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독서

2018. 10. 28.

일요일

 

내 생에 이렇게 본격적으로 알차게 놀아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꽉꽉 채워 보낸 10월도 어느새 끝을 향해 달려간다. 책도 많이 읽고(사고), 영화도 많이 보고, 전시도 보고, 공연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하여간 이곳저곳을 많이 쏘다녔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니 뭘 해도 좋았다. 몸도 마음도 함께 살찌우는 충만한 가을이었다. 돌아보니 정말 좋은 일들이 많았다. 몇 년 뒤에도 이 10월을 참 아름답게 기억하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놀아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순간에 좋은 기회가 있어 11월부터는 다시 새로운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전에 하던 일과 연속선상에 있으면서도 또 제반 조건들은 완전히 달라서 나로서도 큰 도전이 될 것 같다. 그래도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크다. 이전 프로젝트를 하면서 아쉬웠던 점들을 극복해나가며 일하고 싶다. 이전 직장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을 잘 가꾸어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이 많아서 이런 저런 것들을 많이 읽기도 읽고 사기도 샀는데, 문제는 그때그때 기록을 안 해두었더니 기억이 벌써 까마득하다는 것. 다행히 무엇을 샀는지는 그때그때 적어두었는데, 야금야금 읽은 책들은 어느새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들도 많다. 여전히 여러 가지를 조금씩 읽어가며, 언젠가 읽고 싶은 책들을 착실히 사모으고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정말 행복했던 한 달.

 

다 읽은 책 

  1. 배리 슈워츠, <우리는 왜 일하는가>
    • 우리 사회는 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리고 일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자신의 일(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은 온전히 개인에게만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가 일을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일’을 바라보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관점이 돋보이는 책.
  2. 오스틴 라이트, <토니와 수잔>
    • 책 속의 책에서 그리는 끔찍한 이야기보다, 책 속의 책을 읽는 독서의 경험에 더 간담이 서늘해진다. 만만치 않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만드는 잘 짜여진 이야기. 오랜만에 책 속에 아주 푹 잠겨 읽었다.
  3. 히라노 게이치로, <마티네의 끝에서>
    • 전자책으로 더듬더듬 읽어나간 책.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나서 읽는 도중에 책을 내팽겨친 건 또 처음이다. ‘고구마 백 개 먹은 듯한 기분’을 아주 제대로 선사해 주었다. 그러나 결국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며칠 뒤 다시 손에 들었다. 서사보다는 묘사에 주목해서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 선율을 묘사하는 작가의 문장력이 압권이다. 더불어 그의 박식함에도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물론, 중간에 답답한 구석이야 있었지만 이야기로서도 결코 낙제점은 아니다. 다만 이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내가 아직 미성숙한 것일뿐.
  4. 이기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읽고 있는 책

  1.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2. 토니 셰이, <딜리버링 해피니스>
  3. 요시이 시노부, <잘 지내나요? 도쿄 책방>
  4. 다와다 요코, <여행하는 말들>
  5. 일라나 쿠르샨, <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
  6. 테리 이글턴, <인생의 의미>
  7.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8. 최형욱, <버닝맨, 혁신을 실험하다>
  9. 문희언, <앞으로의 1인 출판사>
  10. 타라 브랙, <받아들임>

 

산 책 

  1.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읽거나 말거나>
  2. 요시이 시노부, <잘 지내나요? 도쿄 책방>
  3. 오스틴 라이트, <토니와 수잔>
  4. 홍성란, <채식은 어렵지만, 채소 습관>
  5. 장강명, <팔과 다리의 가격>
  6. 최형욱, <버닝맨, 혁신을 실험하다>
  7.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신기한 식물일기>
  8. 장강명, <노라>
  9. 일라나 쿠르샨, <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
  10. 루스 크라우스/모리스 샌닥, <구멍은 파는 것>
  11. 앨런 존슨, <사회학 공부의 기초>
  12. 다와다 요코, <여행하는 말들>
  13. 말랄라 유사프자이/크리스티나 램, <나는 말랄라>
  14.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모네의 정원에서>
  15. 나카에 요시오/우에노 노리코, <그건 내 조끼야>
  16. 김소연, <i에게>
  17. 유진목, <식물원>
  18. 사이토 마리코, <단 하나의 눈송이>
  19. 레일라 슬리마니, <그녀, 아델>
  20. 조경란, <소설가의 사물>
  21. 브로드컬리 매거진,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
  22. 임소라, <도서관람>
  23. 문희언, <앞으로의 1인 출판사>
  24. 홍주의, <책 속의 유럽 아트북 페어>
  25. 체조 스튜디오, <사물함 2호>

*1-2: 땡스북스(9/27), 3-6: 교보문고 합정점(9/27), 7: 반디앤루니스 온라인(9/30), 8: 카카오메이커스(10/2), 9: 교보문고 광화문점(10/4), 10-12: 땅콩문고(10/5), 13-15: YES24 @f1963(10/9), 16-17: 손목서가(10/10), 18-20: 교보문고 광화문점(10/15), 21-25: 언리미티드 에디션(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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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그리고 9월의 독서

2018. 9. 26.

