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넷째주에 읽은 책

아직도 날짜를 적을 때에는 2016년이 익숙한데, 어느덧 2017년의 첫 달이 저물어 간다. 올해 들어 나는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월화수목금 매일 같은 스케줄로 움직이는 것은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때 이후 처음이다. 20대의 대부분은 학교를 다니며 스스로 짠 시간표에 따라 움직였고,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에도 프로젝트 단위로 프리랜서로 일해온 지라 생활은 학생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중과 주말, 근무일과 휴일의 차이가 근소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나인 투 식스 잡을 갖게 된지 겨우 삼주가 지났을 뿐인데 휴일의 소중함을 뼛속 깊이 느끼고 있다. 일요일 밤이 되면 다가올 월요일 생각에 식은땀을 흘린다는 증언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겠다. 주말에 앞뒤로 하루씩 더 붙여 쉬었을 뿐인데, 오랜만에 출근할 생각을 하니 이상하게 자꾸만 한숨이 나온다. 해야할 일은 많고, 하고 싶은 일은 더 많고, 그 일들을 하루에 다 욱여넣기에는 시간도 체력도 부족하기만 하다.

사고를 마비시키는 습관화된 일상에 저항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내가 선택한 것은 독서이다. 매일 다른 글을 읽으며, 매일 조금씩 새로운 것을 배워나간다. 일을 하면서도 배우고, 사람을 만나면서도 배우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도 배우지만, 읽기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지금 나에게 독서는 일종의 수행이다. 무-목적적인 활동이기도 하다. 이것으로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읽는다. 목적이 없는 독서였기에 그것을 기록하는 데에도 특별한 목적은 없다. 읽기를 위한 읽기였듯이 기록을 위한 기록이라고 해두는 것이 옳겠다. 한 번 밀리고 나면 돌이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지라도, 하기 싫은 숙제를 꾹 참고 하는 기분으로 이 글을 쓴다.

 

다 읽은 책

연휴가 있어준 덕분에 그동안 다 끝내지 못한 책을 마지막 장까지 읽었다. 그것만으로도 뿌듯했던 한 주였다.

  1.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
    • 지난주부터 출근 전에 조금씩 읽어왔던 책을 이번주 들어 다 읽었다. 저자인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인간은 언제 제일 행복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플로우’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플로우란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을 정도로 지금 하는 일에 푹 빠져 있는 상태, 다시 말해 이때의 경험 자체가 매우 즐겁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어지간한 고생도 감내하면서 그 행위를 하개 되는 상태(29)를 의미한다.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플로우를 경험하기 위해 필요한 외적 조건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인 조건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외적 환경이 안정되어 있고 풍요롭다 하더라도, 스스로가 의식적으로 내적인 질서를 가지고 그 상황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플로우를 경험하기 어렵다. 냉소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결국은 익히 들어왔던 ‘행복은 자신이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경구를 심리학적으로 풀어낸 것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 실제로도 그런 면이 없지는 않다 – 저자는 긴 지면을 할애하여 일상의 각 영역에서 플로우를 경험할 수 있는 실질적인 팁을 제시함으로써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 아쉽게도 그 구체적인 지침들조차도 추상적인 이론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뻔한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으며 읽을 가치가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플로우’라는 개념이 매력적인 것은 그것을 경험하는 빈도나 상황은 다 다를지라도, 누구나 한 번 쯤은 느껴보았을 법한 보편적인 경험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모든 경우가 나에게 바로 적용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구체적인 사례를 읽으며 나의 경험과 견주어 생각해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언제 플로우를 느끼는지, 반대로 언제 플로우를 느끼지 못하는지에 대해 깨닫게 되며, 그를 통해 어떻게 하면 일상의 경험들을 보다 ‘최적화’ 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2. 알베르 까뮈, <페스트>

  • 몇 주째 붙잡고 있던 <페스트>를 드디어 (오늘!) 다 읽었다. 수없이 많은 밑줄을 그었고 귀퉁이를 접었다.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 장까지 독파하게 만드는 서사의 힘은 덜했으나 섬세한 묘사와 그 사이에 숨은 깊이 있는 통찰이 있었다.
  • “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정확한 언어를 쓰지 않는 데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정도를 걸어가기 위해 정확하게 말하고 행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재앙과 희생자가 있다고만 말할 뿐, 그 이상은 더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록 나 자신이 재앙 그 자체가 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에 동조하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차라리 죄 없는 살인자가 되길 바랍니다. 보시다시피 이건 그리 큰 야심은 아닙니다.물론 제 3의 범주, 즉 진정한 의사로서의 범주가 필요하겠지만, 그러나 이런 것은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더구나 그것은 아마도 어려운 일일 겁니다. 그래서 나는 어느 경우에는 희생자들 편에 서서 그 피해를 되도록 줄이기로 마음먹는 것입니다. 희생자들 가운데서 나는 적어도 어떻게 하면 제3의 범주, 즉 마음의 평화에 도달할 수 있는가를 탐구할 수는 있습니다.” (타루의 대사, 331쪽)

    “결국.” 하고 솔직한 어조로 타루가 말했다. “내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성인(聖人)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은 안 믿으시죠?”

