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째: 심기일전

2017년 7월 19일

수요일

 

오늘은 외국어모임이 있는 날. 과연 잘 될까 싶었던 모임이 벌써 다섯 번째 이어지고 있다. (네 번째인가?) 느슨한 틀만 있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모임 시작 전에는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모임까지 참여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역시 막상 시작하면 즐겁다. 안 쓰던 외국어 근육을 살살 풀어주는 느낌이랄까. 단련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기쁨도 크다. 스페인어를 조금씩 같이 공부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인데다 따로 시간내어 공부를 하지도 않으니 매일 제자리걸음만 하는 중. 그래서 오늘은 예전에 깔았다가 지운 듀오링고 앱을 다시 다운받았다. 하루에 10분씩이라도 꾸준히 해봐야지. 언젠가 백년의 고독을 원어로 읽을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한국어로 된 책 중에서도 읽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고민인 내가 과연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있을지는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오늘 있었던 좋은 일 또 하나. 종종 오시는 세 자매의 어머니께서 빵집에 갔다가 생각이 나서 사왔다며 맛있는 빵을 선물해주셨다. 더욱이 아이가 직접 골라준 빵이라 하니 기쁨도 두 배. 갑자기 받은 따뜻한 마음에 가슴 한켠이 몽글몽글해졌다.

학원처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오고 싶으면 오고, 오기 싫으면 안 와도 되는 공간이다보니 매일 같이 오다가 갑자기 발길을 뚝 끊는 아이들도 있다. 매일 같이 와서 쉴새없이 조잘거릴 때에는 솔직히 조금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막상 안 오면 또 보고 싶고 궁금하다. 그러다 또 다시 나타나기도 하고, 영 오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오지 않더라도 즐겁게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아이들에게 한결 같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데, 사람인지라 그게 쉽지 않다. 도무지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는 날도 있다. 그래도 다시 안간힘을 써서 들어 올린다. 기쁨을 나누지는 못할 망정, 스멀스멀 나쁜 에너지를 풍기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내일은 코바늘 모임이 있는 날이다. 출근 전에는 새집에 들러 페인트 사공 반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잔금을 치러야 하고, 출근해서는 코바늘 모임, 금요일 회의 준비와 블로그 셋업을 해야 한다. 야근을 해도 할 수 있을까 말까한 양인데 퇴근 후에는 피부관리실을 예약해 두었다. 갈 수 있을까. 빠지고 싶지는 않은데.

긴 하루가 될 테니 빨리 눈을 붙여야겠다. 눈커풀이 무거워져 온다.

3일째: 무기력한 나날

2017. 7. 18.

화요일

 

작심삼일째. 벌써 귀찮아지기 시작했지만, 이렇게 그만둘 수는 없어 억지로 몇 자 적어본다.

결혼준비는 내내 크고 작은 결정들의 연속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혼자만의 결정은 쉽게쉽게 내리는 편인데,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걸려 있는 경우에는 생각이 많은 습성이 진가를 발휘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보낸다.

처음 갖게 된 내 집(물론 전셋집이지만)이니 욕심을 내고 싶은데, 혼자만 살 집도 아니고 예산도 한정되어 있으니 하나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게다가 처음에는 무난히 괜찮은 줄 알았는데 짐이 다 나가고 나니 집 상태가 생각보다도 더 좋지 않아서 손볼 데가 너무 많다.  그러다보니 하루종일 머릿속에는 온통 집 고칠 생각만.

멀티태스킹을 워낙 못해서 이렇게 한 분야에 에너지를 많이 쓰면 상대적으로 다른 쪽에는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프로젝트도 앞으로의 향방을 결정해야 할 중요한 시기인데 에너지가 달린다. 자꾸 변명만 늘어놓게 되는 것 같아 괴로운데 마음은 왜 이리 또 붕 떴는지.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프리랜서 시절에는 잠시 놓았다고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일에 몰두할 수 있었는데 매일 출퇴근을 하며 기본적인 일과를 소화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 슬럼프는 배부른 소리이다. 게다가 매일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데. 과열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휴식이 절실하다. 스무시간 정도 깨지 않고 내리 자면 좀 나아지려나. 그런데 언제나 돼야 그렇게 잘 수 있으려나.

