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마지막주부터 7월 둘째주까지 읽은 책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고, 너무나 많은 죽음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했던 세계가 눈앞에서 펼쳐졌다. 되도록이면 보고 싶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면 영영 모르는 상태로 남아 있고 싶었다. 근래의 경험 – 아직 끝나지 않은 – 은 나에게 성장할 것을 강요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종이와 활자로 배우는 것에만 익숙한 내 앞에 억지로 드러난 세계는 위장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헛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비린내가 생생한 날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보기 좋게 가공된, 진공포장된 세계 안에서만 살아왔음을, 내가 아무리 많이 보고 듣고 읽었다 하더라도 내가 아는 것은 새끼손톱 끝의 반달무늬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디 적은 양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일은 지지부진하고, 생활은 궤도를 벗어났다. 스스로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은 몇 번을 마주해도 결코 쉬워지지 않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들은 순간순간 벌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번쩍 뜨고, 가슴을 활짝 열어야 하는 이유다.

잔뜩 의기소침해 있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오늘도 일찍 퇴근하는 길에 서점을 찾았다. 세 권을 고르고 돌아가려는 길에 우연히 벽에 붙은 광고로 심보선의 새 시집이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서점에 재고가 있어 얼른 한 권을 집어 들고, 내친 김에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 500호 기념 시집도 샀다. 그대로 돌아섰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이 뜻밖의 행운에 도무지 걷힐 것 같지 않던 마음이 순식간에 맑아졌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순간을 만날 때 행복이 가까이에 있음을 실감한다.

 

다 읽은 책

  1. 팀 하포드, 윤영삼 옮김 <메시>
    • 때로는 질서와 체계보다 무질서와 혼란에서 더 좋은 것들이 만들어진다. 익히 알려진 사례들을 잘 엮어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예로 사용했다. 특히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체계 없음과 무질서함에 스트레스 받고 있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된 책. 내가 처한 상황을 180도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깨달음을 공유하고 싶어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도 선물했다.
  2. 라이오넬 슈라이버, 송정은 옮김, <케빈에 대하여>
    • 간담이 서늘해지는 스릴러. 인간과, 악, 그리고 모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읽고 나면 마음은 착잡해지고 머리는 복잡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영화를 보지 않고 책만 읽었는데 흡인력이 대단하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와 <엄마됨을 후회함>이 동시에 떠올랐다. 이렇게 마음이 힘든 책을 두 번 읽기는 쉽지 않겠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임은 분명하다.
  3. 이영지, 조성림, <오래 쓰는 첫 살림>
    • 처음으로 내 살림을 꾸리게 되니 준비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알쏭달쏭해서, 평소 습관 대로 책부터 집어들었다. 여러 권을 들고 비교했는데 평소 나의 취향에 가깝고 살림 꾸리기 전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물론 책에 실린 조언을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내 몫이지만 나름의 기준을 세우는 데 나쁘지 않은 조력자였다.

 

읽고 있는 책

  1. 백영옥, <빨간 머리 앤이 하는 말>
  2. 하바 요시타카, 홍성민 옮김,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3. 서정학,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산 책

  1. 이규리,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선물용
  2. 우치누마 신타로, <책의 역습> *선물용
  3. 라이오넬 슈라이버, <케빈에 대하여>
  4. 하바 요시타카,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5. 앨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
  6. 팀 하포드, <메시> *선물용
  7. 이영지, 조성림, <오래 쓰는 첫 살림>
  8. 팀 하포드, <메시> *선물용
  9. 김소연, <시옷의 세계> *두 권, 선물용
  10. 제시카 트레이시, <프라이드>
  11. 토마스 핀천, <느리게 배우는 사람>
    • 김연수 <소설가의 일>에서 보고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책을 우연히 발견해서 고민 없이 집어들었다.
  12.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 번역가 김남주의 에세이, <사라지는 번역가들>에서 짤막하게 소개한 것을 보고 읽고 싶다 생각했으나 한동안 잊고 있다가 오늘 마주쳐서 구입했다. 올해 들어 조금씩 읽기 시작한 SF 소설의 다음 주자가 될 듯.
  13.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 전혀 모르는 작가지만, 뒷표지에 인쇄된 작가의 말에 쓰인 ‘사랑’이라는 진부한 단어가 오히려 궁금증을 자극했다. 게다가 믿고 읽는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니까. 이렇게 갑자기 끌려서 산 책들의 상당수가 지금 내 보물책 목록에 올라와 있다.
  14. 심보선, <오늘은 잘 모르겠어>
    •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경위는 위에 적어두었다. 내가 제일 처음으로 선물 받은 시집이자 처음으로 끝까지 읽은 시집이 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15초>이고,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선물한 시집이 심보선의 <눈앞에 없는 사람>이다. 이 시집의 문을 여는 시, <인중을 긁적거리며>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중 하나)이다. 그리고 오늘 그의 세 번째 시집을 손에 넣었다. 펼치기도 전에 가슴이 콩닥콩닥. 아껴 읽어야지.
  15. 오생근, 조연정 엮음,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
    • 나의 시집 컬렉션의 70%를 차지하는 게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이다. (그 다음은 문학동네, 그 다음은 민음사.) 500권 전권을 다 모을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나에게 시의 세계를 처음으로 알려준 시리즈라 한 번 사 보았다. 기념하기 위해서.
  • 1-2 반디앤루니스 인터넷(6/27)
  • 3-4 북티크 서교점 (7/1)
  • 5-7 교보문고 강남점 (7/2)
  • 8-10 인터파크 도서 (7/6)
  • 11-15 교보문고 광화문점 (7/14)
  • 이번에는 유난히 선물할 책을 많이 샀다. 같은 책을 여러 사람에게 선물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해준다는 것은 무척이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다. 이사갈 집은 공간이 좁아서 책을 대폭 줄여야 할 텐데, 이렇게 계속 들이기만 해서야 처분할 일이 걱정이다.