    “바로 그렇기 때문이죠. 오늘날 내가 아는 단 하나의 구체적인 문제는 사람은 신 없이 성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고 의사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나는 성인들보다는 패배자들에게 더 연대 의식을 느낍니다. 아마 나는 영웅주의라든가 성자 같은 것에는 취미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그저 인간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럼요, 우리는 같은 것을 추구하고 있어요. 다만 내가 야심이 덜할 뿐이죠.”

    리유는 타루가 농담하는 줄 알고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어렴풋한 빛 속에 선 그의 얼굴에는 어떤 비애와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 (리유와 타루의 대화, 331~332쪽)

  • 그저 인간이 되겠다는 리유의 말을 듣고, 타루는 진지하게 성인이 되고자 하는 그의 야심이 리유의 야심보다 덜하다고 대답한다. 두 번째 읽은 페스트가 나에게 던진 여러 가지 질문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페스트>의 작중 인물들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 다른 의미에서 – 혹은 모두 같은 의미에서 – 인간적이다. 인간성을 잃어가는 시절에 다시 읽은 페스트는 무척 의미심장했다.

 

3. 할레드 호세이니, <연을 쫓는 아이>

  • 오래 전부터 집에 있던 책인데 (아마도 어머니가 구입하셨을 것이다) 이제서야 읽었다.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상처 투성이인 이야기였다. 열두살 아미르의 선택을 너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다. 운명의 희생자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하산의 인생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른 시대에, 다른 장소에서 태어났다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 시대에, 그 장소에서 태어난 두 사람의 운명이 다른 이들에 비해 더 가혹했다고 섣불리 이야기할 수도 없을 것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지만 그렇게 잔인한 대로 평범할 수 있었던 이야기에 힘을 불어넣은 것은 한 인간의 죄책감이다. 자신의 과오에 죄책감을 느낄 때, 그리고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속죄를 위한 행동에 나설 때, 인간은 고결해질 수 있다. 잔혹한 운명 속에서도 인간을 원망하지 않았던 하산과 두려움에 머뭇거리면서도 속죄를 위해 사지로 향한 아미르는 모두 비범한 인물들이다.

 

읽고 있는 책

  1.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 어제 읽기 시작해 5장까지 읽었다.

 

산 책

기어코 샀다. 이번주에도.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못 따라온다. 소설 두 권, 에세이 한 권. 그 밖에 여러 책들을 들었다 놓았다. 책에 대한 갈증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1. 최은영, <쇼코의 미소>
  2. 장강명,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3. 김남주, <사라지는 번역자들>

(전부 강남역 교보문고)

 

그 외의 읽기

뉴요커를 구독하고 있는데 한 주에 기사 하나 읽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이번주에는 제법 긴 기사를 하나 다 읽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랫 동안 독방에 갇혀 있었던 알버트 우드폭스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범죄로 감옥에 갔으나 그 안에서 블랙 팬더 당의 일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정부에 위험 인물로 낙인이 찍혔고 부당한 살인 누명을 쓰면서 무려 40년 동안이나 독방에서 수감 생활을 한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극단적으로 스스로를 절제하며 신념을 지켜온 그의 이야기는 무척 인상깊다.

The three men worked to curtail their desires. None of them drank coffee or tea or smoked. “If I feel a habit is developing, or even a disorder of any kind, I counsel myself in spirit,” Wallace told a psychologist. “The more food you eat, the more your body craves food,” he wrote to a friend. “It’s the same for sleep—most of it is mental.” He didn’t like being dependent on security guards to turn the light on every morning, so he kept it on all the time and covered it with a legal pad when he slept, which he did for fewer than three hours each night.

In 1978, when the prison opened a small outdoor exercise cage in C.C.R.—inmates could go outside for a few hours a week—the three men ran barefoot outside, even when frost covered the ground. “We had to make ourselves think that ordinary things didn’t apply to us,” Woodfox told me. “We wanted the security people to think that they were dealing with superhumans.” It was also a coping strategy. “Before I let them take something from me, I deny it from myself,” he said.

1월 셋째주에 읽은 책들 *부록 – 침대맡의 책탑 목록

아무리 바쁘다 해도 일주일에 책을 한 권도 다 못 읽는 건 조금 슬프다. 하마터면 그런 슬픈 한 주가 될 뻔했는데, 약간의 꼼수로 그것은 면했다. 끝내지 못했을 뿐이지 독서는 꾸준히 했다. 아침에 한시간씩. 다 다른 책들이지만 묘하게 하나로 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직 그 키워드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말이다.

부족한 독서 시간에 대한 미련은 수면 시간과 공간을 침범해 들어온다. 그래서 침대 옆 탁자에는 늘 다 끝내지 못한 책들이 쌓인다. 책탑의 높이가 위태롭다 싶을 정도로 높아지면 맘 먹고 정리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그만큼 쌓여 있다.

