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련,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 2017

2018. 2. 27.

읽기 시작한지는 오래되었는데, 일에 대한 고민으로 잠못이루는 밤에 뒤척이며 다 읽었다.

처음부터도 좋았지만, 특히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지금 내가 하는 일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을 많이 발견했다. 아이들이 많이 오면서부터 어느샌가 소홀해진 나 자신에 대한 반성도 했다.

‘아이들의 삶을 증언해줄 사람’으로서의 어른. 이 이야기가 얼마 전 읽은 최진영의 <당신 곁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과 겹쳐지면서 울컥했다.

모든 아이들을 다 품을 수는 없어, 그건 내 역할이 아니야, 하면서 눈을 질끈 감아온 순간이 아프게 다가온다. 모두가 제자리에서 제몫을 하며 사는 사회에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부터.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이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늘 고민하고 있지만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이 책이 나에게 일말의 실마리는 준 것 같아 감사하다.

전자책으로 읽었지만 종이책으로도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모든 어른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제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이지만, 그래도 어른으로서 어떻게 아이들을 대해야 하는지 한 번쯤은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오래 곁에 두고 들춰봐야 할 책.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아이들을 만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꼭 한 번은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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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독서 (1/2)

2018. 2. 11.

일요일

 

하나를 진득허니 읽지 못하고, 매일 이것저것 조금씩 들춰보고 있어서 독서에 대해 기록할 만한 것이 마땅치 않다. 게다가 지난 한 주에는 이것저것 신경쓸 일들이 몰려 있어 숨돌릴 틈 없이 바삐 지나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마음이 붕 떠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발붙일 곳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그런 와중에 읽기는 일종의 정박지가 되어준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혹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지, 스쳐지나가는 질문들에 대한 답은 내가 읽은 책, 그리고 내가 산 책(=읽고 싶어하는 책)안에 담겨 있다. 마음 붙일 곳 없던 지난 두 주 간, 작은 항구가 되어준 읽기의 기록.

 

다 읽은 책

  1. 레일라 슬리마니, <달콤한 노래>
    • 여기에 대해서는 따로 기록할 예정이다.
  2. 레이먼드 챈들러, <빅슬립> *전자책
    • 순전히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에 읽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 넘치는 전개는 아니지만 읽어보니 왜 말로가 일종의 전범이 되었는지 알겠다. 원전을 읽어보지 않아 얼마나 정확한 번역인지는 모르겠으나, 직역을 했음직한 낯선 비유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하루키는 그 건조하지만 결코 지루하지는 않은 문체에 매료된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진도가 술술 나가는 편은 아니라, 자기 전에 침대 맡에서 야금야금 읽었다.
  3. 데이비드 스몰, 사라 스튜어트, <도서관>
    • 아름다운 그림책. 몇 번이고 되돌아가 읽었다. 글보다는 그림을.
  4. 주홍식, <스타벅스, 공간을 팝니다> *전자책

 

읽고 있는 책

  1. 김소연, <한 글자 사전>
    • 나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예약 주문했다. 김소연의 산문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한 글자 사전>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책장에서 <마음사전>을 꺼내 다시 읽었다. 마음 깊이 스며드는 문장들. 두 권이 나란히 꽂혀 있는 모습만 보아도 배가 부르다.
  2. 강영숙 외, <어른의 맛(2017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 강영숙이 들려주는 뒷맛이 텁텁한 이야기들. 흙을 먹으면 이런 느낌일까. 어쩐지 목이 메인다.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 길가의 화단에서 한 웅큼 집어든 흙을 입속에 우겨 넣는 더이상 젊지 않은 여자. 그 스산한 풍경.
    • 그리고 김금희. 내가 앞으로 두 달 가까이 같이 살아야 할 이야기.
  3. 장석주, 박연준,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4. 마스다 무네아키,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5. 레이먼드 챈들러, <안녕 내 사랑>
  6. 이수련,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

 

산 책

  1. 데이비드 스몰, 사라 스튜어트, <도서관>
  2. 주디스 커, <누가 상상이나 할까요?>
  3. 마이클 본드, <내 이름은 패딩턴>
  4.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5. 김소연, <한 글자 사전>
  6. 윌리엄 그릴, <커럼포의 왕 로보>
  7. 호프 자런, <랩 걸>

*1~4: 광화문 교보문고(1/28), 5:인터넷 교보문고(1/31), 6: 광화문 교보문고(2/4), 7: 현대카드 엠포인트몰(2/14)

29번째: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책

2018. 2. 8.

