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독서

 

올해도 이제 한 달 남았다.

돌이켜보면 참 큰 변화가 많았던 이번 해. 순탄하다고만은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잘 보냈다 싶어 마음이 흡족하다.

11월에도 개인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여러 가지 도전들이 있었고, 스스로의 한계에 허덕이다 마음을 괴롭히는 일들도 있었으나 긍정적인 변화들이 나를 잘 지탱해주었다. 좋은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다는 실감을 자주 할 수 있었다.

읽기 생활에 있어 가장 극적인 변화는 전자책 단말기를 선물받은 것. 그동안 종이책만을 고집해왔는데, 작년에 함께 일했던 분이 ‘내가 안 사주면 절대 안 살 것 같아서’라는 멋진 이유로 선물을 해주셨다. 선물 받은 다음 날부터 바로 꺼내어 쓰고 있는데, ‘왜 내가 이걸 진작에 안 샀지!’라는 생각뿐이다. 독서의 깊이야 종이책으로 읽을 때도 변변치 않았으니 비교할 만한 거리는 안 될 것 같고, 읽는 책의 범위가 무척 넓어졌다. 괜한 자존심에 사고, 또 읽기를 꺼려왔던 재테크나 금융 지식과 관련된 책들, 내용이 좋다는걸 알아도 구태여 책장에 꽂아두고 싶지는 않았던 경제경영서나 자기계발서, 두꺼운 볼륨에 압도되어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던 진지한 인문교양서들을 종류별로 받아서 야금야금 읽고 있다.

그러면서도 종이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잔뜩 샀는데, 이제부터 조금씩 종이책/전자책을 구매하는 기준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아직 친정에서 책을 10%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벌써 절반 이상 차버린 책장의 밀도를 조절하는 데에도 전자책이 쏠쏠하게 공을 세울 것 같다는 예감. 이 자리를 빌어 선물해주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하고 싶다.

다만 원래도 그랬는데, 기록하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따라가질 못한다. 이건 순전히 나의 게으름 때문인데, 그래도 아무것도 안 적는 것보다야 제목이라도 적어두는게 낫다는 생각에서 주르륵 적어본다.

 

2017/12/21 덧붙임

다시 보니 좋게 읽은 책들이 많은데, 너무 제목만 적어둔 것 같아 몇 자 덧붙인다.

 