 

 

6월 1일 ~ 26일까지 읽은 책

습관을 들이기는 어렵고, 없애기는 너무 쉽다. 상반기 내내 공들여 닦은 좋은 습관들이 유월 들어 와르르 무너졌다. 몸도 바빴지만 마음은 더 바빴다. 기록하지 않고 흘려보낸 날들이 많았다. 기록하지 않으니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놓아버리면 영영 지워질 것만 같아, 아쉬운 대로 간단하게 몇 자 적는다.

다 읽은 책

  1. 존 우드, 이명혜 옮김, <히말라야 도서관>
    •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기록을 어떤 책으로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참고하기 위해 읽은 책들 중 하나. 친구가 대학교 때 인상 깊게 읽었다며 추천해주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중간중간 눈시울을 붉혀가며 읽었다.
    • 기록으로서 참고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띈다. 저자 본인이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성공으로 이끌어온 입장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개인의 주관적인 관점이 강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이 점은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기도 한 것이, 자신이 직접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어 이야기로서의 몰입감이 상당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그리고 ‘이 일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저자의 강한 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설득당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박력이다.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문장 하나, 단어 하나가 아닌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이다.
  2. 신이치 이시즈카, <블루 자이언츠> 1-4권
    • 몇 년 만에 제대로 읽은 만화책. 역시 친구의 추천으로 읽었다. 우연히 재즈를 접하고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겨 세계 최고의 재즈 뮤지션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인데, 티없이 순수한 열정이 매력적이다. 이런 류의 열정은 지켜보는 이에게도 옮겨 붙는다. 간만에 가슴을 뜨겁게 데운 독서.
  3. 데이비드 매컬로, 이중서 옮김, <너는 특별하지 않아>
    • 자주 가는 북카페의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해서 처음 몇 장을 후루룩 읽었는데, 마음에 들어서 바로 인터넷으로 구입해 출퇴근 길에 틈틈이 읽었다. 30년 경력의 고등학교 교사가 그간의 교직 생활에서 얻은 깨달음을 생생한 문체로 엮은 일종의 조언집인데, 다소 꼰대스럽다고 느낄 수 있으나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라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바로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듯한 생생한 구어체가 매력적이다. (원어를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번역에도 상당히 공을 들인 것을 알 수 있다.)
    • “너는 특별하지 않아”라는 도발적인 제목은 그대로 이 책을 꿰뚫는 주제이다. 모두가 특별하다는 오늘날의 교육 방침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결과보다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교육이 나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교훈은 그 메시지라기보다는 오히려 ‘미국도 우리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었다. 우리는 늘 헬조선을 연발하며 여기만 벗어나면 천국이 펼쳐질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사실 좁아지는 대입 관문과 생사를 건 취업 경쟁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라는(혹은 더 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벗어날 수 없는 지옥에서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결국 세상을 바꾸려면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진부하기 그지 없는 이야기로 끝을 맺지만, 어쩌면 그것이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4. 무라카미 류, <남자는 쇼핑을 좋아해> *민음북클럽 에디션
    • 민음북클럽 가입 선물로 선택한 스페셜 에디션 중 한 권. 책이 얇고 가벼워서 여행 길에 챙겨가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 읽었다. 저자도 내용도 전혀 모르는 채로 제목만 보고 선택한 책인데, 아마 정보를 더 알았더라면 아마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제목은 유치하지만 의외로 반전이 있는 책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선택을 했는데 제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책이라 실망했다. 무라카미 류는 유명한 소설가지만 왠지 내 취향에 맞지 않을 것 같아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이 책으로 입문하는 바람에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정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적어도 당분간은 또 읽을 일은 없을 듯.
  5. 김연수, <소설가의 일>
    • 이번 달에 읽은 책 중 고민할 것도 없이 단연 최고. 김연수의 재발견. 수없이 밑줄을 긋고 책장을 접어가며 읽었다. 지하철에서 킥킥거리며 웃다가 옆사람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너무 많아서 따로 적어야 마땅하다. 이렇게 평생을 사랑할 책을 한 권 얻었으니, 유월은 좋은 달이었다.

