가을이었다. 돌아보니 정말 좋은 일들이 많았다. 몇 년 뒤에도 이 10월을 참 아름답게 기억하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놀아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순간에 좋은 기회가 있어 11월부터는 다시 새로운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전에 하던 일과 연속선상에 있으면서도 또 제반 조건들은 완전히 달라서 나로서도 큰 도전이 될 것 같다. 그래도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크다. 이전 프로젝트를 하면서 아쉬웠던 점들을 극복해나가며 일하고 싶다. 이전 직장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을 잘 가꾸어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이 많아서 이런 저런 것들을 많이 읽기도 읽고 사기도 샀는데, 문제는 그때그때 기록을 안 해두었더니 기억이 벌써 까마득하다는 것. 다행히 무엇을 샀는지는 그때그때 적어두었는데, 야금야금 읽은 책들은 어느새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들도 많다. 여전히 여러 가지를 조금씩 읽어가며, 언젠가 읽고 싶은 책들을 착실히 사모으고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정말 행복했던 한 달.

 

다 읽은 책 

  1. 배리 슈워츠, <우리는 왜 일하는가>
    • 우리 사회는 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리고 일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자신의 일(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은 온전히 개인에게만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가 일을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일’을 바라보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관점이 돋보이는 책.
  2. 오스틴 라이트, <토니와 수잔>
    • 책 속의 책에서 그리는 끔찍한 이야기보다, 책 속의 책을 읽는 독서의 경험에 더 간담이 서늘해진다. 만만치 않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만드는 잘 짜여진 이야기. 오랜만에 책 속에 아주 푹 잠겨 읽었다.
  3. 히라노 게이치로, <마티네의 끝에서>
    • 전자책으로 더듬더듬 읽어나간 책.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나서 읽는 도중에 책을 내팽겨친 건 또 처음이다. ‘고구마 백 개 먹은 듯한 기분’을 아주 제대로 선사해 주었다. 그러나 결국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며칠 뒤 다시 손에 들었다. 서사보다는 묘사에 주목해서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 선율을 묘사하는 작가의 문장력이 압권이다. 더불어 그의 박식함에도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물론, 중간에 답답한 구석이야 있었지만 이야기로서도 결코 낙제점은 아니다. 다만 이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내가 아직 미성숙한 것일뿐.
  4. 이기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읽고 있는 책

  1.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2. 토니 셰이, <딜리버링 해피니스>
  3. 요시이 시노부, <잘 지내나요? 도쿄 책방>
  4. 다와다 요코, <여행하는 말들>
  5. 일라나 쿠르샨, <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
  6. 테리 이글턴, <인생의 의미>
  7.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8. 최형욱, <버닝맨, 혁신을 실험하다>
  9. 문희언, <앞으로의 1인 출판사>
  10. 타라 브랙, <받아들임>

 

산 책 

  1.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읽거나 말거나>
  2. 요시이 시노부, <잘 지내나요? 도쿄 책방>
  3. 오스틴 라이트, <토니와 수잔>
  4. 홍성란, <채식은 어렵지만, 채소 습관>
  5. 장강명, <팔과 다리의 가격>
  6. 최형욱, <버닝맨, 혁신을 실험하다>
  7.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신기한 식물일기>
  8. 장강명, <노라>
  9. 일라나 쿠르샨, <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
  10. 루스 크라우스/모리스 샌닥, <구멍은 파는 것>
  11. 앨런 존슨, <사회학 공부의 기초>
  12. 다와다 요코, <여행하는 말들>
  13. 말랄라 유사프자이/크리스티나 램, <나는 말랄라>
  14.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모네의 정원에서>
  15. 나카에 요시오/우에노 노리코, <그건 내 조끼야>
  16. 김소연, <i에게>
  17. 유진목, <식물원>
  18. 사이토 마리코, <단 하나의 눈송이>
  19. 레일라 슬리마니, <그녀, 아델>
  20. 조경란, <소설가의 사물>
  21. 브로드컬리 매거진,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
  22. 임소라, <도서관람>
  23. 문희언, <앞으로의 1인 출판사>
  24. 홍주의, <책 속의 유럽 아트북 페어>
  25. 체조 스튜디오, <사물함 2호>