다 읽은 책

  1. 폴 비티, <배반>
    • 맨부커 상 수상작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서 무관심하게 있다가 어느날 서점에서 갑자기 눈에 들어 집어 왔다. 흑인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이해하기 힘든 표현이나 유머 코드들이 많아서 100% 와닿지는 않았지만,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이런 소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소정의 성과는 있었다 하겠다. 그러나 이 작가의 소설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원어민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표현들이 가득한 이 책을, 깨알같이 각주를 달아가며 번역해낸 번역가의 수고에는 박수를 보낸다.
  2. 대니얼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 친구의 추천으로 사놓고, 한참을 걸려 겨우 다 읽었다. 누구나 행복에 대한 기대를 갖고 살아간다. ‘1억이 생기면 행복하겠지’ ‘대기업에 들어가면 행복하겠지’ ‘이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하겠지’ 등등. 하지만 꿈꾸던 그 미래가 현실이 됐을 때, 기대만큼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설령 느꼈다 한들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곤 한다. 저자는 잡힐듯 잡히지 않는 행복의 비밀을 인간의 인지구조에서 찾는다. 저자가 서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을 읽는다고 행복해지는 법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왜 우리가 행복에 대해 착각을 하는지, 그 원인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된다.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딴지를 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적어도 세상 사람들은 다 행복해보이는데 나만 불행한 것처럼 느껴질 때, 그건 인간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조금 더 ‘논리적으로’ 위로할 수 있게 된다.
  3. 김소영, <어린이책 읽는 법>
    • 이 책은 너무 감명깊게 읽어서 따로 포스팅을 했다.
  4. 강상중,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 저자에 대한 기대감으로 집어들었다. 전반적으로 나쁘지도 않았으나 크게 좋지도 않았다. 두 번 읽거나 누군가에게 권하지는 않을 것 같다.
  5. 아누 파르타넨,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전자책)
    • 처음으로 구입한 전자책. 종이책으로는 무척 두꺼워서 사기도, 들고 다니기도 부담스러웠는데 전자책으로 구입해서 출퇴근 길에 쏠쏠하게 읽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북유럽 사회에 대한 오해와,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에 대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자세히 이야기해준다. 핀란드인으로 살던 저자가 미국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미국에 와서 살게 되면서 그간 자기가 당연히 누리던 것들이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거였는지 깨닫게 되면서 쓰게 된 책이기 때문에, 읽다보면 ‘아, 나는 왜 핀란드에서 태어나지 않은 걸까’하고 좌절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래도 미국보단 한국이 낫네’하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핀란드와 미국이라는 두 극단적으로 다른 사회를 양축에 놓고, 우리는 어디쯤에 있는지 짚어보며 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교육에서부터 경제, 보건, 정치에 이르기까지 삶의 구성 요소들을 포괄하여 다루고 있기 때문에 보다 넓은 관점에서 현실을 돌아보게 해주는 매력도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핀란드 교육에 대해 더 알고 싶어져서, 책에서 소개된 피시 살베리의 <핀란드의 끝없는 도전>을 구입했다. (물론 아직 읽지는 않았다.)
  6. 이천, <내 통장 사용설명서> (전자책)
    • 리디북스에서 반값 대여 이벤트를 하길래 읽게 되었는데, ‘일곱 개의 통장’으로 가계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설명하며 재테크의 기본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준 책이다. 이 책을 필두로 여러 금융, 재테크 관련된 책들을 읽고 있다.
  7. 차영아, <쿵푸 아니고 똥푸>
    • 김소영 선생님이 강의에서 ‘올해 읽은 어린이 책 중에 최고’라고 추천해주셔서 바로 구입했는데, 이 책에 실린 두 번째 이야기, <오, 미지의 택배>를 읽고서는 엉엉 울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 남편이 이상하게 쳐다볼 정도였다. (그리고 다음날 직장에서 줄거리를 이야기해주었더니, 그들도 울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들과 일하고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이런 책을 읽고 자라면, 아이들은 절로 순하고 착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깨끗하고 따뜻한 책이었다.
  8. 제르마노 쥘로, <나의 작고 작은>
  9. 제르마노 쥘로, <토요일의 기차>
  10.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블룸카의 일기>
  11. 사노 요코, <100만 번 산 고양이>
  12. 토미 웅거러, <달 사람>
  13. 이수지, <파도야 놀자>
    • 8-13번은 그림책을 모으는 동료가 같이 보자고 들고와준 책들이다. 하나같이 예술성이 뛰어나고, 줄거리와 그림이 쫀쫀하게 밀착되어 있어 다 읽고 나니 마치 잠시동안 딴 세상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림책의 매력을 알게 해 준 그녀에게 감사한다.

 

읽고 있는 책

  1. 가즈오 이시구로,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2. 정홍수, <마음을 건다>
  3. 장클로드 카우프만, <각방 예찬>
  4.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5.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산 책

  1.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2. 가즈오 이시구로,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 2
  3. 김소영, <어린이책 읽는법>
  4. 권태응 외, <귀뚜라미와 나와>
  5. 폴 아자르, <책. 어린이. 어른>
  6.  차영아, <쿵푸 아니고 똥푸>
  7. 알베르토 망구엘, <은유가 된 독자>
  8. 아누 파르타넨,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9.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
  10. 가즈오 이시구로, <녹턴>
  11.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1, 2
  12. 알레산드로 보파,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13. 제인 오스틴, <설득>
  14. 오르한 파묵, <다른 색들>
  15. E. E. 커밍스, <이것은 시를 위한 강의가 아니다>
  16. 제인 오스틴, <이성과 감성>
  17. 파시 살베리, <핀란드의 끝없는 도전>
  18. 이천, <내 통장 사용설명서>*
  19.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20. 장클로드 카우프만, <각방 예찬>*
  21. 알베르토 망구엘, <은유가 된 독자>*
  22. 엘리 골드렛, 제프 콕스, <더 골>*
  23. 롭 무어, <레버리지>*
  24. 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