 

산 책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사기는 또 많이 샀다. 그냥 많이 산 것도 아니고, ‘더럽게’ 많이 샀다. 실은 더 많이 샀는데 기억이 안 나는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기억이 나는 대로 적는다.

  1. 데이비드 매컬로, <너는 특별하지 않아>
  2. 케리 이건, <살아요>
  3. 말콤 글래드웰, <다윗과 골리앗>
  4. 오은, <너랑 나랑 노랑>
  5. 어니스트 헤밍웨이, <깨끗하고 밝은 곳>
  6. 서정학,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7.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8. 츠즈키 쿄이치, <권외편집자>
  9.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10. 菅付雅信、『はじめての編集』(스가츠케 마사노부, <처음 만나는 편집>)
  11. REAR 39号、「アーカイヴは可能か?」(예술비평지 REAR 39호, <아카이브는 가능한가?>)
  12. 東浩紀、『ゲンロン0 : 観光客の哲学』(아즈마 히로키, <겐론0: 관광객의 철학>)
  13. よしもとばなな『下北沢について1』 (요시모토 바나나, <시모키타자와에 대하여 1>)
  14. Rethink Books、『今日の宿題』(Rethink Books, <오늘의 숙제>)
  15.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6. 팀 하포드, <메시>
  17.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외, <일의 언어>
  18.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19. <Axt> no.12, 2017 05/06

*1~4 인터넷 교보문고(6/9), 5~9 광화문 교보문고(6/9), 10~14下北沢 B&B(6/18), 15~19 광화문 교보문고(6/26)

5월 넷째, 다섯째 주에 읽은 책

오랜만에 글을 쓴다. 제법 밀도 있는 일상을 보냈다. 틈틈이 책을 읽었지만 오로지 독서에만 몰두한 기억은 드물다. 책은 거의 못 읽었지만 즐거운 기억은 많이 만들었다. 어느덧 3년째, 이제는 친구와 나의 연례행사가 된 서울 재즈페스티벌도 있었고, 새삼스럽지만 프로포즈도 받았다. 일은 지지부진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틈틈이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이 좌절감을 상쇄해준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서른의 봄은 무탈하게 흘러갔고, 이제는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다 읽은 책

  • 커트 보니것, 정영목 옮김, <제 5 도살장>
    • 잠깐 지인의 결혼식에 들렀다 페스티벌을 보러 가는 길에 친구가 조금 늦을 지도 모르는데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을 한 권도 갖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지하철에서 버스를 갈아타는 길목에 있는 잠실 교보문고에 들러 급하게 샀다. 급작스럽게 샀다고는 하지만, 전부터 늘 언젠가는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장소에 나타나 집어들게 된 것이라, ‘준비된 우연’ 정도로 이야기를 해도 좋겠다.
    • 호기심은 있었으나 그동안 내내 미뤄둔 이유는 이 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반전(反戰) 소설”이라는 꼬리표가 어쩐지 마음에 걸려서였다. 반전 문학의 필요성, 그리고 그것의 위대함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나 어쩔 수 없이 연상되는 참혹함, 그것에 내포하고 있는 도덕적인 무게에 짓눌려 손에 들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보니것이라는 작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또 다른 수식어인 “블랙 유머”또한 사실이었다. 불쾌하지 않을 정도의 자기 비하와 심각한 상황에서 불쑥 치고 들어오는 우스꽝스러운 논평은 피식 웃음을 자아냈다.
    • 그러나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SF와의 결합이었다. 주인공인 빌리 필그램의 시간여행은 영화 <컨택트(도착)>를 연상시켰다. 트라팔마도어 인들이 시간을 이해하는 방식은 <도착>의 헥사포드들과 무척 유사했다. 테드 창도 <제 5 도살장>을 읽은 것은 아닐까? 두 소설 모두에서 ‘시간’은 무척 중요한 키워드인데, 이것이 전쟁과 얽혀있는 것 또한 흥미로운 비교점이다. <제 5 도살장>에 드러난 이러한 시간관은 결국 이 소설의 핵심 메시지인 반전과도 우아하게 이어진다.
  • 기타다 히로미쓰, 문희언 옮김, <앞으로의 책방>
    • 5월 들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는 출판 카테고리의 책을 또 한 권 읽었다. 일본 출판계와 관련된 책들이 대부분이다. 아닌 것을 찾기가 훨씬 어려울 정도. 서로 비슷비슷하면서도 각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장단점도 제각각이다. 이 책은 정의하다/공상하다/기획하다/독립하다 라는 4개의 동사들로 장을 구성했는데, 그 중에서도 2장의 공상하다에 담긴 내용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 중 하나는 내가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아직 출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단계는 결코 아닌 것 같고, 책을 사랑하는 독자의 하나로서 애정을 갖고 알아가는 단계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런 류의 책들을 앞으로 더 다양하게 읽어나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무언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보이지 않을까.

