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째: 정도의 차이

2017. 8. 1.

화요일

 

아침부터 신혼집으로 출근했다. 조명 설치와 화장실 줄눈 시공이 있는 날. 집수리도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에 뿌듯한 마음. 내 손으로 직접 한 것은 거의 없으나, 알아보고 일정을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만만치는 않았다. 돌이켜보니 좋은 분들을 만나 큰 탈 없이 잘 마무리했다. 우연한 소개로 건너건너 부탁해서 도움을 받았는데 하나같이 성실한 분들이셨다. 전문가는 괜히 전문가가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내는 사람 입장에서야 비싼 가격일 수 있어도, 수고하시는 모습을 보니 더 받으셔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분들의 정성스런 손길이 닿아 칙칙하던 옛날 집이 이제는 제법 신혼집다워졌다. 더불어 새로운 집에서 시작할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도 커진다.

오후에 출근해서 마주한 일터. 프로젝트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많은 것들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어떤 쪽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그 방향을 확실히 해야 할 때다. 나로서는 어느 정도 뚜렷한 그림이 그려지는데, 혼자 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보니 여러 의견들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생각은 언제고 흔들리기 마련이지만, 그 안에서도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한 기준점을 공고히 해나가고 싶다. 이제 두 번째 단계에서는 나도 물러설 곳이 없다. 정면으로 부딪혀서 내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여지껏 적당히 피해왔다면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두려움도 크지만 자신감도 있다. 재밌게 해봐야지.

퇴근길에는 어제 만난 친구를 포함해서 동네 친구들을 잠깐 만났다. 서른 살 먹은 여자들 셋이 모이니 역시나 가장 핫한 주제는 연애다. 연애는 해도 고민, 안해도 고민. 평생을 서로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맞춰간다는 일이 결코 쉬울 수는 없다. 결혼을 앞두고는 있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역시 나도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뿐.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는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편이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안일한 자세다. 연애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는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다는 데서 오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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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째: 다시,

2017. 7. 31.

월요일

 

다시 돌아온 월요일. 뭐가 그렇게 피곤했는지 집에 오자마자 골아떨어졌다.

아침부터 가열차게 회의를 하고, 점심을 먹고서는 준비 없이 닥친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없이 오후가 흘렀다.

퇴근 후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 오랜만에 만나도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거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다는 행복.

그 외에 여러가지 생각을 흘려보낸 것 같은데 하루가 지나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

 

7월 셋째, 넷째 주에 읽은 책

매일 한 줄이라도 써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기 쓰기는 그래도 꾸역꾸역 2주째 이어져오고 있다. 일기에 그날 읽은 책에 대한 내용이 조금씩 들어가다 보니, 주별로 무얼 읽었는지는 오히려 기억이 희미해진다. 겹치는 내용일 수 있으나 그래도 다시 정리하는 기분으로 몇 줄 적는다. 정말 몇 달만에 무려 2주 동안 책을 사지 않았다. 올해 들어서는 최장기록이 아닐까. 인터넷 서점은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지만 오프라인 서점에는 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대신 가구점을 뺀질나게 드나들었다.) 갖고 있던 책들을 끄집어 올려 읽었고, 결론적으로는 무척 좋았다는 이야기.

 