2017년 1월 23일 오후 9시 48분 기준으로 그 책들의 목록을 적어보면,

침대맡에 쌓아둔 책

  • 조던 엘렌버그, <틀리지 않는 법>
    • 절반 이상 읽었다. 분명 무척 흥미로운 책이긴 한데, 피곤할 때 읽으면 또 그만한 수면제가 없다. 아무래도 수학 이야기라 그런가보다. 한 챕터를 다 끝내지 못하고 잠이 드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그 다음에 책을 펼치면 내용이 새까맣게 잊혀져서 다시 그 장을 처음부터 읽는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13장에 머물러 있다. 이번 달 안에는 다 읽을 수 있을까?
  • 할레드 호세이니, <천 개의 찬란한 태양>
    • 나는 거의 병적으로 책 ‘사기’를 좋아하는데, 이건 틀림없이 엄마를 닮아서이다. 집에 하루가 멀다하고 책을 사들이는 사람이 둘이나 있다 보니, 사고 나니 그 책이 표지 한 번 펼쳐보지 않은 채로 고스란히 집에 모셔져 있던 경우도 왕왕 있다. 이 책도 엄마가 사신 책인데, 몇년 동안 거실 책꽂이에 방치되어 있다가 나에게 발굴되었다. 방에 갖다둔 지는 한참 되었으나 읽을 생각도 않고 있다가, 얼마전에 – 라고는 해도 몇 달 전이지만 – 친구가 추천해주어서 읽어볼 요량으로 침대 옆까지 들고 왔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읽지는 않았다. 자기 전에 읽을 만한 책인지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다.
  • 칼 필레머, <이 모든 걸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 역시 그 친구가 선물해준 책. 올해 두번째로 마친 책인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의 후속작이다. 결혼하기 전에 다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역시 침대맡에 갖다 두었으나 아직 제대로 읽지는 않았다. 이러다 신혼여행 가서 읽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파스칼, <팡세>
    •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엄마가 사주신 민음사 세계문학 100권 세트에 있던 책인데 제대로 읽을 생각은 조금도 않고 있다가 맨 위에 언급한 <틀리지 않는 법>에서 <팡세>의 인용구가 등장하길래, 찾아볼 요량으로 찾아서 가지고 왔다. 자기 전에 하나씩 읽으면 좋겠거니 생각을 하고 두었는데 잘 읽어지지 않는다. 앞으로도 읽을지 모르겠다.
  • 닉 수재니스, <언플래트닝 – 생각의 형태>
    • 단숨에 읽었어야 하는 만화(?)인데, 왜인지 한 장이 남았다.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마음이 내키면 다시 한 번 읽어봐야지. 오늘은 말고.
  • 록산 게이, <나쁜 페미니스트>
    •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출판계의 핫한 키워드 중 하나인 페미니즘 열풍을 이끈 책이다. 저자의 테드 강연을 보고 ‘오! 이건 읽어야 해!’ 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서점에서 서문을 읽고 뿅 반했는데, 왜인지 바로 사지는 않고 한참 뒤에 다른 서점 (심지어 여행까지 가서 들른 서점)에서 구입한 뒤 몇 편을 쪼르륵 무척 재밌게 읽은 뒤에 다른 책에 혹해서 잠시 묵혀두었다. 아무래도 스토리에 연속성이 있다기 보다는 일종의 앤솔로지라서 한 번에 다 읽어야겠다는 느낌은 덜하다. 그러나 재미있는 책이고, 오늘을 계기로 한참 아래에 있던 것을 다시 끄집어 냈으니 다시 읽어가야지.
  • 제임스 우드,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위의 책에 실린 글을 읽는데, 이 책이 자꾸 등장하길래 궁금해서 사버렸다. 그리고는 제대로 안 읽고 쓱 훑어보고는 잊고 있었다. 지난주부터 읽기 시작한 테리 이글턴의 <문학을 읽는다는 것>과 비교해서 읽어보면 재미있을듯.
  • 이이체, <인간이 버린 사랑>
    • 딱 집어 생일선물로 골라서 받은 선물인데, 거의 다 읽어갈 무렵 시인이 문단 내 성폭력에 가담(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언제고 늘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후 글 읽을 맛이 뚝 떨어져버렸다. 그래서 일부러 몇 편 안 남은 시를 끝내지 않고 두고 있다. 나중에 다시 내키게 되면 읽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인간과 작품을 분리해야 하는지, 아니면 독립된 것으로 봐야할 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읽기 싫어졌다는 내 감정의 변화뿐.

 

다 읽은 책

  • 한병철, <피로사회>
    • 이번주에 다 읽은 책은 이 한 권이다. 얇디 얇은 책이지만 철학 에세이라 술술 넘어가지는 않고, 중간중간 멈추어 사고할 지점들이 나타나 두께에 비해서는 독서 시간이 제법 걸린다. 그러나 불가해할 정도로 난해하지는 않다. 이 책 역시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생각해볼 만한 화두를 여러 개 던져주었다. 다 읽은 책이니 따로 포스팅을 할 예정.

 

읽고 있는 책

  1.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플로우>
  2. 테리 이글턴, <문학을 읽는다는 건>

 

산 책

  1. 한병철, <피로사회>
  2.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3. 사이먼 사이넥,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기브앤테이크, 2013

역시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기만 하는 사람은 만만하게 보여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여, 더 많이 주는 사람이 더 크게 성공한다는 주장을 여러 사례들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제기한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유형을 주는 양과 받는 양에 대한 희망의 차이, 다시 말해 선호하는 ‘호혜 원칙’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한다.