 

읽고 있는 책

  1.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2. <제 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산 책

  1. 커트 보니것, <제 5 도살장>
  2. 박영숙, <메이커의 시대>
  3. 존 우드, <히말라야 도서관>
  4. 다니구치 지로, 유메마쿠라 바쿠, <신들의 봉우리> 1-5권
  5. 신이치 이시즈카, <블루 자이언트> 1-4권
  • 1: 잠실 교보문고, 2~5: 인터파크 도서

 

5월 둘째, 셋째 주에 읽은 책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아직도 적응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시간이 보름께나 흘렀다. 새 책은 거의 사지 않고, 연휴 동안 사 놓은 책을 야금야금 읽으며 보냈다. 겁이 나서 한켠에 제쳐놓고 모른척 한 일을 이제는 다시 마주해야 하는데, 자꾸만 외면하고 싶다. 할 수 있을까, 내가. 적당히 좋은 것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데. 그저 즐겁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세계를 앞에 두고, 문을 열까말까 망설이고 있다. 문 뒤의 세계가 과연 내가 바라는 세계일까 끊임없이 자문하다 결국 문앞에서 돌아서기를 여러 번. 이제는 좋든싫든 열어야만 하는 때가 다가오는데. 눈을 딱 감고, 힘차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더라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고 맘을 먹어 본다. 그것이 무엇이든.

 

다 읽은 책

  1. 칼 필레머, 김수미 옮김, <이 모든 걸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의 속편으로, 700명의 노인들이 결혼과 사랑의 지혜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이런 제목의 책을 보면 일단 피하는 편이라 내내 외면해왔는데, 친구에게 선물을 받아 두 권을 제법 시간차를 두고 읽었다. 두 책에 실린 내용 모두 진부하리만큼 뻔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뻔한 이야기들이 마음을 울리는 것은, 오랜 시간을 살아 오면서 그 뻔함을 몸소 경험한 사람들의 목소리로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앞두고 나름대로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은 것도 그 준비의 일환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혹은 ‘우리는’ 예외일거란 오만함을 내려놓으려 애쓰는 중이다.
  2. 살만 루슈디, 김진준 옮김, <한밤의 아이들> 1권
    • 두 권 중 절반을 읽었을 뿐인데 다 읽은 책으로 넣어도 될지 잠깐 고민했으나, 그래도 여기에 적는다. 루슈디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이 책은 내가 그동안 읽은 여러 책을 연상시키지만 그 어떤 책과도 다르다. (적어놓고 보니 이 말은 모든 책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술주정뱅이의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처럼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서사는 불안하면서도 매력적이다. 인도 현대사의 질곡과 더불어 살아온 자의식 과잉의 주인공이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는 1권이 끝날 무렵에야 본격적으로 시작할 기미를 보이는데,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그렇다고 단숨에 읽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조금씩 아껴가며 읽고 싶은 마음이랄까. 1권을 마치고 나니 뒷표지에 실린 소설가 김연수의 추천사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3.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 내가 읽는 시의 팔 할은 신형철의 추천 때문이다. 이문재 역시 <느낌의 공동체>를 읽다가 알게 되었는데, 아니나다를까, 깊이감이 남다르다. 쉽게 읽히지만 담긴 내용은 결코 얄팍하지 않다. 출근 길에 읽으면 깊숙하게 박혀 그날 잠자리에 들 때까지 떨어질 줄 모르는 문장들이 있었다.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시어들이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행복한 독서였다.
    • 나는 아직 여기에 다 있지 못하고 / 내일은 아직 내일. – <산촌> 중에서

 

읽고 있는 책

  1. 한수희,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2.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산 책

  1. 임솔아,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 1, 강남 교보문고.

5월 첫째주에 읽고 있는 책

 

이 울적한 기분은 뭘까.

