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2016

녹초가 되어 퇴근하던 길에 들른 폐점 시간이 다 된 사당역 반디앤루니스를 한 바퀴 빙 둘러보다가 이 책을 집어들었다. 일하면서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엄마들을 자주 만난다. 만날 때마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아직은 새하얀 백지 같은 아이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조심스러워진다. 나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이 아이에게 어떤 결을 남길지 겁이 난다. 잠깐 스칠 뿐인 나조차도 이런데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양육의 무게를 실감할 때마다 아찔하다. 그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어서, 오랫동안 숙제처럼 남겨두었던 이 책을 읽었다.

아이를 앞세우는 것만으로도 죽음과 비견될 정도로 괴로운 일인데, 그렇게 떠난 아이가 다른 아이들의 목숨을 함께 앗아갔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다. 여기 그런 일을 실제로 겪은 엄마가 있다. 그녀는 자기 아이가 초래한 참담한 비극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아이가 저지른 죄와 그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지만, 자신은 여전히 아들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한다. 아들을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비극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일일이 헤집어가며 책을 썼다.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낼 수 없는 용기다.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저자의 정체성은 엄마이지만, 내가 뒤로 갈 수록 주목했던 것은 사회운동가로서의 면모이다. 물론 이 두 정체성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수가 비탄 속으로 침잠하는 것을 넘어서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딜런 같은 가해자-피해자가 또 다시 등장해서는 안 된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특히 마지막 장의 메시지는 몇 번이고 곱씹어 볼 만하다.

콜럼바인이나 버지니아테크, 샌디훅 같은 참사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왜?’이다. 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일 수 있다. 나는 ‘어떻게?’라고 묻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략) 어떤 일이 왜 일어났는지 설명하다 보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해결책 없이 단순한 해답에 안주하고 만다. 이미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자살에 대한 취약성이 있는 사람만이 죽음을 삶의 고통을 끝낼 논리적 해결책으로 떠올린다. 자살은 병의 결과물인데, 마치 좌절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바라보게끔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왜’ 대신에 ‘어떻게’라고 물으면 자기 파괴적인 행동에 빠져드는 과정을 그 자체로 규명할 수 있다. 어떻게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치는 길에 접어들게 되는가? 어떻게 해서 뇌에서 자기통제, 자기보존, 양심 등의 도구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가? 어떻게 왜곡된 사고를 확인하고 조기에 교정할 수 있을까? 연속체의 여러 지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어떤 환경에서든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끔 할 수 있을까?

(중략) 이런 문제들은 긴급한 관심을 요하는 문제들이다. ‘왜’만 물으면 무기력한 상태로 남는다. ‘어떻게’라고 물으면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다. (440~441쪽)

때로는 ‘왜’보다 ‘어떻게’를 물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에는 ‘어떻게’라고 묻기 이전에 ‘왜’라는 질문에 철저하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지 일을 시작하고 난 뒤에도 눈 앞의 상황에 대처하는 데 급급해서 본래의 의도를 잊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에, 게다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이 발생한 뒤에는 ‘왜’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면서 그보다 더 집요하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에 대해 물어야 한다. 그래야 수의 말마따나 그런 결과를 낳게 된 과정의 어느 단계에서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으며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 있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근래의 국정농단 사태와 세월호를 떠올렸다. 아마도 머지 않은 미래에 역사가 될 –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 이 두 사건들을 우리는 지금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충분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묻고 있는가? 아니, 묻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답을 내놓고 있는가? 그것이 맞든 틀리든 간에 말이다.

많은 경우에 말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을 한 사람이다. 사실 다른 누군가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열 다섯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스물 세 명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힌 바로 그 가해자이자, 자살로 삶을 마감한 아들의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면 받아들이는 사람으로서는 그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이지만, 다른 어떤 책에서도 느낄 수 없는 묵직한 여운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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