*1-2: 땡스북스(9/27), 3-6: 교보문고 합정점(9/27), 7: 반디앤루니스 온라인(9/30), 8: 카카오메이커스(10/2), 9: 교보문고 광화문점(10/4), 10-12: 땅콩문고(10/5), 13-15: YES24 @f1963(10/9), 16-17: 손목서가(10/10), 18-20: 교보문고 광화문점(10/15), 21-25: 언리미티드 에디션(10/21)

 

이기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2018

2018. 10. 28.

일요일

다친 발목을 핑계로 하루 종일 누워서 뒹굴거리던 날, 사놓고 오래 묵혀두었던 이 책을 꺼내 단숨에 읽었다.

피식 웃기도 하다가,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절망에 가까운 탄식을 내뱉기도 하면서.

좋은 소설가는 뭇사람들이 늘상 겪으면서도 감지하지 못하는 세밀한 감정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찬찬히 관찰해서 그것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해 낸다. 그래서 그런 소설을 읽고 나면, 독자는 그 소설을 읽기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몰랐던 세계를 하나 더 알게 되었으므로. 혹은, 알아버렸으므로.

이기호의 글은 꾸밈이 없고 진솔하다. 무엇보다 글에서 느껴지는 작가 스스로의 부끄러움이 읽는 이로 하여금 연민과 연대를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나면 얼마간의 부끄러움과 함께,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는 사람이.

충만한 독서였다. 읽고 나니 이기호의 다른 소설들도 하나하나 읽어나가고 싶어졌다.

8월, 그리고 9월의 독서

2018. 9. 26.

수요일

 

여기저기에 조금씩 기록을 남기고는 있으나, 왜인지 여기에는 쓰려면 꽤 큰 맘을 먹어야 해서 자꾸만 기록이 게을러진다. 어차피 보는 이도 없으니 좀 더 편하게 올려도 좋으련만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앉으면 그간 있었던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글을 하나 쓸 때마다 커다란 사건이 하나씩은 지나간 다음인 것만 같은 기분.

8월 꼬박, 그리고 9월을 거의 다 보낸 지금. 많은 책을 읽고 또 사는 사이에 나의 삶에는 또 한 번의 큰 변화가 있었다.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꼬박 2년 가까이, 온 마음을 써서 해온 일인데 이렇게 쉽게 놓아버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진부한 말이지만 그간 최선을 다해왔기에 후회는 없다. 물론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아쉬움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이 있었다. 더 멋지게, 더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일들이. 어떻게든 남아서 더 해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드미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런 순간들 사이의 간격이 점점 좁아졌다. 동료들을 보고 버텼으나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서로가 서로를 위해 버티고 있었다. 그 외에는 더 남아 있어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채로. 그 뒤의 결정은 쉬웠다. 한 명도 남겨두지 않고 함께 떠나기로 했으니까. 이 결정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감정적으로는 옳은 결정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미 돌이킬 수 없어진 이상, 옳다고 믿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는 보여주어야 한다. 그 결정이 옳았음을. 말로 핑계를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게 스스로에게 책임을 다 하는 일이라 믿는다.

일을 하면서 느낀 것과 배운 것에 대해서는 너무 멀지 않은 시일 내에 한 번 글로 정리하고 싶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괴로운 시간들 속에서 매달리듯 책을 읽었다. 오래 전에 친구가 선물해준 <하워드의 선물>이 큰 도움이 되었다. 전환점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깊었지만, 사실 내 마음이 가장 오래 머문 것은 조직 문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내가 머물고 싶은 조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이 조직이 왜 이렇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여전히 너무나 신뢰하고 존경하는 동료들임에도 우리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리더십에 대해. 시스템에 대해. 팀워크에 대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상위의 개념인 조직의 ‘문화’에 대해. 좋은 책은 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던짐으로써 읽는 이에게 깨달음을 준다. 손이 닿는 곳에 적절한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이 책이 너무 고마워서, 함께 일을 그만두게 된 동료 두 명에게도 선물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필요할 때에 이 책이 그들에게 적절한 질문을 던져주기를 바라면서.