2일째: 2017년 7월 17일

무척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지는 월요일이었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으나 머리는 붕 떠 있는 것 같은 상태였다. 그래도 많은 일들을 처리해냈다. 생각했던 일정대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겠다. 다른 문제가 코앞으로 다가오니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이것도 다 핑계일까?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조금 일찍 퇴근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 스스럼없이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다.

아침에 보도 섀퍼의 ‘돈’을 읽기 시작했다. 돈돈 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혼을 준비하다보니 언제까지고 이렇게 외면할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시작으로 돈 공부를 좀 해보려고 생각중이다.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남아 있지만, 김연수 가라사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나빠질 수밖에 없’으니까.

출퇴근 길에는 The New Yorker에 실린 체첸의 LGBT 탄압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이런 기사를 읽을 때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야만적인 일들이 내가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점심 메뉴에 대해 고민할 때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와닿는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1일째: 2017년 7월 16일

매일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단순한 일처럼 들리지만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작심삼일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하루에 한 줄이라도 꾸준히 쓴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보기 위해 뭐가 되었든 일단 써보려 한다.

이런 결심을 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두 가지 있었으니, 하나는 친구와의 대화요, 둘은 근래에 읽은 김연수의 글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가만히 놔두면 변한다. 전부 안 좋게 변한다. 예컨대 가만히 놔두면 내 배에는 살이 붙는다. 살도 예쁘게 붙으면 근육처럼 보일 텐데, 대개 안 예쁘게 붙는다. 왜 이렇게 살이 붙는지 복잡하게 설명할 수도 있으리라. 최근에 신문을 보니까 잠버릇이 나쁘면 남들보다 암에 걸릴 확률이 몇 배나 높고, 치실을 사용하지 않으면 또 얼마가 높다고 나오던데, 배에 살이 붙는 이유도 그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십오 년 동안 달린 내 경험에 따르면, 배에 살이 붙는다는 건 한동안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달리기를 하면 이 살은 없어지고 근육이 예쁘게 생긴다. 그러므로 배에 살이 붙는 건 다시 달리라는 신호다.

가만히 놔두면 안 좋게 변하는 건 운명이나 팔자 탓이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과학에서는 이걸 ‘엔트로피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가만히 놔두면 내 책상은 지저분해지고, 수염은 제멋대로 자라고, 바닥에는 지우갯가루가 흩어져 있게 되는데, 이건 우리가 사는 우주가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이 우주에 인생이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까닭도 이 때문이다. 어딘가에는 가만히 놔두면 시간이 갈수록 방이 점점 깨끗해지는 우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생은 글렀다. 그런 우주로 가려면 지금의 나는 죽은 뒤 또다른 나로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 목숨이 아깝다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이 우주를 생긴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73-74쪽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자조적으로 신세를 한탄할 때 사용하는 줄임말, ‘이생망’을 떠올리게 하는데 뒤에 이어지는 결론은 전혀 다르다. 이번 생은 망했으니 어차피 안 된다는게 아니라, 이런 우주에서 사는 우리가 무언가를 지금보다 낫게 만들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뭐라도 해야 된다는 거다. 여기서는 소설가가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계속 해서 다시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우주 이야기까지 끌고 들어온 것인데(김연수 이 사람, 스케일이 보통이 아니다), 나는 요근래 지치고 힘들 때마다 이 이야기가 자꾸 떠올랐다. 귀찮고 힘들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나는 김연수의 이 문장들을 떠올리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어딘가에는 가만히 있어도 건강이 좋아지고, 우정이 깊어지고, 원하는 문장을 쓰게 되는 우주도 있겠지만 엔트로피의 법칙이 적용되는 이 우주는 안타깝게도 그런 곳이 아니니까. 투덜거림이 묻어나오지만 유쾌한 이 문장에 나는 적잖이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뭔가를 해볼 마음이 생겼다.

