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셋째주에 읽은 책

몇 번이나 쓰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도무지 글이 써지지가 않았다. 겨우 지난주인데 벌써 까마득해져서, 막상 쓰려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문장을 억지로 쥐어 짜내는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았다. 아마 나의 고질병인 완벽주의가 도져서, 또 잘 쓰고 싶었나보다. 편하게 기록하고자 시작한 일이 어느새 부담이 되어버렸다. 약간의 부담을 느끼는 것은 나쁘지 않다. 조금은 강제적으로라도 꾸준히 기록을 이어가는 일이 하나 둘 쌓이면 그것만으로도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을, 요즘 들어 여러 번 실감했으니. 그 순간이 아니면 지나간 기록에 무언가를 덧붙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더 부담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괜히 잘 쓰려고 애쓰지 않고, 그저 지난주에 읽은 것들을 담담하게 적어보련다. 어차피 누구를 보여주려고 쓰는 글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기 위해서 쓰는 글이니까.

 

다 읽은 책

1. 마스다 무네아키, <지적자본론>
  • 예전부터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제목 탓에 늘 지나쳐왔는데, 친구와 함께 서점에 간 날 갑자기 눈에 들어와 살까말까 고민하고 있었더니 이미 이 책을 읽은 친구가 이 좋은 책을 아직도 안 읽었냐며 타박 아닌 타박을 주기에 멋쩍은 마음에 집어들고 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늘 그렇듯 그녀의 추천은 옳았다.
  • 책을 읽고 나니 다이칸야마 츠타야에 너무너무 가고 싶어져서, 도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사실은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주 목적이지만, 그에 못지 않은 중요한 핑계가 생겼기 때문에. 요즘 하고 있는 이 ‘기획’이라는 일에 대해 총체적으로 새롭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분명 한 번 읽고 말 책은 아니다.
2.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
  • 작년, 아니 재작년부터 나의 큰 화두 중 하나가 바로 ‘휴식’이다. 잘 쉬는 것이 열심히 일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은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는데, 많은 시간만큼 스트레스도 많은 대학원 생활과 졸업 후의 프리랜서 생활을 겪으면서 휴식이 더욱 절실해졌다. 그래서였을까, 작년 말에 또 광화문 교보문고를 어슬렁거리다가 왠지 이 책이 눈에 들어왔는데 별로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사버렸다. 사실 나는 이런 식으로 책을 충동구매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성공률이 제법 높은 편이다. 이 책 역시 그렇게 고른 책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저널리스트가 쓴 책 답게 아주 전문적으로 깊이 들어가지는 않아도 핵심적인 내용들이 잘 정리되어 있으며 술술 읽힌다. 특히 가속화된 사회에서의 시간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무척 흥미롭다.
  • “달리는 정지 상태”는 계속 시간에 쫓기는 사회에서는 뿌리 깊은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달리는 것만 같은데 사실은 멈춰 있는 셈이다. 동시에 모든 사람은 극도의 긴장감에 시달린다. 끝 모르는 가속화는 개별 기업에게 더욱더 높은 압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을 착취하고 혹사시킬 수밖에 없다. (186쪽)

  • 예전처럼 기술의 발전을 이용해 사회 발달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대신, 현대 후기는 그때그때 일어나는 역사적 변화가 아무런 방향 없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빠지고 말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현대화의 핵심이었던 가속화 과정은 이로써 원래의 목표로부터 한참 어긋나고 말았다. “성장과 가속이 약속해주던 원래의 행복은 갈수록 빛이 바래면서 개인과 집단의 자율성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저주가 되고 말았다.” (191쪽)

  • 진정한 휴식을 즐기는 법에 대한 소소한 팁들도 나와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흥미유발용 건강 기사에서 접할 법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면 아마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인 연구 성과들을 적극적으로 끌고 들어와 사회 현상을 제법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인 저자가 2010년에 펴낸 이 책은 그로부터 약 2년 뒤에 출간된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연상시킨다. 하나는 과학에서, 하나는 철학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 다를뿐, 이 두 책을 관통하는 중심 주제는 거의 완벽히 일치한다. 현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끊임없이 개인들이 스스로를 착취하도록 몰아가고 있으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는 시간 – 한병철은 이를 ‘무위’라 표현하였고, 울리히 슈나벨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라 풀어서 이야기했다 – 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과도 깊이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울리히 슈나벨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에서 <몰입>의 내용을 휴식의 방법 중 하나로 제법 비중 있게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내용일지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번 주에 특히 휴식에 목말라 있었는데 ‘제대로’ 쉬는 것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 여담이지만 이 책은 같은 출판사에서 2011년에 출간된 <휴식>의 개정판이다. 그리고 나는 그 <휴식>이란 책이 나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강남 교보문고에서 보고 조금 읽고 나서 살까말까 고민하다 결국 사지 않은 것을 뚜렷이 기억한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보았다. 대학원에 들어가고 난 뒤에는 심지어 인터넷으로 살까말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소위 말하는 ‘자기계발서’에 대한 편견이 심했고, 또 지금보다 훨씬 더 읽는 속도보다 빠르게 책을 사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에 고민 끝에 결국 내려놓았던 것이다. 그랬던 책을 이렇게 우연히 다시 만나서 결국 끝까지 읽었다. 별 것은 아닐지라도 재미 있는 우연이다.
끊어 읽은 책
.
1. 마르쿠스 가브리엘,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2. 임승유,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
3. 테리 이글턴,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산 책
.
1. 미치오 카쿠, <마음의 미래>
2. 버트란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3. 마르쿠스 가브리엘,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4. 아즈마 히로키, <약한 연결>
5.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6. 이성복,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7.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8. 페이건 케네디,  <인벤톨로지: 불평가, 문외한, 몽상가, 낙오자, 불법거주자, 눈엣가시들의 역사>
9. 패트릭 라일리, <원 페이지 프로포절>
* 1~5 광화문 교보문고, 6~7 북티크, 8~9 반디앤루니스 강남신세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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