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벤톨로지: 불평가, 문외한, 몽상가, 낙오자, 불법거주자, 눈엣가시들의 역사, 2016

초등학생 시절만 해도 ‘발명’은 결코 낯선 단어가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연례 행사로 발명왕 선발대회가 있었고, 우리는 반쯤은 억지로 짜낸 아이디어로 만든 조악한 발명품들을 제출해야만 했다. 기억에 남는 발명품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니, 천재성이 돋보이는 인상 깊은 발명품은 없었던 것 같다.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로도 발명이라는 말을 들을 일은 간간이 있었지만, 여전히 수능 성적이 지배적이었던 입시 제도에서 발명이 설 자리는 좁기만 했다. 게다가 문/이과로 갈라지고 나니 뼛속까지 문과생이었던 나에게 발명은 안드로메다 성운만큼이나 먼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십 년 넘게 살아오다가 덜컥 이 책을 만났다. 발명에 대한 책이긴 하지만 발명이 제목부터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서점에서 보았을 때도 우선 각양각색의 서체들로 디자인된(*참고로 이 책의 디자인은 워크룸에서 했다) 표지가 눈에 들어왔고, 실생활에서의 필요로 인해 발명된 사물에 대한 예시를 내세운 도입부는 흥미를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집어든 이 책을 지난주에서 이번주까지, 출퇴근 길에 읽었다.

읽고 난 뒤의 감상은, 이 책은 발명이라는 특수한 행위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보편적인 사고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발명이란 남들과는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생각할 줄 알았던 사람들이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 문장에 쓰인 세 가지 동사가 모두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여기 나온 대로 따라하면 누구나 발명가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자기계발서라기보다는 한국어판 제목이 잘 드러내고 있듯이 일종의 역사서에 가깝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연대기적 역사 서술 방식을 따르지는 않지만, 지난 한 세기 남짓한 시간 동안 있었던 두드러지는 발명의 사례들에서 특기할 만한 흐름들을 뽑아내어 장으로 구성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통찰이 있다면 ‘디자인’과 ‘디자이너’가 ‘발명’과 ‘발명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경영과 공학, 심지어는 공공 정책에 있어서도 디자인을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디자인은 미대에서 가르치는 것으로, 상품의 외양에 직결되는 미학적인 무언가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지적자본론>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외양을 아름답게 꾸미는 기술만 가지고도 디자이너가 될 수는 있겠지만,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는 어렵다. 좋은 디자이너라면 기획자인 동시에 발명가여야 한다. 미래를 내다보고, 사람들이 아직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필요를 끄집어 내어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물론 이런 일은 디자이너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시각적인 요소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 이상으로 전술한 능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발명이 에디슨 스타일의 연구소 안에서 대기업 기획자의 감독 아래 이루어지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한 가정이 우리의 사고방식 안에 너무도 깊이 배어 있어 언어 습관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누가 새지 않는 우유 곽 좀 안 만드나.”라고 투덜거릴 때처럼 말이다. 여기서 ‘누구’란 우리 마음을 헤아려줄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를 말한다.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기업을 “생산자”, 일반인을 “소비자”라고 여긴다. (50쪽)

실제로 많은 디자인 학교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필요를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소비자로 생각하도록 교육받는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계속해서 똑같은 “발명”을 쏟아 낼 것이다. 맥주 소비량을 늘려주는 장치라든지, 멋진 이성이 주변에 나타날 때 알람이 울리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같은 것을 말이다. 발명가 마크 벨린스키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대학생들은 다른 대학생들을 발명의 표적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대학생의 관심사는 연애와 사교죠. 기아, 대기 오염, 건강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아요.” 다시 말해, 많은 학생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나 빈곤 계층을 괴롭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접할 길이 없다. (52쪽)

발명가는 단지 피드백 수집 능력만 있어서는 안 된다. 비판에 귀 기울이되 엉뚱한 문제를 해결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경로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굉장한 자제심이 필요하다. 자기 아이디어에 애착을 느끼고 거기 푹 빠져버리는 대신, 비판을 구하고 열정에 찬물을 끼얹을 사람들을 곁에 두어야 한다. 누군가가 “나는 당신의 아이디어가 필요치 않소.”라고 이야기할 때 그 사람 면전에 마시던 음료를 끼얹는 대신 “그 이유가 뭡니까?”라고 물을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창작 과정에서 가장 어렵고도 자존심을 다치기 쉬운 부분이다. (62-63쪽)