이 일기는 그렇게 등떠밀려 내딛은 첫 번째 발걸음이다.

6월 마지막주부터 7월 둘째주까지 읽은 책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고, 너무나 많은 죽음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했던 세계가 눈앞에서 펼쳐졌다. 되도록이면 보고 싶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면 영영 모르는 상태로 남아 있고 싶었다. 근래의 경험 – 아직 끝나지 않은 – 은 나에게 성장할 것을 강요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종이와 활자로 배우는 것에만 익숙한 내 앞에 억지로 드러난 세계는 위장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헛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비린내가 생생한 날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보기 좋게 가공된, 진공포장된 세계 안에서만 살아왔음을, 내가 아무리 많이 보고 듣고 읽었다 하더라도 내가 아는 것은 새끼손톱 끝의 반달무늬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디 적은 양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일은 지지부진하고, 생활은 궤도를 벗어났다. 스스로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은 몇 번을 마주해도 결코 쉬워지지 않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들은 순간순간 벌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번쩍 뜨고, 가슴을 활짝 열어야 하는 이유다.

잔뜩 의기소침해 있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오늘도 일찍 퇴근하는 길에 서점을 찾았다. 세 권을 고르고 돌아가려는 길에 우연히 벽에 붙은 광고로 심보선의 새 시집이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서점에 재고가 있어 얼른 한 권을 집어 들고, 내친 김에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 500호 기념 시집도 샀다. 그대로 돌아섰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이 뜻밖의 행운에 도무지 걷힐 것 같지 않던 마음이 순식간에 맑아졌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순간을 만날 때 행복이 가까이에 있음을 실감한다.

 

다 읽은 책

  1. 팀 하포드, 윤영삼 옮김 <메시>
    • 때로는 질서와 체계보다 무질서와 혼란에서 더 좋은 것들이 만들어진다. 익히 알려진 사례들을 잘 엮어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예로 사용했다. 특히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체계 없음과 무질서함에 스트레스 받고 있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된 책. 내가 처한 상황을 180도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깨달음을 공유하고 싶어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도 선물했다.
  2. 라이오넬 슈라이버, 송정은 옮김, <케빈에 대하여>
    • 간담이 서늘해지는 스릴러. 인간과, 악, 그리고 모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읽고 나면 마음은 착잡해지고 머리는 복잡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영화를 보지 않고 책만 읽었는데 흡인력이 대단하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와 <엄마됨을 후회함>이 동시에 떠올랐다. 이렇게 마음이 힘든 책을 두 번 읽기는 쉽지 않겠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임은 분명하다.
  3. 이영지, 조성림, <오래 쓰는 첫 살림>
    • 처음으로 내 살림을 꾸리게 되니 준비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알쏭달쏭해서, 평소 습관 대로 책부터 집어들었다. 여러 권을 들고 비교했는데 평소 나의 취향에 가깝고 살림 꾸리기 전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물론 책에 실린 조언을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내 몫이지만 나름의 기준을 세우는 데 나쁘지 않은 조력자였다.

 

읽고 있는 책

  1. 백영옥, <빨간 머리 앤이 하는 말>
  2. 하바 요시타카, 홍성민 옮김,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3. 서정학,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산 책