 

*1-2: 광화문 교보문고(11/19), 3: 광화문 교보문고(11/20), 4-7: 알라딘(11/21), 8: 리디북스 전자책(11/24), 9-13: 민음사 온라인 패밀리데이(11/24), 14-17: 인터파크 도서(11/27), 18-19: 리디북스 전자책(11/28, 대여), 20-24: 리디북스 전자책(11/29, 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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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번째: 눈물이 찔끔

2017. 11. 21.

화요일

오늘 세 번이나 눈물을 찔끔 흘렸다.

펑펑 울지는 않았다. 그저 한두방울을 몰래 찍어냈다.

울컥 차오른 눈물이지만 슬픔보다는 감동에 가까운. 벅차오르는 순간들.

책을 읽다가, 강연을 듣다가, 또 친구가 정성스레 써준 생일 카드를 보다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건내준 카드의 맨 마지막 문장.

“서른 살의 정원이도 참 예뻤단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스물 넷부터 지금까지 쭉 내 곁을 지켜주며, 언제나 나의 가장 예쁜 모습만을 기억해준 친구.

네가 있어 내 삶이 더욱 아름다운 색깔을 띄게 되었다고, 우리는 서로에게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마음을 전하는 것에 거리낌 없는 그녀를 친구로 얻은 후 나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

삶의 좋은 것들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을 하나가 아니라 여럿 곁에 두고 있다는 기쁨이 오늘 나를 울렸다.

그렇게 나의 서른살도 저물어간다. 여물어간다.

김소영, 어린이책 읽는 법, 2017

2017. 11. 21.

화요일

 

늘 어린이를 만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어린이책은 거의 읽지 않는다. ‘어린이책은 시시해’라는 고정 관념이 있었다기보다는, 어린이 책이 아니고서도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그쪽까지 관심이 닿지 않았다는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같이 일하는 분의 추천으로 이 멋진 책을 만나게 되었다. 서점에서도 내가 거의 가지 않는 서가에 꽂혀 있었기에, 이렇게 추천을 받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이 책을 영영 못 읽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한다. 그 정도로 멋진 책이었다.

 

많은 어른들이 습관처럼 어린이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어떤 책을 좋아할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의 독서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대개 ‘좋아하는 책을 읽음으로써 즐거움을 느끼는 것’보다 ‘책을 통해 지식과 사고력, 어휘력, 창의력, 상상력… 등등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책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나는 ‘자발적으로’ 지식을 얻고 싶어서 책을 읽을 때에도 왕왕 체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대학 때 우연히 어린이책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되어 오랜 기간 출판사에서 어린이책 만드는 사람으로 일하다가, 책읽기가 직업이 되다 보니 정작 재미는 시들해진 것 같아서 회사를 나와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 독서 교실을 열게 된 저자는 아이들에게 독서를 권하는 것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어린이를 언제나 읽는 사람, 즉 평생 독자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신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억지로 읽기 싫은 책을 읽게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집안 곳곳을 책으로 가득 채워주셨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분야와 내용을 가리지 않고 마음껏 읽게 해주셨다. 과학책, 역사책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일편단심 동화책이었지만 편독을 한다고 걱정을 내비친 적도 없었다. 다만 슬쩍 다른 종류의 책에도 눈을 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셨던 것은 기억이 난다. 억지로 독서논술교실에 보내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만약 내가 다니고 싶다고 했다면 선뜻 보내주셨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고 자라, 여전히 책을 읽는 어른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어렸을 때 부모님께 받은 가장 큰 선물로, “책 읽기와 배움의 즐거움을 가르쳐주신 것”을 꼽는다. 그래서 지금 내가 만나는 어린이들에게도, 이 선물을 나누어주고 싶다는 욕심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운명처럼 이 책을 만났다.

