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독서

 

올해도 이제 한 달 남았다.

돌이켜보면 참 큰 변화가 많았던 이번 해. 순탄하다고만은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잘 보냈다 싶어 마음이 흡족하다.

11월에도 개인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여러 가지 도전들이 있었고, 스스로의 한계에 허덕이다 마음을 괴롭히는 일들도 있었으나 긍정적인 변화들이 나를 잘 지탱해주었다. 좋은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다는 실감을 자주 할 수 있었다.

읽기 생활에 있어 가장 극적인 변화는 전자책 단말기를 선물받은 것. 그동안 종이책만을 고집해왔는데, 작년에 함께 일했던 분이 ‘내가 안 사주면 절대 안 살 것 같아서’라는 멋진 이유로 선물을 해주셨다. 선물 받은 다음 날부터 바로 꺼내어 쓰고 있는데, ‘왜 내가 이걸 진작에 안 샀지!’라는 생각뿐이다. 독서의 깊이야 종이책으로 읽을 때도 변변치 않았으니 비교할 만한 거리는 안 될 것 같고, 읽는 책의 범위가 무척 넓어졌다. 괜한 자존심에 사고, 또 읽기를 꺼려왔던 재테크나 금융 지식과 관련된 책들, 내용이 좋다는걸 알아도 구태여 책장에 꽂아두고 싶지는 않았던 경제경영서나 자기계발서, 두꺼운 볼륨에 압도되어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던 진지한 인문교양서들을 종류별로 받아서 야금야금 읽고 있다.

그러면서도 종이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잔뜩 샀는데, 이제부터 조금씩 종이책/전자책을 구매하는 기준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아직 친정에서 책을 10%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벌써 절반 이상 차버린 책장의 밀도를 조절하는 데에도 전자책이 쏠쏠하게 공을 세울 것 같다는 예감. 이 자리를 빌어 선물해주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하고 싶다.

다만 원래도 그랬는데, 기록하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따라가질 못한다. 이건 순전히 나의 게으름 때문인데, 그래도 아무것도 안 적는 것보다야 제목이라도 적어두는게 낫다는 생각에서 주르륵 적어본다.

 

2017/12/21 덧붙임

다시 보니 좋게 읽은 책들이 많은데, 너무 제목만 적어둔 것 같아 몇 자 덧붙인다.

 

