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번째: 여행에서 돌아오다

2018. 5. 30.

수요일

 

열흘 간의 미 서부 여행을 마치고, 어제 새벽 한국에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후다닥 짐을 풀고, 빨래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컵라면과 김치로 그리운 매운 맛을 느끼고는 실컷 잤다. 스무 시간은 족히 잔 것 같다. 달디단 잠이었다.

어릴 때는 여행을 떠나면 뭔가 대단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단지 타국 땅을 밟고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가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구 반대편에 산다고 해서 우리와는 아주 다른 삶을 살아가는게 아니라, 저마다의 일상을 영위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여행은,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었다.

어느새 결혼을 하고 세 번째 여행이다. 남편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혼자 떠나는 여행과는 무척이나 다르다. 친구와 떠나는 여행과도 다르다. 지구상 어디에 있어도 이 사람과 함께 하는 동안은, 우리가 있는 여기가 우리의 집이자 생활의 터전 같은 느낌이랄까. 태평양을 건너왔어도 남편은 한결같다. 잘 먹고, 잘 잔다. 자기 물건을 살 때에는 가성비를 엄청나게 따지면서, 내가 무언가를 산다 할 때에는 또 의심스러울만치 너그럽다. 인터넷이 터지는 곳에서는 유튜브를 찾아보고, 야구 경기의 결과를 확인하고, 늘 가는 네이버 카페의 유머방을 들락거리며 피식피식 웃는다. 그런 한결같음에 내가 지금 서울에 있는 건지, 라스베가스에 있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었지만, 여행이라고 해서 마냥 붕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딛고 있는 듯한 안정감이 들어 좋았다.

무엇보다 편안했다. 스스로를 가장하거나 꾸밀 필요가 조금도 없는, 나의 방어막을 완전히 해제하게 만드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서울에서는 한 집에 살면서도 일주일에 밥 한 끼 같이 먹기 힘든 우리지만 여행에서는 24시간 내내 붙어 있었는데도 불편함이 없었다. 특별히 더 로맨틱하거나, 특별히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더없이 우리다운 시간을 보냈다. 언제 이렇게나 자연스러워진 것일까. 함께 보낸 10년의 세월의 힘이란 이런 걸까.

한때는 이 사람이 나를 평범하게 만든다는 생각도 했었다. 이 사람만 아니라면,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접하고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그런 마음이 들어 실제로 이 사람을 떠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의 곁을 떠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내가 아는 세계 안에 머물렀다. 그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정말 나가고 싶었다면,  그와 관계 없이 나의 의지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탓을 하는 것은 가장 손쉬운 자기 합리화니까. 이제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조금 더 현명해진 나는,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다른 누구의 책임이나 덕분도 아닌 온전히 나의 선택 때문임을 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퍽이나 만족스럽다.

어제 돌아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벌써 지난 열흘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고, 출근을 앞두고 있다. 남편과 함께 미국에 다녀왔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럴 거면 굳이 왜 돈과 시간을 들여 그 멀리까지 다녀왔을까 하는 의심을 맘 한켠에 품고.

그래도 우리는 아마 다시 떠날 것이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여기가 내가 있을 자리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 삶은 변함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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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무라 미즈키, 아침이 온다, 2017

2018. 5. 13.

일요일

 

오늘 아침에 만난 친구가 추천해준 책을 집에 오는 길에 사서 두 시간 만에 다 읽었다. 일본 소설을 읽은 건 참 오랜만이다. 한때는 일본 소설에 푹 빠져, 일본 소설만 읽었던 시기도 있었다. 벌써 십 년도 더 된 일이다. 그뒤로도 간간이 읽었으나 어느새부터 읽지 않게 되었다. 대단한 결심을 한 것도 아니고 다만 흥미가 떨어졌을 뿐이었다. 그러다 오늘 친구의 추천을 받고 왠지 마음이 동해서, 서점을 두 군데나 들러 결국 사왔다.

소설이 지닌 여러 가치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간접 경험’이다. 생전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던 일을 별안간 내 일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렇게 버젓이 존재하는 세계를 어쩌면 그리도 까맣게 모르고 살았을까.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만큼 내가 볼 수 있는 세계가 넓어진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나의 세계를 넓히는 일이다. 내가 모르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의 삶을 잠시 대신 살아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소설을 많이 읽으면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본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해의 범위와 공감의 깊이는 넓어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다.