수요일

 

여기저기에 조금씩 기록을 남기고는 있으나, 왜인지 여기에는 쓰려면 꽤 큰 맘을 먹어야 해서 자꾸만 기록이 게을러진다. 어차피 보는 이도 없으니 좀 더 편하게 올려도 좋으련만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앉으면 그간 있었던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글을 하나 쓸 때마다 커다란 사건이 하나씩은 지나간 다음인 것만 같은 기분.

8월 꼬박, 그리고 9월을 거의 다 보낸 지금. 많은 책을 읽고 또 사는 사이에 나의 삶에는 또 한 번의 큰 변화가 있었다.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꼬박 2년 가까이, 온 마음을 써서 해온 일인데 이렇게 쉽게 놓아버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진부한 말이지만 그간 최선을 다해왔기에 후회는 없다. 물론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아쉬움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이 있었다. 더 멋지게, 더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일들이. 어떻게든 남아서 더 해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드미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런 순간들 사이의 간격이 점점 좁아졌다. 동료들을 보고 버텼으나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서로가 서로를 위해 버티고 있었다. 그 외에는 더 남아 있어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채로. 그 뒤의 결정은 쉬웠다. 한 명도 남겨두지 않고 함께 떠나기로 했으니까. 이 결정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감정적으로는 옳은 결정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미 돌이킬 수 없어진 이상, 옳다고 믿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는 보여주어야 한다. 그 결정이 옳았음을. 말로 핑계를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게 스스로에게 책임을 다 하는 일이라 믿는다.

일을 하면서 느낀 것과 배운 것에 대해서는 너무 멀지 않은 시일 내에 한 번 글로 정리하고 싶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괴로운 시간들 속에서 매달리듯 책을 읽었다. 오래 전에 친구가 선물해준 <하워드의 선물>이 큰 도움이 되었다. 전환점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깊었지만, 사실 내 마음이 가장 오래 머문 것은 조직 문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내가 머물고 싶은 조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이 조직이 왜 이렇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여전히 너무나 신뢰하고 존경하는 동료들임에도 우리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리더십에 대해. 시스템에 대해. 팀워크에 대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상위의 개념인 조직의 ‘문화’에 대해. 좋은 책은 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던짐으로써 읽는 이에게 깨달음을 준다. 손이 닿는 곳에 적절한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이 책이 너무 고마워서, 함께 일을 그만두게 된 동료 두 명에게도 선물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필요할 때에 이 책이 그들에게 적절한 질문을 던져주기를 바라면서.

그 외에도 이런저런 책들을 많이 읽긴 읽었는데, 기억이 희미하다. 조금씩 떼어 읽었다. 전자책도 많이 읽었다. 한 권을 진득하게 읽지 않고 이책 저책을 오가며 읽었다. 결혼 한 뒤 거의 처음으로 친정에서 며칠을 지내며 그곳에 두고온 책들도 다시 꺼내어 읽었다. 새로운 책도 많이 샀다. 언제 어디서 샀는지 기억이 희미할 만큼.

이런 식으로 책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어 한동안 기록을 멀리했다. 이 목적성 없는 기록에 대한 회의는 앞으로도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록을 위한 기록’에도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이 짧은 글에 두 번이나 쓰기에 ‘믿는다’는 동사는 너무 무거운 것 같긴 하지만) 그렇기에 기간이 좀 들쭉날쭉 할지라도, 내용에 두서가 없을지라도 이 기록은 계속 이어가보려 한다. 그게 뭐가 되었던 간에.