목요일

전쟁같은 하루를 치르고, 보상으로 주어진 달콤한 오전 휴가.

평소보다 두 시간 더 자고 일어나 녹차를 내리고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골라 들었다.

장석주, 박연준이 함께 쓴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두 사람이 매일 다른 책을 읽으며 기록한 일기가 나란히 편집되어 있는 이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 나도, 빨리, 뭔가, 읽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상적인 문장들임에도 예사롭지 않은 것은 역시 두 사람이 오랫동안 글을 다뤄왔기 때문일까. 부럽다.

오래도록 이 여유를 즐기고 싶은데, 이제 무거운 몸을 일으켜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달콤한 아침이었다.

2018년 1월의 독서 (2/3)

2018. 1. 25.

목요일

 

시간이 가쁘게 흘러, 어느새 1월도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아직 결론을 내리기는 성급한 것일 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로 봐서는 새해 스타트를 잘 끊은 것 같다. 목표로 했던 번역도 마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점점 몸에 붙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급성 위염에 걸리고 그 덕분(?)에 내시경도 받아 보았다. 그뒤로는 영양제도 악착같이 잘 챙겨 먹고 있다. 작년 말에 잠시 나를 괴롭혔던 슬럼프로부터는 완전히 벗어난 것 같아 기쁘다. 물론 그 성가신 녀석은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수 있겠지만 그건 그때가서 고민할 일이다.

 

다 읽은 책

  1. 브래드 스톤,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전자책
    • 리디북스에서 무료대여 이벤트를 하길래 빌려둔 책을 지난주부터 출퇴근 길에  야금야금 읽어서 그저께 읽기를 마쳤다. 아마존이라는 회사는 옛날부터 알고 있었고, 심지어 몇 번 구매해본 적도 있지만, 회사 자체에 대해서는 그리 흥미를 가져본 적은 없었다. (물론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회사에 관심이 없었지만 말이다.) 이토록 흥미로운 기업인 줄 알았다면 진작부터 관심을 가졌을 텐데. 어쩔 수 없이 아마존의 성공신화의 뒤에 숨겨진 노력이나 비화들이 주를 이루긴 하지만, 무조건 미화하려 하지 않고 균형잡힌 시각을 견지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곳곳에 보인다. 그런 부분들에서 아마존이라는 기업의 분명한 단점 – 노동자에 대한 배려 부족, 경쟁사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 등 -이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결코 도덕적으로 수긍할 수 없는 선택의 이면에는 ‘고객에게 최저가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는 아마존의 분명한 비전이 깔려 있어 무섭도록 목표에 집중하고, 그것을 이뤄내고야 마는 기업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 아마존 같은 기업을 만들고 싶은 것도 아니고, 위에 적은 것처럼 아마존이라는 기업이 갖고 있는 모든 면면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실히 배운 것이 있다면 “비전은 심플하게, 모두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이 아닐까 싶다. 아마존은 처음부터 Everything Store 라는 비전을 갖고 있었고, 세상의 모든 물건을 파는 가게가 되기 위해서는 마진에 욕심을 낼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최고의 만족 = 최저의 가격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분명한 실행 목표가 있었다. 이 부분은 달리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명확하기 때문에 비록 처음부터는 아니었을지라도 사람들에게 아마존이라는 기업의 특징을 각인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요즘,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었다.
  2. 최진영,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지난 일요일에 단숨에 몰아 읽어 놓고, 돌아오는 목요일 포스팅에서는 언급하는 것을 까맣게 잊었다. 인상깊지 않아서는 결코 아니었다. 다만 읽은 뒤에 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얼른 벗어나고자 성급히 다른 책을 집어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해가 지는 곳으로>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그녀의 소설(집필 시기는 반대이다)은 여전히 강렬했다. 내가 서른 해 동안 무탈하게 살아오면서 마주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자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마음이 저릿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드러내는 것 또한 문학이 해야 할 – 또 할 수 있는 – 역할일 것이다.
  3. 도로시 길먼,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전자책
  4. 도로시 길먼, <폴리팩스 부인 미션 이스탄불> *전자책
  5. 도로시 길먼, <폴리팩스 부인과 여덟 개의 여권> *전자책
    • 역시나 리디북스에서 이벤트로 대여한 책이다. 추리소설 읽는 것을 꽤 즐기는 편이라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와 그 외 여러 시리즈를 묶어 저렴하게 대여하는 것을 보고 심심할 때 읽어야지 하고 사 두었는데, 이번에 위염으로 앓는 동안 고통을 잊기 위해 이 시리즈를 침대에 누워 끙끙거리며 읽었다. 예전에 처음 나왔을 때 서점에서 보고 그냥 이런 책도 있구나 하고 말았는데, 커다란 교훈이 있는 것은 아니나 엔터테인먼트로서는 훌륭하다. 추리소설에서 흔히 보기 힘든 할머니 스파이라는 설정도 재미있고, 노인 특유의 달관한 듯한 삶의 태도가 위기 상황에서 의외의 효과를 낳는다는 전개도 흥미롭다. 찾아보니 이 시리즈가 8권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국내에는 3권만 번역되었다. 나머지는 전자책으로 구입해서 영어로 읽어볼까 생각 중이다.