연휴가 끝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일까. 돌이켜보면 늘 그놈의 ‘기대’가 문제다. 충분히 즐거운 휴일을 즐겼는데,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고, 이미 지나버린 어제를 후회하고. 언제쯤이면 이 어리석은 반복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래도 계획했던 대로 책은 많이 읽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서점에 가서 책도 잔뜩 샀다. 연휴 때 읽으려고 사둔 책은 아직 다 읽지도 않았는데. 에이, 뭐 어때. 지금 안 사면 또 안 읽을 거야, 하고 눈 딱 감고 사버린 책들. 줄여야 하는데. 줄일 수 있을까.

문득, 여기서 달아나고 싶다는 생각. 여기서 달아난다면 어디로?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여기가 아니길 바라는 것일까.

머릿속이 어지러워서 생각을 정리하러 온 카페는 너무 시끄럽고. 하필이면 이어폰도 두고 왔다. 아무 생각 없이 책만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오니 책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다. 눈은 책장에 박혀 있으면서도 생각은 과거로, 미래로 뛴다.

 

월요일

월요일에는 실컷 늦잠을 자고 일어나, 오후부터 부지런히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아직은 긴가민가. 몇 군데나 돌아다녔다고 배는 왜 이리 고픈지. 고기로 주린 배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오다.

 

화요일

밀린 일들을 몰아서 처리했다. 운전면허증 갱신을 위해 증명사진을 찍고, 잠시 강남역 교보문고에 들러서 또 실컷 책을 구경했다. 원래 사려고 한 책과, 눈에 들어온 책들을 가득 들고 운전면허를 갱신하러 갔다. 세 달 동안 방치되어 있던 뿌리를 염색하고, 산뜻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1. 메이 사튼, <혼자 산다는 것>
    • 가끔 들어가보는 서윤후 시인의 블로그에서 보고, ‘아, 읽고 싶다’ 생각했는데 마침 있어서 바로 사버렸다. 최승자 시인이 번역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 마음이 가고. 아직은 들추어만 보았을 뿐.
  2. 소노 아야코, <남들처럼 결혼하지 않습니다>
    • <약간의 거리를 둔다>로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소노 아야코의 결혼에 대한 에세이. 왠지 눈에 들어와서 집어들고 서문을 읽었는데, 마음에 들어서 바로 구입. 면허 발급을 기다리면서 그날로 다 읽었다. 핵심은 제목에 다 나와 있다. ‘남들처럼’ 하는 데 너무 연연하지 않는 것이 성공한(?) 결혼의 비결이라는 것. 결국 사람은 기대가 클 수록 실망할 수밖에 없고, 특히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그 결혼이 행복하기는 어렵다는 건데, 다 아는 뻔한 이야기지만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목소리는 역시 꽤나 설득력이 있다. 재미있게 읽었다.
  3. 박성우, <아홉 살 마음사전>
    • 지금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아이들의 마음을 좀 이해하고 싶어서 산 책. 결국 어른이 쓴 책이라 얼마나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을런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다시 출근하기 전에 한 번 읽어봐야지.
  4. 기타다 히로미쓰, <앞으로의 책방>
    • <책의 역습>의 여파가 책 구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책 역시 그래서 샀다. 일본의 출판계나 출판 시장의 상황이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고, 그렇다보니 참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손이 간다. 그렇다고 일본의 상황이 마냥 이상적인 것만도 아니다. 그들도 끊임없이 위기론을 제창한다. 하지만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만으로도 고무적인 현상이 아닌가. 좌시하지만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니까. 우리나라에서도 위기론을 돌파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시도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밥먹듯이 서점을 드나들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 일단 닥치는대로 읽고, 돌아다니다 보면 어슴푸레하게라도 방향이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샀다. 아직 들추어만 보았다.

 

수요일

역시 늦잠을 자고, 아트나인에서 <나는 부정한다>를 보았다. 예고편을 보고 꼭 보리라 마음먹었는데 영화는 역시 나쁘지 않았다. 담백하고 우아하다. 시종일관 침착한 영국인들 가운데서 레이첼 와이즈의 ‘미국인다움’이 다소 동떨어진 듯 보였으나 그마저도 영화적 연출의 일부였으니.

만족스럽게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핸드폰에 부재중전화와 함께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첫 눈에 마음에 들었던 집이 마침 매물로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 바로 전화해서 약속을 정하고, 시간이 남는 김에 또 사당역 반디앤루니스에 갔다. 마음산책에서 나온 소설가 이기호의 신작 소설집(-이지만 오늘 다른 서점에 가보니 에세이 코너에 분류되어 있었다)을 ‘볼’ 요량으로. 가서 몇 장 들춰 읽었는데 마음에 들어, 안 되겠다, 하고 집어 들었다. 그 김에 전부터 사려던 시집이 마침 있길래 함께 샀다. 책을 사는 건 참 쉽지.