  1. 이규리,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선물용
  2. 우치누마 신타로, <책의 역습> *선물용
  3. 라이오넬 슈라이버, <케빈에 대하여>
  4. 하바 요시타카,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5. 앨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
  6. 팀 하포드, <메시> *선물용
  7. 이영지, 조성림, <오래 쓰는 첫 살림>
  8. 팀 하포드, <메시> *선물용
  9. 김소연, <시옷의 세계> *두 권, 선물용
  10. 제시카 트레이시, <프라이드>
  11. 토마스 핀천, <느리게 배우는 사람>
    • 김연수 <소설가의 일>에서 보고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책을 우연히 발견해서 고민 없이 집어들었다.
  12.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 번역가 김남주의 에세이, <사라지는 번역가들>에서 짤막하게 소개한 것을 보고 읽고 싶다 생각했으나 한동안 잊고 있다가 오늘 마주쳐서 구입했다. 올해 들어 조금씩 읽기 시작한 SF 소설의 다음 주자가 될 듯.
  13.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 전혀 모르는 작가지만, 뒷표지에 인쇄된 작가의 말에 쓰인 ‘사랑’이라는 진부한 단어가 오히려 궁금증을 자극했다. 게다가 믿고 읽는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니까. 이렇게 갑자기 끌려서 산 책들의 상당수가 지금 내 보물책 목록에 올라와 있다.
  14. 심보선, <오늘은 잘 모르겠어>
    •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경위는 위에 적어두었다. 내가 제일 처음으로 선물 받은 시집이자 처음으로 끝까지 읽은 시집이 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15초>이고,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선물한 시집이 심보선의 <눈앞에 없는 사람>이다. 이 시집의 문을 여는 시, <인중을 긁적거리며>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중 하나)이다. 그리고 오늘 그의 세 번째 시집을 손에 넣었다. 펼치기도 전에 가슴이 콩닥콩닥. 아껴 읽어야지.
  15. 오생근, 조연정 엮음,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
    • 나의 시집 컬렉션의 70%를 차지하는 게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이다. (그 다음은 문학동네, 그 다음은 민음사.) 500권 전권을 다 모을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나에게 시의 세계를 처음으로 알려준 시리즈라 한 번 사 보았다. 기념하기 위해서.
  • 1-2 반디앤루니스 인터넷(6/27)
  • 3-4 북티크 서교점 (7/1)
  • 5-7 교보문고 강남점 (7/2)
  • 8-10 인터파크 도서 (7/6)
  • 11-15 교보문고 광화문점 (7/14)
  • 이번에는 유난히 선물할 책을 많이 샀다. 같은 책을 여러 사람에게 선물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해준다는 것은 무척이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다. 이사갈 집은 공간이 좁아서 책을 대폭 줄여야 할 텐데, 이렇게 계속 들이기만 해서야 처분할 일이 걱정이다.

 

 

6월 1일 ~ 26일까지 읽은 책

습관을 들이기는 어렵고, 없애기는 너무 쉽다. 상반기 내내 공들여 닦은 좋은 습관들이 유월 들어 와르르 무너졌다. 몸도 바빴지만 마음은 더 바빴다. 기록하지 않고 흘려보낸 날들이 많았다. 기록하지 않으니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놓아버리면 영영 지워질 것만 같아, 아쉬운 대로 간단하게 몇 자 적는다.