  1. 테이커
    • 테이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신이 준 것보다 더 많이 받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이들은 상호관계를 입맛에 맞게 왜곡하고 다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또한 세상을 ‘먼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보고, 성공하려면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까닭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많이 얻으려 한다. (p.20)
  2. 기버
    • 그들은 상호관계에서 무게의 추를 상대방 쪽에 두고 자기가 받은 것보다 더 맣이 주기를 좋아한다. 테이커는 자신에게 중점을 두고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가늠하는 성향이 있는 반면, 기버는 타인에게 중점을 두고 자기가 상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주의 깊게 살핀다. (p.21)
    • 기버는 자신이 들이는 노력이나 비용보다 타인의 이익이 더 클 때 남을 돕는다. 심지어 노력이나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남을 돕는다. (p.21)
  3. 매처
    • 매처는 손해와 이익이 균형을 이루도록 애쓴다. 공평함을 원칙으로 삼는 매처는 남을 도울 때 상부상조 원리를 내세워 자기 이익을 보호한다. 당신이 받은 만큼 되돌려준다는 원리를 믿고 인간관계란 호의를 주고받는 관계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매처다. (p.22)

이 세 유형이 늘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저자는 친밀한 관계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기버처럼 행동하지만 직장에서는 매처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설명한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 책은 출근하기 전 약 한 시간 정도 일찍 나와서 사나흘에 걸쳐 다 읽었는데, 전반부를 읽은 첫날과 둘째날에는 나 자신에 대해 곰곰이 돌아볼 수 있었고 – 나는 매처인가? 기버인가? – 셋째날과 넷째날에는 주는 것에 진정으로 기쁨을 느끼면서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기버의 행동 원칙들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해보았다. 이런 류의 책들이 으레 그렇듯이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정답인 것처럼 강하게 독자를 설득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자들이 그 내용 전부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런 책들의 장점은 같은 상황을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떤 문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이전에는 이것이 과연 나에게 이득이 될지, 손해가 될지를 우선 따졌다면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나에게도 좋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이득이 되는, 윈-윈 전략을 더욱 적극적으로 모색해 볼 수도 있다. 선천적으로 기버의 성향을 가졌지만 많은 이들에게 ‘호구’로 대접받는 데 넌덜머리가 난 사람이라면 베풀어야 할 상황과 좀 더 자신을 돌봐야 할 상황을 나누는 기준에 대해 생각해보고 스스로의 행동을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지,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만능 열쇠를 쥐어준 것은 아니기에 판단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작년 말에는 20대를 정리하며 지난 인연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작년 한 해는 유독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입었고, 또 입혔다. 나는 자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타인에게 베풀었고, 행여나 그것이 위선이나 폭력으로 여겨지진 않을지 조심하고 또 조심했더랬다. 바라지 않고 주었다 생각했지만 돌아오지 않는 마음에 괴로워한 일도 있었고, 반대로 내가 원치 않았던 상대의 지나친 배려에 부담을 느낀 적도 있었다. 20대 초반의 나는 모든 것이 다 나의 잘못이라 여겼고, 모든 사람을 다 품어야 한다고, 그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의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전적으로 내가 기꺼이 원해서 한 행동만은 아니었다. 물론 상대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훨씬 컸다. 그러나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너무 무리를 하다 보면 나는 제풀에 지쳐 나가 떨어지곤 했다. 그러면 그 사람까지도 미워졌다. 혼자 부담스러워져 돌아서버린 관계들도 많았다. 그중에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얼굴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겁다.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금방이라도 빵 터져버릴 것만 같다. 그러나 먼저 손을 내밀기에는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만 같았던 그 시절의 허무함과 피로가 밀려와, 이내 눈을 감아버린다. 그 죄책감까지도 내가 지고 가야할, 나의 짐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다만 그렇게 되기 전에 그저 알아차려주길 바라지만 말고 이대로는 힘들다고 말이라도 해볼걸, 이란 아쉬움은 있다.

잠시 옆길로 샜지만, 이 책, <기브앤테이크>의 6장 ‘이기적인 이타주의자’와 7장 ‘호구 탈피’는 그런 상황 – 제풀에 지쳐 차라리 관계의 단절을 선택하고 마는 – 을 피하는 데 유용한 조언을 담고 있어 지금 당장보다도 앞으로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경제경영서라면 질색팔색하던 나였는데, 요 근래 좋은 책들을 많이 읽으면서 순수하게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다른 책들도 함께 읽겠지만 특히 아침에는 이런 류의 책들을 읽으면 뭔가 격려받는 느낌이 들어 좋다. 오전에는 경제-경영서를 저녁 때는 문학 외 기타 인문교양 서적을 읽는 방식으로 습관을 들이려고 일단 ‘생각은’ 하고 있다.

1월 둘째주에 읽은 책

어느새 1월도 절반이 다 갔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한 주를 다 보냈다. 욕심은 많고, 몸은 안 따라주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괴로움도 적잖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일들에 더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고 싶다. 지난 주에 읽은 칼 필레머의 책에서 배운 것들을 실천하며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이를 테면, 걱정하지 말라는 것. 걱정할 시간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하는 것이 훨씬 낫다. 온갖 것들을 걱정하며 살아온 습성을 하루 아침에 버릴 수는 없는 것이지만, 걱정이 치고 올라올 때면 거기에 휩쓸리는 대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내가 무얼 할 수 있지?

