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독서

2017. 12. 18.

월요일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을까. 마지막으로 기록을 남긴 게 11월 26일이라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라 그런지 12월은 유독 빠르게 흐르는 느낌이다. 하루하루는 길게 느껴지는데, 지나고 보면 순식간이라 그 속도차에 이따금 어리둥절해진다.

이렇게 기록과 기록 사이의 기간이 길 때마다 쓰게 되는 구절이지만,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올 한 해는 한 달도 순탄하게 지나간 적은 없는 듯하다.)

아예 예상을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예상을 했다고 해서 충격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게 분하고 억울했다.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다. 다만 하나 하나의 결정이, 가벼이 넘겼던 상황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질이 모이고 보니 누가 손쓸 새도 없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안타깝지만 이 일에 있어서 내 역할은 방관자 – 혹은 관찰자 – 에 가까웠으므로, 다시 돌아간다한들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여러 번 생각해보아도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충분한 자본이다. 올 한 해에 걸쳐 여러 번, 경제적 자유의 중요성을 마음 깊이 깨닫고 있다.

그동안 내 성향과는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외면해왔지만, 이제부터라도 질끈 감았던 눈을 조금씩 떠보려 한다. 이런 결심은 나의 독서에도 반영되어 이번 달에는 경제 경영 분야의 책들을 많이 사고, 또 읽었다. 더불어 금융과 재테크와 관련된 책들도 함께 읽고 있다. 책을 읽는다고 벼락부자가 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의 지식은 갖추어야겠다는 결심을 구체화한 것이다. 관심은 있었으나 그런 책을 사서 내 서가에 꽂아두고 싶지는 않다는 이상한 속물근성도 나의 편독에 크게 한 몫 했는데, 전자책을 읽으면서는 그런 부담이 훨씬 줄었다. 여전히 종이책을 보면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사도 전자책만큼은 안 읽게 될 것 같아 덜 사게 된다. (아닌게 아니라, 12월에는 종이책을 한 권도 사지 않았다.)

어제 오랫동안 거실에 앉아서 책꽂이를 바라보는데,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그 안 읽은 책들을 여전히 읽고 싶어한다는 생각에도 또 놀랐다. 읽고 싶은데 왜 읽지 않은 것일까. 지금까지 안 읽을 책이라면 안 사는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은 살면서 수십 번, 수백 번을 했을 텐데 여전히 못 고치는 걸 보니 고칠 생각이 없거나 불가능한게 아닐까 싶다. 아마 내년에도 이 버릇을 고치기 힘들 테니, 그냥 많이 사고 많이 읽으련다.

 

다 읽은 책

  1. 가즈오 이시구로,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 2>
    • 넘어가지 않는 책장을 오기로 버텨가며 꾸역꾸역 넘겼다. 스웨덴 한림원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가즈오 이시구로를 선정하면서 그의 소설을 “프란츠 카프카와 제인 오스틴을 섞은 듯하다”고 평했었는데, 이 소설에서는 특히 카프카적인 부조리의 세계가 전면에 드러난다. 두 권을 합쳐 거의 1,000페이지에 이르는 이 소설에는 뚜렷한 서사구조가 없고, 주인공은 주변 인물들의 당혹스러운 부탁에 휘말려 비슷한 장소를 돌고 돌지만 결코 어디에도 닿지 못한다. 이 소설의 서사는 선형적이지도 않고 하다못해 나선형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시작한 지점과 끝나는 지점이 하나의 원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형태를 띄고 있다. 어디에도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한 장을 넘기면 부디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디게 읽어나갔다. 주인공 라이더는 종종 자신에게 닥친 이 상황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폭발하는데, 나 역시 읽으면서 속으로 몇 번이나 폭발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읽은 것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완독하겠다는 오기에 더해 도대체 작가가 이 지난한 작품을 통해 무얼 이야기하고자 하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짐작한 대로, 다 읽었다고 해서 저절로 궁금증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다만 이 긴 여정을 ‘통과’해냈다는 쾌감이 남았을 뿐. 과연 내가 이 책을 다시 펼칠 날이 올까. 모를 일이다. 다만 그의 다른 소설이 그랬듯, 단번에 좋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만큼이나 단번에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려워서,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는 나도 모르게 다시 펼치고 있을지도. 그런 독서였다.
  2. 최은영, <쇼코의 미소>
    • 작년에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와 더불어 한국(단편)소설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이 책을 올해 초에 손에 넣어서, 이번 달 초에 꼬박 일주일 걸려서 다 읽었다. 출퇴근 길에 한 편, 두 편 읽었는데, 단 한 편도 눈물 없이 읽어내지 못했다. 매편마다 마음을 건드리는 인물이, 장면이, 대사가 있었고, 그 앞에서 나는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읽으면서, 읽고 난 뒤, 나는 그 많은 사람들의 이 책에 대한 묘사가 그토록 정확했음에 놀랐다. 이를 테면, 서영채 평론가의 ‘순하고 맑은 서사의 힘’이라는 수사 같은 것. 과연 그녀는 젠체하지 않고, 구태여 꼬지 않고, 사람의 가장 무르고 약한 부분을 숨기지 않고 직시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 한다. 그 감각이 그대로 전해져서 좋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설을 쓰는 작가와 한 시대를 살고 있으니, 나도 조금은 더 아름답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3.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 어느 불면의 밤에, 반쯤은 잠에 취해 단숨에 읽었다.
  4. 엠제이 드마코, <부의 추월차선> *전자책
  5. 김민식,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전자책
  6. 리브 콘스탄틴, <마지막 패리시 부인> *전자책
    • 오락용 독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읽고 있는 책 

  1. 가즈오 이시구로, <녹턴>
  2. 김숨, <당신의 신>
  3. E. E. 커밍스, <이것은 시를 위한 강의가 아니다>
  4.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카오스 멍키> *전자책
  5.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전자책
  6. 찰스 윌런, <찰스 윌런의 경제학으로의 초대> *전자책
  7. 이수련,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 *전자책
  8. 데이비드 앨런, <쏟아지는 일 완벽하게 해내는 법(Getting Things Done)> *전자책

 

산 책

  1.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카오스 멍키> *전자책
  2.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전자책
  3. 김정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전자책
  4. 구보 유키야, <세상에서 가장 쉬운 회계학>*전자책
  5. 엠제이 드마코, <부의 추월차선> *전자책
  6. 데이비드 앨런, <쏟아지는 일 완벽하게 해내는 법(Getting Things Done)> *전자책
  7.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전자책
  8. 김민식,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전자책
  9. 찰스 윌런, <찰스 윌런의 경제학으로의 초대> *전자책
  10.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전자책
  11. 이수련,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전자책
  12. 리브 콘스탄틴, <마지막 패리시 부인>
  13.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14. 폴 오스터, <폴 오스터 컬렉션 세트> 총 18권
  15. Kelly Barnhill, The Girl Who Drank the Moon
  16. Meik Wiking, The Little Book of Lykke 

*1~14 전부 리디북스 전자책. (일부 대여), 15~16: 영등포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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