자기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를 머릿속에서 계속 재연한다. (중략) 성공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실수로 인정조차 하지 않는 사건에서도 무언가를 배운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이상한 일이 벌어지면 신경을 곤두세운다. (중략) 피드백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려면 가상의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필요하다.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시연해 보고 잘못될 수도 있는 모든 가능성을 경계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특별한 종류의 감수성이 필요하다. 실패로부터 가르침을 얻고, 틀렸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통해 학습하는 능력이다. (68-69쪽)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길을 찾다 보면 예상치 못한 뭔가를 갑자기 발견할 때가 있어. 그럴 때면 ‘와, 이거 멋진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 작업은 항상 하는 거야. 깨달음의 순간이라든가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같은 건 아무 의미 없어. 실험은 항상 진행 중이니까. 일부러 시간을 내서 자꾸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주변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봐야 해.” (92쪽)

슈퍼 인카운터러들은 누군가의 보상 없이도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를 즐기고 그러면서 몇 시간을 보내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러한 탐색 행위 자체가 내적 만족감을 안겨 주기 떄문이다. 뭔가를 발견한다면 행복하겠지만 그들은 이리저리 방랑하는 것 자체에서도 만족감을 느낀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목표 추구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그들의 성향이 그들을 결국 성공으로 이끄는 건지도 모른다.” (99쪽)

“대부분의 발명은 발명가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제품을 사용하는 방식을 관찰하는 데서 이루어지죠.” (163쪽)

급진적이고 야심찬 기술의 기원은 거의 언제나 이중 나선 구조를 보인다. 일단은 전선과 도면으로 시작되지만 우리의 기대치를 바꾸어 놓는 비전가의 저력이 개입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169쪽)

“나는 자유롭게 추론하며 글을 썼고, 당시 아직 맹아기에 있었거나 구현이 불가능했던 여러 가지 기술적 요소와 장치를 실제 존재하는 양 묘사했다. 그런 기기의 제작을 제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들이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177쪽)

웨인 그레츠키 게임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수십 년 뒤의 세상을 상상해 본다. 그런 다음 기계의 진화와 인간의 필요와 욕망에 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어떤 종류의 기술이 존재할 수밖에 없을지 생각해 낸다. 그에 대한 스케치를 그리고, 영상을 만들고, 이야기를 지어 그 기술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앨런 케이는 웨인 그레츠키 게임의 특벼한 지지자가 되었다. 비결은 “현재와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들에 대해 꿈꾸는 것”이라고 그는 2014년 한 강연에서 이야기했다. “꿈은 비전으로 확장될 수 있고, 그 비전은 우리 주위에서 접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는 전혀 다른 아이디어로 타오를 수 있습니다.” 그는 일반적인 문제 해결, 즉 주어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방식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는 방식이라 주장했다. “명백한 ‘문제’로 인식되는 것은 기실 현재 통용되는 세계관의 발현”일 뿐으로, 미래로의 도약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웨인 그레츠키 게임을 적용하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떠올리는 대신 “있으면 멋지거나 꼭 있어야 할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게 된다. (185-186쪽)

우리의 머릿속 실험실은 대단히 서사적인 특성이 있다. 미래의 기계를 발명할 경우, 그걸 사용할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그들은 어디에 사는가? 무엇을 걱정하는가? 무엇을 갈망하는가? (217쪽)

라카니는 문제를 풀 만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실제 문제 해결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에스토니아의 어떤 아이가 낸 아이디어는 아무리 훌륭할지언정 십중팔구 주목을 받지 못할 겁니다. 외부인에게서 나온 아이디어는 강한 편견에 부딪힌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요.” (254쪽)

오늘날 우리는 발명이 ‘정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기업과 정부가 수익 창출 수단으로 발명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발명은 정부와 기업을 전복시킬 수도 있다. 발명은 본질적으로 위험하고 통제하기 어렵다. (301쪽)

애플과 구글은 많은 이들이 애용하는 굉장한 제품을 만든다. 하지만 기업은 사회 문제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더 강력한 종으로서 생존하고 적응해 나가기 위해 자연계를 닮은 또 다른 발명 시스템을 키워 나갈 필요가 있다. 우리 몸을 보호하는 면역 체계처럼 개방적이고 소란스러우며 탄력성 높은 연구개발 시스템이 필요하다. 공격이 가해질 때마다 더 강해지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그리고 통증 수용체와 단절되지 않고 오히려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선도 사용자, 내부 고발자, 환자, 사회적 약자, 빈곤층 등 기술의 실패로 고통을 겪는 이들이야말로 문제를 가장 잘 진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로 연구개발의 핵심이고, 핵심에 있어야만 한다. (342-3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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