그 외에도 이런저런 책들을 많이 읽긴 읽었는데, 기억이 희미하다. 조금씩 떼어 읽었다. 전자책도 많이 읽었다. 한 권을 진득하게 읽지 않고 이책 저책을 오가며 읽었다. 결혼 한 뒤 거의 처음으로 친정에서 며칠을 지내며 그곳에 두고온 책들도 다시 꺼내어 읽었다. 새로운 책도 많이 샀다. 언제 어디서 샀는지 기억이 희미할 만큼.

이런 식으로 책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어 한동안 기록을 멀리했다. 이 목적성 없는 기록에 대한 회의는 앞으로도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록을 위한 기록’에도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이 짧은 글에 두 번이나 쓰기에 ‘믿는다’는 동사는 너무 무거운 것 같긴 하지만) 그렇기에 기간이 좀 들쭉날쭉 할지라도, 내용에 두서가 없을지라도 이 기록은 계속 이어가보려 한다. 그게 뭐가 되었던 간에.

 

산 책 

  1. 아툴 가완디, <어떻게 일할 것인가>
  2. 오에 겐자부로, <말의 정의>
  3. 황현산,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4. 다카노 조센, <교황에게 쌀을 먹인 남자>
  5. 장석주,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6. 이아림,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7. 닉 러브그로브, <스워브: 나를 계속 넓히며 일하는 사람들의 6가지 비밀>
  8. 진 트웬지, <i세대>
  9. 타라 브랙, <받아들임>
  10. 미히르 데사이, <금융의 모험>
  11.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12. 토니 셰이, <딜리버링 해피니스>
  13.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14. 앤 스콧, <오래된 빛: 나만의 서점>
  15. 베리 슈워츠, <우리는 왜 일하는가>
  16. 맥스위니스 편집부, <왜 책을 만드는가>
  17. 플로랑스 비나이, <몸을 씁니다>
  18. 전혜린, <목마른 계절>
  19. 매거진 B <츠타야>
  20. 매거진 B <몰스킨>

 

*1-4: 광화문 교보문고(8/15), 5: 영풍문고 홍대점(8/22), 6-7:영풍문고 종각종로점(8/27), 8-10: 광화문 교보문고(8/31),  11: 인터넷 교보문고(9/14), 12-13: 인터넷 교보문고(9/18), 14-20: 스틸북스(9/26)

스워브: 나를 계속 넓히며 일하는 사람들의 6가지 비밀, 2018

2018. 8. 31.

금요일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극에 치달은 요즘, 평소처럼 인터넷 서점을 드나들다 우연히 마주친 이 책이 나의 흥미를 사로잡았다.

한 번 살펴나 볼 요량으로 월요일의 서점 나들이 때 책을 펼쳤는데 앉은 자리에서 100페이지 가량 읽고서는 사기로 결심했다.

한 분야에 대해 정통한 전문가가 숭배받는 세상에서,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마당발들에 대한 변론서이자 일종의 도전장인 이 책은, 넓이냐 깊이냐의 기로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고민에 빠진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기를 자청한다.

책에 실린 사례들이 다소 편향적(대다수가 미국의 기업가 혹은 정부 관료로 일한 경험이 있다)이라는 점은 아쉽지만, 번역서에서 제목에 내세운 “6가지 비밀”에 해당하는 도덕적 나침반/지식의 중심축/응용 가능한 능력/상황지능/인적 네트워크/준비된 마음 은 다음 단계를 결정할 때 고려할 만한 유의미한 지표로 활용하기에 충분하다.

내 나름의 질문을 가지고 책을 읽었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적으로 얻지는 못했으나 내 안의 답을 찾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되었다.