<어린이 책 읽는 법>의 핵심은, ‘어린이에게 책 읽는 법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가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아이들이 책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려면 어른들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에 가깝다. 저자는 아이들의 나이나 학년에 따라 책을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 후에 본격적인 책 이야기를 꺼낸다고 한다.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어른’이 자기를 ‘아이’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대하고 있다는 진심을 깨닫게 되면 아이들의 태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기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좋으니까 무조건 읽으라고 건네는 사람보다는, 자기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더 활짝 여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다면, 먼저 아이들부터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비록 저자가 책에서 직접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이 메시지가 가장 마음에 선명하게 남았다.

나는 어린이가 어떤 길로 가든지 책을 들고 가면 좋겠다. 책만 보면서 가다가는 넘어지기 십상이지만 너무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면 그것도 괜찮겠다. 책을 옆구리에 끼고 걷다가 쉬면서 읽어도 좋다. 때로는 손에 책이 있다는 걸 잊고 있다가 문득 떠올라서 펼쳐 보아도 좋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독자인 채로 자라는 것이다. 어린이가 책 읽기를 배우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든 평생 독자가 되기 위함이다. 그러니 어린이도, 어린이를 돕는 어른도 눈을 멀리 두되 마음은 단단히 먹자. 다행히도 우리를 도와줄 어린이책은 친절하고 재미있다.  (150-151쪽)

 

+)

이 글을 쓰는 오늘 오전에, 아리랑정보도서관에서 저자의 강연이 있어 다녀왔다. 강연 내용은 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목소리로 듣는 것에는 글로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 좋았고, 책으로 만났을 때만큼 따뜻하고 진심인 분이어서 좋았다. 다음에 우리 공간에서도 모실 수 있었으면.

11월 첫째, 둘째 주에 읽은 책

 

매주 쓰리라 결심했으나 어느새 격주간이 되어 간다. 어찌되었든 계속 쓴다는 게 중요한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올 해 이루려 했던 목표들과 읽으려던 책들, 지속하고 싶던 것들과 끊어내고 싶던 것들, 새로 시작하고 싶던 일과 마무리짓고 싶던 일… 그런 생각을 하면 이내 아득해진다. 계획했던 것보다야 띄엄띄엄이긴 했지만 그나마 이 기록을 꾸준히 이어와서 다행이다. 읽는 사람의 수보다, 쓰는 사람의 수가 훨씬 적다. 단순한 독자 이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끊임없이 써야 한다고 생각(만)한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그리고 내년에는 지금까지보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기를 다시 한 번 결심해 본다.

가즈오 이시구로를 계속해서 읽고 있다. 지난 두 주 간 세 권을 더 읽었다. 이제 남은 것은 세 권. 분명 ‘아, 너무 좋다.’ 는 아닌데 이상스레 마음이 간다. 자꾸 떠오르는 소설 속 장면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을 다섯 권이나 번역한 김남주가 어느 인터뷰를 인용해서 설명했듯, ‘불편한 과거와 대면하는 개인들의 이야기’ 라는 점이 나를 매혹시킨 것 같다. 방심한 틈을 치고 떠오르는 불편한 기억들. 그 기억들을 어떻게 안고 살아가야 할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저 방치하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그러나 그것이 거짓임을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폭삭 주저 앉아 버릴 것 같아서. 언젠가 나도 이시구로풍의 자전적 이야기 한 편을 갖게될 날이 오리라. 그렇게 믿으면서.

