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째: 2017년 7월 16일

매일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단순한 일처럼 들리지만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작심삼일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하루에 한 줄이라도 꾸준히 쓴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보기 위해 뭐가 되었든 일단 써보려 한다.

이런 결심을 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두 가지 있었으니, 하나는 친구와의 대화요, 둘은 근래에 읽은 김연수의 글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가만히 놔두면 변한다. 전부 안 좋게 변한다. 예컨대 가만히 놔두면 내 배에는 살이 붙는다. 살도 예쁘게 붙으면 근육처럼 보일 텐데, 대개 안 예쁘게 붙는다. 왜 이렇게 살이 붙는지 복잡하게 설명할 수도 있으리라. 최근에 신문을 보니까 잠버릇이 나쁘면 남들보다 암에 걸릴 확률이 몇 배나 높고, 치실을 사용하지 않으면 또 얼마가 높다고 나오던데, 배에 살이 붙는 이유도 그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십오 년 동안 달린 내 경험에 따르면, 배에 살이 붙는다는 건 한동안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달리기를 하면 이 살은 없어지고 근육이 예쁘게 생긴다. 그러므로 배에 살이 붙는 건 다시 달리라는 신호다.

가만히 놔두면 안 좋게 변하는 건 운명이나 팔자 탓이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과학에서는 이걸 ‘엔트로피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가만히 놔두면 내 책상은 지저분해지고, 수염은 제멋대로 자라고, 바닥에는 지우갯가루가 흩어져 있게 되는데, 이건 우리가 사는 우주가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이 우주에 인생이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까닭도 이 때문이다. 어딘가에는 가만히 놔두면 시간이 갈수록 방이 점점 깨끗해지는 우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생은 글렀다. 그런 우주로 가려면 지금의 나는 죽은 뒤 또다른 나로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 목숨이 아깝다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이 우주를 생긴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73-74쪽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자조적으로 신세를 한탄할 때 사용하는 줄임말, ‘이생망’을 떠올리게 하는데 뒤에 이어지는 결론은 전혀 다르다. 이번 생은 망했으니 어차피 안 된다는게 아니라, 이런 우주에서 사는 우리가 무언가를 지금보다 낫게 만들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뭐라도 해야 된다는 거다. 여기서는 소설가가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계속 해서 다시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우주 이야기까지 끌고 들어온 것인데(김연수 이 사람, 스케일이 보통이 아니다), 나는 요근래 지치고 힘들 때마다 이 이야기가 자꾸 떠올랐다. 귀찮고 힘들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나는 김연수의 이 문장들을 떠올리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어딘가에는 가만히 있어도 건강이 좋아지고, 우정이 깊어지고, 원하는 문장을 쓰게 되는 우주도 있겠지만 엔트로피의 법칙이 적용되는 이 우주는 안타깝게도 그런 곳이 아니니까. 투덜거림이 묻어나오지만 유쾌한 이 문장에 나는 적잖이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뭔가를 해볼 마음이 생겼다.

이 일기는 그렇게 등떠밀려 내딛은 첫 번째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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