커리어를 중심으로 서술된 앞의 두 파트보다는, 커리어를 포함한 인생의 전반을 어떻게 보다 더 충만하게 꾸려나갈 것인가를 다루는 세 번째 파트가 훨씬 매력적이다.

반드시 읽어봐야 할 필독서라 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시간 낭비는 아니었던, 지금의 내 상황에서는 퍽 유용한 독서였다.

박연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2018

2018. 8. 17.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밤

박연준의 산문집,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를 다 읽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글, 무엇보다 그 안에 담긴 그녀의 삶에서 받은 영감들을 엮어 적어내려간 책이다.

박연준의 처절하리만치 아름다운 문장을 이미 잘 알고 있기에,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에 담아 두었다. 좀처럼 서점에서는 눈에 띄지 않아 인터넷으로 주문해 받아서 야금야금 읽었다.

일주일에 이틀로 줄어든 남편과 보내는 시간 가운데에서 조금씩.

그녀의 문장은 여전히 아름답고,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여전히 곧다. 이미 객관적인 판단을 불가능하게 하는, 나의 무조건적인 편애를 받고 있는 문장가.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 한 구석이 애틋해진다. 눈물을 흘리진 않아도 조금은 울고 있는 기분. 그러나 그녀의 글에는 슬픔의 힘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위로가 된다.

스스로가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밤에, 그녀의 글이 곁에 있어 다행이다.

7월의 독서

2018. 7. 30.

월요일

7월의 마지막 날을 향하는 밤에 겨우 마음을 잡고 기록을 남긴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서른 한 살의 7월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아이를 잃었다. 아직 얼굴을 맞댄 적도 없는데 잃어버렸다. 너무 빨리 깊이 사랑해버려서일까.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맞이한 아이를 역시나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떠나보냈다. 세상을 잃은 사람처럼 울었다. 아직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아이를, 얼굴이 채 만들어지기도 전에 떠나보냈는데도 이렇게나 슬픈데 고이 키운 자식을 잃은 사람의 슬픔은 차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전까지 알던 나의 세계가 뒤집혔다. 지금까지의 나와 완전히 달라졌는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더없이 소중한 것을 잃고 나니 역설적으로 내가 얼마나 많이 가진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 따뜻한 위로와 다정한 걱정들. 넘치는 사랑 안에서 나는 한없이 여린 아이가 되어 엉엉 울었다. 조금씩 무너진 마음이 여물어가는 것을 느꼈다. 슬퍼만 하기에는 고마워할 일이 너무 많아서 또 눈물을 쏟았다.

이 일에 비하면 다른 일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혼 후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남편과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남편이 먼 곳으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는 주말 부부를 우리가 하게 되었다. 아이를 잃은 나에게서 남편까지 빼앗아가는 운명이 가혹하게 느껴졌으나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일시적인 혼자의 삶을 즐기기로 마음 먹었다.

지난 금요일에는 차를 끌고 출근하는 길에 사고를 냈다. 반쯤 얼이 빠져 있는 상태였으니 무리도 아니다. 전날에도, 전전날에도, 곧잘 운전을 했기에 약간 방심한 틈을 타 사고가 나버렸다. 전적으로 내 잘못이기에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다. 막막한 상태에서 친절한 분이 도와주셔서 무리 없이 수습할 수 있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이런 가운데 한동안 책은 멀리하고 온종일 아무 생각 없이 넷플릭스만 보며 지냈다. 잠시라도 화면에서 눈을 떼면 무서운 생각이 머릿 속에 또아리를 틀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해야할 일을 외면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래서는 서서히 가라앉을 것만 같아, 마음을 추스르고 지난 주부터 다시 출근하고 있다. 어제는 다시 발령지로 떠나는 남편을 배웅하고 집에 가는 길에 오랜만에 서점에 들렀다. 처음에는 시들했으나 하염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책들이 있었다. 소중하게 골라 들고 집으로 와서 한장씩 넘기며 읽었다. 이제야 다시 궤도에 접어든 느낌이다.

