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독서 (2/2)

2018. 3. 27.

화요일

 

지지난 주부터 화-토 출근을 하는 나에게, 화요일은 월요일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숨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푹 쉬고 난 뒤 에너지가 가장 넘치는 날이라는 뜻이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주말 일정은 또 어찌나 빡빡하게 짜놓았는지, 쉬어도 쉬는게 아닌 주말을 보내고 녹초가 된 상태에서 쓰러져 잠들었는데 중간에 달갑지 않은 손님(=생리통)이 찾아와 새벽녘에 잠을 설치다 다섯 시가 다 되어 겨우 다시 잠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기운이 남아 있다. 아무리 기운이 남았다 한들 그대로 집에 들어가면 바로 침대와 하나가 될 것이 빤히 보이기에, 오늘은 아침부터 퇴근 길에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카페에서 머릿속 정리도 하고 밀린 일도 좀 하다 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오랜만에 종각에 내렸는데 서점에 가지 않는 것도 아쉬워서 잠깐, 정말 잠깐만 보다 나오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에는 책이 한 무더기 들려 있었고… 어느 것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결국 한보따리 사들고 나왔다. 그만금 통장 잔고는 줄었으나 마음만은 배부르다. 잔뜩 샀는데도 맘에 쏙 들어서 결제 직전까지 갔던 청바지보다 저렴한 가격이라, 어차피 나갈 돈인데 바지 대신 책을 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총 일곱 권을 샀는데 그 중 원래 사려고 했던 책이 세 권, 서점에 와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 네 권이고, 그 중 각각 두 권이 외서다. 지난 주말에 다 읽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빅 매직>이 너무 좋아서, 그녀의 베스트셀러 전작(<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과 <빅 매직>을 모두 원래 쓰인 그대로 읽어보고 싶어졌기 때문에 서점 산책을 외서 코너에서 시작한 탓이다. 그런 식으로 사두고 아직 다 읽지 않은 원서들이 선반에 수두룩하지만, 그래도 샀다. 누누이 말했듯이 나에게 책을 산다는 것은 그 책을 읽겠다는 최소한의 의지 표현이다. 책에 있어서만큼은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것을 애저녁에 포기했기 때문에, 이제는 언젠가는 반드시 읽을 거라고 스스로를 속이지도 않는다. 다만 길버트가 <빅 매직>에서 적고 있듯이 책꽂이에 얌전히 꽂혀 있다가 마술처럼 나에게 다시 발견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낭만 섞인 가능성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소비라 손가락질 당해도 할 말은 없다. 그게 사실이니까.

아직 열지 않은 책들이 주는 설렘을 대체할 수 있는 감각이 있을까. 아무리 마음에 드는 옷을 사도, 좋다고 소문이 자자한 화장품을 구입해도, 뜯기 전의 기대감은 첫 장을 열 때의 감각에는 한참을 못미친다. 그리고 그렇게 연 책에서 마음을 가득 채우는 문장을 발견했을 때의 만족감이란. 그래서 그렇게 마음이 울적하거나 복잡할 때는 어딘가에 잠자고 있을,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책들을 사냥하러 서점에 가는가보다.

돌이켜보면 물욕에 사로잡힌 3월을 보냈다. 실로 많은 것들을 사들였다. 소비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어리석다 생각하면서도 왜이리 갖고 싶은 것들이 많은지. 그러면서 책과는 다소 소원한 한 달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드물게 읽은 책들은 허전한 마음을 꽉 채워주었다.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보다는 책을 읽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눈앞의 손쉬운 오락거리를 거부하고, 굳이 번거로움을 선택하는 것이 항상 쉽지만은 않다. 결심은 몇 번이고 무너질 수 밖에 없기에 그럴 때마다 다잡아야 한다. 수없이 무너짐과 다잡음을 반복하면서 이제는 무너짐에 조금은 덜 좌절할 수 있게 되었다. 좌절할 시간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하는게 낫다. <빅 매직>에서 길버트가 이야기했듯이, “완벽주의는 두려움의 또 다른 이름”이니까.