 

다 읽은 책

  1. 가즈오 이시구로, 송은경 옮김, <남아 있는 나날>
  2. 가즈오 이시구로, 김남주 옮김, <창백한 언덕 풍경>
  3. 마쓰이 타다미쓰, 민경욱 옮김,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
  4. 이언 맥큐언, 민승남 옮김, <넛셸>
  5. 가즈오 이시구로, 김남주 옮김, <우리가 고아였을 때>

 

읽고 있는 책

  1. 대니얼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2. 강상중,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산 책

  1. 가즈오 이시구로, <창백한 언덕 풍경>
  2. 김숨, <당신의 신>
  3. 이언 매큐언, <넛셸>
  4. 폴 비티, <배반>
  5.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6.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7. Kazuo Ishiguro, An Artist of the Floating World
  8. 강상중,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9. 전병근, <지식의 표정>

*1: 영풍문고 강남점, 2-5: 교보문고 광화문점, 6-9: 교보문고 합정점

10월 셋째, 넷째 주에 읽은 책

10월의 마지막 날.

조금은 울적한 기분으로 서점에 들렀다 집에 왔다. 내 울적함의 팔 할은 교보문고 때문인데, 배알도 없이 또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샀다. 교보문고 때문에 울적할 일이 무어냐 묻는다면 구구절절 설명을 할 수는 있겠지만 설득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가즈오 이시구로의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를 다 읽고 나서, 그의 또 다른 책을 읽고 싶어져서 퇴근 길에 사야겠다고 이미 마음을 정한 참이었다. 주말에 친구가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책을 추천해주었으나 컨디션이 안 좋아서 못 읽은 터라 그 책도 같이 사면 되겠다 싶었다.

일을 잘 마치고 나서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예습 겸 모바일 교보문고에 접속했는데, 전에 못 보던 새로운 페이지가 나타났다. 내가 교보문고에서 산 책들을 바탕으로 나의 독서 성향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책을 추천해주는 서비스였는데, 물론 아직 베타 버전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하나도” 안 맞았다. 그냥 안 맞기만 하면 다행인데, 거기서 분석해놓은 나의 독서 성향이라는 것이 내 자신이 생각하는 나의 독서관(?)과는 거의 정 반대라 해도 좋을 만큼 안 맞는 터라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이게 책이 아니라 영화나 옷 같은 거였다면 ‘뭐야, 잘 안 맞네’ 하고 그냥 넘어갔을 터인데, 이게 이렇게 내 신경을 긁은 이유는 바로 책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많이 읽는 사람(사실은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이지만)이라 생각해온 나에게 어떤 책을 좋아한다 혹은 어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의 정체성과도 상당히 결부되어 있는 문제인지라, 어떤 사람이 나의 독서에 대해 가타부타 이야기하는 것을 일단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책을 교보문고에서만 사는 것도 아니니, 내가 산 책, 읽은 책, 읽고 싶어하는 책을 교보문고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딱 한 권 샀을 뿐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로 떡하니 ‘앨리스 먼로’를 뽑아 놓다니. 이건 너무 심했다. 교보문고에서만 시옷의 세계를 서너 권은 샀는데 왜 김소연이 아닌 앨리스 먼로인가? 박연준도 있고, 편혜영도 있고, 최진영도 있는데 왜 하필? 이번 달에만 두 권을 끝냈고 세 권째 읽어가려 하는 가즈오 이시구로를 골랐다면 아직 ‘제일 좋아하는’ 까지는 아니지만 그럴 수는 있겠다 싶을 텐데.

물론 쌓아놓은 포인트가 아까워서라도 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교보문고를 보이콧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감정을 느낀 책 애호가가 비단 나 하나뿐은 아닐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좋지만, 할 거면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충고한다.