 

산 책 

  1. 아툴 가완디, <어떻게 일할 것인가>
  2. 오에 겐자부로, <말의 정의>
  3. 황현산,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4. 다카노 조센, <교황에게 쌀을 먹인 남자>
  5. 장석주,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6. 이아림,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7. 닉 러브그로브, <스워브: 나를 계속 넓히며 일하는 사람들의 6가지 비밀>
  8. 진 트웬지, <i세대>
  9. 타라 브랙, <받아들임>
  10. 미히르 데사이, <금융의 모험>
  11.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12. 토니 셰이, <딜리버링 해피니스>
  13.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14. 앤 스콧, <오래된 빛: 나만의 서점>
  15. 베리 슈워츠, <우리는 왜 일하는가>
  16. 맥스위니스 편집부, <왜 책을 만드는가>
  17. 플로랑스 비나이, <몸을 씁니다>
  18. 전혜린, <목마른 계절>
  19. 매거진 B <츠타야>
  20. 매거진 B <몰스킨>

 

*1-4: 광화문 교보문고(8/15), 5: 영풍문고 홍대점(8/22), 6-7:영풍문고 종각종로점(8/27), 8-10: 광화문 교보문고(8/31),  11: 인터넷 교보문고(9/14), 12-13: 인터넷 교보문고(9/18), 14-20: 스틸북스(9/26)

7월의 독서

2018. 7. 30.

월요일

7월의 마지막 날을 향하는 밤에 겨우 마음을 잡고 기록을 남긴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서른 한 살의 7월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아이를 잃었다. 아직 얼굴을 맞댄 적도 없는데 잃어버렸다. 너무 빨리 깊이 사랑해버려서일까.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맞이한 아이를 역시나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떠나보냈다. 세상을 잃은 사람처럼 울었다. 아직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아이를, 얼굴이 채 만들어지기도 전에 떠나보냈는데도 이렇게나 슬픈데 고이 키운 자식을 잃은 사람의 슬픔은 차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전까지 알던 나의 세계가 뒤집혔다. 지금까지의 나와 완전히 달라졌는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더없이 소중한 것을 잃고 나니 역설적으로 내가 얼마나 많이 가진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 따뜻한 위로와 다정한 걱정들. 넘치는 사랑 안에서 나는 한없이 여린 아이가 되어 엉엉 울었다. 조금씩 무너진 마음이 여물어가는 것을 느꼈다. 슬퍼만 하기에는 고마워할 일이 너무 많아서 또 눈물을 쏟았다.

이 일에 비하면 다른 일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혼 후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남편과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남편이 먼 곳으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는 주말 부부를 우리가 하게 되었다. 아이를 잃은 나에게서 남편까지 빼앗아가는 운명이 가혹하게 느껴졌으나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일시적인 혼자의 삶을 즐기기로 마음 먹었다.

지난 금요일에는 차를 끌고 출근하는 길에 사고를 냈다. 반쯤 얼이 빠져 있는 상태였으니 무리도 아니다. 전날에도, 전전날에도, 곧잘 운전을 했기에 약간 방심한 틈을 타 사고가 나버렸다. 전적으로 내 잘못이기에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다. 막막한 상태에서 친절한 분이 도와주셔서 무리 없이 수습할 수 있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이런 가운데 한동안 책은 멀리하고 온종일 아무 생각 없이 넷플릭스만 보며 지냈다. 잠시라도 화면에서 눈을 떼면 무서운 생각이 머릿 속에 또아리를 틀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해야할 일을 외면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래서는 서서히 가라앉을 것만 같아, 마음을 추스르고 지난 주부터 다시 출근하고 있다. 어제는 다시 발령지로 떠나는 남편을 배웅하고 집에 가는 길에 오랜만에 서점에 들렀다. 처음에는 시들했으나 하염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책들이 있었다. 소중하게 골라 들고 집으로 와서 한장씩 넘기며 읽었다. 이제야 다시 궤도에 접어든 느낌이다.

읽은

  1. 강창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2. 요시타케 신스케, <있으려나 서점>
  3. 이현미, <엄마의 언어로 세상을 본다면>

읽고 있는

  1. 브레네 브라운,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2. 찰스 두히그, <습관의 힘>

  1. 김개미, <어이 없는 놈>
  2. 최희정, <한 그릇 집밥 다이어트 레시피>
  3. 스가쓰케 마사노부, <물욕 없는 세계>
  4. 요시타케 신스케, <있으려나 서점>
  5. 이현미, <엄마의 언어로 세계를 본다면>
  6. 모니카 드레이크 외, <작가님, 어디 살아요?>

*1: 쿠팡 도서(7/20), 2-6: 광화문 교보문고(7/29)

4월의 독서 (1/2)

 

2018. 4. 23.