돌이켜 보면 한없이 게으를 때조차도 마음만은 바쁘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몸은 바쁘더라도 마음은 여유롭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를 위한 작은 사치라고 생각하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그리 괴롭지만은 않다.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하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에 한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기꺼이 투자해야 할 비용이다. 읽고 싶은 책도 많고, 쓰고 싶은 글도 많지만 이런 저런 핑계들로 미루어두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미뤄두고 있다.) 그 핑계 중 하나는 ‘멋진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 그러나 멋진 글이 아니더라도, 쓰이지 않은 글보다는 낫다. 그래서 일단은 가장 단순한 형태의 기록부터 시작해 본다.

 

다 읽은 책

애덤 그랜트, <기브앤테이크>, 2013

  • 이번 주에는 바뀐 생활 패턴에 적응하느라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다. 그 와중에 오전에 틈틈이 짬을 내어 다 읽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호혜원칙’에 대한 관점에 따라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통념과는 달리 가장 크게 성공하는 사람들은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주는 것에 익숙한 기버들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경영 분야가 아니더라도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누구나가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하다.
  • 기브앤테이크, 2013

 

읽고 있는 책

  1. 알베르 까뮈, <페스트>
    • 지난주에 이어 <페스트>를 계속해서 읽어나가고 있다. 이야기는 점점 절정에 다가간다. 내가 결정적으로 이 책을 다시 꺼내들게 된 계기인 ‘평범한 인간의 고결함’이 조금씩 구체화된 형태로 드러난다. 이전 독서에서는 그리 인상 깊게 여기지 않았던 여러 인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평범한 시청 서기지만 가슴에는 문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안고 살아가는 그랑이다. 그 외 다른 도시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감시의 눈을 피해 오랑으로 흘러들어온 코타르 (그는 페스트로 인해 도시가 폐쇄된 것을 내심 기뻐하며, 페스트를 자신의 다정한 친구라고 여기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신문 기자로서 취재차 오랑에 왔지만 페스트가 발발하는 바람에 꼼짝도 못하게 갇혀버리자 파리에 남겨두고 온 아내를 만나기 위해 탈출을 모색하는 랑베르, 정체불명의 신비한 인물이자 세심한 기록자 장 타루 등등 평범하지만 보석 같은 인물들이 많아서 무척 흥미롭게 읽어가는 중이다.
    • 과연 다음주까지는 다 읽을 수 있을까? 그 전에 다른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야 할 터인데.
  2. 테리 이글턴,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지하철 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습관처럼 서점에 들렀다가 발견하고 집어온 책. 잠시나마 미학 공부를 했던 – 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미학 수업을 여러 개 들었던 – 사람으로서 그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는 듯 하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문학을 ‘읽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인데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문학비평의 기초 이론 혹은 방법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소설을 읽었지만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최근에 집중적으로 읽으면서 단지 즐거움을 위해 이야기를 좇는 것 이상으로, 소설(혹은 시)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나니 운명인가 싶어 집어 들었다.
    • 이제 막 첫 장을 읽었는데, ‘도입부’라는 주제를 가지고 무척 섬세하게 분석해 들어간다. 이야기의 구조 자체에도 관심이 있지만 그보다는 말의 쓰임새, 혹은 언어의 형식미에 관심이 많은 나는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한 구절 한 구절을 구문 단위로 쪼개어 가며 읽어내는 방법을 보여주는데 내가 알고 싶던 바로 그 지점에 한없이 가까워 앞으로 즐겁게 읽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산 책

그렇다. 아직 읽지 않은 책도 산더미이지만, 또 샀다. 아니, 사버렸다.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는 점점 더 불어나고 있다. 가장 많이 담겨 있는 교보문고 장바구니는 이미 50만원 어치를 훌쩍 넘긴지 오래. 언젠가 다 청산할 수 있을까. 그거야 그때 가서 고민해보기로 한다.

  1. 이전부터 사려고 했던 책 –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2. 새로 눈에 들어온 책 – 테리 이글턴,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3. 이전에 읽은 책의 확장판 –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몰입>
    • 참고로 이전에 읽은 책은 동 저자의 <몰입의 즐거움>. 찾아보니 <몰입 Flow>이 1990년에, <몰입의 즐거움 Finding Flow>이 1997년에 나왔다고 한다. 요즘 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간접적으로나마 참고해볼 거리가 있을 것 같아서 구입. 아직 읽어본 적은 없으나 유사한 맥락을 다루고 있는 (것 같은) <그릿>도 읽어보려 한다.
  4. 인터넷 서점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점찍어둔 책 – 마쓰우라 야타로, <일의 기본, 생활의 기본 100>

 

그 외의 읽기

The New Yorker를 구독하고는 있는데 매주 구경만 하는 것 같다. 올해부터는 단편 소설을 꾸준히 읽어가기로 했는데, 일단 올해 받은 두 호수 중에 하나는 읽었다.

