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째: 얼굴

2017. 8. 2.

수요일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상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어떤 사람과 둘이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상대의 얼굴에 집중하는 일은 나로서는 무척 드문 일이라 신기한 기분이었다. 이야기보다도 얼굴에 빠져들었다. 들여다볼수록 내가 참 좋아하는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잘생겼다거나, 예쁘다거나 – 그래서 설렌다거나 – 하는 것과는 무척 다른 이야기이다. 웃지 않을 때에는 심각하고 진중하다 못해 다소 무서워 보이지만, 웃을 때는 제대로 앞니를 전부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그럴 때 드러나는 덧니는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웃음이란 이런 거구나, 싶은.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된 웃음. 그래서일까, 나도 따라서 헤실헤실 웃음이 났다. 행복한 한편으로 조금은 슬펐다.

정작 가까이에서 늘 보는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은 거의 없는 듯하다. 함께 지낸 시간이 오래다 보니, 새삼스레 얼굴을 들여다본다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배배 꼬인다. 왠지 눈을 피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이지만, 단 한 번도 한몸 같다 느낀 점은 없다. 언제나 나는 우리 사이의 거리감을 감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거리감이 불안해서 억지로 좁히려고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거리감조차 우리의 일부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되도록이면 그 정도의 거리감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물리적으로 한 공간을 공유하게 되고도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누군가의 얼굴, 그것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얼굴을 들여다보는 새삼스런 경험을 통해 다시금 확신한 것은, 그 사람의 얼굴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까지 단번에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 이 넓은 세상에서는 물론 그런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의 세계 안에서는 그 방향이 언제나 반대였다. 누군가가 좋아지면 자연스레 그의 모든 것을 좋아하게 된다. 어여쁘게 여기게 된다. 내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대해 잠시 생각했고, 나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게 된 순간을 기억해내기 위해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정확히 짚어낼 순 없을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서로에게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 사람과 평생을 함께할 약속을 한다는 것의 무게감을 새삼 실감한다. 돌고 돌아 우리는 다시 서로의 곁을 지키게 되었고, 이제 나는 여기가 내가 있을 자리라는 확신이 든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동 드릴을 샀다. 기념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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