 

읽고 있는 책

  1. 주홍식, <스타벅스, 공간을 팝니다> *전자책
  2. 크리스 맥체스니, 숀 코비, 짐 헐링, <성과를 내고 싶으면 실행하라> *전자책
  3. Kelly Barnhill, The Girl Who Drank the Moon 

 

그 외에 읽은 것

Lauren Collins, “The Home Front: Leila Slimani’s dark explorations of our most intimate taboos”

*지면과 온라인의 제목이 상이하나 내용은 같음(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18/01/01/the-killer-nanny-novel-that-conquered-france)

 

산 책

  1. 제르마노 쥘로, 알베르틴, <토요일의 기차>
  2. 모디캐이 저스타인, <밤의 세계>
  3. 존 윈치, <책읽기 좋아하는 할머니>
  4. 갈리아 번스타인, <나도 고양이야>
  5. Victoria Jamieson, Roller Girl
  6. 플로리 생 발, <상상의 집>
  7. 사노 요코, <나는 고양이라고>
  8. 루드비히 베멀먼즈, <씩씩한 마들린느>
  9. 루드비히 베멀먼즈, <마들린느와 쥬네비브>
  10. 엘윈 브룩스 화이트, <샬롯의 거미줄>
  11. E. L. 코닉스버그, <클로디아의 비밀>
  12. 에리히 캐스트너, <돈키호테>
  13. 마저리 키난 롤링즈, <아기사슴 플랙> 1, 2
  14. 버지니아 리 버튼, <작은집 이야기>
  15. 볼프 에를부르흐, <못생긴 다섯 친구>
  16. 레일라 슬리마니, <달콤한 노래>

*1~5: 광화문 교보문고(1/21), 6-15: 교보문고 중고서적(1/22), 16: 광화문 교보문고(1/24)

2018년 1월의 독서 (1/2)

2018. 1. 16.

화요일

 

날짜를 적을 때 여전히 2017이라 적었다가, 뒤늦게 끝자리를 8로 고치곤 하는 1월. 어제까지 마감이었던 번역 작업을 하느라, 많은 일들을 뒤로 미뤄두었다. 독서도 그 중 하나였다. 해야할 일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데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모든 것은 1월 15일 이후에 다시 생각하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안 읽은 것은 – 더욱이 아무 책도 사지 않은 것은 – 결코 아니었다. 전자책이 제몫을 톡톡히 했는데, 덕분에 출퇴근 길에 조금씩 짬을 내어 뭐라도 읽을 수 있었다. 짬이 날 때면 전자책 서점에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몇 권은 나중을 기약하며 사두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주 금요일에는 퇴근 길에 잠시 시간이 남아,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딱 한 권만 사려고 했던 것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섯 권으로 불어나 있었다. 그래도 전부터 관심있게 보아둔 책들, 그리고 왠지 전자책으로 보기는 아쉬운 책들이라, 후회는 없다.

새해의 기운이 남아있는 틈을 타, 이것저것 의욕적으로 시도해보고 있다. 번역도 그 중 한 가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생각만 해서야 죽을 때까지 생각만 하다 끝날 것 같아서, 되든 안되든 한 번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시간을 들이면 시간을 들인 만큼, 눈으로 표시되는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일이라 결코 쉽지는 않지만 그만큼 보람이 있다. 그와 더불어 한국어 문장들 만큼이나, 일본어와 영어로 쓰인 문장들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올해는 작년에 지키지 못한 ‘원서 읽기’를 꼭 실천해보리라.