 

다 읽은 책

  1.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 이 책은 사실 지난 번에 포스팅을 하고 나서 그날 밤에 자기 전에 다 읽었다. 두어 시간만에 후루룩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읽히고 경쾌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저자의 책 사랑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올해 읽은 에세이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는 꼽힐 듯.
  2. 가즈오 이시구로,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 <나를 보내지 마>를 인상 깊게 읽고 나서, 두 번째로 고른 책이다. 왜인지 이 책이 끌렸다. 아무것도 모를 때도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지만, 번역가 김남주가 어디선가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한 구절을 읽고 나서 더 읽고 싶어졌다. 역시나 휘몰아치는 서사는 없다. 잔잔하고 고요하지만 행간에 숨겨 놓은 미세한 균열들이 어느새 마음을 잠식한다. 담담한 고백체 때문일까. 화자의 변명이 구차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어쩌면 화자가 말하는 신념이라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덮어놓고 비난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확고함이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위대함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가즈오 이시구로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초기작 세 편이 모두 ‘한 개인이 불편한 과거와 마주하는 법’을 다루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또한 마음을 끈다. 불편한 과거 하나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다만 거기에 대응하는 자세가 다를 뿐. 나 역시 때때로 불쑥 고개를 쳐드는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에 잠 못 이루는 사람으로써, 이 주제를 다룬 그의 다른 두 작품 또한 궁금해졌다.

 

읽고 있는 책

  1. 다니엘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폴트 인펠트, <물리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 과학책을 안 읽어버릇 했더니 맘 먹고 자리에 앉았음에도 거의 진도를 못 나갔다. 다시 한 번 맘잡고 도전해야겠다.

 

산 책

  1. 정홍수, <마음을 건다>
  2. 최진영, <구의 증명>
  3. 가즈오 이시구로,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폴트 인펠트, <물리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5. 마쓰이 타다미쓰,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
  6. 애슐리 반스,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7.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8. 김금희 외, <이해 없이 당분간>

*1~4 반디앤루니스 신세계 강남점(10/17), 5~8 광화문 교보문고(10/31)

26번째: 안도

2017. 10. 17.

화요일

양손 가득 새로 산 책과 내일 아침 거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야식으로 나눠 먹으려 산 만두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폴폴 풍기고,

어느 책부터 골라 읽을까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 문득

아,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내일 출근하면 또 할 일이 잔뜩 기다리고 있겠지만,

여전히 일은 욕심처럼 되지 않고 풀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내게 주어진 몫이라는 확신.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바로 여기가 내 자리라는 단단한 믿음.

그러니 행복하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10월 첫째, 둘째주에 읽은 책

긴 연휴를 보내고 다시 업무에 적응하고 나니, 10월도 절반이 지나 있다. 흐르는 시간에도 가속도가 붙는 것일까.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책을 읽는 습관을 붙이고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밀도 있게 독서를 했고, 또 책을 여러 권 샀다. 그리고 손으로 약간 글을 썼다. 일부러 노트북은 들고 나가지 않았다.

때때로 나는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무엇을 읽는가보다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읽기를 위한 읽기. 적어놓고 보니 그리 나빠보이진 않는다. 딱히 무언가를 위해서 읽는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어렸을 때부터 늘 읽다 보니, 어느새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뭔가 중요한 일을 빼먹고 있는 듯한 기분에 불안해진다. 어쩌면 이 기록도 마찬가지이다. 딱히 무엇을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내적 동기때문에 적는 것이다. 물론 그 양이나 깊이는 처음 계획했던 것에 비하면 소소하기 이를데 없지만. 단지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기억하기 위한 장치일지도 모르겠다. 올해를 통과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고, 내면은 소란스럽다. 불안정한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나는 읽기에서 찾으려 했던 걸까. 좋고 나쁨을 떠나서 적어도 나답긴 하다. 대단히 나다운 방법이다.

