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마지막주부터 7월 둘째주까지 읽은 책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고, 너무나 많은 죽음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했던 세계가 눈앞에서 펼쳐졌다. 되도록이면 보고 싶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면 영영 모르는 상태로 남아 있고 싶었다. 근래의 경험 – 아직 끝나지 않은 – 은 나에게 성장할 것을 강요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종이와 활자로 배우는 것에만 익숙한 내 앞에 억지로 드러난 세계는 위장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헛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비린내가 생생한 날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보기 좋게 가공된, 진공포장된 세계 안에서만 살아왔음을, 내가 아무리 많이 보고 듣고 읽었다 하더라도 내가 아는 것은 새끼손톱 끝의 반달무늬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디 적은 양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일은 지지부진하고, 생활은 궤도를 벗어났다. 스스로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은 몇 번을 마주해도 결코 쉬워지지 않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들은 순간순간 벌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번쩍 뜨고, 가슴을 활짝 열어야 하는 이유다.

잔뜩 의기소침해 있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오늘도 일찍 퇴근하는 길에 서점을 찾았다. 세 권을 고르고 돌아가려는 길에 우연히 벽에 붙은 광고로 심보선의 새 시집이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서점에 재고가 있어 얼른 한 권을 집어 들고, 내친 김에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 500호 기념 시집도 샀다. 그대로 돌아섰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이 뜻밖의 행운에 도무지 걷힐 것 같지 않던 마음이 순식간에 맑아졌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순간을 만날 때 행복이 가까이에 있음을 실감한다.

 

다 읽은 책

  1. 팀 하포드, 윤영삼 옮김 <메시>
    • 때로는 질서와 체계보다 무질서와 혼란에서 더 좋은 것들이 만들어진다. 익히 알려진 사례들을 잘 엮어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예로 사용했다. 특히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체계 없음과 무질서함에 스트레스 받고 있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된 책. 내가 처한 상황을 180도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깨달음을 공유하고 싶어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도 선물했다.
  2. 라이오넬 슈라이버, 송정은 옮김, <케빈에 대하여>
    • 간담이 서늘해지는 스릴러. 인간과, 악, 그리고 모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읽고 나면 마음은 착잡해지고 머리는 복잡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영화를 보지 않고 책만 읽었는데 흡인력이 대단하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와 <엄마됨을 후회함>이 동시에 떠올랐다. 이렇게 마음이 힘든 책을 두 번 읽기는 쉽지 않겠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임은 분명하다.
  3. 이영지, 조성림, <오래 쓰는 첫 살림>
    • 처음으로 내 살림을 꾸리게 되니 준비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알쏭달쏭해서, 평소 습관 대로 책부터 집어들었다. 여러 권을 들고 비교했는데 평소 나의 취향에 가깝고 살림 꾸리기 전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물론 책에 실린 조언을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내 몫이지만 나름의 기준을 세우는 데 나쁘지 않은 조력자였다.

 

읽고 있는 책

  1. 백영옥, <빨간 머리 앤이 하는 말>
  2. 하바 요시타카, 홍성민 옮김,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3. 서정학,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산 책

  1. 이규리,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선물용
  2. 우치누마 신타로, <책의 역습> *선물용
  3. 라이오넬 슈라이버, <케빈에 대하여>
  4. 하바 요시타카,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5. 앨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
  6. 팀 하포드, <메시> *선물용
  7. 이영지, 조성림, <오래 쓰는 첫 살림>
  8. 팀 하포드, <메시> *선물용
  9. 김소연, <시옷의 세계> *두 권, 선물용
  10. 제시카 트레이시, <프라이드>
  11. 토마스 핀천, <느리게 배우는 사람>
    • 김연수 <소설가의 일>에서 보고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책을 우연히 발견해서 고민 없이 집어들었다.
  12.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 번역가 김남주의 에세이, <사라지는 번역가들>에서 짤막하게 소개한 것을 보고 읽고 싶다 생각했으나 한동안 잊고 있다가 오늘 마주쳐서 구입했다. 올해 들어 조금씩 읽기 시작한 SF 소설의 다음 주자가 될 듯.
  13.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 전혀 모르는 작가지만, 뒷표지에 인쇄된 작가의 말에 쓰인 ‘사랑’이라는 진부한 단어가 오히려 궁금증을 자극했다. 게다가 믿고 읽는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니까. 이렇게 갑자기 끌려서 산 책들의 상당수가 지금 내 보물책 목록에 올라와 있다.
  14. 심보선, <오늘은 잘 모르겠어>
    •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경위는 위에 적어두었다. 내가 제일 처음으로 선물 받은 시집이자 처음으로 끝까지 읽은 시집이 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15초>이고,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선물한 시집이 심보선의 <눈앞에 없는 사람>이다. 이 시집의 문을 여는 시, <인중을 긁적거리며>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중 하나)이다. 그리고 오늘 그의 세 번째 시집을 손에 넣었다. 펼치기도 전에 가슴이 콩닥콩닥. 아껴 읽어야지.
  15. 오생근, 조연정 엮음,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
    • 나의 시집 컬렉션의 70%를 차지하는 게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이다. (그 다음은 문학동네, 그 다음은 민음사.) 500권 전권을 다 모을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나에게 시의 세계를 처음으로 알려준 시리즈라 한 번 사 보았다. 기념하기 위해서.
  • 1-2 반디앤루니스 인터넷(6/27)
  • 3-4 북티크 서교점 (7/1)
  • 5-7 교보문고 강남점 (7/2)
  • 8-10 인터파크 도서 (7/6)
  • 11-15 교보문고 광화문점 (7/14)
  • 이번에는 유난히 선물할 책을 많이 샀다. 같은 책을 여러 사람에게 선물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해준다는 것은 무척이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다. 이사갈 집은 공간이 좁아서 책을 대폭 줄여야 할 텐데, 이렇게 계속 들이기만 해서야 처분할 일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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