 

다 읽은 책

  • 데이비드 앨런, 김경석, 김선준 옮김, <쏟아지는 일 완벽하게 해내는 법> (전자책)
    • 생산성 향상 기법 중의 하나인 GTD(Getting Things Done) 방법론에 대해서는 예전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때 기사만 몇 개 찾아보고 제대로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리디북스에서 반값 대여 이벤트를 하는 것을 보고, 잘 됐다 싶어 사두었다가 작년 말 – 올해 초까지 해서 출퇴근 길에 다 읽었다. 읽고 난 뒤의 감상은, 이 정도면 고전이라 불릴만 하다는 거였다. 왜 생산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GTD 이론이 빠지지 않는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얼른, 여기 제시된 방법들을 직접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하루 반나절이 꼬박 걸리는 일이라 일단 번역을 끝낸 뒤로 미뤄두었지만 (이번 주 일요일에 해보려고 계획을 해두었다)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간단한 팁들 – 2분 법칙, 일정표와 목록의 역할 구분, 회의를 끝내기 전에 반드시 다음 행동 목록이 나와야 한다는 것 – 을 시도해보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예전보다 훨씬 머릿속이 맑아진 느낌이 든다.
    • 끝마치지 않고 놓아둔 일은 실제 그 일이 놓인 상황과 당신의 머릿속, 두 곳에서 미완성이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미완의 과제들은 당신의 의식을 갉아먹어 주의력과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읽고 있는 책

  • 브래드 스톤, 야나 마키에이라 옮김,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전자책)
    • 예전에 친구가 무척 재밌게 읽었다고 이야기해주어서 마음 속에 담아만 두었다가 역시 전자책으로 손에 넣었다. 아침 출근길에는 감성이 촉촉해지는 문학 작품보다는 의욕을 샘솟게 하는 자기계발서나 경제경영 서적 위주로 읽는 편인데, 앞서 적은 데이비드 앨런의 책을 다 읽은 뒤로 무얼 읽을까 책장을 뒤지다 눈에 들어와서 읽기 시작했다. 아마존이야 원래 알고도 있었고, 몇 번 사용해본 적도 있지만, CEO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는 친구가 이야기해주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얼추 들어서 특유의 카리스마로 직원들을 휘어잡고, 투자자를 홀리며, 무대포로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아마존의 엄청난 성장을 이끈 인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니 내가 갖고 있던 사전 지식 중에서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단지 ‘이야기’로서도 재미있지만, 베조스의 경영 방침에서 실제 내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도 적용할 수 있는 팁들을 많이 얻었다. 그날 아침에 읽은 내용 중 인상깊었던 구절을 출근해서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하는데 100%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어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훌륭한 책이다. 이제 절반쯤 읽었는데, 마저 읽은 뒤에 다시 한 번 정리해야겠다.

 

산 책

  1. 김솔, <보편적 정신>
  2. 장석주, 박연준,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3. 강영숙 외, <어른의 맛(2017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4. 가즈오 이시구로, <파묻힌 거인>
  5. 박상익, <번역청을 설립하라>

*1-5 모두 광화문 교보문고 (1/12)

29번째: 번역하는 마음

2018. 1. 8.

월요일

 

해가 바뀌었지만 번호는 이어서 달았다. 해가 바뀐다고 끊기는 것은 오히려 드물다. 많은 것들은 연속선상에 있다. 계속 이어져 나간다.

그리고 나도 작년 말에 시작한 번역을 이어서 하고 있다.

한국어를 일본어로 바꾸는 일.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딘가에서 영어로 된 문장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일에 대해, ‘가로로 누워 있는 문장을 세로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 퍽 상쾌하다’와 비슷한 내용을 쓴 적이 있다. 아직 눕혀 놓은 문장들을 일으켜 세우지는 못했지만,  일단 엎드려는 놓았다. 세워 놓으면 느낌이 또 다를 것이다.

예전에도 소일거리삼아 이런저런 번역을 했었다. 하고 싶어서 한 것보다, 해야 되니까 한 것이 더 많았다.

이번에는 온전히 하고 싶어서 한다. 어디에도 가닿지 못하더라도, 그저 끝까지 가기 위해 간다. 느릿느릿. 더듬더듬. 빛 한 줄기조차 새어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동굴 속을, 손바닥으로 벽을 더듬어가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으로 번역을 하고 있다.

