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만남

 

모든 사람에게는 배울 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있어야 한다. 배운 것을 복습하는 성실함 또한 무척 중요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어렵게 배운 것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나는 자려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서 이 포스팅을 쓰고 있다. 오늘 배운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나는 스스로 늘 인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가진 지식의 대부분은 책에서 얻었지만, 내가 만난 좋은 기회는 모두 사람에게서 왔다. 오랜만에 정말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 일을 하게 된 것도 좋은 사람 덕분인데, 이 일을 함으로써 좋은 사람들을 또 알게 된 것 같다. 아직 새로운 동료들을 두 번 밖에는 못 만났지만 둘 다 아주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다. 함께 일하게 되었으니 아주 자세히 관찰하면서 좋은 점들을 적극적으로 배워 나갈 생각이다. 짧게 들려준 이야기 조각들에서도 벌써 이렇게나 좋은 자극을 받았는데, 앞으로 이들을 통해 나는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성장하게 될까.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다.

서론은 이쯤 하고, 오늘의 내가 배운 것을 정리해 보겠다. 그들에게 해가 될 내용은 절대 아니지만 아직 양해를 구하지 않았음으로 익명으로 표기하고자 한다.

1.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 A는 예전에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에 갔을 때의 홈스테이의 호스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족 농장과 와이너리를 경영하면서도 40년간 잡지를 만들어 왔다는 호스트의 이야기도 놀라웠지만, 내가 정말 감동받은 것은 그녀가 그 호스트를 만나게 된 계기였다. 호주에 간 초기에 A는 카페 겸 유기농 식료품 점에서 일을 했다. 그 가게에는 유기농 와인이 딱 두 종류 들어와 있었는데, 그녀는 그 중에 더 라벨이 예쁜 곳에다 직접 전화를 걸어 비자 문제로 농장에서 일해야 하는데 나를 채용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처음에 전화를 받은 호스트는 무척 당황하며, 지금은 일자리가 없다고 했지만 그녀는 끈질기게 당신네 농장에 자리가 없다면 다른 사람이라도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녀의 끈기에 감복했는지, 그 호스트는 마침 근시일 내에 멜버른에 갈 일이 있으니 그때 만나서 얘기를 하자고 했다. 만나서 그녀의 얘기를 듣고, 호스트는 마음을 바꿔 그녀를 고용했다. (사실 이 부분은 분명치 않다. 그저 방을 빌려준 것인지, 직접 고용을 했는지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 이 부분에서 나는 처음으로 충격을 받았다. 나라면 우선 그런 식으로 전화를 걸어 알아볼 생각도 못했을 뿐더러, 설령 전화를 걸어보았다 하더라도 일자리가 없다고 한다면 바로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끝끝내 설득해서 원하던 것을 얻었다. 아마 결국 이 호스트와의 만남이 불발되었다손 치더라도, 그녀는 아마 포기하지 않고 다른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냈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미 그녀에게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 또 한 가지는, 그때 만난 호스트와 아직까지도 연락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멘토처럼 생각하면서 이번 일을 할지 말지에 대해서도 전화로 상의를 했다고.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바보 같게도 혹시 그 호스트가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다. 외국에서 오래 전에 만난 인연을 그렇게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다니. 그것은 관계에 대한 성실함이 결여되어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이 부분에 특히 취약하고, 실제로도 일본에서 교환학생을 다녀온 이후에 친구들과는 거의 연락을 하고 있지 않다. 내가 SNS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핑계였지만, 사실 맘만 먹는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연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과 관계를 맺고, 또 그것을 잘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나로서는 정말 놀라운 부분이었다. 인간관계는 나에게 큰 기쁨을 주지만, 그만큼 큰 고통을 주기도 한다. 적정선을 찾는 것이 늘 어렵다고 느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나의 인간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2.

B는 휴학 중인 학생이다. 파트타임으로 우리와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3월부터는 복학을 해서 그 이후로도 함께할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사실 기껏해야 7월까지 진행되는 프로젝트인데 2월까지밖에 일할 수 없는 사람을 구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처음부터 7월까지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모로 보아도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를 만나자마자 나는 그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진심으로 이 일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매 순간,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묻어나왔다. 즐겁게 일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진정으로 즐겁게 일하는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는지를 되묻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일종의 이정표이다.

B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인데, 그녀는 단지 주어진 일을 즐겁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서고, 심지어는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나는 그녀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자그마치 4년 동안 거의 매일 같이 영화 퀴즈를 올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한 번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 그 성실성에 나는 두 손을 들었다. 그건 그 일을 정말 사랑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내가 함께 일 할 사람을 찾는 중이라면, 나는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그녀를 채용할 것이다. 아니, 그저 그녀와 일하고 싶어서라도 그녀가 재미있어할 만한 프로젝트를 만들어낼 것 같다.

내가 잘 시간을 미뤄가면서까지 이 포스팅을 하는 것은 바로 그녀 때문이다. 매일 한 개 씩 포스팅을 하자고 결심해놓고 사실은 일 핑계로 미루려고 했다. 딱히 쓸 거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려고 누우니 자꾸만 오늘 만난 두 사람 생각이 났다. 나는 스스로가 행동력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둘에 비하면 나는 생각만 하고 실제로 하는 일은 열에 하나도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게으른 몸을 일으켜 노트북을 펼쳤다.

내가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경험이다. 그래서 나는 이 경험을 십분 활용할 생각이다. 요즘 나는 살면서 거의 가장 행복한 시기를 살고 있다. 어렴풋하게나마 내가 되고 싶은 상이 그려졌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된 것도 다 내 주변의 고마운 사람들 덕분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씨앗을 던져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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