다 읽은 책

  1. 폴 비티, <배반>
    • 맨부커 상 수상작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서 무관심하게 있다가 어느날 서점에서 갑자기 눈에 들어 집어 왔다. 흑인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이해하기 힘든 표현이나 유머 코드들이 많아서 100% 와닿지는 않았지만,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이런 소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소정의 성과는 있었다 하겠다. 그러나 이 작가의 소설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원어민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표현들이 가득한 이 책을, 깨알같이 각주를 달아가며 번역해낸 번역가의 수고에는 박수를 보낸다.
  2. 대니얼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 친구의 추천으로 사놓고, 한참을 걸려 겨우 다 읽었다. 누구나 행복에 대한 기대를 갖고 살아간다. ‘1억이 생기면 행복하겠지’ ‘대기업에 들어가면 행복하겠지’ ‘이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하겠지’ 등등. 하지만 꿈꾸던 그 미래가 현실이 됐을 때, 기대만큼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설령 느꼈다 한들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곤 한다. 저자는 잡힐듯 잡히지 않는 행복의 비밀을 인간의 인지구조에서 찾는다. 저자가 서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을 읽는다고 행복해지는 법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왜 우리가 행복에 대해 착각을 하는지, 그 원인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된다.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딴지를 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적어도 세상 사람들은 다 행복해보이는데 나만 불행한 것처럼 느껴질 때, 그건 인간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조금 더 ‘논리적으로’ 위로할 수 있게 된다.
  3. 김소영, <어린이책 읽는 법>
    • 이 책은 너무 감명깊게 읽어서 따로 포스팅을 했다.
  4. 강상중,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 저자에 대한 기대감으로 집어들었다. 전반적으로 나쁘지도 않았으나 크게 좋지도 않았다. 두 번 읽거나 누군가에게 권하지는 않을 것 같다.
  5. 아누 파르타넨,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전자책)
    • 처음으로 구입한 전자책. 종이책으로는 무척 두꺼워서 사기도, 들고 다니기도 부담스러웠는데 전자책으로 구입해서 출퇴근 길에 쏠쏠하게 읽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북유럽 사회에 대한 오해와,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에 대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자세히 이야기해준다. 핀란드인으로 살던 저자가 미국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미국에 와서 살게 되면서 그간 자기가 당연히 누리던 것들이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거였는지 깨닫게 되면서 쓰게 된 책이기 때문에, 읽다보면 ‘아, 나는 왜 핀란드에서 태어나지 않은 걸까’하고 좌절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래도 미국보단 한국이 낫네’하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핀란드와 미국이라는 두 극단적으로 다른 사회를 양축에 놓고, 우리는 어디쯤에 있는지 짚어보며 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교육에서부터 경제, 보건, 정치에 이르기까지 삶의 구성 요소들을 포괄하여 다루고 있기 때문에 보다 넓은 관점에서 현실을 돌아보게 해주는 매력도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핀란드 교육에 대해 더 알고 싶어져서, 책에서 소개된 피시 살베리의 <핀란드의 끝없는 도전>을 구입했다. (물론 아직 읽지는 않았다.)
  6. 이천, <내 통장 사용설명서> (전자책)
    • 리디북스에서 반값 대여 이벤트를 하길래 읽게 되었는데, ‘일곱 개의 통장’으로 가계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설명하며 재테크의 기본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준 책이다. 이 책을 필두로 여러 금융, 재테크 관련된 책들을 읽고 있다.
  7. 차영아, <쿵푸 아니고 똥푸>
    • 김소영 선생님이 강의에서 ‘올해 읽은 어린이 책 중에 최고’라고 추천해주셔서 바로 구입했는데, 이 책에 실린 두 번째 이야기, <오, 미지의 택배>를 읽고서는 엉엉 울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 남편이 이상하게 쳐다볼 정도였다. (그리고 다음날 직장에서 줄거리를 이야기해주었더니, 그들도 울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들과 일하고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이런 책을 읽고 자라면, 아이들은 절로 순하고 착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깨끗하고 따뜻한 책이었다.
  8. 제르마노 쥘로, <나의 작고 작은>
  9. 제르마노 쥘로, <토요일의 기차>
  10.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블룸카의 일기>
  11. 사노 요코, <100만 번 산 고양이>
  12. 토미 웅거러, <달 사람>
  13. 이수지, <파도야 놀자>
    • 8-13번은 그림책을 모으는 동료가 같이 보자고 들고와준 책들이다. 하나같이 예술성이 뛰어나고, 줄거리와 그림이 쫀쫀하게 밀착되어 있어 다 읽고 나니 마치 잠시동안 딴 세상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림책의 매력을 알게 해 준 그녀에게 감사한다.

 

읽고 있는 책

  1. 가즈오 이시구로,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2. 정홍수, <마음을 건다>
  3. 장클로드 카우프만, <각방 예찬>
  4.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5.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산 책

  1.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2. 가즈오 이시구로,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 2
  3. 김소영, <어린이책 읽는법>
  4. 권태응 외, <귀뚜라미와 나와>
  5. 폴 아자르, <책. 어린이. 어른>
  6.  차영아, <쿵푸 아니고 똥푸>
  7. 알베르토 망구엘, <은유가 된 독자>
  8. 아누 파르타넨,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9.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
  10. 가즈오 이시구로, <녹턴>
  11.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1, 2
  12. 알레산드로 보파,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13. 제인 오스틴, <설득>
  14. 오르한 파묵, <다른 색들>
  15. E. E. 커밍스, <이것은 시를 위한 강의가 아니다>
  16. 제인 오스틴, <이성과 감성>
  17. 파시 살베리, <핀란드의 끝없는 도전>
  18. 이천, <내 통장 사용설명서>*
  19.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20. 장클로드 카우프만, <각방 예찬>*
  21. 알베르토 망구엘, <은유가 된 독자>*
  22. 엘리 골드렛, 제프 콕스, <더 골>*
  23. 롭 무어, <레버리지>*
  24. 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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