읽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문장들이 고개를 쳐든다.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번역을 하다 보면, 쓸데없는 문장이 하나도 없음에 놀라게 된다. 다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다. 그런 문장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어우러져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 속에서 나는 참을 수 없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참지 못하고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번역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녀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번역하기에는 내가 가진 단어들이 너무 적지만, 최선을 다해 내가 느낀 그 감정을, 일본어로 이 소설을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도 전달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2017년의 마지막 날

2017. 12. 31.

일요일

 

2017년의 마지막 날. 새해가 밝기까지 불과 두시간 반 남았다. 작년 이맘 때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분명히 기억이 나지는 않으나 아마도 집 – 이제는 친정집이 된 – 의 내 방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올해도 역시 집에 있다. 그러나 작년의 그 집과는 다른 집의 안방 침대 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다. 옆에서는 남편이 쿨쿨 자고 있다. 그는 계절감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성격으로, 연말이라고 해서 특별히 뭔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런 그가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그리고 그건 그거대로 의연해서 좋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올해의 마지막 날, 아침에는 느지막이 일어나 한참을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2시가 다 되어 겨우 나갈 채비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둘이서 집을 나섰다. 밖에 나가서 밥도 먹고, 드라이브도 좀 하자고. 목적지는 하남. 그 유명하다는 스타필드를 가볼 요량으로, 근처의 돼지고기 맛집을 검색해서 찾아 갔다. 오랜만의 외식은 만족스러웠으나, 조용한 가게 안에서 두 건의 가족 불화의 현장을 목격하는 바람에 기분이 썩 편치는 않았다. 그길로 나와서 스타필드로 향했다. 이번에는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스타필드에 도착하니 주차장에 들어가기까지 차들이 한참 밀려 있었다. 요 며칠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남편이 좀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여, 구태여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을 헤집고 다닐 이유는 없을 것 같아 미련없이 핸들을 돌렸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난생 처음으로 보복운전이라는 걸 당해봤다. 역시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으나 그리 불쾌할 것도 없었다. 그저 얼떨떨할 뿐이었다. 그러나 살짝 얼이 빠져서, 무척 긴장한 상태로 운전을 했다.

집 근처의 대형 마트에 잠시 내려 떡국 재료를 샀다. 연말에도 분위기를 제대로 내지 못했기에, 새해 떡국만큼은 제대로 만들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하면 뭔가 특별한 걸 해야할 것 같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 없는 일상을 보낸다. 쇼핑몰에 가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외식을 하는 것처럼. 나 역시 그렇게 보냈다.

집에 와서는 냉장고 한 켠을 차지하고 있던 – 그러나 영영 먹을 일은 없을 것만 같은 – 해묵은 식재료들을 처분하고 빨래를 돌렸다. 식탁에 앉아 잠시 번역을 했다.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금새 집중력이 똑 떨어져서, 아까 마트에서 사온 과자를 집어 먹으며 핸드폰을 하고 놀았다. 그리고는 한 편 남은 <녹턴>을 올해가 가기 전에 다 읽으려고 집어들었다. 그리고 다 읽었다.

예전에는 새해가 되면 마치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설레고 신이 났다. 몇 주 전부터 다이어리를 준비해서, 새해 계획들을 빼곡히 적어나갔다. 그러고 있는 동안에는 마치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단지 해가 바뀐다고 해서 갑자기 딴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정도로는 커버렸나 보다. 오히려 담담하다.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다. 올해는 유난히 더 그렇다. 돌아보는 마음이 스산하다.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하나 하나 닫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모든 선택을 긍정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럴 수만은 없다. 역시 한 것 보다는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 그러나 여전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감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지금 당장은 내가 한 선택이 나아보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5년 뒤, 10년 뒤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그러나 5년 뒤, 10년 뒤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나는 늘 지금을 살리는 선택을 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의 어떤 부분이 폭삭 늙어버린 기분이다.

다만 시간을 믿는다. 지나온 시간을. 그리고 앞으로 지나갈 시간을. 20대의 내가 한 모든 선택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것들이 오롯이 내 몫으로, 나의 책임으로 남았음을 받아들인다. 내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금씩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해갈 수는 있다고 믿는다. 대책없이 긍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덮어놓고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할 부분과 너그러워야 할 부분을 분별해내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전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방향을 정하고, 길러가고 싶다.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이룬 것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차곡차곡 쌓아온 한 해였다.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지만, 가장 소중한 것을 얻었다.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새로운 공간을 열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소중한 것들이 늘어났다.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내 곁에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