  1. 이기호,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 시종일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읽었다. 문장 하나하나에 애정이 뚝뚝 묻어 나온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이 되어가는 것. 가장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가장 질리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많은 것들이 변해간다지만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고, 그런 항상성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숭고하게 느껴진다. 유쾌하게 읽었지만 묵직하게 남았다. 따뜻하다.
  2. 찰스 부코스키,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3. 이성복,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집을 보고 나서 저녁을 먹고 서교동 북티크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라 커피는 싫고, 괜히 멋을 부린다고 하우스 와인을 시켰다. 와인을 홀짝이며 박연준의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을 읽었다. 처절하다. 시어 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는데, 와인이 내 마음에 얇은 막을 두른 것인지 와닿지는 않고. 그녀는 내가 거의 숭배하다시피하는 아름다운 문장을 쓰지만, 그녀의 산문(<소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을 사랑하는 것과 시를 끌어안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 다른 일 같다. 왠지 밤에 읽어야 할 것만 같아 사두고 펼치지는 않은 그녀의 다른 시집도 곧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나서는 와인 기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기계발서를 한 권 읽었다. 칼 뉴포트의 <딥워크>. 민음사 블로그에서 출간 전에 홍보할 때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다가 나오자마자 샀다. 아이들과 함께 있다 보니 지금의 업무 환경에서는 ‘딥워크’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게 나의 능력 혹은 요령 부족인 것인지, 타개할 방법이 있기는 한 건지 알고 싶어서 읽었으나 여타의 많은 자기계발서가 그렇듯이 아주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꽤나 특수하고, 거의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업무들이 중첩되어 있어 이 엉킨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할지 끊임없는 고민의 연속이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그래도 이건 해봐야지 싶은 건 ‘차단 의식’. 업무가 끝난 뒤 큰 그림 안에서 오늘의 업무 성과를 정리하고 내일을 계획하는 의식인데, 이걸 함으로써 일과 후까지 일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 여가를 낭비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역시 그리 새롭다고 하기는 어려운 내용이지만, 이렇게 읽지 않으면 또 새삼 결심할 계기가 생기지 않으니까. 당장 다음주부터 실천해 보자, 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월요일쯤 가면 또 가물가물해질지도 모르겠다. 적으면서 다시 결심을 해본다.

이렇게 하루에 책을 세 권이나 몰아 읽고 나서, 알딸딸하니 즐거운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 그리고 사실 북티크에서도 또 책을 한 권 샀다. <책의 역습>으로부터 꼬리를 물고 나온 책/서점/출판 카테고리.

4. 이시바시 다케후미, <서점은 죽지 않는다>

 

목요일

오전 내내 침대를 떠나지 않았다. 강력접착제로 붙여놓은 듯, 무거운 몸은 이불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이러다 하루가 통째로 날라가겠다 싶어 겨우 몸을 일으켜 나왔다. 가까운 주민센터에서 투표를 하고 잠시 고민하다 오늘도 북티크에 가기로 했다.

연휴 동안 다 읽으리라 결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권을 챙겨 나왔다. 다른 책을 들고 나오면 또 딴 길로 샐까봐 마음을 굳게 먹고 한 권만 넣었다. 화요일에 이미 읽기 시작해서 100페이지 정도 읽어두었는데, 그래도 너무 두꺼워서 다 읽는데 한참 걸렸다. 조시마 장로님과 이반, 알료샤들 사이에서 종교와 관련된 논쟁이 길게 이어지는데 솔직히 지루했다. 그토록 많은 이들이 명작이라 칭송하는 이 작품의 진가를 나만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가. 고전 명작은 이미 시간이 가치를 입증해준 것이니 무조건 다 읽어야 할까? 아무래도 이 책은 내 ‘취향’은 아닌데. 1권까지는 꾸역꾸역 다 읽었으나 2, 3권도 끝까지 일단 읽어야 할지 조금 고민이다. 그 시간에 다른 책을 읽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니, 그래도 일단 시작을 했으니 끝을 보는 것이 나을까?

 

금요일

역시 늦잠을 자고, 점심을 먹고,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2권을 들고 나왔다. 점심을 먹은 뒤여서인지 읽으면서 몇 번을 꾸벅꾸벅 졸았다. 아직 이야기는 크게 진척되지 않았다. 장로님은 돌아가셨고, 이반은 떠났고, 드미트리는 행방이 묘연하다. 아버지 표도르는 아직 살아있다. 아마 다음 장에서는 죽을 것 같지만. 이렇게 적어 놓으니 무미건조하기 이를데 없구나. 1/3쯤 읽은 뒤 일단 책을 덮었다. 가구를 구경하러 이케아 광명점에 가서 규모에 놀라고. 집에 와서는 스케치업과 인터넷 앱으로 이리저리 가구를 배치하며 놀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토요일