 

읽고 있는 책

  1. 앨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
    • 여름 즈음인가, 강남 교보에서 이끌리듯 구입한 이래 잊고 있다가 이번 방콕 여행 길에 챙겨 갔다. 나지막이 읖조리듯 단조로운 문체.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예사롭지 않은 내용들이 일상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별일 아니라는듯. 그렇게 덤덤히 써내려간 이야기들은 공고한 세계를 구축해내, 읽는 이를 잠시 그 안에 가둔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나면 그 안에 갇혀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감각이다. 그래서 이 단편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어내리기는 쉽지 않다. 한 편에서 다른 편으로 넘어가기 전에, 노련한 문장들로 세워진 촘촘한 벽 사이의 틈으로 빠져나와 다시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한 이유로 여행 기간 내내 손에서 놓지 않았건만 아직도 다섯 편이 남았다. 한 편의 무게를 알게된 이상 쉬이 다시 책장을 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2. 대니얼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3. 장수진, <사랑은 우르르 꿀꿀>
    • 오늘 구입해서 절반 이상 읽었다. 처음 보는 시인의 첫 시집이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 펼쳐 들었다. 마음을 끄는 문장이 있어 열심히 읽었으나 뒤로 갈수록 산만해져서 끝내지 못하고 책장을 덮었다. 과식했나보다.
  4.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 몇 년 전에 우연히 알게된 이래로 늘 읽어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다른 책에 밀려 장바구니 안에만 몇 년을 머무르다, 오늘 북티크에서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구입해서 단숨에 읽었다. 책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책 애호가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많이 읽은 사람답게(?) 달필이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으면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그녀의 통찰보다는 ‘와, 이 사람 정말 책 많이 읽었네’라는 생각을 먼저 했는데 묘하게 글에서 느껴지는 인상이 비슷하다. 진솔하고 젠체하지 않으나 박학함이 절로 묻어나되 현학적이지는 않달까. 아무튼 늘 글쓰기의 벽에 부딪히는 사람으로서는 부러운 일이다. 앞으로도 자주 꺼내보는 책이 될 것 같은 예감.

 

다 읽은 책

  •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 김남주의 <사라지는 번역자들>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에 대한 그녀의 깊은 애정을 목격하고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사놓고는 오래도록 묵혀두다가,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절반쯤 읽고 난 뒤 그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나름 문학 애호가라고는 하나 원래 알고 있던 작가가 노벨상을 타는 빈도보다는 노벨상을 계기로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는 빈도가 훨씬 높은 나로서는 제법 신선한 경험이었다.
    • 다음 장이 궁금해서 밤을 꼬박 세울 만큼 흥미진진한 서사를 지닌 소설은 아니지만, 무척이나 섬세하게 조직되어 있어 더디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 없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한 번도 밑줄을 긋지 않았는데, 이는 문장에 힘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각각의 문장들이 따로 떼어낼 수 없는 전체를 이루고 있어 그 중 하나를 골라내는 것이 무용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라 설명하는 것이 낫겠다.
    •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잠식하고 있는 감정은 분명 슬픔인데, 신파처럼 강하게 밀려오는 종류의 슬픔은 아니다. 막 눈물을 닦아낸 티슈 정도의 습기를 머금고 있으나 축축하지는 않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 끝내 좌절될 것을 알면서도 품고 있던 희망, 인간성에 대한 의문…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들을 작가는 경탄할 만한 성실함과 무던함으로 다루어낸다.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이 느낌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단어를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더 읽어보고 싶은 작가다.

 

산 책

  1. 김소연, <시옷의 세계>
    • 내가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이 책. 벌써 몇 권째 사는 건지 모르겠다. 줄곧 새로 사서 선물하다가 누군가에게 빌려주었는데 왠지 돌려 받지 못할 것 같은 예감. 남편에게도 예전에 선물한 적이 있어 그 책을 갖고 오면 되겠다 싶었는데 어디 두었는지 못 찾겠다고 해서 새로 샀다. 나는 이 책의 문장들을 속속들이 흠모한다. 만약 누군가의 문장을 훔칠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시옷의 세계> 속 김소연의 문장을 훔칠 것이다.
  2.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3. 로런스 블록 편, <빛 혹은 그림자>
    • 호퍼의 그림을 소재로 엮은 소설집이라니, 읽어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사버렸다.
  4. 장수진, <사랑은 우르릉 꿀꿀>

*1~4 모두 북티크 서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