다 읽은 책

  1. 존 우드, 이명혜 옮김, <히말라야 도서관>
    •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기록을 어떤 책으로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참고하기 위해 읽은 책들 중 하나. 친구가 대학교 때 인상 깊게 읽었다며 추천해주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중간중간 눈시울을 붉혀가며 읽었다.
    • 기록으로서 참고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띈다. 저자 본인이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성공으로 이끌어온 입장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개인의 주관적인 관점이 강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이 점은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기도 한 것이, 자신이 직접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어 이야기로서의 몰입감이 상당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그리고 ‘이 일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저자의 강한 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설득당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박력이다.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문장 하나, 단어 하나가 아닌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이다.
  2. 신이치 이시즈카, <블루 자이언츠> 1-4권
    • 몇 년 만에 제대로 읽은 만화책. 역시 친구의 추천으로 읽었다. 우연히 재즈를 접하고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겨 세계 최고의 재즈 뮤지션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인데, 티없이 순수한 열정이 매력적이다. 이런 류의 열정은 지켜보는 이에게도 옮겨 붙는다. 간만에 가슴을 뜨겁게 데운 독서.
  3. 데이비드 매컬로, 이중서 옮김, <너는 특별하지 않아>
    • 자주 가는 북카페의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해서 처음 몇 장을 후루룩 읽었는데, 마음에 들어서 바로 인터넷으로 구입해 출퇴근 길에 틈틈이 읽었다. 30년 경력의 고등학교 교사가 그간의 교직 생활에서 얻은 깨달음을 생생한 문체로 엮은 일종의 조언집인데, 다소 꼰대스럽다고 느낄 수 있으나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라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바로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듯한 생생한 구어체가 매력적이다. (원어를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번역에도 상당히 공을 들인 것을 알 수 있다.)
    • “너는 특별하지 않아”라는 도발적인 제목은 그대로 이 책을 꿰뚫는 주제이다. 모두가 특별하다는 오늘날의 교육 방침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결과보다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교육이 나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교훈은 그 메시지라기보다는 오히려 ‘미국도 우리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었다. 우리는 늘 헬조선을 연발하며 여기만 벗어나면 천국이 펼쳐질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사실 좁아지는 대입 관문과 생사를 건 취업 경쟁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라는(혹은 더 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벗어날 수 없는 지옥에서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결국 세상을 바꾸려면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진부하기 그지 없는 이야기로 끝을 맺지만, 어쩌면 그것이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4. 무라카미 류, <남자는 쇼핑을 좋아해> *민음북클럽 에디션
    • 민음북클럽 가입 선물로 선택한 스페셜 에디션 중 한 권. 책이 얇고 가벼워서 여행 길에 챙겨가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 읽었다. 저자도 내용도 전혀 모르는 채로 제목만 보고 선택한 책인데, 아마 정보를 더 알았더라면 아마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제목은 유치하지만 의외로 반전이 있는 책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선택을 했는데 제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책이라 실망했다. 무라카미 류는 유명한 소설가지만 왠지 내 취향에 맞지 않을 것 같아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이 책으로 입문하는 바람에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정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적어도 당분간은 또 읽을 일은 없을 듯.
  5. 김연수, <소설가의 일>
    • 이번 달에 읽은 책 중 고민할 것도 없이 단연 최고. 김연수의 재발견. 수없이 밑줄을 긋고 책장을 접어가며 읽었다. 지하철에서 킥킥거리며 웃다가 옆사람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너무 많아서 따로 적어야 마땅하다. 이렇게 평생을 사랑할 책을 한 권 얻었으니, 유월은 좋은 달이었다.

 

산 책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사기는 또 많이 샀다. 그냥 많이 산 것도 아니고, ‘더럽게’ 많이 샀다. 실은 더 많이 샀는데 기억이 안 나는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기억이 나는 대로 적는다.

  1. 데이비드 매컬로, <너는 특별하지 않아>
  2. 케리 이건, <살아요>
  3. 말콤 글래드웰, <다윗과 골리앗>
  4. 오은, <너랑 나랑 노랑>
  5. 어니스트 헤밍웨이, <깨끗하고 밝은 곳>
  6. 서정학,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7.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8. 츠즈키 쿄이치, <권외편집자>
  9.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10. 菅付雅信、『はじめての編集』(스가츠케 마사노부, <처음 만나는 편집>)
  11. REAR 39号、「アーカイヴは可能か?」(예술비평지 REAR 39호, <아카이브는 가능한가?>)
  12. 東浩紀、『ゲンロン0 : 観光客の哲学』(아즈마 히로키, <겐론0: 관광객의 철학>)
  13. よしもとばなな『下北沢について1』 (요시모토 바나나, <시모키타자와에 대하여 1>)
  14. Rethink Books、『今日の宿題』(Rethink Books, <오늘의 숙제>)
  15.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6. 팀 하포드, <메시>
  17.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외, <일의 언어>
  18.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19. <Axt> no.12, 2017 05/06