읽은

  1. 강창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2. 요시타케 신스케, <있으려나 서점>
  3. 이현미, <엄마의 언어로 세상을 본다면>

읽고 있는

  1. 브레네 브라운,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2. 찰스 두히그, <습관의 힘>

  1. 김개미, <어이 없는 놈>
  2. 최희정, <한 그릇 집밥 다이어트 레시피>
  3. 스가쓰케 마사노부, <물욕 없는 세계>
  4. 요시타케 신스케, <있으려나 서점>
  5. 이현미, <엄마의 언어로 세계를 본다면>
  6. 모니카 드레이크 외, <작가님, 어디 살아요?>

*1: 쿠팡 도서(7/20), 2-6: 광화문 교보문고(7/29)

6월의 독서(2)

2018. 7. 4.

수요일

 

6월이 다 지나 어느새 7월. 6월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채 되지 않았는데, 내 마음과는 상관 없이 7월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생겼다.

아직까지는 와닿지 않는 사실. 언젠가는, 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태어나 처음으로 사 본 임신 테스터기의 선명한 두 줄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충격적이었지만 기뻤다. 어쩐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감당할 수 없이 소중한 것이 덜컥 생겨버려 남편도 나도 어쩔줄을 몰랐다. 춤을 추고 싶기도 하고 주저 앉아 엉엉 울고 싶기도 했다. 기쁘면서도 두려웠고, 겁이 나면서도 신났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사건이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6월에도 분명 여러 책을 사고 또 읽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희미하다.  앞으로도 나는 이 기록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동안에도 퍽 성실하진 않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이어가고 싶다. 아무리 불완전할지라도.

오늘은 출근 길에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회사로 향하던 발걸음을 그대로 병원으로 돌렸다. 아이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상태로 울면서 지하철을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이는 무사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나는 이렇게 가슴 철렁한 순간을 몇 번이나 맞이하게 되겠지. 아직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이렇게 깊이 사랑하고 또 염려할 수 있다니. 과연 임신은 놀라운 일이다.

아무튼 아이 덕에 하루 휴가를 얻고, 요즘 나에게는 하나님과도 같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루 종일 꼼짝 없이 침대에서 누워 보냈다. 책을 읽을 기운도 없어 눈만 꿈뻑거리다 자다 깨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이래서는 좀이 쑤셔 안 되겠다 싶어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왔다. 너무 격렬한 감정을 일으키는 책도, 치열하게 머리를 굴려야 하는 책도 읽고 싶지 않았다. 한참 동안 책장을 들여다보다 지난 봄 이터널 저니에서 사온 켄트 하루프의 <축복>을 꺼내들고 두어 시간에 걸쳐 끝까지 다 읽었다.

켄트 하루프의 소설은 <밤에 우리 영혼은>에 이어 두 번째다. 역시나 담담하고, 잔잔하고, 이렇다 할 기승전결 없이 삶의 한 토막을 뚝 잘라서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그 안에서 작가는 어떤 평가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진열한다. 모든 삶에는 빛도 그림자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것을, 행복이란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그런 순간들 사이에 조용히 나타났다 사라지며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성실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책을 덮은 뒤에도 그렇게 계속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다. 콜로라도의 조용한 시골 마을 홀트에서. 저마다의 고뇌와 행복을 누리며.

 

다 읽은 책

  1. 켄트 하루프, <축복>

 

조금 읽은 책

  1. 해리 덴트, <2019 부의 대 절벽>
  2.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3.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4. 스즈키 순류, <선심초심>

 

산 책

  1. 김금희, <경애의 마음>
  2.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3. 이기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4. 스즈키 순류, <선심초심>
  5.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6. 사카이 준코, <책이 너무 많아>
  7. 실비아 플라스, <실비아 플라스 동화집>
  8. 헬렌 맥도날드, <메이블 이야기>
  9. 최동민, <작가를 짓다>
  10.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1-2: 인터넷 교보문고(6/14), 3-4: 교보문고 합정(6/20), 5-7: 서울국제 도서전 마음산책 부스(6/24), 8-9: 서울국제도서전 민음사 부스(6/24), 10: 인터넷 교보문고(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