 

다 읽은 책

  1. 엘리자베스 길버트, 박소현 옮김, <빅 매직>
    • 창조성에 대한 마술적인 해석이 더없는 해방감을 준다. 창조성이 찾아오기를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말고, 창작성이 찾아오든 말든 스스로의 창작을 꾸준히 해나갈 것. 성공과 실패는 어차피 사람 손에 달린 것이 아니니, 성공하지 않을 바에야 창작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만 두는 것이 낫다. 청조성은 성공과 실패 이전에,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즐거운 일이어야 하니까. 내 안에 숨어있는 창조성의 씨앗을 성실하게 키워나가고 싶다는 의욕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찰진 말투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번역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그녀의 원래 목소리가 궁금해져서 원서로도 구입했다.
    • 그러고보니, 민음 북클럽에서 가입 선물을 선택할 때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으면서 덜컥 선택한 이 책이 이토록 마음에 들었던 것도 어쩌면 “빅 매직”이 아니었을까!

 

요즘 듣는 팟캐스트

  1. Adam Grant’s “WorkLife”
    • 배움에 대한 의욕이 샘솟는 요즘, 그 기세를 몰아 iTunes U를 좀 찾아볼 요량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의 두 책(<기브 앤 테이크>, 그리고 셰릴 샌드버그와의 공저인 <옵션 B>)을 모두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그날 바로 첫 에피소드부터 들어보았다. 남다른 조직 문화를 가진 기업에, 조직심리학자(organizational psychologist)인 애덤 그랜트가 찾아가서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속속들이 파헤치고, 다른 조직에 적용할 수 있을 만한 요소들을 소개한다는 것이 주요 컨셉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CEO부터 말단 직원까지, 비판에 대해 활짝 열린 자세를 가진 금융 회사 BridgeWater Associates. 얼마나 열려있는가 하면, 회의가 끝난 뒤에 일개 팀원이 회사 사장에게  “이봐, 사장. 자네 오늘 회의 성적은 D- 였어. 준비 안 한게 다 티가 났다니까. 이런 모습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라고 쓴 메일을 보내고, 그 메일을 받은 CEO는 한술 더 떠서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전 직원)에게 그날 회의에서 자신의 퍼포먼스를 평가해달라는 메일을 보냈다고. 그만큼 피드백을 주고 받는 것에 자유롭다는 거겠지. 이 에피소드를 듣고 나서, 싫은 소리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어해서 정곡을 바로 찌르지 못하고 겉다리만 돌다 끝나기 일쑤인 나의 대화 습관을 전면적으로 되짚어보게 되었다.
    • 이 에피소드를 듣고 나서,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실수를 저질러서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피드백을 받았는데 역시 이 내용을 알고 있더라도 마냥 ‘쿨하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얼른 마음을 다잡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 내용도 좋고, 애덤 그랜트의 프로페셔널하면서도 능청맞은 말투가 마음에 들어서 일부러 다음 에피소드를 듣지 않고 이 첫 번째 에피소드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듣고 있다. 한 번 마음을 잡고 받아쓰기를 해보고도 싶은데, 과연? 일단은 여기 적어라도 둔다.

 

산 책

  1. Elizabeth Gilbert, Eat, Pray, Love 
  2. Elizabeth Gilbert, Big Magic
  3. Sara Midda, A Bowl of Olives 
  4. Katie Scott, Botanicum 
  5. 난다, <거의 정반대의 행복>
  6. 문소리 외, <부디 계속해주세요>
  7. 우치누마 신타로, 아야메 요시노부,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서울>
    • 작년 도쿄 여행 때 B&B에서 보고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내려놓은 이 책이 번역본으로 나왔다! 작년에 <책의 역습>을 읽은 이래로 일본에서 나온 출판 관련된 책들을 한창 읽고 사모으다가 한동안 뜸했는데 반가운 마음에 고민도 않고 집어들었다. 아껴아껴 읽어야지.

*1~7: 모두 광화문 교보문고(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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