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첫째, 둘째주에 읽은 책

긴 연휴를 보내고 다시 업무에 적응하고 나니, 10월도 절반이 지나 있다. 흐르는 시간에도 가속도가 붙는 것일까.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책을 읽는 습관을 붙이고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밀도 있게 독서를 했고, 또 책을 여러 권 샀다. 그리고 손으로 약간 글을 썼다. 일부러 노트북은 들고 나가지 않았다.

때때로 나는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무엇을 읽는가보다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읽기를 위한 읽기. 적어놓고 보니 그리 나빠보이진 않는다. 딱히 무언가를 위해서 읽는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어렸을 때부터 늘 읽다 보니, 어느새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뭔가 중요한 일을 빼먹고 있는 듯한 기분에 불안해진다. 어쩌면 이 기록도 마찬가지이다. 딱히 무엇을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내적 동기때문에 적는 것이다. 물론 그 양이나 깊이는 처음 계획했던 것에 비하면 소소하기 이를데 없지만. 단지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기억하기 위한 장치일지도 모르겠다. 올해를 통과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고, 내면은 소란스럽다. 불안정한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나는 읽기에서 찾으려 했던 걸까. 좋고 나쁨을 떠나서 적어도 나답긴 하다. 대단히 나다운 방법이다.

 

읽고 있는 책

  1. 앨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
    • 여름 즈음인가, 강남 교보에서 이끌리듯 구입한 이래 잊고 있다가 이번 방콕 여행 길에 챙겨 갔다. 나지막이 읖조리듯 단조로운 문체.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예사롭지 않은 내용들이 일상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별일 아니라는듯. 그렇게 덤덤히 써내려간 이야기들은 공고한 세계를 구축해내, 읽는 이를 잠시 그 안에 가둔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나면 그 안에 갇혀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감각이다. 그래서 이 단편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어내리기는 쉽지 않다. 한 편에서 다른 편으로 넘어가기 전에, 노련한 문장들로 세워진 촘촘한 벽 사이의 틈으로 빠져나와 다시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한 이유로 여행 기간 내내 손에서 놓지 않았건만 아직도 다섯 편이 남았다. 한 편의 무게를 알게된 이상 쉬이 다시 책장을 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2. 대니얼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3. 장수진, <사랑은 우르르 꿀꿀>
    • 오늘 구입해서 절반 이상 읽었다. 처음 보는 시인의 첫 시집이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 펼쳐 들었다. 마음을 끄는 문장이 있어 열심히 읽었으나 뒤로 갈수록 산만해져서 끝내지 못하고 책장을 덮었다. 과식했나보다.
  4.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 몇 년 전에 우연히 알게된 이래로 늘 읽어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다른 책에 밀려 장바구니 안에만 몇 년을 머무르다, 오늘 북티크에서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구입해서 단숨에 읽었다. 책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책 애호가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많이 읽은 사람답게(?) 달필이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으면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그녀의 통찰보다는 ‘와, 이 사람 정말 책 많이 읽었네’라는 생각을 먼저 했는데 묘하게 글에서 느껴지는 인상이 비슷하다. 진솔하고 젠체하지 않으나 박학함이 절로 묻어나되 현학적이지는 않달까. 아무튼 늘 글쓰기의 벽에 부딪히는 사람으로서는 부러운 일이다. 앞으로도 자주 꺼내보는 책이 될 것 같은 예감.

 

다 읽은 책

  •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 김남주의 <사라지는 번역자들>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에 대한 그녀의 깊은 애정을 목격하고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사놓고는 오래도록 묵혀두다가,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절반쯤 읽고 난 뒤 그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나름 문학 애호가라고는 하나 원래 알고 있던 작가가 노벨상을 타는 빈도보다는 노벨상을 계기로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는 빈도가 훨씬 높은 나로서는 제법 신선한 경험이었다.
    • 다음 장이 궁금해서 밤을 꼬박 세울 만큼 흥미진진한 서사를 지닌 소설은 아니지만, 무척이나 섬세하게 조직되어 있어 더디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 없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한 번도 밑줄을 긋지 않았는데, 이는 문장에 힘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각각의 문장들이 따로 떼어낼 수 없는 전체를 이루고 있어 그 중 하나를 골라내는 것이 무용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라 설명하는 것이 낫겠다.
    •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잠식하고 있는 감정은 분명 슬픔인데, 신파처럼 강하게 밀려오는 종류의 슬픔은 아니다. 막 눈물을 닦아낸 티슈 정도의 습기를 머금고 있으나 축축하지는 않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 끝내 좌절될 것을 알면서도 품고 있던 희망, 인간성에 대한 의문…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들을 작가는 경탄할 만한 성실함과 무던함으로 다루어낸다.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이 느낌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단어를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더 읽어보고 싶은 작가다.

 

산 책

  1. 김소연, <시옷의 세계>
    • 내가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이 책. 벌써 몇 권째 사는 건지 모르겠다. 줄곧 새로 사서 선물하다가 누군가에게 빌려주었는데 왠지 돌려 받지 못할 것 같은 예감. 남편에게도 예전에 선물한 적이 있어 그 책을 갖고 오면 되겠다 싶었는데 어디 두었는지 못 찾겠다고 해서 새로 샀다. 나는 이 책의 문장들을 속속들이 흠모한다. 만약 누군가의 문장을 훔칠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시옷의 세계> 속 김소연의 문장을 훔칠 것이다.
  2.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3. 로런스 블록 편, <빛 혹은 그림자>
    • 호퍼의 그림을 소재로 엮은 소설집이라니, 읽어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사버렸다.
  4. 장수진, <사랑은 우르릉 꿀꿀>

*1~4 모두 북티크 서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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