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셋째, 넷째 주에 읽은 책

10월의 마지막 날.

조금은 울적한 기분으로 서점에 들렀다 집에 왔다. 내 울적함의 팔 할은 교보문고 때문인데, 배알도 없이 또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샀다. 교보문고 때문에 울적할 일이 무어냐 묻는다면 구구절절 설명을 할 수는 있겠지만 설득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가즈오 이시구로의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를 다 읽고 나서, 그의 또 다른 책을 읽고 싶어져서 퇴근 길에 사야겠다고 이미 마음을 정한 참이었다. 주말에 친구가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책을 추천해주었으나 컨디션이 안 좋아서 못 읽은 터라 그 책도 같이 사면 되겠다 싶었다.

일을 잘 마치고 나서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예습 겸 모바일 교보문고에 접속했는데, 전에 못 보던 새로운 페이지가 나타났다. 내가 교보문고에서 산 책들을 바탕으로 나의 독서 성향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책을 추천해주는 서비스였는데, 물론 아직 베타 버전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하나도” 안 맞았다. 그냥 안 맞기만 하면 다행인데, 거기서 분석해놓은 나의 독서 성향이라는 것이 내 자신이 생각하는 나의 독서관(?)과는 거의 정 반대라 해도 좋을 만큼 안 맞는 터라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이게 책이 아니라 영화나 옷 같은 거였다면 ‘뭐야, 잘 안 맞네’ 하고 그냥 넘어갔을 터인데, 이게 이렇게 내 신경을 긁은 이유는 바로 책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많이 읽는 사람(사실은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이지만)이라 생각해온 나에게 어떤 책을 좋아한다 혹은 어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의 정체성과도 상당히 결부되어 있는 문제인지라, 어떤 사람이 나의 독서에 대해 가타부타 이야기하는 것을 일단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책을 교보문고에서만 사는 것도 아니니, 내가 산 책, 읽은 책, 읽고 싶어하는 책을 교보문고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딱 한 권 샀을 뿐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로 떡하니 ‘앨리스 먼로’를 뽑아 놓다니. 이건 너무 심했다. 교보문고에서만 시옷의 세계를 서너 권은 샀는데 왜 김소연이 아닌 앨리스 먼로인가? 박연준도 있고, 편혜영도 있고, 최진영도 있는데 왜 하필? 이번 달에만 두 권을 끝냈고 세 권째 읽어가려 하는 가즈오 이시구로를 골랐다면 아직 ‘제일 좋아하는’ 까지는 아니지만 그럴 수는 있겠다 싶을 텐데.

물론 쌓아놓은 포인트가 아까워서라도 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교보문고를 보이콧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감정을 느낀 책 애호가가 비단 나 하나뿐은 아닐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좋지만, 할 거면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충고한다.

 

다 읽은 책

  1.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 이 책은 사실 지난 번에 포스팅을 하고 나서 그날 밤에 자기 전에 다 읽었다. 두어 시간만에 후루룩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읽히고 경쾌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저자의 책 사랑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올해 읽은 에세이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는 꼽힐 듯.
  2. 가즈오 이시구로,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 <나를 보내지 마>를 인상 깊게 읽고 나서, 두 번째로 고른 책이다. 왜인지 이 책이 끌렸다. 아무것도 모를 때도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지만, 번역가 김남주가 어디선가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한 구절을 읽고 나서 더 읽고 싶어졌다. 역시나 휘몰아치는 서사는 없다. 잔잔하고 고요하지만 행간에 숨겨 놓은 미세한 균열들이 어느새 마음을 잠식한다. 담담한 고백체 때문일까. 화자의 변명이 구차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어쩌면 화자가 말하는 신념이라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덮어놓고 비난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확고함이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위대함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가즈오 이시구로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초기작 세 편이 모두 ‘한 개인이 불편한 과거와 마주하는 법’을 다루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또한 마음을 끈다. 불편한 과거 하나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다만 거기에 대응하는 자세가 다를 뿐. 나 역시 때때로 불쑥 고개를 쳐드는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에 잠 못 이루는 사람으로써, 이 주제를 다룬 그의 다른 두 작품 또한 궁금해졌다.

 

읽고 있는 책

  1. 다니엘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폴트 인펠트, <물리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 과학책을 안 읽어버릇 했더니 맘 먹고 자리에 앉았음에도 거의 진도를 못 나갔다. 다시 한 번 맘잡고 도전해야겠다.

 

산 책

  1. 정홍수, <마음을 건다>
  2. 최진영, <구의 증명>
  3. 가즈오 이시구로,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폴트 인펠트, <물리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5. 마쓰이 타다미쓰,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
  6. 애슐리 반스,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7.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8. 김금희 외, <이해 없이 당분간>

*1~4 반디앤루니스 신세계 강남점(10/17), 5~8 광화문 교보문고(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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