월요일

 

4월도 어느덧 단 한 주를 남겨놓고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나서 회상하면 한 달에 대한 감상이 늘 비슷하다.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으나, 무사히 지나갔다.” 정도일까. 돌이켜보면 월말이 되어 무사히 지나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달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쯤이면 어차피 월말이 되면 알아서 정리가 될 터이니 쓸데없는 걱정은 말고 일을 저지르자고 생각해도 좋겠다.

4월부터 듣기 시작한 패스트캠퍼스의 강의는 오늘 저녁으로 끝이 난다. 이렇게 비싼 돈을 내고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몇 번 스스로에게도 물어보았지만 후회는 없다. 아마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하고 싶은 일들에 묻혀 마케팅이나 브랜딩에 대해 따로 시간을 투자해서 배우지 않았을 것이다. 워낙에 기초적인 내용이라 바로 실전에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실제 일할 때 마주치는 문제들에 하나하나 대입해봐야지.

4월부터 합류한 새로운 팀원은 제몫을 넘치게 잘 하고 있다. 보고만 있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 프로젝트에 부족한 것들이 많지만 인복만큼은 부족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와 성향이 놀랄 정도로 비슷하고, 이야기도 잘 통한다. 그러나 약 삼 주를 지켜보면서 내가 파악한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좋은 질문을 던질 줄 안다’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더 중요한 일들이 있어서, 등등의 핑계로 한 켠에 미뤄두었던 일들을 매의 눈으로 파악하고 거기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서 가슴이 뜨끔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도 어느새 적당히 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이 좋은 사람들과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다고 의욕을 불태우는 중이다.

그리고 부산 여행이 있었다. 만삭의 친구를 보러 간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사실은 아난티 코브에 있는 서점, ‘이터널 저니’에 가고 싶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쉬운 점을 찾으려고 맘을 먹으면 수두룩하게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책장 가득 꽂혀 있는 책들과 너른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에 무슨 불평을 더할 수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그곳에서 책만 읽고 싶었다. 숙박비는 결코 저렴하지 않았으나 아깝지 않은 소비였다.

독서면에서는 한 권을 꾸준히 읽은 한 달이었다. 지난 달 말에 구입한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Eat, Pray, Love를 느린 속도로 끝까지 읽었다. 원서로 된 책 한 권을 다 읽은 것이 얼마만인지. 번역서로 읽었더라면 훨씬 더 빨리 읽었겠지만, 오히려 천천히 읽어갈 수 있어 좋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느낌으로 한 단어 한 단어를 읽어나갔다. 그러는 동안은 마치 리즈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로마의 오래된 도서관 중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분수를 바라보고 앉아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인도의 깊은 숲 속에 위치한 힌두 사원에서 마룻바닥을 닦고 명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발리의 자기 나이가 몇 살인지도 기억을 못할 정도로 나이가 많은 주술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당장 떠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에 한없이 감사를 느끼기도 하면서, 그렇게 읽어나갔다. 언젠가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흥미롭지 않아도 좋으니 스스로에게 한없이 투명해질 수 있는. 구태여 숨기려하지 않고,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대로,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대로, 있는 내 모습 그대로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글을. 작년에 가즈오 이시구로를 읽은 것처럼 올해는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책들을 ‘원서로’ 읽어나가려 한다. 물론 이 계획은 그 사이 만나게 될 수많은 흥미로운 책들에게 방해받게 되겠지만. 그조차 즐거움이니.

 

다 읽은 책

  1. Elizabeth Gilbert, Eat, Pray, Love 

 

읽고 있는 책

  1. 한스 라트,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2. 티모시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산 책

  1. 우승우, 차상우, <창업가의 브랜딩>
  2. 지바 마사야, <공부의 철학>
  3. 김진애, <집놀이>
  4. 이토 도요 외, <이토 도요의 어린이 건축학교>
  5. 콜린 스튜어트, <열세 번의 시공간 여행>
  6.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7. 에밀리 디킨슨,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8. 켄트 하루프, <축복>
  9. 리처드 플래너건, <굴드의 물고기 책>
  10. 요코야마 류지, <트리플 미디어 전략>

*1-2: 강남 교보문고(4/9), 3-4: 인터넷 교보문고(4/12), 5-9: 이터널 저니(4/16), 10: 쿠팡(4/16)

 

10월 셋째, 넷째 주에 읽은 책

10월의 마지막 날.