*1~4 인터넷 교보문고(6/9), 5~9 광화문 교보문고(6/9), 10~14下北沢 B&B(6/18), 15~19 광화문 교보문고(6/26)

5월 넷째, 다섯째 주에 읽은 책

오랜만에 글을 쓴다. 제법 밀도 있는 일상을 보냈다. 틈틈이 책을 읽었지만 오로지 독서에만 몰두한 기억은 드물다. 책은 거의 못 읽었지만 즐거운 기억은 많이 만들었다. 어느덧 3년째, 이제는 친구와 나의 연례행사가 된 서울 재즈페스티벌도 있었고, 새삼스럽지만 프로포즈도 받았다. 일은 지지부진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틈틈이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이 좌절감을 상쇄해준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서른의 봄은 무탈하게 흘러갔고, 이제는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다 읽은 책

  • 커트 보니것, 정영목 옮김, <제 5 도살장>
    • 잠깐 지인의 결혼식에 들렀다 페스티벌을 보러 가는 길에 친구가 조금 늦을 지도 모르는데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을 한 권도 갖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지하철에서 버스를 갈아타는 길목에 있는 잠실 교보문고에 들러 급하게 샀다. 급작스럽게 샀다고는 하지만, 전부터 늘 언젠가는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장소에 나타나 집어들게 된 것이라, ‘준비된 우연’ 정도로 이야기를 해도 좋겠다.
    • 호기심은 있었으나 그동안 내내 미뤄둔 이유는 이 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반전(反戰) 소설”이라는 꼬리표가 어쩐지 마음에 걸려서였다. 반전 문학의 필요성, 그리고 그것의 위대함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나 어쩔 수 없이 연상되는 참혹함, 그것에 내포하고 있는 도덕적인 무게에 짓눌려 손에 들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보니것이라는 작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또 다른 수식어인 “블랙 유머”또한 사실이었다. 불쾌하지 않을 정도의 자기 비하와 심각한 상황에서 불쑥 치고 들어오는 우스꽝스러운 논평은 피식 웃음을 자아냈다.
    • 그러나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SF와의 결합이었다. 주인공인 빌리 필그램의 시간여행은 영화 <컨택트(도착)>를 연상시켰다. 트라팔마도어 인들이 시간을 이해하는 방식은 <도착>의 헥사포드들과 무척 유사했다. 테드 창도 <제 5 도살장>을 읽은 것은 아닐까? 두 소설 모두에서 ‘시간’은 무척 중요한 키워드인데, 이것이 전쟁과 얽혀있는 것 또한 흥미로운 비교점이다. <제 5 도살장>에 드러난 이러한 시간관은 결국 이 소설의 핵심 메시지인 반전과도 우아하게 이어진다.
  • 기타다 히로미쓰, 문희언 옮김, <앞으로의 책방>
    • 5월 들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는 출판 카테고리의 책을 또 한 권 읽었다. 일본 출판계와 관련된 책들이 대부분이다. 아닌 것을 찾기가 훨씬 어려울 정도. 서로 비슷비슷하면서도 각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장단점도 제각각이다. 이 책은 정의하다/공상하다/기획하다/독립하다 라는 4개의 동사들로 장을 구성했는데, 그 중에서도 2장의 공상하다에 담긴 내용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 중 하나는 내가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아직 출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단계는 결코 아닌 것 같고, 책을 사랑하는 독자의 하나로서 애정을 갖고 알아가는 단계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런 류의 책들을 앞으로 더 다양하게 읽어나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무언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보이지 않을까.

 

읽고 있는 책

  1.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2. <제 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산 책

  1. 커트 보니것, <제 5 도살장>
  2. 박영숙, <메이커의 시대>
  3. 존 우드, <히말라야 도서관>
  4. 다니구치 지로, 유메마쿠라 바쿠, <신들의 봉우리> 1-5권
  5. 신이치 이시즈카, <블루 자이언트> 1-4권
  • 1: 잠실 교보문고, 2~5: 인터파크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