지난 호수에도 중국계 미국인 작가 Yiyun Li의 자전적 에세이 “To speak is to blunder”가 실려서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번 호수에도 역시 같은 작가의 단편 소설, “On the street where you live”가 실렸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작가가 영어로 소설을 쓰는 경우는 왕왕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자신의 모국어를 완전히 버리는 경우는 드물다. Yiyun Li는 자신은 모국어를 버렸으며, 그것이 자신에게 모종의 자유를 가져다 주었다고 담담하게 고백한다. 무언가 마음을 잡아 끄는 구석이 있는데, 정확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그녀의 다른 글들을 좀 더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나면 그녀에 대해 무언가를 써보고 싶다.

 

1월 첫째 주에 읽은 책들

지난 일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느라 정신 없이 바쁘던 한 주도 끝나간다. 올해에는 주말에는 되도록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새해 첫 주말부터 일에 파묻혀 지낼 예정이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일하러 간다는 생각을 해도 전혀 괴롭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 일들이라 힘들지는 않다. 다만 그런 와중에도 나 자신을 위한 틈을 내는 것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 틈을 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일. 자세히 기록하지는 못하더라도, 일단은 기억해두기 위해 기록으로 남겨둔다.

다 읽은 책

  1.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외,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올해의 첫 책. 한 해를 시작할 때 생각해보면 좋을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어서 마음에 새겨가며 읽었다. 보편적이고 다소 추상적인 수준의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의외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 꽤나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런 경영 서적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 있었는데, 지향점에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도달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라는 생각이 들어 올해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읽어볼 생각이다.
    •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2012
  2. 칼 필레머,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당신도 알게 된다면>
    • 친구의 선물로 읽게 된 책. 앞서 적은 책 역시 친구가 작년 생일 선물로 사준 책이다. 그녀가 사준 책들은 고스란히 내 삶의 보물이 되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꽤 오랫동안 서점에 가면 베스트 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책이라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제목만 보고 빤하고 진부한 내용일 거라 생각해서 읽을 생각도 않고 있었다. 분명 이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 자체는 빤하고 진부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메시지를 얻은 방법 – 1,000명에 달하는 70대 이상 노인들과의 인터뷰 – 에서 이미 설득력이 있고, 책에 담긴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는 모두 강한 힘이 있어 마음을 움직인다.
    • 이 책을 다 읽은 날 (사실은 바로 어제), 오랜만에 사랑하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반갑게 전화를 걸었건만 목소리에 기운이 없었다. 건강에 이상이 있어 수술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항상 의젓하고 차분한 친구가, 예의 그 담담한 목소리로 “그런데 나 조금 겁이 나나봐.” 라고 이야기하는데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가장 열심히 사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작은 일도 허투루 넘기는 일이 없고,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엄살이 심하고 조금 힘들다 싶으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스스로에게 휴가를 주고 마는 베짱이 타입인 나는 내심 늘 그녀를 존경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때때로, 내가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가 책임감에 짓눌려 괴로워하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아팠다. 그것이 그녀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도, 한 번 일을 맡으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사람이라 결국 건강까지도 일에 내어주고 만 것이다. 다 잘 될 거라는, 상투적이기 그지 없는 위로를 건네고 전화를 끊은 뒤 나는 그녀에게 이 책을 선물해 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줄 수 없는 위로와 격려를 이 책이 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마침 그날 이 책을 읽어서 서투른 위로를 대신 전할 방법을 찾은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 이 책도 잔뜩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사실은 사랑과 관계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의 후속편도 함께 선물받았는데, 다 읽고 나서 함께 포스팅을 하려고 한다.