드디어, 오늘이다! 아침부터 집을 보러다녔다. 이미 마음의 결정은 95%쯤 끝난 상태지만, 이미 약속을 해두었으니 그래도 한 번 보자, 하는 마음으로 나왔는데 이게 웬걸. 생각보다 좋았다. 교통은 전에 본 집이 훨씬훨씬훨씬 좋았으나, 오늘 본 집은 거실이 넓었다. 거실이 넓고, 방도 하나 더 많고. 다만 역에서는 조금 멀고, 언덕 위에 있다. 대신에 오래된 단지여서 나무가 많고, 가까이에 공원도 있다. 의외의 복병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점심을 먹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일단 집에 왔는데 그대로 잠들어버리면 또 밤에 잠이 오지 않아 고생할 것 같아서 짐을 챙겨 나왔다.

책 선물도 받았고, 강남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또 샀다. ‘그만 사야지’하는 결심은 무용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서, 이제는 부러 결심하지 않는다. 다만 산 책은 열심히 읽고, 예전 책들 중 다시 안 펼쳐볼 것 같은 것들은 냉정하게 정리해서 책장을 비워나가야지.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는 글렀다.

  1. 살만 루슈디, <한밤의 아이들 1, 2> *선물받은 책
  2.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3. 데일 루사코프, <Prize: 교육이 미래라고 믿는 당신에게>

저녁을 먹으며 <한밤의 아이들>의 저자서문을 읽었는데, 벌써 홀렸다. 집중해서 읽으려고 자리를 옮겼는데 주변이 시끄러워서(그리고 대화 내용이 너무 흥미로워서) 주의가 흐트러진 김에 기억나는 대로 일단 기록해두려고 노트북을 열었다.

이것이 오늘까지의 독서와 기타 등등에 대한 기록이다.

한권 한권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늘 그랬듯이 다음으로 미뤄둔다. 이렇게 미루다 한 줄이나 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다다다 적어놓고 나니 끝나가는 연휴에 울적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연휴가 끝나도 일상은 이어지고, 나는 또 서점에 갈거고, 책을 살 거고, 또 읽을 거고, 내키면 그 중 몇 권에 대해서는 몇 줄 적을 것이다. 집을 구하고, 가구를 배치하고, 가전 제품의 가격을 비교하고, 부모님과 할머니를 모시고 어버이날을 축하하고, 연휴 동안 훌쩍 자란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 미뤄둔 일은 미뤄둔 그대로 남아 있겠지만, 내가 할 일이니까. 너무 잘 하려는 마음, 완벽하려는 욕심에 압도되지 않고, 하나 하나 즐겁게 음미하며 살아가고 싶다. 결국 나는 지금이 중요한 인간이니까. 과거를 돌아보고, 미숙했던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자책하기에는 오늘이 더 소중하니까.

여전히 나는 뭐가 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다만 아직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읽은 책 

  1. 소노 아야코, 오근영 옮김, <남들처럼 결혼하지 않습니다>
  2. 이기호,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3. 박연준,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4. 칼 뉴포트, <딥워크>
  5.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옮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

 

산 책

  1. 메이 사튼, 최승자 옮김, <혼자 산다는 것>
  2. 소노 아야코, 오근영 옮김, <남들처럼 결혼하지 않습니다>
  3. 박성우, <아홉 살 마음사전>
  4. 기타다 히로미쓰, 문희언 옮김, <앞으로의 책방>
  5. 이기호,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6. 찰스 부코스키,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7. 이성복,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8. 이시바시 다케후미, 백원근 옮김, <서점은 죽지 않는다>
  9.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10. 데일 루사코프, 유성상 옮김, <Prize: 교육이 미래라고 믿는 당신에게>
  11. 살만 루슈디, 김진준 옮김, <한밤의 아이들 1, 2>
  • 1~4, 강남 교보문고(5/2), 5~7, 사당역 반디앤루니스(5/3), 8, 서교동 북티크(5/3), 9~11, 강남 교보문고(5/6)

4월 셋째 주에 읽은 책

지난 주에는 오랜만에 책을 좀 읽었다. 그만큼 사기도 많이 샀다. 지난 주에 읽은 책 중 세 권 중 두 권을 하루에 몰아 읽었다. 마음이 배부른 주말이었다. 책 한 권을 읽으면 그 다음에 읽고 싶은 책들이 두세권은 생긴다. 책을 많이 읽었더니 그만큼 읽고 싶은 책들이 더 많이 늘었다. 이걸 언제 다 읽나, 싶다가도 역시 그런 푸념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소중하다.  이야기할 거리가 넘치도록 많은 책들이지만, 우선 무얼 읽었는지 만이라도 적어만 둔다.

