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키워드 세 가지 (ver. 2017/4)

예상치 못한 곳에서 훅 치고 들어온 것이 깊게 폐부를 찌르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미처 준비되지 않은 채로 날 것의 자신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은 반드시 자신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수반하기 마련이라, 지나고 나면 그 순간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주에도 꼭 그런 일이 있었기에 기억해 두고자 몇 자 적는다.

‘내 인생의 키워드’라는 개념은 일로 만나게 된 어떤 분에게 ‘받은’ 것이다. 이전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 받았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자기가 무얼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몰라도, 분명한 인생의 키워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그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되어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를 알게 되고 나서 비슷한 질문을 석 달 사이에 두 번 정도 들었고, 그때마다 적당히 대답했더랬다. ‘적당히’ 라는 것은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돌이켜 보았을 때 딱히 대답이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그랬나보다, 하는 뒤늦은 감상에 가깝다.

운영하고 있는 공간에서 작은 행사를 준비하면서, 참여자들과 대화의 물꼬를 틀 질문을 고민하던 중에 그녀가 이번에도 ‘내 인생의 키워드 세 가지’를 던지자고 제안했다. 우리끼리야 많이 나눈 이야기여도 오신 분들은 그런 질문을 받아본 일이 웬만해선 없을 테니 흥미로울 것 같다며. 딱히 더 나은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수긍하고, 작은 종이에 표제와 빈칸 세 개를 주루룩 적어 서른 장 정도를 인쇄해 책상 위에 두었다.

그러고서는 내 몫의 숙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잊고 있었는데, 오후에 놀러 온 6학년 친구 하나가 그 종이를 보더니 그래서 나의 키워드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왜인지 이전처럼 적당히 얼버무리기가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는 답을 못 쓰고 “한 번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종이에 친히 오늘 날짜와 내 이름을 써주며 숙제를 내주었다. 내일까지 꼭 해오라고. 늘 숙제를 받기만 하는 입장에서 내주는 입장이 되어 조금은 신나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당장에는 답을 못 쓰고, 퇴근 길에도 가지런히 책상 위에 올려두고 갔다. 그러나 그날 퇴근길에도, 다음날 출근길에도, 다른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 한 구석으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출근하자마자 아래와 같이 적었다.

 

내 인생의 키워드 세 가지

지금

나의 유산(legacy)

  적어놓고 보니 썩 마음에 들었다. 나라는 인간의 지금을 나타내기에 모자람 없는 단어들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키워드들이 언제고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서 제목에도 조건을 달았다) 당분간은 이 단어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으리라는 근거 없는 확신도 있다. 각각의 키워드에 대한 단상은 따로 적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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