읽고 있는 책

  1. 알베르 까뮈, <페스트>
    • 고등학교 때인가 잡지 <독서평설>에서 처음 축약본을 읽고, 대학에 와서 책세상 출판사의 까뮈 전집판본으로 읽었는데 최근에 다시 읽고 싶어져서 민음사 판으로 다시 샀다. 다시 읽고 싶어진 계기는 최근에 자주 생각하는 주제 중 하나가 ‘평범한 인간의 고결함’인데, 이 생각을 하다 갑자기 페스트의 주인공, 의사 리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참 전에 읽은 책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책을 펼쳤다.
    •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인물이나 배경의 묘사가 인상 깊다. 맨 첫 장을 넘기자마자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벌써 밑줄을 몇 개를 그었는지 모르겠다. 이를테면,
      • 어떤 한 도시를 아는 편리한 방법은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12쪽)
      •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랑에서도 시간이 없고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사람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3쪽)
    • 리유라는 사람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구절들도 평범하지만 묵직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예전 독서의 기억으로 이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를 갖고 읽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는 걸지도 모르겠다.
      • 리유는 언성을 높이지 않은 채, 자기로서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 없으나, 그것은 자신이 몸담아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지쳐 버렸으면서도 동류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있으며, 또 자기 딴에는 불의와의 타협을 거부하기로 결심한 한 인간의 발언이라고 말했다. (23쪽)
    • 평이하게 쓰여졌지만, 마치 최근의 세태를 반영하는 듯 의미심장한 구절도 있다.
      • 쥐들의 사건을 가지고 그렇게 떠들어 대던 신문이 이제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쥐들은 눈에 띄는 거리에 나와 죽었지만 사람들은 방 안에서만 죽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신문은 오직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51쪽)
    • 확실히 다시 읽으니 느낌이 새롭다. 여러 책들을 동시에 읽느라 아직 2부까지밖에 못 읽었는데, 다 읽고 나면 역시 한 번 따로 포스팅을 할 계획이다.
  2. 조던 엘런버그, <틀리지 않는 법>
    • 아마 내가 처음으로 산 교양 수학 책인 것 같다. 서문을 읽고 완전히 반해버렸다. 사실은 이 블로그의 제목인 ‘보이지 않는 것들의 아카이브’ 역시 지금 생각해보니 이 책의 내용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들 뒤에 숨은 진실을 발견하는 ‘수학적인’ 방식을 알려주는 이 책은 우리가 학창시절 내내 ‘도대체 이런 걸 왜 배우는 거야?’라고 생각하던 수학이 실제 우리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물론 수업 시간에 배우던 내용과는 많이 다르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들과 연관 되어 있는 부분도 많이 있다.)
    • 수학이 왜 사고력을 길러주는 학문인지를,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가 수학하면 떠올리는 복잡한 수식과 연산 기호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수학적 사고 방식의 실체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이 책의 저자인 조던 엘렌버그는 수학자이지만 소설책을 낸 적도 있는 작가이다. 그래서인지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실제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웃음을 터트렸다. 아마 이 책을 더 어렸을 때 읽었다면, 나는 수학을 훨씬 더 좋아했을 것 같다. 그렇다고 과연 수학성적이 올랐을지는 의문이지만. 지금이라도 읽게 되어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총 18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12월 초부터 야금야금 읽기 시작해서 이제 12장까지 읽었다. 급하게 읽을 책은 아니기 때문에, 자기 전에 마음이 내킬 때마다 한 장씩 읽고 있다. 밑줄을 그어둔 부분도 많고, 이 책과 연관지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관계에 대해 간단하게 생각을 정리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언제? 물론 다 읽은 뒤에.
  3.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충분하다>
    • 내가 시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해준 책, 김소연 시인의 <시옷의 세계>에서 짧게 인용된 구절을 보고 늘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 부산 여행 때 들른 남포동 영풍문고에서 구입한 책. 들고 다니면서 조금씩 읽고 있다. 시에 대해서 쓰는 것은 아직 어렵다. 일단은 읽고 있다는 사실 정도만 기록해 둔다.

선의는 왜 종종 실패하는가

일을 하다 보면, 때때로 – 그러나 생각보다는 훨씬 더 자주 –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열정과 선의로 무장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사람들은 자극제다. 스스로의 동기와 목표 의식에 대해 점검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채점표 같기도 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들의 선의는 때때로  – 역시나 생각보다는 훨씬 더 자주 – 실패한다.

* 물론 이 문장에는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아주 많다. 이 문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선의란 무엇인가, 라는 결코 쉽지 않은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또 한가지 문제가 되는 부분은 실패이다. 성공과 실패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는 철저히 나의 개인적인 관점에 의거하여 실패를 1) 처음의 동기를 계속해서 가지고는 있으나 그 동기를 달성하기 위한 활동을 내외부적 요인에 의해 중단하게 된 경우 2) 모종의 동기를 달성하기 위해 시작한 활동을 계속 해오고 있으나 그 목적이 변질되어 동기가 상실된 경우로 정의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선의에 대해서는 차차 생각해 나가려 한다.

지금까지 내가 살펴본 경우들에서 선의가 실패하는 경우, 대부분의 원인은 ‘돈’이다. 나는 인생에는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훨씬 더 많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갖고 살아왔고, 돈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알게 모르게 꺼려웠다. 돈이 개입되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실제로 주변에서 벌어지는 많은 비극의 원인은 돈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돈 때문에 생기는 비극을 피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처음과 같은 열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경제적인 기반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선의를 가진 활동이 중단되는 것은 개인에게도 비극이지만, 공동체에게도 커다란 손실이다. 때로는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목적에서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다가, 주객이 전도되어 버리기도 한다. 이 경우 역시 나는 실패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처음의 선한 동기를 유지하면서도 활동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에는 과연 경제적 원인이 전부일까?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다른 더 중요한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진심으로 좋고, 이 일이 나는 물론이고 이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이 일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두렵다. 이 일이 또 한 번,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실패하는 사례로 끝이 날까봐.

아직 아무런 결론은 없지만, 일을 하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해보려 한다. 나 혼자 고민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함께 답을 찾아가려 한다.

막상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 눈 앞에 놓인 급하고 중요한 일들, 그리고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밀려 깜빡하면 고리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계속 상기시키려 여기에 적어 둔다.