조금은 울적한 기분으로 서점에 들렀다 집에 왔다. 내 울적함의 팔 할은 교보문고 때문인데, 배알도 없이 또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샀다. 교보문고 때문에 울적할 일이 무어냐 묻는다면 구구절절 설명을 할 수는 있겠지만 설득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가즈오 이시구로의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를 다 읽고 나서, 그의 또 다른 책을 읽고 싶어져서 퇴근 길에 사야겠다고 이미 마음을 정한 참이었다. 주말에 친구가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책을 추천해주었으나 컨디션이 안 좋아서 못 읽은 터라 그 책도 같이 사면 되겠다 싶었다.

일을 잘 마치고 나서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예습 겸 모바일 교보문고에 접속했는데, 전에 못 보던 새로운 페이지가 나타났다. 내가 교보문고에서 산 책들을 바탕으로 나의 독서 성향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책을 추천해주는 서비스였는데, 물론 아직 베타 버전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하나도” 안 맞았다. 그냥 안 맞기만 하면 다행인데, 거기서 분석해놓은 나의 독서 성향이라는 것이 내 자신이 생각하는 나의 독서관(?)과는 거의 정 반대라 해도 좋을 만큼 안 맞는 터라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이게 책이 아니라 영화나 옷 같은 거였다면 ‘뭐야, 잘 안 맞네’ 하고 그냥 넘어갔을 터인데, 이게 이렇게 내 신경을 긁은 이유는 바로 책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많이 읽는 사람(사실은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이지만)이라 생각해온 나에게 어떤 책을 좋아한다 혹은 어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의 정체성과도 상당히 결부되어 있는 문제인지라, 어떤 사람이 나의 독서에 대해 가타부타 이야기하는 것을 일단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책을 교보문고에서만 사는 것도 아니니, 내가 산 책, 읽은 책, 읽고 싶어하는 책을 교보문고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딱 한 권 샀을 뿐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로 떡하니 ‘앨리스 먼로’를 뽑아 놓다니. 이건 너무 심했다. 교보문고에서만 시옷의 세계를 서너 권은 샀는데 왜 김소연이 아닌 앨리스 먼로인가? 박연준도 있고, 편혜영도 있고, 최진영도 있는데 왜 하필? 이번 달에만 두 권을 끝냈고 세 권째 읽어가려 하는 가즈오 이시구로를 골랐다면 아직 ‘제일 좋아하는’ 까지는 아니지만 그럴 수는 있겠다 싶을 텐데.

물론 쌓아놓은 포인트가 아까워서라도 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교보문고를 보이콧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감정을 느낀 책 애호가가 비단 나 하나뿐은 아닐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좋지만, 할 거면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충고한다.

 

다 읽은 책

  1.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 이 책은 사실 지난 번에 포스팅을 하고 나서 그날 밤에 자기 전에 다 읽었다. 두어 시간만에 후루룩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읽히고 경쾌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저자의 책 사랑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올해 읽은 에세이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는 꼽힐 듯.
  2. 가즈오 이시구로,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 <나를 보내지 마>를 인상 깊게 읽고 나서, 두 번째로 고른 책이다. 왜인지 이 책이 끌렸다. 아무것도 모를 때도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지만, 번역가 김남주가 어디선가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한 구절을 읽고 나서 더 읽고 싶어졌다. 역시나 휘몰아치는 서사는 없다. 잔잔하고 고요하지만 행간에 숨겨 놓은 미세한 균열들이 어느새 마음을 잠식한다. 담담한 고백체 때문일까. 화자의 변명이 구차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어쩌면 화자가 말하는 신념이라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덮어놓고 비난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확고함이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위대함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가즈오 이시구로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초기작 세 편이 모두 ‘한 개인이 불편한 과거와 마주하는 법’을 다루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또한 마음을 끈다. 불편한 과거 하나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다만 거기에 대응하는 자세가 다를 뿐. 나 역시 때때로 불쑥 고개를 쳐드는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에 잠 못 이루는 사람으로써, 이 주제를 다룬 그의 다른 두 작품 또한 궁금해졌다.

 

읽고 있는 책

  1. 다니엘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폴트 인펠트, <물리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 과학책을 안 읽어버릇 했더니 맘 먹고 자리에 앉았음에도 거의 진도를 못 나갔다. 다시 한 번 맘잡고 도전해야겠다.

 

산 책

  1. 정홍수, <마음을 건다>
  2. 최진영, <구의 증명>
  3. 가즈오 이시구로,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폴트 인펠트, <물리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5. 마쓰이 타다미쓰,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
  6. 애슐리 반스,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7.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8. 김금희 외, <이해 없이 당분간>

*1~4 반디앤루니스 신세계 강남점(10/17), 5~8 광화문 교보문고(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