 

다 읽은 책 

  1.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옥용 옮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2. 김상혁,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3. 우치누마 신타로, 문희언 옮김, <책의 역습>

 

나눠 읽은 책

  1. 스콧 배리 카우프만 외, <창의성을 타고나다>
  2.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산 책

  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옮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총 3권)
  2. <릿터 Littor> vol 4. & 5.
  3. 김상혁,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4. 황인숙, <리스본行 야간열차>
  5. 혜민과 현우, <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행진>
  6. 우치누마 신타로, 문희언 역, <책의 역습>

*1-2, 2017 민음북클럽 가입 선물, 3-6, 서교동 북티크

3월 넷째주에 읽은 책

지난 주에는 책을 많이 읽었다. 하지만 글은 거의 쓰지 않았다. 일이 점점 고되게 느껴진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데서 얻었던 기쁨은 그만큼의 고단함으로 되돌아 온다. 보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농도가 옅어진 것은 사실이다. 슬럼프야 언제든 올 수 있는 것이고, 이 정도는 지금까지 겪었던 슬럼프들 중에서는 아주 경미한 수준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스멀스멀 고개를 쳐드는 회의감을 외면할 수는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느라 늘 머릿속이 복잡하다. 도피하듯 책을 읽었다. 일이 힘들 수록 읽고 싶은 책이 많아졌다. 책장들 속으로, 문장들 사이로 그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어떤 날은 책 속에 숨어 영영 나오고 싶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저버리기에는 책 밖에도 사랑하는 것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두 세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며 생활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차표를 끊지 않고도 도망갈 곳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다 읽은 책

  1. 이원석, <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 송인서적 부도로 인해 작은 출판사들이 입은 피해를 나누자는 취지의 네이버 펀딩에 참여하고 받은 유유 출판사 책 꾸러미에 들어 있던 네 권 중 한 권. 이런 계기가 아니라면 만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뺀질나게 서점을 드나드는 데 구경 한 번 못해봤으니. 여하튼 요즘 내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고민 – 단지 읽는 데에서 그칠 것인가? – 과 관련해서 참고할 지점이 많을 것 같아, 오자마자 제일 먼저 꺼내 읽었다. 얇고 가벼워서 출퇴근 길에 단숨에 다 읽을 수 있었다.
    • ‘서평’에 대한 책이기에, 결국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어떤 서평을 쓸지도 달라지기 때문에. 한 권이라도 더 많이 읽고 싶은 욕심과,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고 싶은 욕심 사이에서 언제나 갈팡질팡하는 나는 늘 어느 쪽도 충분치 못한 것 같아 괴로워한다. 이 책의 저자는 단연코 좋은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깊이 읽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책을 나의 독서력 안에 위치시킬 수 있을 만한 넓은 읽기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한 마디로 넓게도 읽고 깊게도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빤하지만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다. 사실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갑자기 서평을 잘 쓰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평은 독후감과 어떻게 다른지, 서평을 왜 쓰는지, 더 나아가 왜 읽는지에 대한 저자의 묵직한 고찰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마음이 혹하는 서평집들에 대한 소개는 덤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서평을 쓰고 싶은 마음보다 앞서 한시 빨리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법>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김개미,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
    • 오은의 <유에서 유>에 이어 올해 완독한 두 번째 시집인 것 같다. 열 몇 권을 샀는데 겨우 두 권째라니. 시집은 펼쳐 들어도 단숨에 읽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모르는 동네를 산책할 때처럼 여기 저기 둘러보고, 가끔은 한참을 한 자리에 멈춰 서서 가만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잰 걸음으로 지나쳐 갔다가 문득 두고 온 것이 떠올라 다시 되돌아 가기도 하고, 그렇게 천천히 나아간다. 김개미의 시집 역시 그렇게 읽었다. 다만 호흡이 가빠지는 것은 생각과는 달랐던, 음침하고 눅진눅진한 그림자 서린 방 같은 이 시집을 조금은 빨리 빠져나오고 싶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자꾸만 불길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임승유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임승유의 시어가 불러일으키는 상상이 ‘불순한’ 혹은 ‘불온한’ 것에 가깝다면, 김개미의 시어는 ‘불길함’에 가깝다. 한 권을 다 읽어가도록 희망이라고는 한 자락도 주지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마냥 깜깜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기억이 희미해질 때 즈음 다시 펼쳐보고 싶을 것만 같은.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 “우리는 누구의 두개골에 고인 백일몽일까” — <봉인된 곳> 중에서.
  3. 수 클리볼드, 홍한별 옮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끊어 읽은 책

  • 사이먼 사이넥, 이영민 옮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산 책

  1.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3/23, 사당역 반디앤루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