어떤 만남

 

모든 사람에게는 배울 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있어야 한다. 배운 것을 복습하는 성실함 또한 무척 중요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어렵게 배운 것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나는 자려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서 이 포스팅을 쓰고 있다. 오늘 배운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나는 스스로 늘 인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가진 지식의 대부분은 책에서 얻었지만, 내가 만난 좋은 기회는 모두 사람에게서 왔다. 오랜만에 정말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 일을 하게 된 것도 좋은 사람 덕분인데, 이 일을 함으로써 좋은 사람들을 또 알게 된 것 같다. 아직 새로운 동료들을 두 번 밖에는 못 만났지만 둘 다 아주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다. 함께 일하게 되었으니 아주 자세히 관찰하면서 좋은 점들을 적극적으로 배워 나갈 생각이다. 짧게 들려준 이야기 조각들에서도 벌써 이렇게나 좋은 자극을 받았는데, 앞으로 이들을 통해 나는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성장하게 될까.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다.

서론은 이쯤 하고, 오늘의 내가 배운 것을 정리해 보겠다. 그들에게 해가 될 내용은 절대 아니지만 아직 양해를 구하지 않았음으로 익명으로 표기하고자 한다.

1.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 A는 예전에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에 갔을 때의 홈스테이의 호스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족 농장과 와이너리를 경영하면서도 40년간 잡지를 만들어 왔다는 호스트의 이야기도 놀라웠지만, 내가 정말 감동받은 것은 그녀가 그 호스트를 만나게 된 계기였다. 호주에 간 초기에 A는 카페 겸 유기농 식료품 점에서 일을 했다. 그 가게에는 유기농 와인이 딱 두 종류 들어와 있었는데, 그녀는 그 중에 더 라벨이 예쁜 곳에다 직접 전화를 걸어 비자 문제로 농장에서 일해야 하는데 나를 채용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처음에 전화를 받은 호스트는 무척 당황하며, 지금은 일자리가 없다고 했지만 그녀는 끈질기게 당신네 농장에 자리가 없다면 다른 사람이라도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녀의 끈기에 감복했는지, 그 호스트는 마침 근시일 내에 멜버른에 갈 일이 있으니 그때 만나서 얘기를 하자고 했다. 만나서 그녀의 얘기를 듣고, 호스트는 마음을 바꿔 그녀를 고용했다. (사실 이 부분은 분명치 않다. 그저 방을 빌려준 것인지, 직접 고용을 했는지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 이 부분에서 나는 처음으로 충격을 받았다. 나라면 우선 그런 식으로 전화를 걸어 알아볼 생각도 못했을 뿐더러, 설령 전화를 걸어보았다 하더라도 일자리가 없다고 한다면 바로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끝끝내 설득해서 원하던 것을 얻었다. 아마 결국 이 호스트와의 만남이 불발되었다손 치더라도, 그녀는 아마 포기하지 않고 다른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냈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미 그녀에게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 또 한 가지는, 그때 만난 호스트와 아직까지도 연락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멘토처럼 생각하면서 이번 일을 할지 말지에 대해서도 전화로 상의를 했다고.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바보 같게도 혹시 그 호스트가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다. 외국에서 오래 전에 만난 인연을 그렇게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다니. 그것은 관계에 대한 성실함이 결여되어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이 부분에 특히 취약하고, 실제로도 일본에서 교환학생을 다녀온 이후에 친구들과는 거의 연락을 하고 있지 않다. 내가 SNS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핑계였지만, 사실 맘만 먹는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연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과 관계를 맺고, 또 그것을 잘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나로서는 정말 놀라운 부분이었다. 인간관계는 나에게 큰 기쁨을 주지만, 그만큼 큰 고통을 주기도 한다. 적정선을 찾는 것이 늘 어렵다고 느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나의 인간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2.

B는 휴학 중인 학생이다. 파트타임으로 우리와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3월부터는 복학을 해서 그 이후로도 함께할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사실 기껏해야 7월까지 진행되는 프로젝트인데 2월까지밖에 일할 수 없는 사람을 구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처음부터 7월까지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모로 보아도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를 만나자마자 나는 그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진심으로 이 일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매 순간,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묻어나왔다. 즐겁게 일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진정으로 즐겁게 일하는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는지를 되묻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일종의 이정표이다.

B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인데, 그녀는 단지 주어진 일을 즐겁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서고, 심지어는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나는 그녀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자그마치 4년 동안 거의 매일 같이 영화 퀴즈를 올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한 번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 그 성실성에 나는 두 손을 들었다. 그건 그 일을 정말 사랑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내가 함께 일 할 사람을 찾는 중이라면, 나는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그녀를 채용할 것이다. 아니, 그저 그녀와 일하고 싶어서라도 그녀가 재미있어할 만한 프로젝트를 만들어낼 것 같다.

내가 잘 시간을 미뤄가면서까지 이 포스팅을 하는 것은 바로 그녀 때문이다. 매일 한 개 씩 포스팅을 하자고 결심해놓고 사실은 일 핑계로 미루려고 했다. 딱히 쓸 거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려고 누우니 자꾸만 오늘 만난 두 사람 생각이 났다. 나는 스스로가 행동력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둘에 비하면 나는 생각만 하고 실제로 하는 일은 열에 하나도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게으른 몸을 일으켜 노트북을 펼쳤다.

내가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경험이다. 그래서 나는 이 경험을 십분 활용할 생각이다. 요즘 나는 살면서 거의 가장 행복한 시기를 살고 있다. 어렴풋하게나마 내가 되고 싶은 상이 그려졌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된 것도 다 내 주변의 고마운 사람들 덕분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씨앗을 던져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