츠지무라 미즈키의 <아침이 온다>는 그런 소설이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그러나 코앞에 존재하던 세계를 드러내 보여주는 소설. 이전까지는 나와 무관하다 생각하던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게 해주는 소설. 그로 인해 조금쯤은 더 나은 인간에 가까워지게 만들어주는 소설 말이다.

친구를 잘 둔 덕분에 평생 몰랐을 책 한 권을 더 읽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토코와 히카리, 고노미에게 축복이 있기를.

 

5월의 독서(1)

2018. 5. 8.

화요일

 

어느새 5월이다. 이럴 수가!

시간은 늘 쏜살같이 흐른다. 그 흐름 안에서 흐느적거리고 있는 나. 전반적으로 삶에 대한 권태기인가. 이 날씨 좋은 5월에 권태기라니,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자꾸만 해야할 일들을 다 해내지 못하는 악몽을 꾼다. 산더미 같은 일들이 물리적인 무게를 가지고 나를 짓누르는 꿈을. 어떤 때는 쫓긴다. 그러다 눈을 뜨면 현실은 더 지옥이다. 꿈에서 나를 쫒던 일들 중 어느 것 하나 끝나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고, 결국은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인데. 일들이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기보다는,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다. 아마 앞으로도 해야할 일들은 꾸준히 있을 것이다. 이 일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요즘 부쩍 생산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기왕 할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아끼면서 즐겁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러나 이런 저런 책들을 뒤적여보아도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항상 긴장 상태에 있는 생활. 그나마 발레를 할 때에는 신경을 딴 데로 돌려놓을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읽는다. 어디에도 가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빼곡한 글자들 속 어딘가에 길이 있으리라 믿으며. 숨 고르기.

 

다 읽은 책

  1.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
  2. 장인성, <마케터의 일>
  3. 티모시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읽고 있는 책

  1. 리처드 플래너건, <굴드의 물고기책>
  2.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산 책

  1. 릴리쿰, <손의 모험>
  2. 문태준,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3. 장인성, <마케터의 일>
  4.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
  5. 유희경,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6. 강성은, <단지 조금 이상한>
  7. 우치다 다쓰루,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8. 가와사키 쇼헤이, <리뷰 쓰는 법>
  9. 매튜 B. 크로포드, <손으로, 생각하기>
  10. 인텔리전트 체인지, <하루 5분 아침 일기>

*1~3: 광화문 교보문고(4/26), 4~8: 광화문 교보문고(5/3), 9: 강남 신세계 반디앤루니스(5/5), 10: 여의도 영풍문고(5/7)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 2018

2018. 5. 3.

 

편혜영의 새 장편 소설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 샀다. 그리고 바로 근처 카페로 가, 한 시간 즈음 만에 다 읽었다. 본래는 함께 산 다른 책들도 둘러볼 의향으로, 잠깐 읽고 덮으려 했으나 놓을 수가 없어 계속 읽었다.

편혜영의 소설을 읽으면, 소설 쓴다는 것은 사회를 개인의 삶에 투영하는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한 사람의 인생, 한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결코 개인적일 수만은 없음을. 평범하디 평범하고 너무나 인간적인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일깨워준다.

전작 <홀> 만큼의 임팩트는 없으나 역시 편혜영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홀>보다는 <선의 법칙>을 떠올리게 하나 그보다는 훨씬 절제된 느낌. 시종일관 냉정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끝에는 의외의 온기가 남는다.

오랜만에 밀도있게 읽은 소설.

 

34번째: 질투와 영감

2018. 5. 3.

목요일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나는 질투와 영감이라 말하련다.

게으른 나를 충동질하는 것은 질투와 시샘. 사랑에 빠진 사람 마냥 눈을 반짝이며 일이야기를 하는 보면, 야무지게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을 보면, 그리고 정확하게 자기 일(+그 일을 왜 하는지)을 설명하는 사람을 보면, 절로 질투가 난다. (물론 그 외에도 나의 질투를 유발하는 수천수만가지 상황이 있다.) 어쩜 저렇게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있지?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하고.

오늘은 깨작깨작 글을 고치다가, 나와 업무가 겹치지 않는 파트너사의 한 매니저가 미디엄에 올려놓은 글을 읽고 질투에 사로잡혔다. 글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에너지가, 열정이, 포부가 좋았다. 그리고 조금 부끄러웠다. 지금의 나는 그마만큼의 에너지와 열정과 포부를 가지고 이 일을 하고 있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는 행운.

그냥 하지 않고, 잘 하고 싶다. 기왕이면. 그리고 꾸준히 하고 싶다. 정확하게 하고 싶다.

마음이 능력을 앞서는 아침. 그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