다 읽은 책

  1. 임솔아,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 시집은 제목이 절반이다. 아니 절반 이상이다. 제목으로 잡아끌지 않으면 수백권의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도드라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확신하건대 임솔아의 시집은 제목을 잘 지어서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괴괴하다’는 말에 눈뜨게 해주었다. 앞으로 누군가가 이 형용사를 쓴다면 나는 틀림없이 임솔아를 떠올릴 것이다. 그녀가 나에게 그 말을 주었으므로. 과연 그 제목대로, 그녀의 시어들은 괴괴하고 착하다. 혹은 괴괴하지만 착하다. 아니, 괴괴함에도 불구하고 착하다. 평범하디 평범한 사건들을 바라보는 천진한 시선은 읽는 이의 영혼을 그대로 꿰뚫어본다. 면전에 거울을 들이대고 속에 꽁꽁 감추어둔 나쁜 것들을 마주하게 만든다. 이렇게 억지로라도 마주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마냥 착한 사람이라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찌를 수도 있으니까. 이 대면은 시가 가진 제법 중요한 효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임솔아의 시집은 그 역할을 무던히 해냈다.
  2. 심보선, <오늘은 잘 모르겠어>
    • 심보선의 세 번째 시집을 다 읽은 것은 아마도 지지난 주 일요일. 사고 나서 삼일 만에 다 읽어버린 셈인데, 아껴 읽은 건지 급히 읽은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로써 그의 시집 세 권을 다 읽었으나 그 세 권을 관통하는 주제나 시작법에 대해서는 운운할 수 있는 수준은 못되고, 다만 이 세 번째 시집을 다 읽고 난 뒤에 – 읽으면서도 – 한 생각은 ‘세 번째 시집이라서 할 수 있는 실험들로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시집에서 했더라면 무리수로 비칠 수도 있었을 만한 새로운 시도들이 돋보인다. 미묘한 두 영역의 경계선 위에서 두 눈을 가리고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하며 나머지 감각들로 각자의 국경을 가늠해보려는 시도들. 내가 가장 애틋하게 여기는 시인에 대해 객관적일 수 있을리가 없다. 이런 저런 이유들은 다 차치하고, 심보선이여서 좋았다. 의심의 여지 없이 앞으로도 나는 계속 그의 시를 읽을 것이다. 몇 번이고.
  3.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 이 책에 대해서는 여덟 번째 일기에서 제법 자세히 적었다.
  4.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7/30) 다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울컥 하고 뜨거운 것이 밀고 올라왔다. 끝에 다다라서는 기어코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다. 책을 덮고 나서는 계속해서 “엄청난 걸 읽어버렸다”는 생각만 들었다. 뒷표지에 있는 ‘사랑’ 이라는 말이 너무 진부해서, 도대체 이 단어를 어떻게 풀어낼 셈이냐 하는 다소 삐딱한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었는데, 너무 많이 쓰여서 닳고 닳아버린 낱말을 천진하고 올곧은 시선으로 찬찬히 해석해내는 서사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성의 밑바닥이 가감없이 드러나는 멸망의 순간에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유일하게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또 하려면, 이정도의 진중함으로 접근해야 옳다. 최진영은 그 작업을 훌륭하게 해냈고, 그 덕분에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그런 강렬한 독서를 경험했다. 위대한 이야기는 한 사람의 삶을 뒤흔들어놓을 힘을 가진다.

 

읽고 있는 책

  1. 보도 섀퍼, <돈>
  2. 서정학,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3.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외, <일의 언어>

14일째: 너무나 현실적인

2017. 7. 29.

토요일

 

누가 결혼을 낭만적 사랑의 완성이라 했던가. 하긴 요즘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찾아보는 것이 더 힘들겠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도 않았는데, 결혼으로 가는 길들은 너무나 현실적인 일들 투성이다. 딱히 낭만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태생적으로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나로서는 곳곳에 난관이 산적해 있는 느낌이랄까. 다행히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무시무시한 시어머니나 재산을 둘러싼 가족간의 갈등 같은 것은 먼 이야기로, 대단히 평화롭게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들에서 자꾸만 주춤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혼자 결정해도 될 것을, 혹시 잘못된 선택이었을 경우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자꾸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든지 하는 그다지 ‘멋있지 않은’ 내 모습을 자꾸만 마주하게 된달까. 어제는 실컷 가구를 알아보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피자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셨다. 그러고 나니 또 노골노골해져서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기분이 되었다.

더 해주고 싶은 마음과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

결국은 이 두 기껍고 고운 마음들을 오가며 벌어지는 일들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지니까. 일단은 너무 배배 꼬아서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이제 소파와 식탁만 남았다!

13일째: 로즈마리 레몬 치킨

2017. 7. 28.

금요일

 

습관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어제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지듯 잠들었다. 다들 불금이라 하는데, 이미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 나에게 금요일 저녁은 한 주 내내 쌓인 피로가 몰려오는 시간이다. 그래도 어제는 제법 불금다운 저녁을 보냈다.

정성껏 준비한 맛있는 음식과 좋은 사람들, 즐거운 대화.

돌아오는 길이 길었던 것만 빼고는 완벽한 저녁이었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오랜만에 늦잠을 실컷 잤다.

 

 

12일째: 옷장생각

2017. 7. 27.
목요일

집수리가 끝나간다. 이제 조명을 달고 청소를 깨끗이 하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될 것이다. 화요일에 있었던 중요한 회의도 무사히 마쳤고, 방학이 되면서 공간을 찾는 아이들의 숫자도 줄어 요즘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새로 들어갈 집. 그 중에서도 옷장이다. 가구 선택은 무척 의미심장하다. 어떤 가구를 고르는지는 결국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와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가구와 관련된 빈번한 비극은 처음 가구를 고를 때 생각했던 그 이미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기인한다.

인테리어라고는 요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의 내 방. 지금 내 방에 있는 가구들 중에서 진정 내 의견이 반영된 것은 한 가지도 없다. 하지만 이제 새로 구입하는 가구들은 하나하나가 곧 나의 취향이라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골라놓고도 옳은 선택이었는지 계속 되묻게 된다.

책과 함께하던 출퇴근 시간은 요즘 듀오링고 스페인어와 가구 검색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 시기 또한 언젠가 지나갈 것이다. 이 이상으로 스스로에게 부담을 주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